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카카오M 대표는 직업이 CEO이다. 1962년생인 그는 2000년 오리온시네마네트워크에서 대표를 지냈고 2003년에는 온미디어 대표이사를 맡았다. 2011년에는 CJ E&M의 CEO가 됐는데 이 시기를 기점으로 그는 콘텐츠업계의 대표주자가 됐다. 나영석 PD를 비롯해 유명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을 대거 영입하며 회사를 대표적인 문화기업으로 키워냈고 CJ ENM은 지상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존재가 됐다. 요즘은 좋은 작가가 쓴 드라마 시나리오가 지상파와 종편보다 앞서 향하는 곳이 CJ ENM의 대표 채널인 tvN이다. 최근에는 그보다 앞서 넷플릭스로 향한다는 얘기가 있지만 말이다.

CJ ENM을 나간 김 대표가 지난해 1월 카카오M으로 간 건 큰 사건이었다. 그의 영입만으로 카카오M은 상당한 위상을 얻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말이 길지 않고 의사결정이 빠르며 실무진들에게 자율성을 주는 스타일이라고 평가한다. 사석에서 김 대표와 만난 한 인사는 카카오M이 하는 서비스에 관한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김 대표가 간단하고 직관적으로 설명했다. 스마트폰을 사람들이 다 쓰니까 여기에 콘텐츠를 올려볼 거라고. 그러면 스마트폰을 쓰다가 한 번씩 보지 않겠냐라고. 이게 전부였다.”

CJ ENM의 방식을 그대로 도입

최근 콘텐츠업계에서 핫한 건 카카오M을 중심으로 한 움직임이다. 지난 9월 1일 카카오M은 국민메신저 카카오톡 내부에 ‘카카오TV’를 추가하고 스스로 만든 오리지널 콘텐츠를 공개했다. 카카오가 영상 콘텐츠 시장에 진출하는 신호탄이 된 날이었다. 이경규와 이효리, 노홍철, 유희열 등이 출연하는 예능 콘텐츠와 ‘연애혁명’으로 대표되는 오리지널 드라마 등은 스마트폰의 사용자 행태에 맞게 ‘숏폼’이라고 부르는 짧은 동영상으로 구성됐다. 콘텐츠는 모두 스마트폰에서 최적화된 프레임으로 맞춰졌다. 지난 10월 12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는 카카오TV의 초반 결과가 공개됐다. 9월 한 달간 카카오TV 누적 이용자는 800만명이 넘었고 오리지널 콘텐츠의 누적 조회수는 5870만뷰를 기록했다.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톡을 쓰는 사람들이 한 번씩 보지 않겠냐”는 김 대표의 말은 어느 정도 현실이 됐다.

카카오TV의 결과가 나온 뒤 네이버와 CJ그룹이 손을 잡은 일도 주목받았다. 지난 10월 26일 네이버와 CJ는 6000억원 규모의 지분 교환에 합의했다. 네이버는 CJ ENM·자회사인 스튜디오드래곤과 각각 1500억원, CJ대한통운과는 3000억원 규모의 주식을 교환하기로 했다. 콘텐츠 부문이 눈에 띄었는데 카카오와 마찬가지로 웹툰과 웹소설 등 독자 IP를 갖춘 네이버가 제작 역량을 갖춘 CJ ENM을 선택한 것이 화제가 됐다. 네이버는 카카오와 포털의 경쟁자이고 CJ ENM은 카카오M과 콘텐츠 업계에서 겨루는 사이다.

이쯤되면 카카오M의 기세가 좋아 보인다. 카카오M의 모태는 로엔엔터테인먼트다. 가수 아이유의 소속사였고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인 ‘멜론’을 운영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2016년 카카오는 로엔엔터테인먼트를 인수했고, 2018년 9월에는 두 회사가 합병한 뒤 음악 유통 및 영상 제작, 연예기획 사업부문 등을 분리해 세우며 콘텐츠 전문 기업으로 나온 게 카카오M이다. 카카오M은 마치 과거의 CJ ENM과 비슷한 행보를 걸었다. 우선 연예기획사를 인수합병했다. 배우 이병헌씨 등의 소속사인 BH엔터테인먼트, 배우 공유씨 등의 소속사인 숲엔터테인먼트, 배우 김태리씨 등의 소속사인 제이와이드컴퍼니, 어썸이엔티, VAST엔터테인먼트 등 배우 전문 소속사가 카카오M과 손잡았다. CJ ENM 역시 자회사로 보유한 연예기획사가 10곳이 넘는다.

사람에 투자하는 것도 닮았다. 카카오M이 영상 콘텐츠에 집중하면서 방송계에서는 인력 유출을 고민했다. “결국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유능한 사람들이 모여 이들을 지원해줄 수 있는 시스템과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김 대표는 기자들 앞에서 밝힌 바 있다. 탤런트, 즉 재능 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건데 CJ ENM을 이끌 때 사용했던 방식과 같다. 박호식 프로듀서가 대표를 맡고 있고 김원석 PD가 속한 바람픽쳐스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박 대표는 ‘나의 아저씨’ ‘나쁜 녀석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등을 기획했고 김 PD는 ‘미생’ ‘시그널’ 등을 연출했다. 한 지상파 드라마 PD는 “원래 스튜디오드래곤에서 기획력 좋다는 평가를 받은 사람과 시나리오 받는 순서로 치면 톱10 안에 드는 PD가 넘어가는 거니 이슈가 됐다. ENM 드라마가 잘나갈 때 견인차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9월 1일 카카오TV가 선보인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들. 이효리, 이경규, 김구라 등 기존 연예인들이 새로운 플랫폼으로 진출했다. ⓒphoto 카카오M
지난 9월 1일 카카오TV가 선보인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들. 이효리, 이경규, 김구라 등 기존 연예인들이 새로운 플랫폼으로 진출했다. ⓒphoto 카카오M

“콘텐츠 생산에 3000억원 풀겠다”

CJ ENM 내부에서도 인력 유출에 신경을 썼다. 김 대표가 카카오M에 둥지를 튼 이후 CJ ENM에서 카카오M으로 이직한 직원들이 있었다. CJ ENM 관계자는 “카카오M이 회사를 세팅하기 위한 인력을 우선 데려갔다. 사업 모델을 만드는 쪽이나 콘텐츠 부문에서도 크리에이터가 아닌 전략 쪽 사람들이 넘어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명 크리에이터인 김원석 PD가 카카오M과 함께하는 것을 두곤 경영진에서도 우려가 나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자신들과 손잡은 크리에이터들이 유출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콘텐츠 업계에서는 제작비 회수와 이익 실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게 사람이다. 특히 S급 작가와 연출가를 작품에 투입할 수 있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광고와 캐스팅에도 영향을 주며 드라마가 나오기 전 넷플릭스와 공급 계약을 맺을 수 있는지도 여기에 달려 있다. 편성권을 갖고 있는 곳 중 제작비를 가장 많이 지급하는 곳이 넷플릭스이기 때문이다.

최근 스튜디오드래곤이 넷플릭스와 콘텐츠 파트너십을 맺은 것도 인적 자원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됐다. 스튜디오드래곤은 CJ ENM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스타작가들이 속한 제작사의 지분을 꾸준히 인수했다. ‘도깨비’와 ‘미스터 션샤인’의 김은숙 작가, ‘사랑의 불시착’의 박지은 작가, ‘라이브’의 노희경 작가 등 S급이라고 평가받는 작가들은 스튜디오드래곤과 손을 잡았고 이들이 쓰는 작품은 제작비가 많이 들어도 그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며 자금 회수가 가능했다. 그런데 돈 싸움이 가능한 새로운 상대가 나타났다는 게 달라졌다. 카카오M 역시 돈에서는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지난 3월 홍콩계 사모투자펀드 앵커에쿼티파트너스로부터 21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한 카카오M은 2023년까지 총 3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여기에는 연간 15편 안팎의 영화와 드라마 등이 포함되며 블록버스터급도 있다.

카카오M이 콘텐츠 시장에 주요 플레이어가 된 건 모두가 인정한다. 예능에 비해 제작비가 훨씬 많이 드는 드라마는 요즘 가혹한 환경에 처했다. 중국과의 관계 악화로 제작비 투자나 판권 수출 등이 막히자 손해가 가중된 일부 방송국은 드라마 시장을 축소하기로 했다. 한 배우 매니지먼트사 본부장은 “국내에서는 수익을 뽑는 게 포화상태를 넘었다. 당장 내년부터 지상파에서 수목 미니시리즈를 없앤다고 한다. 시장이 줄어들 때 카카오M이 등장한 건 드라마 시장에 도움이 되고 있다. 우리 배우들도 제의가 들어오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짧은 길이의 동영상, 보다 어린 연령대를 노린 듯한 카카오TV의 초반 오리지널 작품들은 크리에이터들에게도 고민거리를 주고 있다. 유명 작품을 연출한 한 지상파 출신 프리랜서 PD는 두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웹툰을 바탕으로 10대들의 연애를 다룬 ‘연애혁명’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 이렇게 세대가 분리되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인기있다는 이 작품에서 나는 재미를 찾을 수 없었고 이런 걸 나보고 만들라고 하면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내가 만드는 기존의 드라마가 기성세대의 문화처럼 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경쟁자들 ‘초반엔 긴장, 지금은 글쎄’

성공적인 안착이라는 기사가 쏟아지지만 카카오M이 정말 성공할지를 논하긴 아직 이르다. 카카오M 내부에서도 초반 성적을 두고 아쉬워하는 분위기가 있다. 카카오M 관계자는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와 생각보다 반응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상존한다. 낯선 형식으로 내놓는 시도를 대중이 어떻게 볼지 우리도 기대 반 우려 반이다”라고 말했다. 카카오톡 사용자와 비교했을 때 기록한 지표들이 저조하다는 얘기도 있다. 강장묵 글로벌사이버대 교수는 “카카오톡에서의 접근이 중요한데 UI 측면에서 봤을 때 하단 메뉴에서 ‘#’을 치고 들어가도 쇼핑인지, 검색인지, TV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며 사용자 접근성이 생각보다 불편하다고 지적했다.

오리지널 출범에 맞춰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할 만큼 강력한 작품이 없었다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어느 정도까지는 카카오톡의 영향으로 시장에 안착할 수 있겠지만 결국 주류 플랫폼이 될지는 얼마나 괜찮은 콘텐츠를 생산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콘텐츠 생산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가장 중요한 인재 영입이 더딘 것도 이런 평가에 한몫했다. 한 지상파 예능 PD는 “초반에 영입한 거 외에는 데리고 간 사람이 너무 없다. 초반에는 우리 회사에서도 웅성웅성의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카카오 작품에 위기감을 갖는 선수들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누가 넷플릭스랑 계약해서 뭘 한다더라가 더 이슈다”라고 말했다. CJ ENM이 나영석 사단을 대거 끌어오며 기대감을 높였던 반면 카카오M은 그런 급의 영입이 없었다는 게 방송가의 평가다.

경쟁자인 CJ ENM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올해 초만 해도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세운 회사에 대해 현황을 파악하며 긴장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요즘은 지켜보며 관망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CJ ENM 관계자는 “돈이나 제작환경 등은 우리가 지원해주며 인재 유출을 막으면 된다. 오히려 글로벌 노출이 매력적인 요소로 여겨지는 측면이 강해서 넷플릭스가 더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유행과 차별화하는 카카오M의 도전도 지켜볼 대목이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게 스트리밍 서비스의 특징이라지만 방송 환경은 점점 고화질·고품질로 세팅돼 가고 있다. 소비자는 넷플릭스와 같은 OTT를 주로 큰 화면에서 즐기는데 카카오M은 이와 반대로 작은 화면에 맞춰 최적화하고 있다. 신종수 카카오M 디지털콘텐츠사업본부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튜브, 넷플릭스 등 기존 강자와 정면대결을 하려는 게 아니라 아직 충분히 충족되지 않은 고객과 시장 수요를 바탕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카카오M의 시도와 닮은 10분 이하 동영상을 서비스하는 ‘퀴비(Quibi)’가 서비스 시작 6개월 만에 문을 닫는 일이 벌어졌다. 유명 할리우드 감독들이 참여 의사를 밝혔고 디즈니와 알리바바 등에서 17억5000만달러(2조원) 투자를 유치하며 시작한 곳이다. IT 전문매체 버지(Verge)는 ‘퀴비가 문을 닫은 11가지 이유’라는 기사에서 실패 원인 중 하나로 이렇게 언급했다. “경영진은 자신들이 넷플릭스와 경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지만 퀴비는 넷플릭스를 비롯한 모든 앱과 경쟁하고 있었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가는 길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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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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