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가을단풍길로 지정된 서울 노원구 화랑로. ⓒphoto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서울시 가을단풍길로 지정된 서울 노원구 화랑로. ⓒphoto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태릉골프장 아파트숲 조성을 앞두고 서울 노원구 화랑로 플라타너스(버즘나무)들의 운명이 기로에 처했다.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등은 관계기관 합동으로 지난 8월 4일, 국방부 소유 군(軍) 골프장인 태릉골프장에 1만가구 미니신도시 조성계획을 발표하면서 그에 따른 광역교통대책으로 화랑로 확장안(案)을 제시했다. 화랑로는 서울 성북구 종암사거리에서 태릉골프장을 지나 서울시와 경기도의 시계(市界)인 삼육대 정문 앞까지 이어지는 도로다.

이 중 옛 경춘선 화랑대역(폐역)에서 육군사관학교와 태릉골프장을 지나 삼육대 정문 앞까지 이어지는 옛 태릉로(현재 화랑로에 편입) 양옆으로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늘어져 서울에서 보기 드문 경관을 만들어낸다. 특히 가을 단풍철이면 바스락거리는 낙엽들이 장관을 이뤄 서울시는 이 구간을 포함해 6호선 태릉입구역에서 삼육대 정문에 이르는 3.4㎞ 구간을 ‘가을단풍길(화랑로)’로 지정한 바 있다. 가을단풍길은 단풍철 떨어진 낙엽을 고유의 경관유지 등을 위해 치우지 않는 구간을 뜻한다.

화랑로, 서울시 가을단풍길 지정

하지만 화랑로 확장이 태릉골프장 광역교통대책의 하나로 사실상 확정되면서 플라타너스 나무들은 수십 년간 뿌리박은 자리를 내줘야 할 판이다. 지금도 이 구간은 2만5000가구 규모의 경기도 남양주 별내신도시에서 서울시내로 진입하는 북부간선도로를 타려는 차량들로 출퇴근 정체가 심하다. 1만가구 태릉 미니신도시까지 들어서면 교통량 폭증은 불 보듯 뻔하다. 이에 정부도 지난 8월 4일, 태릉골프장 공공주택 공급계획을 발표하면서 화랑로 확장과 화랑대사거리 입체화, 북부간선도로 묵동IC 개선 등의 안(案)을 제시했다.

이 중 6호선 화랑대역에서 경춘선 갈매역에 이르는 구간은 버스전용차로인 BRT(Bus Rapid Transit)를 조성한다는 안까지 들어 있다. 버스전용차로인 BRT 확보를 위해서는 최소 왕복 2개 차선 이상 추가 확보가 필수적이다. 기존 차선을 유지한 채 BRT를 끼워 넣을 경우 교통악화가 더 심해질 수 있어서다. 이를 위해서도 화랑로 확장은 사실상 불가피한 수순이다. 게다가 화랑로 주변은 육군사관학교와 태릉골프장 등 대부분 국유지로 묶여 있다. 도로 확장에 각종 소음피해 등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민가조차 거의 없어 가장 손쉽고 싸게 도로를 확장할 수 있기도 하다.

반면 화랑대사거리 입체화와 BRT 통행을 위한 추가 차선 확보를 위해서는 화랑로 양옆으로 우거진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통째로 베어내거나 뿌리째 뽑아내는 것이 불가피하다. 가로수를 베어내지 않고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심는다 하더라도 거목(巨木)의 특성상 생존을 장담하지 못한다. 거목의 경우 다른 곳으로 이식했을 때 생존확률이 20~30% 남짓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 뿌리를 박는 활착률이 떨어져 거름과 영양제 등을 장기간 투여해도 살아남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8월 23일 찾아간 화랑로 양옆에는 건장한 성인 남성이 두 팔로 안아도 감싸지 못할 정도의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녹음을 드리우고 있었다. 플라타너스 나무들은 도로와 보도의 경계에서 대략 6~7m 간격으로 식재돼 있었다. 일부 구간에는 보도의 양옆으로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2열로 식재된 곳도 흔했다. 화랑로와 이어지는 담터지하차도 너머 경기도 남양주 별내신도시 경내에 서 있는 왜소한 가로수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대략 7m 간격으로 3.4㎞(3400m) 구간에 플라타너스가 도로 양옆에 서 있다고 가정했을 때, 줄잡아 970그루(485×2)의 나무가 서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경춘선 숲길과 겹치는 구간에는 가로수가 2열로 서 있는 곳도 있으니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듯했다. 노원구청 푸른도시과의 한 관계자는 “태릉입구역에서 삼육대까지 심어진 플라타너스는 700주, 전체 구간은 800주 정도 된다”라며 “수령은 20~30년 정도 된 것으로 아는데 유난히 크다”라고 말했다. 왕복 6차선 화랑로를 양옆으로 각각 한 개 차선씩 늘린다고 했을 때 최소 700~800그루의 플라타너스를 제거해야 할 판이다.

20~30년 된 플라타너스 700~800그루

이 같은 논란은 과거 충북 청주의 명물인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을 확장할 때와 거의 흡사하다. 경부고속도로 청주IC에서 청주 시내로 이어지는 약 4.5㎞의 길에는 플라타너스 1600여그루가 우거져 장관을 이룬다. 영화 ‘만추(晩秋)’와 드라마 ‘모래시계’의 배경으로 유명해진 이 길을 지난 2000년 왕복 4차선에서 8차선으로 확장하려고 했을 때도 상당한 논란이 됐다. 결국 청주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은 10년 만인 2010년, 왕복 4차선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의 원형을 그대로 남긴 채, 양옆에 추가로 1차선씩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타협이 이뤄졌다.

하지만 서울에서 가장 긴 가로수길이란 명성을 갖고 있는 화랑로 가을단풍길의 경우, 청주 가로수길과 달리 주변 공간이 협소하고 지가(地價) 자체가 현격히 차이가 나서, 이 같은 방식의 타협이 이뤄질 수 있을지 미지수다. 화랑로 확장안을 발표한 국토교통부는 물론 해당 지역의 여당 소속 정치인들마저 태릉 미니신도시 교통난 해소를 위해 화랑로 확장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태릉골프장(노원구 공릉동)을 지역구로 둔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재선·서울 노원구갑)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태릉골프장) 택지지구 지정이 결정된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고자 한다”며 “화랑로 확장, 화랑대사거리 입체화, 태릉BRT 설치, 경춘선 열차 추가투입 등 교통정체 해소방안 마련” 등 요구사항을 밝혔다. 노원구를 지역구로 둔 민주당 우원식 의원(4선·서울 노원구을), 노원구청장을 지낸 민주당 김성환 의원(재선·서울 노원구병)도 “가뜩이나 상습적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태릉골프장 주변에 대규모의 주택 추가 공급으로 교통정체는 더욱 극심해질 것”이라며 ‘화랑로 확장’ ‘BRT 신설’ 외에도 추가적인 교통대책을 요구했다.

화랑로 확장의 직접 수혜를 받을 남양주 별내신도시를 지역구로 둔 민주당 김한정 의원(재선·경기도 남양주을) 역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태릉 예정단지(골프장)는 별내신도시와 3㎞도 안 떨어진 인접지역으로 1만채의 대단위 주택단지가 생기면 지금도 혼잡한 서울 진입 간선도로인 화랑로는 극심한 교통정체를 겪게 될 것으로 (남양주) 시민들이 걱정하고 있다”며 “서울 진입 교통개선을 위해 화랑로 확장, 버스전용차로, 입체교차로 설치 등의 계획을 세우고, 옛 경춘선 철로 복원으로 별내와 6호선 연계 철도망을 구축하는 방안도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심지어 태릉골프장 미니신도시 조성 발표 후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개서신을 보낸 오승록 노원구청장 역시 “태릉골프장 주변의 도로망을 획기적으로 신설, 확충하는 광역 교통개선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화랑로 플라타너스들의 운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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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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