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의 주력 트럭 모델인 트레(tre). ⓒphoto 조선일보
니콜라의 주력 트럭 모델인 트레(tre). ⓒphoto 조선일보

한화그룹이 협업을 위해 매수했던 미국 수소트럭 업체 니콜라의 보유 지분을 최대 절반까지 매도할 수 있다는 사실상의 매각 계획을 지난 3월 17일 공시했다. 2018년 4월 비상장사였던 니콜라의 지분 6.13%를 1억달러에 사들인 지 약 3년 만이다.

한화에서 니콜라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그린 니콜라 홀딩스’란 회사다. 이 회사의 지분은 한화종합화학USA(51%)와 한화에너지(49%)가 각각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한화의 해외 계열사로 볼 수 있다.

지난해 6월 니콜라의 스팩(SPAC·합병을 통한 우회상장) 상장 당시 국내 기업으로는 가장 많이 조명받았던 한화그룹이 이번 지분 매각으로 입장이 난처해진 상황이다. 니콜라는 지난해 9월 미국의 공매도 리서치업체 힌덴버그리서치가 “니콜라가 지닌 자체 기술이 없다”는 내용을 폭로하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한화에너지와 한화종합화학은 2018년 4월 니콜라 주식 2387만5799주(6.13%)를 취득했다.

정확한 투자금액과 수량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주당 약 4~5달러에 인수한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6월 상장 당시 65.9달러까지 치솟았던 니콜라 주가는 현재 15달러 수준이다. 고점에 비해 77% 이상 폭락했지만 한화는 워낙 싼 가격에 매수했기 때문에 아직도 최소 2배에서 3배가량의 평가차익을 유지하고 있다.

한화 측은 이번 지분매각과 관련해 △아직까지 절반의 지분이 남아 있다는 점 △니콜라 투자가 수소산업을 위한 투자였다는 점 등을 들어 당시 투자가 현재진행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화 측은 일부 언론에 “니콜라 투자로 순수 차익만 약 1250억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차익금을 한화종합화학이 추진하는 수소 생산·충전소 등 관련 사업 확대에 투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재계나 주식시장 일각에서는 한화그룹의 이러한 스탠스가 한화그룹을 보고 니콜라에 투자했거나 한화그룹 계열사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란 지적이 나온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6월 8일 니콜라가 상장하자 보도자료를 하나 배포했다. 여기서 한화 측은 “니콜라가 나스닥에 입성하면서, 한화에너지와 한화종합화학이 보유한 니콜라 지분 가치는 7억5000만달러로 늘어났다”며 투자 과정을 상세히 외부에 알렸다.

한화그룹이 보도자료를 배포한 날 1만6672원이었던 한화솔루션 주가는 다음날 한때 20%에 가까운 상승폭인 1만9870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날 장은 1만7787원에 마감됐지만, 이후에도 한화솔루션의 주가는 꾸준히 상승해 3달 만인 9월 초 주당 5만원을 넘기기도 했다.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국내 대기업이 협업하는 해외 스타트업의 경우 신뢰도가 제고되는 효과가 있다. 적어도 대기업이 협업하거나 투자할 정도면 자체 검증이 된 회사라는 신호를 개인투자자들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부터 니콜라 주식이 폭락할 때도 한화가 시세차익을 노리고 빠지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기류가 미국 주식에 투자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강했다. 한화는 지난해 9월까지도 자사 그룹 광고에 니콜라 트럭을 등장시키는 등 니콜라와의 협업을 강조하는 브랜드 이미지 광고를 했다.

니콜라 창업주 트레버 밀턴. ⓒphoto 위키피디아
니콜라 창업주 트레버 밀턴. ⓒphoto 위키피디아

한화 “니콜라 협업 지속할 것”

지난해 니콜라는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투자자들을 일컫는 ‘서학개미’들이 매수한 대표 종목으로 꼽혔다. 하지만 현 시점 니콜라의 주가는 주당 14달러까지 하락했다. 니콜라는 현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법무부의 조사를 받고 있다. 니콜라 사기 논란이 터진 후 당초 니콜라와 협업하던 GM 등 각국의 완성차 업체들은 협업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포털사이트의 ‘니콜라’ 종목토론방에 들어가보면 한화그룹을 보고 니콜라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봤다는 성토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사실 한화 정도 되는 회사면 당연히 검증도 하고 잘 알아보고 회사 지분을 매입했을 텐데, 지금까진 사기였던 걸로 밝혀진 거고, 지분을 되파는 건 사실상 옥석 가리기에 실패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화의 니콜라 매각 건은 한화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사장이 투자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회사가 특히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 니콜라 투자와 관련해서도 한화그룹의 홍보 포인트 중 하나는 김 사장의 역할이었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6월 보도자료 배포 당시 “투자 최종 결정을 위해선 니콜라에 대한 정보와 수소 사업 전망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 수집이 절실했다”며 “이 과정에서 10여년 동안 태양광 사업을 담당하면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쌓은 김동관 한화큐셀 영업총괄 전무(현 사장)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한화 측은 김 사장이 니콜라 창업주인 트레버 밀턴(39)과 직접 만났고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었다.

김 사장은 태양광 관련 그룹사였던 한화큐셀 전무로 있다가 큐셀이 한화솔루션과 합병되면서 작년에 사장으로 승진했는데, 회사 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태양광 분야의 업황이 지속적으로 침체되면서 새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태양광 업계의 관계자는 태양광의 경우 장이 워낙 좋지 않고 이익률도 좋지 않아 김동관 사장이 태양광을 포함한 새 먹거리를 고민해야 했는데 새 사업군들 중에 포함돼 있던 것이 수소차”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화그룹 측은 “한화의 지분 매입은 상장 계획을 미리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었고 시세차익을 얻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며 “당시의 지분 매입은 북미 지역에서의 수소 인프라(충전소 및 태양광 전기 공급) 협력이 향후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화는 니콜라 지분과 관련한 최근의 매각 계획에 대해 “이번 공시는 지분 일부 매각과 관련해 하반기 중 최대 50%를 매각할 수 있다는 예고 공시의 성격이었으며, 회사는 1250억원 또는 2000억원의 차익을 남긴다거나 목표로 하고 있다는 언급을 한 적이 없다. 단순 차익 실현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라며 “지분 매각으로 마련되는 자금은 수소 사업에 추가로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한화종합화학이 수소 혼소(混燒)발전이 가능한 해외 법인 두 곳을 인수하겠다고 밝힌 것 역시 이 같은 계획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설명이다.

니콜라 투자를 두고 일각에서 제기하는 ‘옥석 가리기에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서도 한화는 “니콜라에 대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와 미국 법무부의 조사는 아직 진행 중이며, 현재로서는 사기 여부에 대해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며 “옥석 가리기에 실패했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해명했다. 또 “한화는 니콜라와 전략적 협업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향후에도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키워드

#기업
배용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