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 11월 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표 관련 질문을 받고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photo 뉴시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 11월 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표 관련 질문을 받고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발탁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두 명이 공교롭게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김동연 전 부총리 및 홍남기 부총리 모두 ‘정책 집행 과정에서 집권 여당과 마찰→소신에 대한 책임을 지며 사의 표명→대통령의 사표 반려 후 복귀’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김 전 부총리는 복귀 후 사임했지만 사실상 불명예 퇴진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았고, 홍 부총리 역시 일단 대통령의 재신임을 받았지만 이미 경제부총리로서의 위상에 흠집이 났다는 차원에서 김 전 부총리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기획재정부를 대표하는 경제부총리가 유독 집권 여당과 많은 마찰을 일으키며 사의까지 표명하는 일이 계속되는 것은 다른 정권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웠던 일이다. 이명박 정부의 강만수·윤증현·박재완 전 부총리나 박근혜 정부의 현오석·최경환·유일호 전 부총리 등이 정권과 명운을 함께한 것과 비교하면 더욱 대조되는 현상이다. 문재인 정부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비교해 봐도 이런 전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를 두고 재계 안팎에서는 의석수만 믿고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집권여당이 기재부의 전문성까지도 무시하고 쥐락펴락하려는 것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기 힘든 사의 표명

김동연 전 부총리의 경우 최저임금으로 정부·여당과 계속해서 갈등을 빚었다. 특히 그는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을 비롯해 각종 경제 정책을 두고 줄곧 청와대·여당과는 다른 이견을 냈었다. 결국 2018년 7월 취업자수 증가폭이 5000명 증가하는 데 그쳐 ‘참사 수준’이라는 비판이 거세지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당시 장하성 전 정책실장(현 주중대사)과의 갈등이 사퇴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김 전 부총리는 국정감사에서 대통령의 발언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답변도 종종 내뱉었다. 2018년 10월 기재부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 전 부총리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긍정적 효과가 90%였다는 발언에 동의하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을 받았다. 같은 해 5월 문 대통령이 “고용된 근로자의 임금은 다 늘었다.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한 것에 대해 동의하느냐는 취지의 질문이었다. 이에 김 부총리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긍정적 효과가 부정적 효과보다 크지만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발언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경제부처 수장이 대통령의 발언을 사실상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이날 김 전 부총리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올해 말쯤 경기가 좋아진다고 했는데 동의하느냐”는 질문에도 “단기에 고용 문제나 경기 문제가 회복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또다시 청와대와의 이견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기재부 정통 관료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을 지낸 그는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에 지명됐지만 2017년 6월 취임 이후 최저임금,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등 주요 경제 정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줄곧 당·청과 결이 다른 입장을 내왔다. 물론 그의 의견이 제대로 수용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죽하면 언론에서 ‘김동연 패싱’이란 비아냥까지 나왔다.

김동연에 이은 홍남기 ‘패싱’

문재인 정부 2대 경제부총리에 내정된 홍남기 전 부총리 역시 존재감이 없다는 평가를 오랜 기간 받아왔다. 홍 부총리와 기재부가 주요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거나 의견이 묵살된 사례는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홍 부총리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 낼수록 집권 여당이 홍 부총리와 부딪치기 시작했고, 최근 대주주 요건 강화 백지화로 인해 그 무기력감이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다.

홍 부총리는 지난 4월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재난지원금’이 논의될 당시, “국민 70%에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당시 총선을 앞두고 있던 상황에서 여당은 물론 야당까지 ‘전 국민 지급’을 들고나오자 홍 부총리의 의견은 수용되지 못했다. 당초 홍 부총리는 재난지원금과 관련해 소득하위 50%에게만 지급하자는 입장이었는데, 여당과 청와대 내에서 “답답한 소리를 하고 있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주택 공급 정책과 관련해서도 홍 부총리의 의견 개진은 번번이 묵살됐다. 지난 7월 14일 홍 부총리는 방송 인터뷰에서 주택 공급 대책과 관련해 “현재 1차적으로 5~6가지 과제를 검토하고 있다”면서 “이 과제들에 대한 검토가 끝나고 나서 필요하다면 그린벨트 문제를 점검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세균 총리와 여당 안에서 정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린벨트 해제를 검토한다”라는 홍 부총리의 인터뷰 6일 뒤인 7월 20일, 문 대통령은 “미래세대를 위해 해제하지 않고 계속 보존해 나가기로 결정했다”며 직접 그린벨트 해제와 관련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집값 문제로 인한 여론은 이후에도 항상 홍 부총리의 ‘이견’에 주목했다.

그의 ‘부재’ 상태에서 기재부가 챙겨야 할 주요 결정이 내려진 사례도 꽤 있다. 지난 2월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민주당은 코로나19 대응 추가경정안 편성을 요청했다. 그런데 이때 홍 부총리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로 출장을 간 상태였다. 재정당국의 수장이 없는 상태에서 여당이 추경안 요청을 한 것이다. 결국 홍 부총리는 귀국한 이후 추경안 발표를 준비했고, 11조7000억원 규모의 1차 추경안이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해 3월 LPG 승용차를 일반인이 살 수 있게 한 법안도 홍 부총리가 배제된 채 총리실,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협의해 국회에서 통과됐다. 문 대통령이 미세먼지 대책을 지시하자 당시 민주당·총리실·산업자원부가 당정 협의를 통해 LPG 차량 규제 폐기를 결정했고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처리됐다. 홍 부총리는 이런 사실을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연간 3000억원의 세금 수입이 줄어드는 국가 재정 사안을 경제부총리를 배제한 채 졸속 추진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 3월에는 홍 부총리가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가 백지화되는 일도 있었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총급여액의 25%를 넘는 신용카드 사용액 중 15%를 최대 200만~300만원까지 소득에서 공제해 근로소득세를 감면하는 제도다. 근로소득자의 세 부담 완화를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로, 전체 조세 감면 제도 가운데 다섯 번째로 규모가 크다(연간 2조원 규모). 하지만 홍 부총리의 이 발표 열흘 뒤 당정청 협의에서 ‘3년 연장’으로 결정되며 전면 백지화됐다.

2018년 12월 10일 퇴임을 앞둔 당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가방을 메고 정부세종청사를 나서고 있다. ⓒphoto 뉴시스
2018년 12월 10일 퇴임을 앞둔 당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가방을 메고 정부세종청사를 나서고 있다. ⓒphoto 뉴시스

뒤집히거나 실언이 된 발언들

비슷한 시기 “추가경정안 예산은 전혀 검토된 바 없다”는 홍 부총리의 말이 실언이 된 사례도 있다. 이 발언을 한 지 채 2주가 지나지 않아 문 대통령이 “미세먼지 대책을 위한 추경을 검토하라”는 상반된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2019년 봄은 ‘역대 최악’이라는 미세먼지가 덮친 때여서 미세먼지 해결 대책을 마련하라는 여론의 요구가 거셌다. 당시 정부는 6조7000억원의 추경예산안 가운데 미세먼지 관련 분야에 1조5000억원을 편성했다. 이 중 1조645억원이 환경부 예산으로, ‘미세먼지 추경’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정부는 “미세먼지 추경이 집행된다면 미세먼지 발생량을 7000t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며 추경을 추진했다.

‘패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다가 결국 홍남기 부총리가 ‘사의 표명’을 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홍 부총리는 지난 11월 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오늘 아침 대통령께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홍 부총리가 밝힌 사의 표명의 이유는 최근 백지화된 ‘대주주 요건 강화(10억원→3억원 보유 기준) 정책’에 따른 책임이었다. 그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10억원으로 갑니다’라고 말하는 건 공직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누군가는 책임져야 할 텐데 기재부에서 그런 의견이 시작됐기 때문에 제가 책임지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기재부 출신 전직 공무원은 “과거에도 청와대·여당과 기재부의 입장이 다를 때가 있었지만, 이렇게 기재부 수장이 공개적으로 사표를 들고나올 정도는 아니었다”면서 “이견이 있으면 내부적으로 치열하게 토론해서 어떻게든 국민들 앞에는 일치된 입장을 보여줘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과정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김동연 전 부총리, 홍남기 부총리와 함께 기재부에서 근무한 전직 고위공무원은 “김동연·홍남기 모두 유능하고 성실했던 사람들”이라면서 “기재부에서 당연한 원칙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현 정부 정책과 어울리지 않다 보니 존재감을 잃어가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경제 환경이 급변하고 있고,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부의 정책은 재정·경제 분야 전문가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면서 “김동연·홍남기도 이도 저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괴로움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기재부가 각종 경제 현안에서 패싱될 수 있다는 예상은 많았다.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정통 기재부 관료들이 각종 현금성 복지 공약을 내세운 청와대의 정책에 기조를 맞추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또 기재부 출신 관료들은 ‘모피아’라고 불릴 만큼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끼쳐왔다. 하지만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정권 전면에 배치되면서 기재부의 힘이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고, 이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기재부는 출신 야당 국회의원들도 선뜻 현직 ‘후배’들을 비판하지 않을 만큼 부처 내에 전반적인 ‘공동체 의식’이 강해 보였다. 기재부 출신 한 야당 의원은 “(기재부를 나와 정치인이 된 상황에서) 현직 후배들을 향해 안 좋은 소리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다만 이 의원은 “과거 기재부는 ‘테크노크라트(과학적 지식이나 전문적 기술을 가지고 사회·조직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경제 원리에 반하는 정책으로 일관하는 이 정권 아래서 기재부는 계속해서 무기력함을 느끼게 될 것”이라면서 “정권이 교체되지 않는 이상 능력 있는 후배들은 오히려 빛을 더 못 보는 것 아닌지 안타깝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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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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