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기후협약 목표를 농업 분야에서 실천하기 위한 프랑스의 ‘4p1000계획(initiative)’ 포스터.
파리기후협약 목표를 농업 분야에서 실천하기 위한 프랑스의 ‘4p1000계획(initiative)’ 포스터.

175년 전통의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은 지난 9월 사상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지지 후보를 밝히면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지지를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순수 과학잡지인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2세기 가까이 발행되는 동안 미국 대선에서 특정 후보 지지를 표명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175년간 이어진 금기(禁忌)를 깨고 바이든 후보 지지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변화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비(非)과학적 접근 방법에 대한 과학계의 반발이다.

앞서 지난해 11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한 바 있다. 2015년 체결한 파리기후협약은 지구 평균온도의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하로 유지하고, 온도 상승 폭을 1.5℃ 이하로 제한하여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 위한 국제적 협약이다.

한국은 OECD 5위의 온실가스 배출국

한국도 온실가스 배출이 큰 베트남의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에 투자를 결정해 국내외로부터 ‘기후악당’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한국의 총 온실가스 발생량은 7억760만t으로 전 세계 온실가스 발생의 1.9%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11위 온실가스 배출국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에서는 5위에 해당한다. 이 양은 파리기후협약의 기준연도인 1990년 대비 2.5배에 해당한다.

온실가스 배출은 이제 선진국이냐 개발도상국이냐를 따지는 국지적인 문제가 아니다. ‘Our planet matters(우리 지구가 중요하다)’라는 슬로건처럼 전 지구적 문제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오는 2030년까지 EU 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를 감축하고, 2050년까지는 ‘탄소중립(탄소 배출량=탄소 흡수량)’을 이루겠다”는 한층 강화된 목표를 제시했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0%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배출국인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역시 “오는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지난 9월 22일 화상으로 열린 UN 총회 연설에서 선언한 바 있다.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으로는 온실가스가 지목된다. 온실가스는 지구의 지표면에서 우주로 발산하는 적외선 복사열을 흡수 또는 반사하여 지구 표면 온도를 상승시키는 가스를 말한다. 이산화탄소를 비롯해 메탄가스, 아산화질소 및 불화가스 등이 대표적이다.

18세기 산업혁명 이전만 해도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양과 식물이 호흡하거나 분해되면서 나오는 양이 균형을 이뤄왔다. 덕분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280ppm 수준으로 오랜 기간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석탄과 석유 같은 화석연료를 에너지원으로 쓰면서 그 농도가 급격히 증가해 2019년에는 50기가톤(Gt·1Gt은 10억t·이산화탄소 환산기준)을 배출하는 데 이르렀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409.8ppm으로 급증했고, 대기의 평균 기온 역시 산업혁명 이전보다 1.1도가량 상승했다.

농림업 온실가스 발생량 전체의 24%

2014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전문가 패널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상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중 농업과 기타 토양 사용에서 오는 온실가스 발생량은 약 24% 수준이다. 전기와 열 생산 분야의 25%와 유사하며 일반 산업에서 발생하는 21%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농업과 기타 토양 사용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대부분은 논농사 등 작물재배와 축산, 질소 성분 화학비료 사용, 산림지역 개발에서 유래한다.

반면에 미국 국립과학원회보(2017)에 따르면, 이산화탄소를 격리할 수 있는 식물과 토양은 인위적 활동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20% 정도를 흡수할 뿐이다. 육지면적이 넓은 북반구의 경우, 계절 간 이산화탄소 농도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봄·여름에 식물이 이산화탄소를 광합성하여 식물체 지상부와 뿌리로 격리하기 때문이다. 뿌리가 서식하는 토양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총량의 2~3배를 격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4p1000계획(initiative)’은 파리기후협약의 목표를 농업 분야에서 실천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제안한 것으로, 매년 0.4%의 이산화탄소를 토양에 격리해 온실가스의 발생보다 흡수를 증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계획은 토양을 복원하고 토양 중 유기물과 미생물을 증가시켜 지속가능한 토양관리를 통해 이산화탄소를 격리하고 작물의 생산성도 높이는 실천방안이다.

토양 중 유기물 함량이 풍부한 1㎝ 두께의 표토가 만들어지는 데 약 100년 이상 걸린다. 하지만 경운(耕耘)으로 인해 비가 오면 쉽게 유실된다. 현재의 유실 속도로만 놓고 보면 약 60년 내에 표토가 전부 유실될 것으로 우려된다. 퇴비를 이용하여 토양 중 유기물과 미생물을 증진하는 노력은 농업의 생산성을 높인다. 동시에 온실가스의 토양 중 격리라는 효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논농사의 이모작이나 경관 보전 등과 함께 이를 공익형직불제에 포함시키는 등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농가의 인식을 높이는 방안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한국은 토양복원이 시급한 나라다. 특히 논농사와 축산에서 주로 온실가스를 발생시키는 한국 농업의 특성상 ‘4p1000계획’과 같은 국제협력 사업에 참여하여 국제 간 공동연구와 결과를 실행에 옮기는 노력이 필요하다. 올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세계식량계획(WFP)도 전 세계의 기아와 영양실조를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식량의 생산기반인 토양의 황폐화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4p1000계획과 방향을 같이한다.

온실가스의 적극적인 격리를 통한 감축으로 지구온난화의 속도를 줄일 수 있는 대응책이 농업 분야에서도 강구되어야 한다. 전 지구적 문제에 한국의 리더십을 발휘할 때다. 실행력이 없는 전략은 휴지에 불과할 뿐이라는 기업의 경영철학은 국가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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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산학협력중점교수 전 팜한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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