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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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는?

현재 260만명이 사용하는 글로벌 1위의 인터넷 형광펜 서비스로 정보탐색 플랫폼으로 확장 중이다. 사용자들이 형광펜으로 밑줄 그어 저장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추천·검색 서비스를 한다. 구글이 넘쳐나는 정보를 기계로 정리한다면, 라이너는 우등생들의 요점노트처럼 지식인들이 자발적으로 정보를 취사선택한 것을 정리한다.

시험 직전 참고서보다 요긴한 것은 공부 잘하는 친구들의 필기 노트이다. 핵심내용만 쏙쏙 골라 색색의 형광펜으로 밑줄 쫙쫙 그어놓은 노트만 입수해도 시험 준비는 끝난 셈이다. 책이나 노트처럼 컴퓨터나 모바일에서도 글을 읽다 중요한 부분은 형광펜으로 표시를 해놓고 다시 꺼내 볼 수는 없을까? 한번쯤 상상해볼 법한 일을 실제로 만들어낸 것이 하이라이팅 앱 ‘라이너(Liner)’이다.

라이너는 인터넷용 형광펜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뉴스나 자료를 읽다 중요 부분에 형광펜으로 색칠을 하고 메모를 남길 수 있다. 워드파일, PDF파일도 가능하다. 형광펜으로 밑줄 그은 문장은 라이너 홈의 ‘내 하이라이트’에 저장된다. 형광펜은 여러 가지 색깔이 제공되고 저장된 자료는 키워드별로 분류해놓고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다. 하이라이트 된 문장은 소셜미디어 등에 공유할 수도 있다.

그러나 라이너의 핵심 병기는 형광펜이 아니다. 형광펜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한 라이너만의 검색 서비스와 추천 서비스이다. 라이너로 누군가 하이라이트 한 문장들은 원본 웹페이지와 함께 모두 데이터화된다. 오늘 인터넷에서 어떤 자료들이 검색되고, 그중 어떤 문장에 밑줄이 그어졌는지 빅데이터로 관리된다. 말하자면 ‘우등생들의 요점노트’처럼 인터넷의 정보 홍수 속에서 선택된 핵심 정보들을 따로 모아놓은 셈이다. 라이너 사용자는 이 정보들을 모두 활용할 수 있다.

9월 현재 라이너 사용자는 260만명에 달한다. 서비스를 시작하고 4년 만이다. 해외 사용자가 85%, 그중 미국인이 50%를 차지한다. 주 고객은 컴퓨터를 주로 사용하는 의사, 변호사, 마케터 등 계속 업데이트되는 문서를 읽어야 하는 전문가 그룹과 대학원생들이다.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을 만큼 긴 글을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자료는 논문, 리서치 종류가 대부분이고, 그런 자료를 필요로 하는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라이너를 사용한다. 그만큼 라이너의 형광펜에 잡힌 자료들은 검증된 자료들이다. ‘족집게 과외’처럼 알짜 정보를 찾을 확률이 훨씬 높다. 예를 들어 ‘딥러닝’에 관련된 정보를 찾는다고 했을 때 구글 검색을 하면 800만개가 넘는 웹페이지가 나온다. 그중 어디에 내가 원하는 정보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대부분 첫 페이지에서 몇 개 검색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반면 쓸 만한 자료만 모아 놓은 라이너에서 검색을 하면 효과적으로 깊이 있는 정보를 찾을 수 있다.

라이너가 무서운 것은 고급 인력들이 매일 새로운 자료를 업데이트해준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부는 내 돈을 내가며 인터넷에서 쓸 만한 자료들을 쏙쏙 뽑아내 열심히 형광펜으로 밑줄 긋기를 해주고 있다. 라이너 앱은 형광펜 사용이 제한된 무료 버전과 무제한 사용할 수 있는 유료 버전이 있다. 유료 서비스 가격은 연 95.99달러(월 9.99달러)이다. 지난해 9월 유료 서비스를 시작하고 빠른 속도로 유료 사용자가 늘고 있다. 올 상반기 동안 월매출이 4배 이상 늘었다.

라이너는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영어 버전부터 만들어졌다. 현재는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까지 서비스하고 있다. PC를 기반으로 하고 애플, 삼성 스마트폰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PC는 엣지, 크롬, 파이어폭스, 사파리, 웨일 등 대부분의 웹 브라우저에서 사용 가능하다. 엣지 웹브라우저를 통해 라이너를 사용해 보았다. 라이너 앱을 설치하면 브라우저 상단 ‘툴바’에 자동으로 라이너의 아이콘인 하늘색 색연필이 나온다. 뉴스를 보다 저장하고 싶은 문장을 마우스로 드래그하면 형광펜 아이콘이 뜨고, 아이콘을 클릭하면 밑줄 그은 문장이 라이너 홈의 ‘내 하이라이트’에 저장된다. 라이너는 쓰면 쓸수록 똑똑해진다. 형광펜으로 밑줄 긋기를 하면 화면 한쪽에 연관 자료를 보여주고, 사용자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관심 가질 만한 뉴스를 추천한다. 사용자의 관심사를 더 잘 파악하고, 정보 매칭의 정확도를 높이는 쪽으로 라이너는 지금도 진화 중이다. 타깃층의 관심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B2B 비즈니스에 활용할 여지도 많다.

라이너의 가능성은 시장에서 확인됐다. 지난 8월 라이너는 ‘시리즈 A’ 단계로는 큰 규모인 50억원의 투자 유치를 하며 스타트업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라이너 앱을 개발한 주인공은 ‘똘끼 충만한’ 만 30살의 청년, 김진우 아우름플래닛 대표이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라이너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세상에 큰 임팩트를 미치고 싶었다”면서 세상에서 제일 좋은 형광펜을 만드는 것이 라이너를 만든 이유는 아니라고 말했다. “라이너는 쓰면 쓸수록 나에게 맞춰주는 초개인화된 인터넷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페이지에 방문해서 실제로 관심을 보이는 것이 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인터넷을 인간은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를 아주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김 대표는 라이너가 거대 포털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포털의 경우 소셜미디어에 뉴스를 공유하거나 댓글을 다는 사람들의 여론만 노출됩니다. 저처럼 댓글을 한 번도 안 다는 사람들의 여론은 알 수가 없는 거죠. 그에 반해 라이너는 객관적인 여론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김 대표는 라이너의 강점으로 ‘록인(lock in)효과’를 꼽았다. 한 번 사용한 사람들이 계속 사용하는 비율이 높다. 1년 후 재사용률이 60%에 달한다고 했다. 또 다른 강점은 사용자의 지적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사용자 중에는 각계 각층의 주요 인사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픽사 창업자, 트위터 공동창업자, 넷플릭스 임원 등 뉴스에서 접했던 사람들이 제가 만든 서비스를 돈 내고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황홀합니다. 제가 픽사의 팬이거든요.”

해외 사용자 비율이 높은 것도 유리한 점이다. “한국의 경우 아직도 공짜가 당연하지만 미국, 유럽, 일본은 소프트웨어에 돈 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말이다.

서비스 론칭 후 4년 만에 라이너를 급성장 곡선에 올려놓은 그의 목표는 황당할 만큼 당차다. “3년 내 카카오를 넘고, 10년 내 구글을 이기겠다”는 것이다. 5년 전 라이너를 준비하면서 투자자를 만나 이 말을 했다가 쫓겨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맞다고 생각하면 누가 뭐라고 해도 직진하는 성격이다”라고 했다. 2018년에는 미 포브스지가 선정한 2018년 ‘아시아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도 선정됐다.

PC와 스마트폰에서 인터넷용 형광펜 ‘라이너’ 앱을 사용한 웹페이지.
PC와 스마트폰에서 인터넷용 형광펜 ‘라이너’ 앱을 사용한 웹페이지.

어드벤처처럼 흥미롭고 록처럼 신나게

그는 창업이 뭔지도 모르던 8살 어느 날 느닷없이 ‘창업’이 꿈이 됐다. 1998년 아버지를 따라 온 가족이 미국 보스턴에 가서 2년 동안 지낼 때였다. 당시 미국의 창업 생태계는 뜨거웠다. 빌 게이츠는 IT계의 신화가 됐고,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복귀하고, 아마존은 막 상장을 했다. 포켓몬에 이어 디지몬이 게임열풍을 일으키며 전 세계 아이들을 사로잡은 때이기도 하다. 운전을 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차 속에 흐르던 신나는 록 음악과 함께 그때의 대화는 그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너는 커서 벤처 창업을 해라.”

“벤처 창업이 뭐야?”

“어드벤처 같은 거야.”

“지금 나오는 음악처럼 완전 신나는 거야?”

“응, 이렇게 신나는 거야.”

그 후로 ‘어드벤처처럼 흥미롭고 록 음악처럼 신나는 창업’은 주문처럼 그의 머리에 깊숙이 박혔다. 연세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하자마자 당연하게 창업을 계획했다. 문제는 창업을 해야겠다는 목표만 있고, 뭘 할지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지는 전혀 그의 계획표에 없었다. 그때부터 독학으로 앱 프로그래밍을 공부해서 앱스토어에 앱을 출시하고, 공동 창업자를 찾아나서고, 창업동아리에도 들고, 창업 경진대회에도 나갔다. 그 과정에서 라이너 공동창업자인 우찬민 COO를 만났다. 2학년 2학기가 되자 ‘때가 됐다’는 생각에 무작정 주식회사 ‘아우름플래닛’을 설립했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 아르바이트 한 번 한 적 없이 대학 2학년 때 ‘대표이사’가 됐다. 2012년의 일이니 그의 대표이사 경력은 벌써 10년이 다 돼간다.

덜컥 법인부터 세우고 나서 찾은 사업 아이템은 온라인 전시 웹사이트였다. 폐쇄적인 미술품 유통 시장을 혁신해 보자는 그럴듯한 명분도 찾았지만 온라인 전시를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더구나 작품 판매는 턱도 없었다. 이어 작가들의 작품을 이용한 폰 케이스 제작도 시도했지만 매일 실패를 경험했다. 준비되지 않은 스타트업에 실험은 실패와 같은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온라인 전시 서비스인 ‘아이노갤러리’로 돈을 좀 벌었다. “페이스북 페이지가 잘되면서 그 바닥에서 나름 인플루언서가 됐어요. 덕분에 작가 전시 홍보로 사업은 잘됐지만 미술계를 혁신하려던 초심과는 달리 미술계의 일부가 돼 있었어요.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대학 4학년 때였다.

그동안 번 돈 4000여만원을 몽땅 들고 미국 실리콘밸리로 갔다. “글로벌 비즈니스를 목표로, 그 중심에 가서 부딪쳐 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스타벅스에 앉아 있으면 옆자리 사람들이 유명한 IT 기업 대표, 대학 교수들이었어요. ‘이런 앱을 만들면 쓸 것 같아?’ ‘어떤 기능을 넣으면 좋을까?’ 누구든 붙잡고 물어봐도 흔쾌히 대답해줬어요.” 그렇게 두 달 동안 사용자의 니즈를 현장에서 확인하면서 매주 하나씩 새로운 앱을 만들어 올렸다. 칭찬 릴레이를 이어가는 앱, 10초 꿀팁 앱, 스마트폰의 남은 공간을 USB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앱 등 8개의 앱을 만들었다. 그중 3번째로 만든 것이 라이너였고 가장 반응이 좋았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남은 돈은 30만원뿐이었다. 남의 웹사이트를 만들어주고 번 돈으로 버티면서 투자자를 찾아다녔다. 사업은 매일이 선택의 연속이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선택의 순간이 있다. 라이너 사업 초기 거액 투자를 제안한 투자자를 만났다. “투자를 안 받으면 망하고, 투자를 받으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라이너를 키울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결국 투자를 안 받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신의 한 수였습니다.”

유혹을 뿌리치고 어렵게 엔젤투자자들을 만났다. 정작 라이너의 가능성보다 큰돈을 거절한 ‘뚝심’이 그들을 움직였다. 투자금이 떨어지면 다시 투자자를 찾아 어렵게 3년여를 버텼다. 그리고 지난 3월부터 돈이 벌리기 시작했다. “2년이면 될 것으로 생각했어요. 4년이 걸릴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도 된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의미 있는 일을!

그는 자신을 움직이는 힘을 ‘관계’라고 했다. 사업을 하는 이유도 ‘의미 있는 관계’ 속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홍길동의 율도국 같은 나의 나라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지난해 ‘율도국’ 같은 흥미로운 거주 실험을 시작했다. 나라 이름은 ‘광인회관’이다. 미칠 광(狂), 사람 인(人), 창업에 미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를 포함한 스타트업 대표부터 인턴 사원까지 창업을 했거나, 창업을 꿈꾸는 이들을 불러모아 동거를 시작했다. 함께 살면서 멘토, 멘티가 돼 창업 정보를 공유하고 노하우를 전수하면서 밀어주고 끌어주는 공동체를 만든 것이다. 말하자면 ‘자발적 벤처 인큐베이팅 셰어하우스’이다. 첫 입주날 복숭아술로 ‘도원결의’를 했다는 그들의 관계는 가족 같다. 5명으로 시작해 현재 거주자는 9명이다. 입주 조건은 모든 거주자의 만장일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가 말했다. “우리만의 끈끈한 네트워크를 만들고 서로의 꿈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 안에서 제2의 넥슨, 카카오, 네이버가 나올 겁니다.”

라이너 직원은 고작 9명이다. 평균연령 25세의 무서운 청년들이 인터넷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만들고 있다. 그는 숫자를 늘리기보다 같은 꿈을 꾸는 한 명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한다. 그는 노력하는 만큼 성과가 나오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명확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행착오를 통해 배운 것이다. 형광펜의 매직으로 구글을 넘는 새로운 인터넷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향해 그는 오늘도 돌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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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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