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 ⓒphoto 뉴시스
미국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 ⓒphoto 뉴시스

부동산 시장의 가장 큰 변수는 금리이다. 부동산 대출금리가 싸지면 집값은 오르는 게 순리이다. 제로금리가 일찍이 정착된 유럽의 집값이 크게 뛴 이유이다. 다음으로 집값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유동성이다. 돈이 많이 풀리면 자산 가격은 올라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올 3월부터 금리를 제로로 낮추고 사상 최대의 유동성을 푼 미국에서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주택거래량이 26%나 감소했을 때도 끄떡없던 집값이 이후 제로금리에다 많은 돈이 풀렸는데도 5월 이후 임대료가 하락하고 집값이 떨어졌다. 집값에 앞서 먼저 하락한 게 임대료다.

뉴욕 아파트 공실률 4.3%로 사상 최고치

맨해튼에 월세로 살던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도시를 탈출하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의 위험도가 높은 인구밀집지역 맨해튼을 떠나 쾌적한 교외로 삶의 보금자리를 옮기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를 ‘도심 엑소더스’라고 일컬었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로 직장을 잃은 실업자들도 가세했다.

그 바람에 시장에 나온 아파트 임대 물건도 지난해보다 무려 85%나 증가했다. 또 임대가 되기 전에 먼저 집을 비워 지난 7월 기준 뉴욕시 전역에서 임대를 기다리며 비어 있는 아파트는 총 6만7300가구나 됐다. 아파트 공실률은 4.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맨해튼에만 1만3000채의 아파트가 비어 있다.

이로 인해 7월 기준, 뉴욕시 전체의 임대료는 약 10% 정도 떨어졌다. 그 가운데서도 비싸기로 유명한 맨해튼 임대료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큰 폭 정도가 아니라 폭락 수준이다. 임대료 하락률은 뉴욕의 부촌이라 불리는 이스트사이드가 49%로 가장 컸으며, 월스트리트 등 금융기관들이 몰려 있는 다운타운도 41%나 떨어졌다.

맨해튼은 오래전부터 월세가 비싸기로 악명이 높았다. 거실이 딸린 원베드룸 월세가 4000달러 정도했는데, 요새는 2500달러면 구할 수 있다. 게다가 집주인들은 현재 임차인을 구하기 위해 평균 1.7개월의 무료임대를 제공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학교 갈 준비를 하는 7~8월은 1년 중 임대료가 가장 비싼 달이었다.

뉴욕은 임대료에 이어 주택가격도 폭락세다. 올해 2분기 맨해튼 아파트 매매건수가 전년 동기보다 54% 감소했다. 이는 30년 만에 가장 큰 폭의 감소세다. 6월 아파트 매매건수만 보면 전년 동기 대비 무려 76%나 줄었다. 뉴욕 일대 최대 부동산 중개·감정 업체인 더글러스 엘리먼에 의하면, “맨해튼 고급 신축 아파트 중 700만~1000만달러대 아파트는 매매가가 20~30% 하락했다”며 “비싼 매물일수록 하락 폭이 크다”고 말했다.

12억원으로 떨어진 맨해튼 아파트 중위가격

2020년 2분기에 거래된 맨해튼 아파트 중위가격은 작년 2분기보다 17.7% 떨어진 100만달러(약 12억원)를 기록하면서 10년 만의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맨해튼 아파트 중위가격이, 세계 주요 도시 중 지난 3년 반 동안 최고치인 56.6%의 상승률을 기록한 우리 강남 아파트 중위가격과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 집값에 있어서 맨해튼과 강남이 동격이 된 것이다.

특이한 것은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 대도시 주택가격은 떨어지고 있는 반면에 미국 전체의 건설업은 호황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S&P500 주택건설업 지수, 곧 주택건설주는 올해 23% 상승했다. 신규주택 건설이 활발하다는 의미이다.

부동산 시장의 오랜 믿음이었던 ‘집은 직장과 가까워야 한다’는 직주근접의 신화가 깨지고 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비대면(언택트)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의 산물이다. 재택근무가 업무효율성을 크게 저해하지 않음을 기업들이 알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어난 현상이다. 그러다 보니 요새 미국 기업들은 대면회의보다는 화상회의가 대세이고 직원이 원하면 재택근무를 허용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미국에서만 최소 수백만 명이 전통적인 대면 형태 근무에서 재택근무로 옮겨 갔다. 특히 실리콘밸리 IT 기업들이 재택근무에 앞장서고 있다. 이미 구글과 트위터 등은 올해 말까지 대부분 직원이 원격근무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트위터는 무기한 재택근무 체제를 지속하겠다고 선언했다.

페이스북의 경우도 5〜10년 내 직원의 절반이 원격근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마크 저커버그는 직원들과의 화상 스트리밍에서 앞으로 10년에 걸쳐 코로나19로 촉발된 분산형 업무방식, 곧 재택근무를 중심으로 회사의 운영방식을 영구적으로 재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직장과 집은 가까워야?’ 깨지는 직주근접

이런 가운데 구글이 실리콘밸리 IT 대기업 중 처음으로 재택근무를 내년 7월까지 전격 연장했다. 이번 연장 조치는 실리콘밸리 본사 직원뿐 아니라 미국 전체 사무소와 영국, 인도, 브라질 등 주요 사무소에서 일하는 정규·계약직 직원 총 20만여명에게 적용된다. 뉴욕주에 본사를 둔 마스터카드는 “코로나19 백신이 출시될 때까지 본사와 전 세계 지사 직원들의 재택근무 체제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런 재택근무가 광범위하게 전파될 경우 도시 구조가 바뀔 수도 있다. 사람들이 전염병에 취약한 도시를 떠나고, 기업들도 위성 오피스를 확대하는 등 도시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맨해튼 엑소더스 현상은 다른 대도시로도 퍼지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부동산이 가장 비싼 샌프란시스코가 직격탄을 맞았다. 실리콘밸리를 끼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는 IT 기업들의 성장에 힘입어 수년간 집값이 고공행진을 벌였으나 재택근무 확대로 임대주택 수요가 줄어 임대료가 크게 하락하고 있다. 6월 임대료가 전년 동기보다 11.8%나 하락했다.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필자의 자식 역시 임대 계약기간 종료로 더 큰 집을 더 싼값에 얻어 옮길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사무실 수요도 크게 줄어 2월부터 5월까지 임대 거래량이 56%나 급감했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 조사업체 리얼캐피털애널리틱스(RCA)에 따르면 올 상반기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거래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30%가량 줄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기침체로 세계 부동산 경기에 빨간불이 커졌다. 부동산 시장은 경기와 동행 또는 후행하는 특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호텔, 백화점, 사무용 빌딩 등 전 세계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위기를 맞고 있다. 전 세계 상업용 부동산 거래건수는 전년 대비 30~40%가량 줄었으며, 가격 역시 큰 폭으로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부동산펀드 수익률도 크게 하락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해외부동산펀드 설정액은 약 60조원에 달한다. 2017년까지 30조원 수준이었으나 금리가 낮아지면서 두 배로 커졌다. 특히 프랑스 등 유럽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투자가 많이 늘어났다. 부동산펀드는 대개 일정 기간마다 배당(임대료)을 지급하고 만기가 되면 건물을 매각해 수익을 얻는 구조이다. 그동안 배당수익률이 높아 비교적 괜찮은 상품이라는 인식이 높았다.

하지만 2017년께 설정된 부동산펀드의 만기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돌아오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문제가 커졌다. 지금까지는 5% 안팎이던 해외부동산펀드의 수익률이 1% 미만으로 내려앉았다. 게다가 호텔, 빌딩 등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한 펀드들이 레버리지를 활용하고 있어 자산가치 급락과 임대수익 급감 시 투자 수익이 더 나빠지는 것은 물론 심하면 펀드 자체의 유동성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리츠(REITs·부동산투자신탁)도 성적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다. 부동산펀드가 실물투자라면, 부동산투자회사에 투자하는 리츠는 주식의 성격을 띠고 있다. 지난 6월 7일 기준, 국내 증권시장에 상장된 7개 리츠의 연초 이후 평균 수익률은 -10.8%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재택근무 비율은 9.7%로 미국의 40%에 비하면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나라도 확진자 수가 일일 400명에 근접하면서 재택근무에 참여하는 기업 수가 다시 늘고 있다. 특히 수도권 업체들이 현장 핵심요원을 제외하고 선제적으로 원격근무로 대응하고 있다. 실제 제조업을 제외한 많은 기업이 코로나19 감염으로 사업장이 셧다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얼마 전부터 상시 재택근무에 돌입했다. 이제는 비대면 업무에 비교적 쉽게 적응하는 분위기로 많은 회사가 원격근무를 위한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3단계로 격상되면 실내외 구분 없이 10명 이상 모이는 모든 모임과 행사를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공공기관은 필수인력을 제외하고는 전부 재택근무로 전환되며, 민간기업도 재택근무 실시가 권고된다. 학교와 유치원은 원격수업으로 전환하거나 휴교 조치에 들어간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거나 일상화되고 코로나 공포심이 상승하면 사람들은 주거지 이전을 심각하게 고려할 수 있다. 우리도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처럼 인구밀집 지역에서 벗어나 좀 더 안전하고 쾌적한 곳으로 이사하는 걸 선호하게 될지 모른다.

버블 붕괴 예측 로버트 실러 교수의 경고

지난 7월 28일 발표된 ‘5월 S&P케이스-실러 주택가격 지수’에 의하면, 미국 주택가격이 전월 대비 0.4%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샌프란시스코와 시애틀에 이어 뉴욕은 하락 전환했다. 이 지수의 장점은 부동산 시장의 동향을 가장 권위 있게 대표한다는 점이고, 단점은 선행지수로서의 역할을 못 하며 시기상 늦게 발표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지수를 개발한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의 경고는 귀담아들을 만하다. 그는 “재택근무가 늘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자리 잡으면서 도시 생활을 포기하는 현상이 늘고 있다. 한없이 오른 도심 집값이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자산 거품붕괴를 역사적으로 분석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그는 2000년 ‘닷컴 버블’ 붕괴와 2005년 미국 부동산 거품붕괴를 예측해 경제학계의 예언자로 통한다.

실제 다른 주택지수들은 미국 주택가격의 하락세를 보여주고 있다. 인베스팅닷컴에 의하면 미국 전체의 주택가격지수가 지난 4월을 정점으로 꺾이고 있다. 2011년 이래 계속 상승했던 미국의 주택가격이 제로금리임에도 하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대도시 중심부와 호화주택들이 먼저 꺾이고 있다. 우리로 치면 강남부터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한 셈이다.

경제위기로 인한 실업률 증가도 집값 하락의 주요 원인이다. 실업으로 월세를 내지 못하겠다는 임차인과 당장 주택저당대출 월 납입료를 내야 하는 임대인들 모두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경제금융 전문사이트 마켓워치(MarketWatch)는 지난 6월 중순에 전체 모기지 대출의 11.8%가 융자상환금 납부유예를 신청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지속 기간이 길어지면 앞으로 집값은 더 빠른 속도로 하락할 공산이 크다.

미국 연방주택금융청(Federal Housing Finance Agency)에서 발표하는 주택가격지수 역시 5월 들어 주택가격이 하락세로 들어섰음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부기관에서 발표하는 만큼 공신력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단점은 모든 주택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인정하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려서 거래하는 주택가격만 조사한다는 점이다.

뉴욕의 부동산 시장이 하락하면 우리의 강남 집값도 약세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높아진다. 왜 그럴까? 그것은 세계 자산 시장의 글로벌 동조화가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자 사이클’이라는 책에 의하면, 주식시장의 글로벌 동조화가 100%에 가깝다면 부동산 시장의 글로벌 동조화는 80%에 가깝다고 한다. 이제 세계는 주식시장이든 부동산 시장이든 한 몸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구나 부동산 시장은 주식시장보다 규모가 크기 때문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보았듯이 부동산 시장에 문제가 생기면 자산 시장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미국의 부동산이 세계 부동산 시장을 선도한다는 의미에서 그 추이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홍익희 세종대 대우교수·‘월가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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