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김해신공항 문제의 총리실 이관에 합의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왼쪽 두 번째)과 부울경 지자체장. (왼쪽부터) 김경수 경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세 번째), 송철호 울산시장(네 번째). ⓒphoto 국토교통부
지난해 6월 김해신공항 문제의 총리실 이관에 합의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왼쪽 두 번째)과 부울경 지자체장. (왼쪽부터) 김경수 경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세 번째), 송철호 울산시장(네 번째). ⓒphoto 국토교통부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국무총리실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위원장 김수삼)의 장고(長考)가 길어지고 있다. 당초 9월 말로 거론됐던 김해신공항 최종 검증결과 발표가 추석 연휴 뒤인 지난 10월 14일로 한 차례 연기된 이래, 또다시 뒤로 미뤄지면서다. 앞서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9월 15일 국회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김해신공항 검증결과 발표시기를 묻는 질문에 “9월 말쯤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정세균 총리의 ‘9월 말’ 언급에도 검증위의 발표가 계속 늦춰지자 배경을 두고 여러 말이 오간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내년 4월 치러지는 부산시장 보궐선거다. 여직원 성추행 의혹으로 지난 4월 자진사퇴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2018년 지방선거 때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고 민주당 최초 부산시장으로 당선됐다.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진두지휘해야 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김해신공항’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낙연 대표는 총리 재임 당시 오거돈 전 시장, 송철호 울산시장, 김경수 경남지사 등 민주당 소속 부울경 지자체장들의 재검증 요구를 수용해 김해신공항 문제를 국토교통부에서 총리실로 이관시킨 당사자다. 이낙연 대표는 지난 민주당 당대표 선거 때도 “정부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정부에 계시는 분들께 감히 제안하자면 먼 미래의 확장성을 보고 가덕도신공항을 선택해 달라는 부탁을 드린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여기에는 이재명 경기지사와의 차기 대권 경쟁에서 ‘가덕도신공항’을 띄워 밑질 것이 없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오거돈 전 시장이 낙마하면서 재검증 수용 당사자인 이낙연 대표는 ‘가덕도신공항’이 관철될 경우 온전히 자신의 업적으로 돌릴 수 있는 입장이기도 하다.

부산 여당 의원 일제 불복 태세

민주당의 부산지역 현역 의원 3명도 가덕도신공항이 아니면 일제히 불복할 태세다. 민주당 부산시당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재호 의원(재선·부산 남구을)은 지난 9월 28일 “가덕도신공항은 노무현 대통령의 유업”이라며 “가덕도신공항은 부울경의 미래 100년을 결정하는 과제”라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밝혔다. 이어 박 의원은 “김해신공항 백지화는 부울경의 생사 문제”라며 “가덕도신공항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재수 의원(재선·부산 북구강서구갑)도 지난 9월 29일 “검증위 최종보고서는 효력이 없다”면서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는 공정성을 상실했다”며 불복할 태세다. 최인호 의원(재선·부산 사하구갑)도 지난 6월 11일 국회에서 ‘가덕도신공항유치 국민행동본부’와 기자회견을 열고 “김해공항 확장안이 소음, 환경, 운영성, 안전에 결함이 있어 관문공항에 맞는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며 가덕도신공항으로 변경을 촉구했다.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로 거명되는 김영춘 국회사무총장(3선)도 비슷한 입장이다. 김영춘 국회사무총장은 지난 9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남권 신공항은 앞으로 십 년이 걸릴 일이고 백년을 내다보고 할 일”이라며 “정부 관계자들이 검증보고서 채택에 있어 부산 시민의 실망과 분노를 가볍게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전·현직 의원들도 가세

‘김해신공항’ 불복 움직임에는 야당인 국민의힘 부산지역 의원들까지 가세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부산시당 위원장을 맡고 있는 하태경 의원(3선·부산 해운대구갑)은 지난 9월 29일 민주당 부산시당 위원장인 박재호 의원과 ‘공동발표문’을 내고 “현재 공항 문제를 둘러싼 부산지역의 민심은 폭발 일보 직전”이라며 “만약 검증 발표가 졸속으로 이뤄진다면 부산 시민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명심하고 특단의 대책을 내놓기를 거듭 촉구한다”며 검증위를 압박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부산지역 최다선인 조경태 의원(5선·부산 사하구을)도 지난 9월 16일 대정부질문에서 정세균 총리가 “(가덕도신공항은) 대통령 공약은 아니다”란 입장을 내놓자, “문재인 대통령은 2016년 당대표 시절 ‘부산에서 민주당에 5석을 주면 가덕도신공항을 만들어내겠다’고 약속했다”면서 “국회 공식석상에서 문재인 정권의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공약을 뒤집은 것”이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로 자천타천 거론되는 야권 인사들도 비슷한 입장이다. 이진복 전 의원(3선)은 지난 9월 28일 성명서를 내고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가 안전을 묵살하고 김해공항 확장을 날치기로 밀어붙이겠다는데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며 “검증위원장이 일방적으로 표결처리해 ‘조건부 의결’로 결론지은 것은 가덕도신공항을 염원하는 부산 시민의 오랜 바람을 무참히 짓밟는 폭거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유재중 전 의원(3선)은 지난 9월 28일 부산시청 앞에서 ‘가덕도 관문공항 반드시 유치되어야 한다’는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언주 전 의원(재선)은 지난 8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재 김해공항만으로는 턱없는 수준이라 가덕도신공항 같은 것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란 입장을 밝혔다.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박형준 전 의원(초선)도 최근 부산지역 언론에 “(신공항이) 밀양으로 결정날 확률이 높아, 그런 결론이 나는 것을 막는 데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야권의 부산시장 후보군 가운데는 부산시장을 지낸 서병수 의원(5선·부산진구갑)만 비교적 침묵을 지키고 있다. 서병수 의원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월 “신공항의 조속한 추진을 위해 신공항의 성격, 규모, 기능 등 사전타당성 검토 용역에 관한 사항은 정부가 외국의 전문기관에 의뢰해서 결정하도록 일임한다”고 합의한 당사자다. 당시 합의문에는 경남지사로 있던 홍준표 의원, 울산시장으로 있던 김기현 의원, 권영진 대구시장, 김관용 전 경북지사 등이 서명했다. 서병수 의원은 지난 8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해신공항이건 가덕도신공항이건 결국 민주당의 표 놀음에 휘둘리고 있다”고 했다.

한편 총리실 검증위조차 김해신공항을 둘러싼 지루한 논쟁을 좀처럼 매듭짓지 못하면서 ‘2026년 개항’이라는 당초 목표는 사실상 물 건너가 버렸다. 김해신공항은 당초 계획대로라면 2019년 기본 및 실시 설계를 마치고 오는 2026년 개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가덕도신공항’을 내건 오거돈 전 시장이 당선된 2018년 지방선거 이후 아직 첫 삽도 못 뜨고 있다.

그 사이 코로나19마저 창궐하면서 김해공항의 지난 상반기(1~6월) 여객처리량은 235만명으로, 2019년 상반기(688만명)에 비해 3분의 1토막 난 상태다. 같은 기간 운항편수는 4만5117편에서 1만8464편으로, 화물처리량도 7만6072t에서 2만3756t으로 각각 3분의 1토막 났다. 가장 최근인 지난 9월 여객처리량 역시 23만명으로 전년 9월(94만명)에 비해 4분의 1 수준이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동남권 관문공항이 아니라 공항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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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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