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는 지난 2월 8일 미 증권거래위원회에 공시한 보고서에서 자산 다각화와 현금 수익 극대화를 위해 비트코인 15억달러어치를 사들였다고 발표했다. 앞으로 자산의 일부를 디지털 자산에 더 투자할 수 있다고 밝혔으며, 전기차를 비트코인으로 구매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그러자 암호화폐 시장이 환호하며 비트코인은 큰 폭으로 올랐다. 다른 기업들도 테슬라를 따라할 가능성이 있다.

머스크는 클럽하우스에서 “8년 전에 한 친구가 나한테 비트코인에 대해 소개했는데, 이해를 못한 게 아쉽네요. 지금은 비트코인이 전통 금융투자자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기 직전인 것 같아요”라고 자기 의견을 밝혔다.

세계적 기업인 테슬라가 비트코인을 받고 차를 팔게 되면 이는 지불수단, 곧 통화로서의 비트코인에 대한 논쟁을 키울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만약 비트코인이 디지털 자산의 경계를 뛰어넘어 진짜 통화로서의 구실을 한다면, 비트코인은 어느 나라에도 구속되지 않는 세계화폐가 되는 셈이다. 미국 정부의 반응이 주목된다.

비트코인 15억달러어치 사들인 테슬라

세계화폐는 많은 경제학자의 꿈이었다. 우리가 자본주의 대표 경제학자로 알고 있는 케인스도 ‘통화개혁론’과 ‘화폐론’을 쓴 학자로 줄기차게 세계화폐를 주장했다. 1차대전 직후인 1918년에 열린 파리강화회의에서 케인스는 독일에 과도한 배상금을 물려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으나 거부되었다. 그는 회의에 참가한 각국 정치인들이 이기적인 자국 정치논리를 앞세워 경제를 무시하는 무지한 행태에 충격을 받고 분노했다. 그는 독일에 물린 혹독한 배상금으로 인해 전무후무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며 이는 독일 국민들을 빈곤으로 내몰아 ‘극단적인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제주의 시대와 새로운 전쟁을 예감한 것이다.

그는 이듬해에 쓴 ‘평화의 경제적 결과’라는 책에서 연합국 지도자들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치가 아니라 금융과 경제라는 사실을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이해했더라면… 아직 시간이 있을 때 흐름을 이로운 쪽으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케인스의 예견은 그대로 현실화되었다. 결국 독일에 대한 거액의 전쟁 배상금은 화폐 발행량 증가→초인플레이션→히틀러의 등장으로 연결되어 2차대전을 불러왔다.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은 인플레이션이었다. 2차대전이라는 참화는 케인스의 선견지명이 거부된 결과이기도 했다.

1944년 브레튼우즈 회의 때 영국 대표 케인스는 무역정산 때만이라도 세계화폐 ‘방코르(Bancor)’를 쓰자고 제안했다. 그는 미국이 패권적 기축통화를 고집하면 재앙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역전쟁이 환율전쟁으로 치달아 실제 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 역시 미국에 의해 거부되었다. 패권국의 기축통화에 휘둘리지 않는 화폐를 주장했던 경제학자는 케인스뿐만이 아니었다. 유대인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도 1976년에 쓴 ‘화폐의 탈국가화’를 통해 중앙은행이 아닌 민간 주체들이 화폐를 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유대인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 역시 화폐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화폐경제학’ 서문에서 ‘미래의 화폐는 어떤 형태를 가지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미래의 화폐는 ‘과연 컴퓨터의 바이트(bite)일까?’라고 자문자답하여 디지털화폐를 예견했다.

최근 비트코인 152억달러어치를 사들였다고 발표한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 ⓒphoto 뉴시스
최근 비트코인 152억달러어치를 사들였다고 발표한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 ⓒphoto 뉴시스

세계 금융시장 주도하는 유대 금융 세력

현재 세계 금융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미국 금융은 ‘삼각편대’라 불리는 월가와 재무부, 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이끌고 있다. 이 삼각편대의 주도세력이 유대인들이다. 월가 금융기관들 수장도 대부분 유대인이다. 그리고 월가를 관리감독하는 재무부의 수장들 역시 로버트 루빈 이래 유대인이 차지하고 있다. 역대 연준 의장과 이사들 역시 대부분 유대인이다. 현 제롬 파월 의장은 유대인은 아니지만 친(親)유대 인사이다. 우리 주식투자자들이 매일 아침 미국 금융시장 동태를 살피는 것은 유대인들이 이끄는 미국 금융시장이 그만큼 우리 시장을 포함한 세계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이 392년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한 이후 예수를 죽인 유대인은 공공의 적(敵)이 되었다. 농업에서 퇴출당한 그들은 장사꾼이나 기독교가 부정하는 대부업에 의존해 생계를 꾸려가야 했다. 이후 이슬람 지배 아래서 각국에 퍼져 있는 유대인 공동체 간 교역에 새로운 금융기법이 쓰이기 시작했다. 즉 유대인 간의 신뢰를 기초로 하는 외상거래와 더불어 환어음 등의 기법이 개발됐다. 이후 유대인이 서구 금융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유럽 왕실과 공국들의 재무관으로 활약했다.

1492년 스페인에서 추방당한 유대인들이 정착한 네덜란드에서 근대적 의미의 최초 주식회사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세워졌으며 최초의 주식거래소, 최초의 중앙은행 격인 암스테르담은행이 설립되어 자본주의의 씨앗이 되었다. 유대인은 빌럼 3세의 네덜란드 독립전쟁을 돕기 위해 채권시장을 활성화했다. 그 결과 시중금리를 15%에서 3%로 낮추었다. 그 덕분에 전쟁자금 지원이 용이해졌을 뿐 아니라 저리를 활용해 해외투자도 할 수 있게 돼 세계 무역망이 구축됐다.

그리고 17세기 말 영국 왕실과 의회 간에 싸움이 일어나자 영국 의회는 네덜란드의 빌럼 3세 부부를 영국의 공동 왕으로 초빙했다. 이들 부부가 왕위 승계서열 1위였다. 빌럼 3세(윌리엄 3세) 부부가 영국으로 옮겨올 때 네덜란드의 유대 금융인 8000명이 같이 따라왔다. 이후 영국이 금융 왕국의 바통을 이어 받았다. 영국 왕이 된 윌리엄 3세가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유대 금융인들에게 다시 한번 화급하게 전쟁자금 도움을 요청했다. 유대인들은 네덜란드 때 활용했던 ‘전쟁자금 모금기구’를 다시 설치하여 상인들로부터 전쟁자금을 모았다. 이후 이 기구가 주식회사 영란은행으로 전환되어 왕의 채무증서가 은행권 발행으로 연결된 것이 국채와 화폐 발행 연계의 첫걸음이었다. 1913년에 설립된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도 영란은행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했다. 민간은행 연합체인 연준은 지금도 매년 주주들에게 6% 배당을 하고 나머지 수익은 정부에 되돌려주고 있다.

이렇게 유대인이 주도해온 금융통화 시장에 지금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화폐는 두 번에 걸쳐 크게 변화했다. 첫 번째는 ‘실물화폐’의 등장이다. 대표적인 게 금과 은이다. 두 번째는 ‘신용화폐’의 등장이다. 1971년 닉슨쇼크로 달러와 금과의 고리가 끊어진 뒤 달러는 미국의 신용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신용화폐가 되었다. 세 번째 변화가 바로 ‘디지털화폐’ 혁명으로 지금 그 기운이 움트고 있다. 세계 중앙은행의 80%가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개발 중이며, 중국이 가장 먼저 중앙은행디지털화폐를 출시할 계획이다. 또한 민간 분야에서는 비트코인 가격이 심하게 출렁거리고 있다. 사지 않으면 나만 낙후될 것 같고(FOMO·Fear Of Missing Out), 사두면 급락할 것 같은(FUD·Fear Uncertainty Doubt) 공포가 사람들을 전전긍긍하게 만든다.

유대인 암호학자들 기득권에 도전하다

디지털화폐의 대표 격인 중앙은행디지털화폐와 암호화폐는 과연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반체제 히피운동 이후 사이퍼펑크 운동이 일어났다. 사이퍼펑크(cypherpunk)란 ‘암호(cypher)’에 저항을 상징하는 ‘펑크(punk)’를 붙여 만든 합성어이다. 이들은 군과 정보당국의 전유물이었던 암호기술을 이용해 거대집단의 감시에 맞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기로 했다.

이 운동의 선두에는 유대인 데이비드 차움이 있었다. 그는 미국 정부가 감시와 도청으로 칠레 대통령을 권좌에서 쫓아낸 사실을 알고는 빅브라더로부터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야겠다고 결심했다. 차움은 거래내역 추적을 막기 위해 암호학을 컴퓨터공학에 적용했다. 그는 26세의 나이로 암호학자이자 컴퓨터과학자 겸 경영학박사로 뉴욕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되자 암호학자들을 결집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국제암호연구학회’를 조직했다.

차움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인들의 자금거래를 추적당하지 않도록 하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그는 신분을 노출하지 않으면서도 거래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는 1981년 ‘익명통신’, 1983년 거래당사자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는 ‘은닉서명’을 개발해 암호화폐의 뼈대를 만들었다. 차움은 1985년에 ‘빅브라더를 이기는 방법’이라는 논문으로 사이퍼펑크 운동에 불을 붙였다. 그는 1990년 최초의 암호화폐 이캐시(ecash)를 개발하여 ‘디지캐시’라는 업체를 네덜란드에 설립해 운영하다 미국 정부의 견제로 실패했다.

다음으로 유대인 암호학자들이 풀어야 할 과제가 이중지불 문제였다. 암호화폐는 은행을 거치지 않고 거래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들은 이 문제를 블록체인 기술로 해결했다. 곧 아담 백이 컴퓨터로 특정한 값을 찾는 ‘작업증명’ 알고리즘을 개발해 거래를 증명해주는 ‘해시캐시’ 암호화폐를 설계했고, 닉 재보는 비트코인의 전신이라 불리는 ‘비트골드’ 백서에서 분산 디지털화폐 메커니즘을 설계했다. 그는 ‘스마트 계약’ 개념을 선보였다. 할 패니는 재사용 가능한 작업증명을 만들어 ‘e-머니’를 개발했다. 이렇게 비트코인은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한 게 아니라 유대인 암호학자들이 30년간의 개발 끝에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유대인은 아니지만 웨이 다이의 ‘비머니’도 비트코인에 상당한 영감을 주었다.

그들은 비트코인이 통화금융 세력의 패권적 횡포이자 금융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인 ‘신뢰부족, 빈부격차, 금권정치, 인플레이션, 통화교란으로 인한 금융위기’ 등에 맞서 싸우는 세계화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와중인 2009년 1월 3일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으로 공개된 최초의 비트코인에 금융위기 실상을 알리는 메시지를 담아 기득권 통화금융 세력에 대한 도전임을 명확히 했다.

중국의 중앙은행디지털화폐. 맨 아래 오른쪽에 ‘부딪치기’ 기능이 보인다.
중국의 중앙은행디지털화폐. 맨 아래 오른쪽에 ‘부딪치기’ 기능이 보인다.

최초의 거래는 피자 두 판에 5200억원

사토시는 경제현상을 교란시키는 인플레이션과 유동성 확대로 인한 금융위기에 대한 대책으로 비트코인의 발행수량을 제한했다. 그리고 어느 한 나라의 패권지향적인 세력들에 휘둘리지 않도록 탈중앙화된 분산원장기술이 적용되는 비트코인을 만들었다. 오늘날까지 비트코인을 만든 사토시 나카모토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비트코인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 변동성이 커서 교환의 매체나 가치저장의 수단 등 화폐의 본원적 기능을 하지 못해 많은 사람이 이를 사기라 생각했다. 비트코인을 사용한 최초의 상업적 거래는 2010년 5월 23일 발생했다. 플로리다에 사는 비트코인 채굴자 라즐로 한예츠는 온라인에 ‘누가 내게 피자 두 판을 시켜준다면 비트코인 1만개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 제안을 한 영국인이 받아들여 25달러를 지불하여 피자 두 판을 라즐로에게 보내주고 비트코인 1만개를 받았다. 지금 가격으로 환산하면 피자 두 판에 약 5200억원(1비트코인 5200만원 기준)을 지불한 셈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일부 금융인들은 블록체인 기술의 우수성과 송금의 신속간편성, 저렴한 수수료 등이 매력적임을 알아차렸다. 국제결제은행은 각국 중앙은행들에 암호화폐의 장점을 취해 빨리 중앙은행디지털화폐를 개발하도록 주문했다. 이로써 많은 중앙은행이 암호화폐 기술을 모방하여 추적 가능한 ‘중앙은행디지털화폐’ 개발에 착수했다. 그런데 가장 빠른 행보를 보인 건 중국이었다.

중국은 이미 4개 도시와 베이징올림픽촌에서 중앙은행디지털화폐의 테스트를 마치고 올해 홍콩 등으로 테스트 지역을 넓힐 계획이다. 2022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맞춰 사용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중앙은행디지털화폐는 인터넷이 없는 곳에서도 휴대폰을 서로 부딪치기만 해도 결제와 거래가 가능한 ‘부딪치기’ 기능을 갖고 있어 일대일로 국가들과 아프리카 등 개도국으로 빠르게 퍼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자 다른 나라들이 바빠졌다. 유럽과 여타국들도 개발과 테스트를 서두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올해 안으로 테스트를 마무리할 예정이고, 미국 역시 올해 말까지 개발을 완료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이다.

미국과 독일 정부는 암호화폐를 디지털자산으로 인정하며 금융권과 암호화폐의 융합을 추진하고 있다. 은행이 암호화폐 보관사업을, 암호화폐거래소는 특별허가를 받으면 은행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자 금과 비트코인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간 금과 비트코인은 달러에 대한 대체재이자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방향성이 같았는데, 지난해 10월부터 디커플링되었다. 이는 미국 정부의 금에 대한 규제, 곧 8차례 선물증거금 인상과 레버리지 축소가 진행되면서 기관투자자들이 비트코인 시장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여기에 JP모건체이스은행의 송금용 스테이블코인(달러연동 암호화폐) 등장, 페이팔과 비자카드의 암호화폐 결제 선언, 유동성 확대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 리브라 논란, 주식장기보유양도세 인상 공약, 테슬라의 가세 등이 비트코인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올 초 미국 통화감독청은 은행의 스테이블코인 결제와 송금을 전격 허용함으로써 암호화폐가 제도금융권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하지만 미국은 암호화폐가 화폐의 영역을 넘본다면 엄격한 규제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가 본격 시행되면 이는 자연스레 화폐개혁으로 연결된다. 구권을 디지털화폐로 바꾸어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간 지하에 잠겨 있던 종이돈들이 환전을 위해 은행으로 들어가 소유주의 실명을 밝혀야 한다. 현재 세계 지하경제 규모는 GDP의 20% 정도라고 한다. 그럼에도 노출될 수 없는 돈들은 암호화폐로 몰려갈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000 대 1로 교환을 단행하는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이 예상되어 화폐개혁의 속도가 다른 나라들보다 빨라질 전망이다.

중국이 불붙인 디지털화폐 경쟁

중국은 미국 주도의 국제결제시스템(SWIFT)에서 독립하기 위해 위안화결제시스템(CIPS)을 사용 중이며 러시아 또한 루블화결제시스템(SPFS)을 완성했다. 중·러 양국 간 무역은 2016년 달러거래 비중이 90% 이상이었으나 40%대로 줄었다. 여기에 인도도 가세했다. 2018년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5개국이 블록체인 기술을 공동연구하기로 했다. 유럽 또한 디지털화폐의 표준화를 추진 중이다. 중앙은행디지털화폐가 대세가 되면 EU와 브릭스 등 경제블록별 디지털화폐와 더불어 민간 분야의 스테이블코인과 암호화폐 등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세계통화의 분권화, 다양화가 예상된다.

게다가 클릭 한 번으로 외국 디지털화폐를 사고파는 시대가 오면, 패권국이 기축통화를 공급하던 공급자 중심 시대에서 세계 시민들이 선호하는 통화를 직접 선택하는 소비자 중심 시대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화폐혁명의 변곡점에 우리가 서 있다는 사실이다. 변화에 끌려 가지 않으려면 변화를 앞서서 이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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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 세종대 대우교수·‘월가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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