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photo 뉴시스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photo 뉴시스

드디어 올 게 오고 있다. 이른바 인플레이션의 물결이다.

미국의 7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전월대비’ 0.6% 올랐다. 18개월 만의 최대 상승이다. 연율로 치면 7.2%다. 7월 수입물가지수(IPI) 역시 전월대비 0.7% 증가했다. 이것도 연율로 치면 8.4%다.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다. 중국 수입물품에 대한 고관세가 원인이다. 여기에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도 ‘2개월 연속’ 전월대비 0.6% 오르면서 전문가들의 예측치 0.3%를 훌쩍 뛰어넘었다. 1991년 이후 최대 상승이다.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던 처지에서 인플레이션을 뛰어넘어 단숨에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치달을 모양새다.

연준의 간접 통화정책

연준도 이를 감지한 듯 그간 고수했던 목표 ‘2% 인플레이션 방어’의 용인 가능성을 내비쳤다. 물가인상 방어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인플레이션 용인은 달러가치 하락을 용인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앞날이 심상치 않다. 연준이 소비자물가지수 2% 상승까지는 버틴다 해도 3%에 근접하면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것이다. 2022년 말까지 제로금리를 지속하겠다는 의미로 점도표(연준 위원들 각자가 미래의 특정 시점별로 기준금리가 어떻게 형성될 것인지를 도면상에 점을 찍어 표시한 그래프)도 공개한 터에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잡기는 힘든 형국이다. 게다가 금리를 올리면 당장 기업부채 쪽에서 사달이 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연준이 손놓고 있을 수도 없는 처지다. 그렇다면 연준이 할 수 있는 일은 시중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연준의 비상하고도 특별한 대책이 없으면 ‘긴축 발작’ 우려가 있다. 잘못하면 시장이 놀라 주식시장이 붕괴할 수도 있다.

유동성을 줄이더라도 가능한 일반인들이 눈치 못 채게 연준이 직접 나서지 않고 시중은행들로 하여금 국채를 사들이게 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는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지금 연준이 하고 있는 일을 반대로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연준의 자산, 곧 본원통화 발행액은 지난 6월 10일 7조1689억달러로 정점을 찍은 이후 오히려 줄고 있다. 유동성을 거둬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공약한 양적완화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월 국채와 모기지 증권을 사들이고는 있으나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초단기 자금시장인 레포(repo)시장과 외국 중앙은행 계좌로부터 거둬들이고 있는 것이다.

연준이 긴축으로 돌아섰다면 인플레이션 진행과 달러 하락세가 멈춰야 하는 게 아닌가? 아니다. 연준은 지금 간접적인 방법으로 유동성을 늘리고 있다. 연준은 대형은행들로 하여금 시중에 돈을 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연준에는 은행들의 지급준비금이 보관되어 있다. 법정 지급준비금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연준이 이자를 지급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생긴 제도이다. ‘초과지급준비금리(IOER)’라고 하는데, 이를 기준금리 범위 내에서 운용하고 있다. 연준은 현재 초과지급준비금리를 0.1%로 낮게 운용하고 있다. 은행들이 그 이상의 수익을 원한다면 돈을 연준에 쌓아두지 말고 밖으로 들고나가 수익을 거두라는 이야기다.

더구나 연준은 대형은행들의 위험 감수를 억제하는 ‘보충적 레버리지 비율(SLR)’, 곧 자본요건을 내년 3월 31일까지 1년간 일시적으로 완화했다. 연준은 이를 완화해주면서 한마디 보태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돈으로 자사주 매입 등 엉뚱한 곳에 쓰지 마라’라고 경고했다. 한마디로 초과지급준비금으로 국채를 사라는 이야기다. 실제 대형은행들은 6월 이후 초과지급준비금을 지속적으로 줄이고 있다. 시중에 돈이 풀리고 있는 것이다.

연준이 이렇게 국채시장에 신경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의 양이 너무 많다. 미국 정부가 경제위기 타개를 위한 재정부양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간 미국 국채의 단골손님이었던 외국 중앙은행들이 요새는 미국 국채를 사지 않고 있다. 외국 중앙은행들은 올해 상반기 미국 국채를 거의 사지 않았다.

금을 외환보유고에 담는 중앙은행들

그렇다면 각국 중앙은행들은 외환보유고를 어떻게 운용하고 있을까?

세계 중앙은행들은 요새 미국 국채 대신 금을 외환보유고에 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세계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데 올해 상반기 금 매입량은 374t으로 19년 만의 최대 수준이었다.

2019년 국가별 외환보유고 내역을 살펴보면 놀라울 정도로 금의 비중이 높다. 독일 70.2%, 이탈리아 66.1%, 네덜란드 65.4%, 프랑스 60.7%, 헝가리 60.0% 등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1.2% 수준이다.

명목상으로는 미국 연준의 금 보유량이 세계 최대이나 연준은 몇 년째 실사를 거부하고 있다. 독일은 미국 연준이 미덥지 않은지 연준에 맡겨놓은 금 중 300t을 2017년에 회수했다.

반면에 중국 중앙은행의 금 보유량은 외환보유고 내 비중이 2.5%에 불과하지만 이는 중국 중앙은행이 IMF에 자진신고한 금액으로 실제 중국 중앙은행이 금을 어느 정도 갖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계 최대의 금 구매 국가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세계 금 연간 생산량은 약 3700t 정도인데 이 중 3분의 2를 중국과 인도가 매년 꾸준히 구매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각국 외환보유고 내 달러표시자산 비중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2015년 66.0%였던 달러 비중이 5년 사이에 크게 감소해 2019년에는 61.6%로 줄어들었다. 여기에 미국 정부와 연준의 고민이 있다.

8·11 금 폭락 사태의 사유

8월 11일 하루에 금 가격이 5%, 은 가격이 15% 폭락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가장 중요한 원인은 그간 가파른 가격상승으로 팔자 세력이 사자 세력을 일시적으로 앞섰다. 8월 3일 금 지수가 49.3%로 발표되어 근래 처음으로 50을 하회하여 약세 전망이 나온 것이다.

팔자 세력이 기회를 엿보던 차에 몇 가지 악재가 동시에 발생했다. 8월 11일 미국 국채 입찰물량의 과다로 국채금리가 급등했다. 특히 2년물 단기금리가 0.107%에서 0.161%로 50%나 급등했다. 이자 한 푼 안 붙는 금으로서는 단기금리 상승은 큰 악재에 속한다. 더구나 때 맞춰 러시아의 백신 개발 등록 소식이 들려와 경기회복 기대감을 갖게 했다. 여기에 힘입어 달러인덱스 또한 일시 상승했다. 이러한 복합적 요인으로 이익실현 매물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사실 이렇게 조정받을 때가 분할매수 기회였다.

다시 인플레이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미 재무부가 2020년 상반기에 발행한 국채 규모는 3조3400억달러에 이른다. 단기간에 발행한 사상 최대 규모이다. 이 국채 매각으로 조성한 돈의 쓰임새를 보면 대부분 메인스트리트 곧 실물경제 시장에 공급되었다. 그 가운데 실업급여와 기본소득 등 개인에게 지출한 금액이 1조2000억달러로 가장 많았다. 다음이 기업대출 등과 정부 일상경비로 지출되었으며, 세 번째가 주정부 운영경비, 특히 주정부 공무원 해고방지를 위해 쓰였다.

그런데 연준의 양적완화와 달리 재무부가 이렇게 메인스트리트 곧 개인, 기업, 주정부에 직접 돈을 공급하면 경제를 살리는 데 효과적이긴 한데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인플레이션이 필연인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유동성의 증가가 가져오는 영향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그래프와 경제용어가 등장함을 양해 바란다. 먼저 돈이 메인스트리트에 풀리자 인플레이션 핵심지표인 M2(광의 통화)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것이 양적완화와 확연히 다른 점이다.

제로금리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실질금리는 마이너스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실질금리는 명목금리에서 기대 인플레이션을 뺀 값이다. 실질금리를 잘 나타내고 있는 그래프가 10년물 물가연동채 인플레이션 지수 보완(수익률)이다.

미국 10년물 물가연동채 그래프를 보면 실질금리가 -1.0%로 급격히 하락 중이다. 이는 올해 인플레이션이 이미 1% 발생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그래프에서 보듯 20년 이래 역대 최고치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음을 뜻한다.

물가연동채는 원금에 실질금리 하락분(인플레이션 지수)만큼을 보완해주어 물가인상에 따른 원금 손실을 방어해준다. 이런 실질금리 하락은 투자자들이 자산 헤지를 위해 금과 은을 선호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기대 인플레이션율(BEI)은 명목금리에서 실질금리를 뺀 값이다. 10년물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미 정부의 국채 발행액이 많아 장기국채 금리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8월 14일 기준,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1.733%이다. 10년물 국채금리 0.713%에서 10년물 물가연동채 금리 -1.02%를 뺀 값이다.

다시 정리하면, 인플레이션 핵심지표인 M2 통화 그래프가 사상 최대 기울기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고, 인플레이션을 선행 예측하는 기대 인플레이션율도 매우 큰 반등을 보이고 있다.

기대 인플레이션과 달러가치, 곧 달러인덱스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올라가면 달러가치는 내려간다는 뜻이다. 이 둘의 상관관계는 -0.91로 비교적 긴밀하게 역의 관계로 움직인다.

게다가 유로화 강세가 지속되고 있다. 7500억유로 회복기금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이는 EU 사상 최대의 금액으로 3900억유로의 무상지원과 3500억유로의 대출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합의를 세계가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이번 합의가 EU 재정 통합에 대한 가능성과 유로경제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높였기 때문이다. 유로화는 달러인덱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7.6%나 된다. 유로화 강세는 곧 달러인덱스 하락을 의미한다.

레이 달리오의 포트폴리오 추천

그렇다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달러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투자자들은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레이 달리오는 다음의 포트폴리오를 추천하고 있다. 그는 현재 단계에서 “현금은 쓰레기”라고 단언하며 ‘물가연동채와 금, 그리고 원자재’에 나누어 분산투자할 것을 권하고 있다.

홍익희 세종대 대우교수·‘월가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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