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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제
[2626호] 2020.09.21

태릉 골프장과 성남 골프장의 뒤바뀐 운명

▲ 문이 굳게 잠긴 경기도 하남시 소재 위례신도시 내 주한미군 성남골프장 정문. photo 이동훈
8·4부동산 대책의 핵심인 태릉골프장에 조성할 공공주택의 연내 사전청약이 무산됐다.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에 최대 1만가구 아파트가 들어설 경우 초래될 교통문제와 자연녹지가 부족한 서울 동북부 그린벨트를 헐어 임대주택을 추가 건립하는 데 대한 노원구 주민들의 반발, 바로 옆 육군사관학교와 국가정보원이 관리하는 전파연구소 통신감청시설 등 군사시설 보안문제, 인근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태릉(泰陵)과 강릉(康陵)의 경관훼손 지적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일단 국토교통부는 “내년 상반기 태릉CC 일대의 교통대책을 수립한 뒤 구체적인 사전청약 계획을 밝힐 것”이란 입장을 내놓은 상태다. 하지만 내년 4월에는 여비서 성(性)추행 의혹으로 자살한 박원순 전 시장의 후임을 뽑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가 예정돼 있다. 이에 관가(官街)에서는 서울시장 재보선 결과에 따라, 태릉CC 개발 자체가 백지화될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흘러 나온다. 김종천 경기도 과천시장이 ‘천막 시장실’을 치고 일체의 행정절차 협조를 거부해 사실상 무산 수순으로 가고 있는 정부과천청사 유휴부지(4000가구)처럼 흘러갈 것이란 얘기다.
   
   태릉골프장 택지개발 무산 시, 당초 국유 골프장 택지개발 ‘0순위’로 꼽힌 성남골프장의 활용 가능성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성남’이란 이름과 달리 경기도 하남시 소재 위례신도시에 자리한 성남CC는 주한미군으로부터 환수를 앞둔 18홀 규모의 골프장이다.
   
   
   성남CC 국유 골프장 택지개발 ‘0순위’
   
   노무현 정부 때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내고 국유골프장 아파트 건립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던진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5선·수원시 무)이 당초 ‘0순위’로 꼽았던 곳도 위례신도시 한복판의 성남CC였다. 김진표 의원은 지난 7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미군으로부터 반환받아 활용이 안 되는 성남CC 부지부터 추진이 가능할 것”이라며 “예비역 장성들이 사용하는 태릉CC는 군 당국의 저항이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국토부와 국방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지난 8월 4일 내놓은 ‘서울권역 주택공급대책’에서 당초 ‘0순위’로 거론됐던 성남CC는 빠졌고, 예비역들의 반발로 힘들 것으로 여겨졌던 태릉CC가 포함됐다. 심지어 “국방부가 태릉CC를 내놓는 조건으로, 성남CC를 대체골프장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태릉CC와 성남CC의 180도 뒤바뀐 운명이다.
   
   택지개발 ‘0순위’였던 성남골프장은 태릉골프장과 비교했을 때, 서울 집값 폭등의 진앙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의 접근성, 교통여건, 국방상 필요성, 역사성 등 모든 면에서 택지개발에 훨씬 적합하다는 평가다. 지난 7월 김진표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 과정에서 나온 최대 공급가능 주택수도 성남CC가 2만530가구로, 태릉CC(1만3037가구)에 비해 약 7000가구 정도 더 많았다. 성남CC는 2017년부터 운영이 중단된 상태라 조속한 택지조성 측면에서도 훨씬 유리하다. 실제로 지난 9월 14일 찾아간 위례신도시 내 성남CC 정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미군 부대시설, 무단출입 금지’라는 경고문만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위례신도시 내에 자리한 성남CC는 강남3구 집값 안정이란 당초 정책목표 달성 측면에서도 태릉CC와 비교가 안 된다. 성남CC 입구에서 도로(위례대로) 하나만 건너면 서울 송파구다. 행정구역만 경기도 하남시에 속할 뿐, 사실상 송파구 생활권인 셈이다. 향후 위례신도시에서 송파구를 지나 강남구 신사역까지 이어지는 ‘위례신사선’까지 놓이면 강남3구 생활권에 완벽히 편입된다. 반면, 태릉CC는 서울 시계(市界) 안인 노원구에 위치해 있다 뿐이지, 강남3구와는 거리도 멀고 생활권 자체도 다르다. 오히려 경기도 남양주 별내지구나 구리 갈매지구에 더 가까운 편이다.
   
   성남골프장은 2기 신도시로 조성돼 격자형과 순환형 도로망이 교차하는 위례신도시 한가운데 있어 교통문제가 태릉골프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장점도 있다. 일제강점기 때 놓인 옛 경춘선 철길을 따라 좁고 구불구불한 길 사이에 놓여 있는 태릉CC 일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위례신도시 한가운데를 동서로 관통하는 위례중앙로를 통해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옛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동부간선도로 등과 지하차도를 통해 곧장 이어진다. 성남골프장 동쪽으로는 현재 공사 중인 세종서울고속도로도 통과할 예정이다.
   
   
   성남CC, 주한미군 떠난 후 폐쇄상태
   
   성남골프장은 역사성 면에서도 태릉골프장에 비해 택지로 개발하기에 큰 부담이 없다. 성남CC가 조성된 것은 1991년으로 채 30년이 안 된다. 용산미군기지 사우스포스트 내 미군골프장(현 용산가족공원)을 대체할 목적으로 조성된 곳이다. 반면 태릉CC가 조성된 것은 박정희 정부 때인 1966년으로, 국내 다섯 번째로 들어선 ‘올드 코스’다. 박정희, 노무현 등 역대 대통령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국내 최초 18홀 규모 골프장이었던 광진구 능동의 서울CC(옛 경성CC)가 어린이대공원으로 바뀌면서 서울 시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골프장이 됐다.
   
   성남골프장이 자리한 위례신도시는 조성된 지 아직 채 10년이 안 된 터라 골프장을 택지로 전용하는 데 따른 주변 반발 역시 태릉CC보다는 덜한 편이다. 위례신도시 자체가 1981년 군용 골프장으로 조성한 ‘남성대골프장’을 밀어내고 올린 신도시이기도 하다. 지금의 성남골프장 바로 옆에 있던 남성대CC는 위례신도시 개발과 함께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하지만 주한미군이 소유·관리하던 성남CC는 위례신도시 조성에서 빠지면서 지금과 같이 남게 됐다.
   
   성남골프장은 택지개발 시 주변 문화재에 미치는 영향도 태릉골프장에 비해 덜한 편이다. 태릉CC와 성남CC 옆으로는 각각 2009년과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태릉 및 강릉, 남한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평지에 자리한 태릉과 강릉은 바로 앞 태릉골프장에 아파트가 들어설 경우 경관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데 반해, 남한산성은 해발 497m 청량산 꼭대기에 자리 잡은 산성(山城)이라 경관 피해가 덜한 편이다.
   
   
▲ 성남골프장 앞에 2014년 들어선 국군복지단 밀리토피아 골프연습장. photo 이동훈

   서울 길목 ‘의정부 회랑’의 태릉CC
   
   성남골프장은 태릉골프장에 비해 국방상의 필요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태릉CC는 택지로 개발될 경우, 골프장 남쪽의 육군사관학교, 북쪽의 국정원이 관리하는 통신감청시설 등과 충돌이 불가피해 군사보안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자연히 이들 시설의 이전 역시 시간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미 지역구 의원인 민주당 고용진 의원(재선·노원구 갑)은 “태릉골프장 옆 (국정원) 전파연구소 부지의 택지지구 편입과 육사 이전을 정부 측과 협의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8월 25일 “육사 이전은 검토하지 않는다”고 진화에 나섰으나, 이미 경기도 동두천, 강원도 화천, 충남 논산, 경북 상주 등 지차제들은 육사 이전을 기정사실로 보고 유치전에 돌입한 상태다.
   
   육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태릉골프장은 유사 시 북한군의 서울 진공로인 ‘의정부 회랑(回廊)’에 위치해 있다. ‘의정부 회랑’은 도봉산과 수락산 사이에 난 서울로 들어오는 좁고 긴 길목이다. 6·25전쟁 발발 초기에도 이 일대에서 육사 생도들을 주축으로 한 ‘태릉전투’가 벌어졌다. 수락산과 이어진 불암산(해발 509m)을 등지고, 의정부 회랑 길목에 위치한 육사와 태릉골프장은 유사시 서울 사수를 위해 북한군을 요격해야 하는 요충지인 셈이다.
   
   예비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星友會)도 “태릉 일대와 화랑대(花郞臺·육사)는 역사적 가치와 국가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은 중요한 지역”이라며 “전시에는 군의 후방전력과 전쟁지속물자의 전방 전개를 위한 지역이며 지상군의 동맥과도 같은 곳”이란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군부대 영내나 인근에 군 전용 골프장을 두는 목적 자체가 평상 시 군장병들의 체력단련은 물론, 유사시 대규모 병력배치와 증원물자 전개를 위한 유휴부지 확보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북 성주골프장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포대를 배치한 것이 단적인 예다. 하지만 유휴부지에 아파트가 들어차면 유사시 이용 자체가 불가능하다.
   
   성남골프장 역시 과거에는 육군종합행정학교를 비롯 육군특수전사령부, 국군체육부대 등 7개 군부대가 있었던 소위 ‘남성대(南城臺)’ 일대에 자리 잡고 있어 과거에는 국방상의 필요가 컸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 위례신도시 조성과 함께 군부대가 모두 이전해버려 국방상 필요성이 떨어진 상태다. 군부대들이 집결해 있을 때는 작전상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나, 군부대가 이미 떠난 마당에 유휴부지를 남겨둘 전략적 이유가 줄어든 상태다. 성남CC는 VIP가 이용하는 서울공항 방어상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으나, 성남시 고등동 서울공항 바로 아래는 공군이 체력단련장으로 쓰는 ‘진짜’ 성남골프장(일명 한성대골프장)도 있다. 성남CC 주위로 30층 내외의 고층아파트와 오피스텔이 에워싸면서 유사시 작전을 펼치기도 사실상 어려워진 상태다. 성남CC 북쪽의 북위례 일대에도 한창 고층아파트가 올라가는 중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위례신도시에는 올해 안에 2300가구가 추가 공급될 예정이다.
   
   
   태릉CC 대신 성남CC 노리는 軍
   
   8·4부동산 대책의 핵심키를 쥔 국방부가 선뜻 태릉골프장은 내주면서, 성남골프장에 집착하는 까닭을 다른 데서 찾는 사람도 있다. 과거 7개 군부대와 남성대CC 등을 밀고 조성한 위례신도시 자체가 현역 및 예비역 군인들을 위한 일종의 ‘밀리토피아(밀리터리+유토피아)’인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국방부가 태릉CC 대체 골프장으로 탐내는 성남CC와 도보로 5분 거리에는 신도시 유일의 군인아파트인 1493가구 ‘위례스타힐스’가 있고, 재경 군자녀 기숙사인 ‘밀리토피아 송파학사’도 있다. 차로 5분 거리에는 밀리토피아호텔(4성급)과 전역 군인들을 위한 국방전직교육원도 있다.
   
   성남CC 바로 초입에는 위례신도시 개발과 함께 2014년 문을 연 밀리토피아 골프연습장도 있다. 국군복지단이 관리하는 237타석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300야드급 실외 골프연습장이다. 현역 장교(장성 포함)와 부사관 및 군무원과 그 배우자, 10년 이상 복무한 예비역과 그 배우자 등이 정회원과 준회원 자격으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여기에 바로 옆 성남CC까지 환수절차를 마친 후 재개장하면 그야말로 ‘밀리토피아’가 되는 셈이다.
   
   경기도청이 작성한 ‘주한미군 공여구역 현황’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 하남시에 있던 2개의 미군 기지 중 ‘캠프 콜번’은 이미 반환이 끝났고, 성남골프장은 아직 반환이 이뤄지지 않았다. ‘활용계획’으로는 캠프 콜번이 도시개발사업에 쓰기로 한 데 반해, 성남골프장은 “한국군 계속 사용”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국방부 시설기획과의 한 관계자는 “성남골프장은 오염정화 등의 협의 문제로 아직 미 측으로부터 반환이 안 됐다”며 “태릉골프장 대체부지를 성남골프장으로 사용할지 여부 역시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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