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댈러스의 게임스탑 매장. ⓒphoto 뉴시스
미국 댈러스의 게임스탑 매장. ⓒphoto 뉴시스

미국 개인투자자들이 ‘게임스탑’ 종목을 두고 벌인 헤지펀드 등 공매도 세력들과의 한판 대결에서 완승을 거두면서 국내 증시에서도 이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관심이 쏠린다. 업계에서는 공매도 제한 조치가 풀릴 경우 이론적으로는 국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 1월 27일(미국시간) 뉴욕 증시에 상장된 게임 소매업체 게임스탑의 주식은 하루에 134.84% 폭등했다. 게임스탑은 지난해 한 행동주의 투자자가 이사회에 합류하면서 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기업 펀더멘털이 변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가만 오르자 공매도 세력의 좋은 표적이 됐다. 게임스탑은 미국 내 소도시에도 한두개씩 점포가 있을 정도로 지명도 높은 업체지만,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 위주로 매출을 올리는 업체라 시대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업체는 아니었다.

하지만 게임스탑이 공매도 세력의 표적이 됐다는 소식이 퍼지자 개인투자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에 집결하기 시작했다. 게임스탑은 비디오게임을 파는 소매업체라는 점에서 많은 개인투자자들의 추억을 불러일으켰고, 레딧에 모인 이들은 논의를 거쳐 게임스탑 주식을 대규모로 매수하기 시작했다. 2008년 금융위기 무렵 개인투자자들의 고통엔 아랑곳없이 자신들의 이익을 취한 공매도 세력에 대한 반감도 이들을 자극했다.

개인투자자들이 쉴새없이 주식을 사들이면서 공매도 세력은 ‘숏 스퀴즈(short squeeze)’ 상황에 맞닥뜨렸다. 공매도는 주식이 하락할 때 이득을 보는 개념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주가가 떨어져야 돈을 벌 수 있다. 주가가 오를 경우에는 반대로 손실을 보게 된다. 개미들의 매수가 이어지면서 주가가 오르자 공매도세력들은 원래 사기로 한 시점보다 일찍 현물 주식을 사서 상환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처럼 주가 하락에 베팅했다가 주가가 오르면서 손실을 줄이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주식을 사야 하는 상황을 숏 스퀴즈라고 한다. 이같은 과정이 반복되면서 공매도 세력은 큰 손실을 입었고, 게임스탑 주가는 폭등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공매도가 금지돼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은 원천적으로 발생할 수 없다. 공매도는 국내 개인투자자들에게는 ‘공공의 적’으로 꼽힌다. 국내 투자자들이 그간 외국인과 기관의 공매도로 인해 큰 타격을 입어왔기 때문이다. 코스피가 ‘박스피’로 불릴 만큼 오랜 기간 동안 박스권 안에서 정체되는 행보를 보인 데에는 공매도 세력의 영향이 매우 컸다는 것이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하소연이다. 현재 개인투자자들 사이에는 공매도가 재개될 경우 시장이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는 공포가 퍼져 있다. 3월 공매도 재개 여부는 현재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논의 중인데,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에 대한 반감이 워낙 크기 때문에 여당이 한시적 제한 조치를 6월까지 유예시키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매도가 재개될 경우 미국에서 발생한 숏 스퀴즈 현상이 국내 증시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윤지호 이베스트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통화에서 “이론적으로 숏 스퀴즈는 공매도가 존재하는 경우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며 “다만 국내 시장이 미국만큼 주식대차가 쉽지 않고 활성화되어있지 않다는 것은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물량이 적은 일부 우선주가 숏 스퀴즈로 인해 폭등하는 등 과거에도 국내 증시에서 제한적으로 이같은 현상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다른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공매도 물량을 쏟아내는 기관에 맞서 개인투자자들이 다 담아줄 만한 그릇이 되느냐의 문제”라며 “보통은 개인들이 기관의 물량을 감당하지 못했는데 최근은 장세가 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단순화해서 보면 쏟아지는 공매도 물량을 받아내고 주가를 더 올릴 만큼 개인투자자들의 자금력이 받쳐줄 경우 숏 스퀴즈는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이번 게임스탑 사태의 경우 ‘레딧’이라는 온라인 공간이 개미들의 조직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는데, 국내에는 이처럼 개인투자자들이 집중적인 종목 매수 논의를 하고 있는 온라인 공간은 보이지 않고 있다. 불특정 다수의 개인투자자들이 특정 종목을 집중적으로 매수하려면 이들이 논의할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에 레딧은 접속자가 몰려들면서 일시적으로 사이트가 먹통이 되는 등 혼란을 겪기도 했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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