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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6호] 2021.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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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여권까지 갈라 놓은 기본소득 논쟁의 실체

김회권  기자 khg@chosun.com 2021-02-25 오후 12:58:01

▲ 강남훈(오른쪽 두 번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이 2017년 8월 3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열린 ‘기본소득 개헌운동 출발 기자회견’에서 기본소득 개헌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10여년 전이었다면 허무맹랑한 포퓰리스트의 이야기라고 취급받을 주제가 지금은 정치판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됐다. ‘기본소득’은 이제 보통명사처럼 취급된다. 이 단어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적다. 이름 자체가 다른 제도와 비교할 때 단순명쾌해서다. ‘정부가 돈을 준다’는 간단한 개념은 이해하기 쉽고 받아들이기 좋다. 게다가 이 주제가 지금 뜨거운 이유도 모두 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민생의 위기는 이런 제안을 몽상가적 제안에서 현실적 대안 중 하나로 격상시켰다.
   
   2021년 정치담론의 한복판에 기본소득을 정착시킨 건 이재명 경기도지사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론’은 그의 대표정책이자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새해 시작과 함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가 된 그를 향한 견제는 그래서 기본소득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여권 대선주자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논쟁의 중심에 기본소득이 있는 이유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세균 국무총리가 각각 “알래스카를 빼고 하는 곳이 없다” “지구상에서 기본소득제도를 성공리에 운영한 나라가 없다”며 반박했다. 여기에 차기 대선후보군 중 한 명인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도 가세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제에 목소리를 내는 분들의 주장은 번지수가 많이 다르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기본소득 논의의 물꼬를 튼 것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이재명 지사와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이 지난해 2월,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지급하는 재난지원금을 제안했는데 여기에 ‘재난기본소득’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두 지사의 제안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자 중앙정부 차원에서 긴급재난지원금 설계가 시작됐고 곧 전 국민 지급으로 범위가 확대됐다. 지난해 5월 전 국민은 가구 단위로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재명이 끌고 간 기본소득 논쟁
   
   긴급재난지원금과 같은 현금 복지는 이내 핫이슈가 됐다. 여야의 거물급 정치인들은 잇따라 이 제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요구받았다. 현금 복지가 정치담론의 중요 축으로 자리 잡은 건 매우 드문 일이다. 좌파의 포퓰리즘이나 황당 공약이라고 비판받기 일쑤였지만 적잖은 국민이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으며 기본소득의 맛을 본 터라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정치인들이 볼 때 마냥 무시하긴 힘든 상황이 돼 버렸다.
   
   지난해 5월 지급이 이뤄진 뒤 6월부터 백가쟁명식 언급이 이어진 게 이를 증명했다. 6월에 전개된 이야기만 살펴보자. 이 지사는 페이스북에 “기본소득은 코로나 이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피할 수 없는 정책”이라고 썼다. 원래 2017년 대선 출마 때도 기본소득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그는 주도권을 놓치지 않고 끌고 갔다. 이 지사의 말대로 야당도 피할 순 없었다. 기본소득 논쟁을 본격적으로 확전시킨 건 보수정당이 여기에 동참하면서부터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초선의원 모임에서 “물질적 자유를 어떻게 극대화해야 하는지가 정치의 기본 목표”라고 말하면서 기본소득이라는 화두에 동참했다. 그간 보수진영이 지향해 온 자유민주주의의 ‘자유’가 형식적 자유에 그쳤다는 비판도 함께했다.
   
   민주당은 기본소득보다 전 국민 고용보험 확대에 포인트를 두고 있었던 때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언한 약속이기도 했고 기본소득은 재원 문제 등 선결 과제가 많은 난해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당시 당권주자로 여당과 보조를 맞춰야 했던 이낙연 의원이 여야의 기본소득 예찬에 재빨리 참전하지 못했던 까닭이기도 했다. 물론 그 역시 뒤이어 “기본소득제의 취지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다만 지속 가능한 실천 방안 등의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신중함이 묻어 있었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월 2일 오전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친 후 동료의원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이날 연설에서 이 대표는 신복지체제의 비전을 공개했다. photo 뉴시스

   고용 없는 시대에 제기되는 새로운 대비책
   
   기본소득 논쟁은 이제 1년을 맞는다. 왜 기본소득 논쟁이 이처럼 뜨거운지, 처음과 달리 찬성과 반대로 갈라섰는지를 빠르게 이해하려면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기본소득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2009년 만들어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기본소득 논의를 지금까지 끌고 온 대표적 집단이다. 여기서는 기본소득을 ‘국가 또는 지방자치체(정치공동체)가 모든 구성원 개개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오늘날 기본소득이 전 세계적으로 제기되는 건 제조업이 노동의 텃밭이던 시대가 끝나면서 높은 고용률과 임금의 수혜를 얻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있어서다. 사회가 점점 고도화하면서 ‘일자리 증가’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고 기술 발전으로 일자리가 소멸해가는 속도가 빨라질 거라는 예상이 많다. 만약 AI(인공지능)나 로봇의 등장이 가속화할 경우 노동의 자동화가 초래할 실업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떠오른 게 기본소득이다.
   
   이론적으로 기본소득은 사람들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구제책이다. 여기에 더해 구매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소득을 제공해 소비 진작을 꾀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대다수의 일자리가 로봇으로 대체되는 극단적인 경우를 상정해보자. 뒤집어 말하면 대다수의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럴 경우 소비는 누가 할 수 있을까. 고용을 덜 하면서 높은 매출을 올리는 실리콘밸리가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대표 집단이 된 역설적인 현상이 생긴 이유다. 이런 우울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구제책으로 기본소득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역시 공개적으로 기본소득을 언급한 적이 있다. 2016년 IT 전문매체인 ‘와이어드’와 가진 인터뷰에서 AI가 저임금·저숙련 일자리를 반드시 대체하지는 않더라도 이런 종류의 일자리 종사자들이 임금 하락에 직면할 수 있을 거라고 그는 우려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어떻게 사람들이 생계를 꾸리는 데 필요한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할 것인가”라고 스스로 질문한 뒤 “보편적 소득(universal income)이 옳은 모델인지에 대해 우리는 앞으로 10~20년 동안 논쟁하게 될 것이다”라고 자답했다.
   
   이런 이해를 기반으로 기본소득 논쟁을 바라보면 좀 더 수월해진다. 오바마가 예상했던 논쟁이 가장 활발하게 펼쳐진 곳은 오히려 미국이 아닌 한국이 됐다. 고용 없는 미래만 해도 불안한데 여기에 더해 코로나19로 일자리가 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우리 경제 구조도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고용이 많이 창출되는 시기를 지났다.
   
   
   기본소득론 vs 신복지체제
   
   기본소득 논쟁을 앞장서 이끌고 있는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론’은 기존의 복지제도를 희생하지 않고 기본소득을 제공한다. 다른 것을 포기하지 않고 기본소득을 더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복지의 총량은 증가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이 지사는 “기본소득이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성장전략”이라고 그간 설파해 왔다. 특히 현금 대신 소멸시효가 있는 지역화폐로 줄 경우 전액 소비로 가기 때문에 복지정책도 되지만 동시에 경제 선순환 효과도 일으킬 수 있다는 얘기다. 충분하진 않더라도 일단 적은 액수로 제도의 효용을 국민들이 맛보게 하는 게 기본소득의 현실적인 1차 목표라는 것이다.
   
   이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1인당 25만원씩 연 2회 지급은 일반예산 조정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26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일단 체험판을 거치고 대중적인 효과가 증명되면 그 효능감을 바탕으로 연간 지급액을 늘리는 걸 시도할 수 있다고 본다.
   
   “기본소득이 기존 복지제도의 대체재가 될 수 없다”고 비판했던 이낙연 대표는 최근 ‘신복지체제’를 발표했다. 소득 보장 대신 사회서비스의 수준을 대폭 끌어올리는 구상을 담았다. 신복지체제의 구체적인 구상안으로 알려진 ‘국민생활기준 2030’ 발제문에는 “기본소득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고 돼 있다. 그래서 기존 복지제도와의 조화로운 결합을 시도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교육·돌봄·의료·주거·문화·환경 등 삶의 전반적 영역에서 구체적인 적정 기준을 제시한 뒤 이를 국가가 책임진다는 취지다. 신복지체제 속에서도 기본소득적 요소는 엿볼 수 있다. 현재보다 수준을 높이고 범위를 넓히는 방식으로 ‘변주’를 꾀했다. 12세까지 아동수당 확대 및 인상, 만 20~34세 보편적 청년수당 도입, 만 50~64세 보편적 중장년수당 도입, 기초(장애인)연금 유지 또는 인상 등의 방안이 들어 있다.
   
   기본소득을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 모두 필연적으로 ‘재원’을 고려한다. 이재명 지사가 “일단 적게라도 지급해 체험해 보자”라고 말하는 것은 현실적인 재원을 고려해서다. “보유한 자산이나 노동 여부, 소득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지급하는 제도를 하려면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복지제도를 모두 통폐합해도 월 20만원을 지급하기 어렵다”고 이 지사를 비판한 임종석 전 실장 역시 재원을 감안해 한 발언이다.
   
   여당 입장에서도 재원 탓에 기본소득에 쉽게 접근할 순 없다. 민주연구원 관계자는 “수권정당이 기본소득이라는 대안을 선택하려면 지속적으로 얼마 정도의 실효적 금액이 지급될 거라는 믿음을 국민들에게 줘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선 어렵다. 2017년에도 기본소득 논쟁이 있었을 때 재원 마련을 두고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조정하는 문제 같은 원론적 논의만 있었고 곧 유야무야됐다”고 말했다.
   
   재원을 의식하다 보니 복지를 강조하는 집단 속에서도 기본소득을 전적으로 찬성하지 못한다. 부를 나눠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는 방법이 기본소득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금액을 나눠주는 현금성 복지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반론이 나온다. 기존 복지시스템 위에 기본소득을 얹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한정된 복지 예산을 두고 우선순위를 다투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 달에 (모두에게) 4만원씩 나눠주는 데 20조원이 든다. 20조원이면 보편적 고용 안전망을 통해서 모든 국민의 실업 안전망을 마련하는 데 충분한 돈이다”(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같은 기본소득을 논하지만 보수정당의 기본소득은 결이 다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언급했던 ‘안심소득’은 하위 50%에게만 선별적으로 혜택을 주는 제도다. 기본소득을 시행하면 금액이 적어 무의미하고 장기적으로 금액을 올리면 재원 조달이 불가능해 무의미해진다고 그는 주장한다. 원래 안심소득론은 기존에 존재하는 현금성 복지제도를 상당 부분 폐지하는 걸 골격으로 삼는다. 하지만 이론은 정치의 영역에 들어오면 변한다. 오 전 시장은 기초생활보장제도 중 겹치는 일부만 폐지하는 쪽으로 다듬었다. 그의 주장은 하후상박의 형태로 기본소득을 주자는 건데, 국내 보수적 경제학자들은 이럴 경우 저소득층의 처분가능소득이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 지난 1월 28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제2차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지급 시기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기본소득은 증세 합의 운동”
   
   어쨌든 재원 문제로 갑론을박이 벌어지면 결국 시선은 증세로 모인다. 특히 기본소득이 기대 효과를 얻으려면 가시적인 금액이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충분성’이 필요하다. 이낙연 대표가 읽었다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21세기 기본소득’은 기본소득에 관한 이론을 집대성한 필독서로 꼽힌다. 이 책을 집필한 필리프 판 파레이스 벨기에 루뱅대학 교수는 “지급 액수는 기본소득 제안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다”라고 본다.
   
   소득불평등 전문가인 김낙년 동국대 교수 역시 기본소득 시행을 위해선 증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제도가 제대로 시행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결국 재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본소득이 효과를 보려면 모두에게 주되 기존의 복지 시스템 중 기본소득과 상응하는 부분을 바꿔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소득을 시행하면 효과가 적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얼마든지 필요하지만 복지제도를 수정하는 차원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이재명 지사도 증세 논란을 피해 갈 생각은 없다. 장기적으로 저부담-저복지 상태를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이런 흐름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에 속한 학자들의 연구와 닮은점이 많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인 강남훈 한신대 교수는 현재 이 지사와 함께 경기도 기본소득위원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강 교수는 10여년 전부터 기본소득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며 여러 기본소득 모델을 제시해온 대표적 기본소득 전문가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같이 조세 저항이 큰 나라에서 기본소득 운동은 증세 합의 운동의 성격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저조세-저복지-저신뢰-저조세’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기본소득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본소득이 증세의 목적이자 수단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이처럼 ‘기본소득’은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아이디어지만 재정 문제가 개입하면 복잡하고 첨예하게 변신한다. 지금의 치열한 어젠다 논쟁이 우리 사회 복지의 다음 스텝을 결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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