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선박과 충돌해 일부 크레인이 무너진 부산신항 북컨테이너부두. ⓒphoto 뉴시스
지난해 4월 선박과 충돌해 일부 크레인이 무너진 부산신항 북컨테이너부두. ⓒphoto 뉴시스

부산항의 지난해 세계 컨테이너항만 순위가 7위로 한 계단 하락했다. 해양수산부가 지난 1월 21일 발표한 부산항의 지난해 컨테이너 물동량은 2181만TEU. 같은 날 중국 교통운수부가 발표한 칭다오(靑島)항의 지난해 컨테이너 물동량은 2201만TEU로 부산항을 20만TEU 차로 제쳤다.

부산항은 간발의 차이로 세계 6위 컨테이너 항만 자리를 칭다오항에 내어주고 세계 7위 항만으로 순위가 밀렸다. 부산항은 전년(1164만TEU)보다 3.2%가량 많은 1201만TEU의 환적화물을 처리하며 칭다오항의 거센 추격을 뿌리치는 듯했으나, 코로나19로 전체 수출입 물량이 5.4%나 빠지면서 세계 6위 항만 수성(守城)에 실패했다.

반면 부산항과 경쟁관계에 있는 칭다오항을 비롯한 중국 주요 항만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모두 물동량을 늘리는 데 성공했다. 상하이항은 전년보다 0.4%의 물동량을 늘리며 4350만TEU로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다. 톈진(天津)항은 6.1%, 칭다오항은 4.7%, 닝보·저우산항은 4.3%의 플러스성장을 기록했다.

톈진항도 부산항 턱밑까지 추격

톈진항의 경우 지난해 1835만TEU의 화물을 처리하면서 한때 세계 최대 항구였던 홍콩항(1796만TEU)을 제치고 부산항(2181만TEU) 턱밑까지 따라왔다. 지난해 12월 ‘세계 3위서 7위로? 또 추락한 부산항, 칭다오항에도 밀리나’란 주간조선 보도가 한 달여 만에 수치로 확인된 데 이어, 올해는 톈진항에 의해 세계 7위 항만 자리마저 위협받게 됐다.

부산항과 함께 국가 양대 중추 항만으로 꼽히는 광양항도 컨테이너 물동량이 급감했다. 국내 2위 광양항은 주로 석유화학제품 처리에 특화한 항만이지만, 컨테이너 화물도 처리하고 있다. 광양항은 지난해 216만TEU의 컨테이너 화물을 처리하는 데 그쳤다.

전년(238만TEU) 대비 9.4%나 급감한 수치다. 환적화물이 전년(58만TEU) 대비 36.3% 감소한 37만TEU에 그친 것이 결정타였다. 해수부 측은 “최대 환적물량(20만TEU)을 차지하던 머스크의 중남미 항로 폐지 및 HMM(옛 현대상선)의 디얼라이언스 가입에 따른 항로 통폐합으로 중동 노선이 폐지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인천항의 경우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수출입 감소로 국내 전체 항만 컨테이너 물동량이 전년에 비해 0.5%가량 줄어든 데도 불구하고 나홀로 성장을 달성했다. 인천항은 지난해 전년(309만TEU) 대비 5.6%나 증가한 326만TEU의 컨테이너를 처리했다. 인천항에서 처리하는 컨테이너 화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출입 물동량이 전년(305만TEU) 대비 4.5% 증가한 319만TEU에 달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인천항의 컨테이너 화물 증가세는 인천항 개장 이후 역대 최대 수준”이란 것이 해수부의 설명이다.

부산항의 정체와 광양항의 퇴보, 인천항의 약진으로 요약되는 지난해 국내 항만 성적표는 전두환 정부 때부터 국가 항만정책의 골간으로 삼아온 부산·광양 ‘투포트(Two Port) 정책’을 근본부터 뒤흔들고 있다.

특히 대중(對中) 무역 급증과 칭다오항과 톈진항 같은 북중국 항만 개발과 연계한 인천항의 위상이 나날이 커지는 데 반해, 미·일 간 간선항로에 주로 의존해온 부산항은 정체를 보이고 있어 해수부 등 항만 당국에 여러 고민을 던지고 있다. ‘아시아의 로테르담’을 표방해온 광양항은 ‘투포트’란 위상이 무색할 정도로 그저그런 지방 항만으로 전락 중이다.

항만정책을 총괄하는 해수부는 부산항의 순위 하락에도 여전히 지역적·정치적 고려에 따라 ‘투포트’ ‘멀티포트’ 식의 이도저도 아닌 지방 항만만 중구난방 양산 중이다. 공항정책을 총괄하는 국토교통부가 정치권의 각종 압력에도 인천공항 ‘원포트 정책’을 고수해온 것과 대비된다. 물동량 분산으로 직격탄을 맞은 것은 1995년 일본 고베(神戶)대지진 직후 한때 홍콩항, 싱가포르항에 이어 세계 3위까지 올라갔던 부산항이다.

서해안 항만, 부산항 화물 잠식

서해안의 경우 북쪽의 인천항을 시작으로 평택당진항, 대산항, 군산항, 목포항 등으로 화물들이 분산되고 있다. 새만금매립지에 들어서는 새만금신항(18선석)도 오는 2023년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서해안에 난립한 항만들은 대중 무역과 중국 항만 의존도가 거의 절대적인데, 칭다오항과 톈진항 같은 북중국 경쟁 항만의 순위만 끌어올려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인천항의 컨테이너 물동량이 4.5% 성장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연초 중국과 베트남 등지로 신규 항로가 개설되면서 물동량이 각각 194만TEU(중국)와 35만TEU(베트남)가 늘어나면서다.

지난해 부산항이 칭다오항과의 순위 경쟁에서 밀려 세계 7위 항만으로 한 계단 하락한 것은 불과 20만TEU 차이 때문이었다. 인천항에서 중국과 베트남으로 오가는 물동량이 과거처럼 부산항에서 처리됐더라면 기존 순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극단적으로 지난해 인천항에서 처리한 대중국 컨테이너 화물 194만TEU가 모두 부산항(2181만+194만TEU)에서 처리됐더라면, 부산항은 칭다오항(2201만TEU)은 물론 광저우항(2317만TEU)까지 제치고 세계 5위 항만으로 재복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부산항은 2013년까지만 해도 세계 5위 항만 자리에 있었다.

자연히 ‘동북아 메가포트’를 표방해온 부산항의 꿈도 요원해지고 있다. 컨테이너 물동량 감소로 세계 항만 순위가 계속 하락하면, 선사(船社)들이 외면하면서 물동량이 추가 감소하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 이는 국내 최대 수출입 항만인 부산항의 원활한 통관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산항을 모항으로 하던 국내 1위 한진해운의 파산으로 국적 선사에 의존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에 항만 자동화와 대형화 등을 서둘러 하역비용을 낮추고, 항만 세일즈를 강화해 부산항의 경쟁력을 키우는 노력이 시급해 보인다. 하지만 항만 자동화 시범단지로는 광양항이 낙점됐고, 부산신항 제2신항(진해신항) 확장계획도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제동이 걸린 상태다.

중국은 지난해 코로나19 영향에서 가장 빨리 벗어나며, 전 세계 주요 국가 중 유일하게 2.3% 플러스성장을 기록했다. 세계 1위 상하이항을 필두로 한 중국 항만의 성장세와 이에 편승한 인천항 등 서해안 항만이 부산항의 물동량을 잠식하는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해수부 측은 “국내 최대 컨테이너 항만인 부산항은 글로벌 물동량의 흐름을 지속해서 모니터링하면서 이에 적극 대응하고자 주요 선사 및 터미널 운영사 등과의 비(非)대면 마케팅을 강화하는 등 온라인을 통한 네트워크를 지속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키워드

#항만
이동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