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鄭周永)은 한국을 가장 빛낸 기업인으로 꼽힌다. 정부 수립 50주년을 맞아 전경련이 실시한 설문조사와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1위 기업인’으로 꼽혔고 ‘건국 후 큰 업적을 남긴 네 번째 인물’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막노동꾼, 쌀집 배달원을 거쳐 재계 1위 그룹 회장까지 오른 그는 스스로를 ‘부유한 노동자’라 칭했다.
아산은 1915년 11월 25일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에서 농사를 짓던 부친 정봉식과 모친 한성실의 6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호 ‘아산’은 고향의 지명을 차용한 것이다. 아산은 5세 때부터 조부에게 ‘천자문’ ‘동몽선습’ ‘명심보감’ ‘소학’ ‘대학’ ‘맹자’ 등 한학을 배우다가 1930년 송전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다. 이즈음 아산은 고된 농사일 틈틈이 고향을 떠나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하지만 첫 가출에서부터 두 번째, 세 번째 가출에 이르기까지 매번 부친에게 덜미가 잡혀 귀향해야만 했다.
1933년 열아홉 살에 아산은 마지막 가출에 성공한다. 이후 인천부두, 보성전문학교 교사 신축공사장 등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풍전엿공장에 취업한다. 그는 생전에 인천에서 막노동을 할 때 노동자 합숙소에서 빈대에 물려 밤잠을 설치다가 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을 했다. 빈대를 피하기 위해 물을 담은 양재기를 밥상 네 다리에 하나씩 고여놓고 그 위에서 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빈대들이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자신을 상대로 ‘공중전’을 벌이고 있지 않은가. 미물인 빈대로부터 절대 포기하지 않고 전력질주하는 인생을 배웠다는 것이다.
빈대로부터 배운 인생 교훈
이듬해 그는 쌀가게 복흥상회 배달원으로 자리를 옮겨 쌀 한 가마니를 월급으로 받는다. 취직한 이튿날부터 매일 새벽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 가게 앞을 깨끗이 쓸고 물까지 뿌려놓는 것으로 하루 일을 시작했다. 주인 아저씨는 열심히 되질과 말질을 배우면서 몸 안 사리고 쓸고 치우고 배달하며 손님 응대도 싹싹하게 하는 아산을 기특하다고 좋아했다. 6개월쯤 지나서는 게으른 난봉꾼 아들을 제치고 아산에게 장부정리를 맡겼다.
‘그날로 나는 쌀과 잡곡이 아무렇게나 뒤죽박죽으로 어지럽던 창고 정리를 말끔히 해버렸다. 쌀은 쌀대로 10가마씩 한 군데로 몰아 줄지어 쌓아놓고 잡곡은 잡곡대로 또 그렇게 정리해서, 한눈으로도 쌀은 몇 가마, 콩은 몇 가마, 팥은 몇 가마 하는 식으로 재고 파악이 되게 만들었던 것이다. 장부도 원장과 고객별 분개장으로 나누어 갖추었는데, 아버님이 소 판 돈을 들고 나와 두 달 다니다 만 부기학원에서 배운 공부를 요긴하게 써먹은 것이었다. 그랬더니 주인 아저씨가 좋아하면서 새 자전거 한 대를 사주셨다.’(‘이 땅에 태어나서’·정주영)
아산은 가출한 지 3년쯤 지나 1년치 급여가 쌀 20가마 정도 되었을 때 부친에게 편지를 띄웠고, 부친은 아들의 ‘성공’을 기뻐하는 답장을 보낸다. 쌀가게에서 일한 지 3년 만에 아산은 주인의 신뢰를 받아 좋은 조건으로 쌀가게를 인수한다. 단골을 그대로 물려받고 월말 계산만 하면 쌀은 얼마든지 대준다는 정미소의 약속을 받아 1938년 1월 서울 신당동 길가에 사글세로 새로 가게를 얻어 ‘경일상회’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일제의 전시체제령이 내려지면서 1939년 12월부터 쌀 배급제가 실시됐다. 전국의 쌀가게가 일제히 문을 닫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산도 가게를 정리하고 그동안 벌어 놓았던 돈 일부를 갖고 고향으로 돌아가 부친께 논 6600㎡(2000평)를 사드린다. 그참에 장가도 들었는데, 6살 아래인 신부 변중석(邊仲錫)은 변병권(邊炳權)의 9남매 중 맏딸이었다.
이듬해 아산은 다시 상경하여 아현동 고개에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자 정비공장을 차린다. 수중에 있던 700〜800원의 밑천과 쌀가게를 운영할 때 쌓은 신용으로 3000원의 사채 빚을 내어 차린 공장이었다. 장사가 제법 잘되어 신바람이 날 때쯤 실수로 화재를 내 삽시간에 공장을 태우고 빚더미에 허덕이는 곤경에 빠졌지만 전주(錢主)를 찾아가 진지한 설득 끝에 3500원을 더 빌려 다시 신설동에 무허가 자동차 수리공장을 차린다. 관할 경찰서의 무허가 단속이 빗발쳤으나 일본인 보안계장 집을 끈질기게 다니며 사정을 거듭해 단속을 멈추게 하는 기지도 발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