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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3호] 202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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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롯데 봤지? 용진이형의 SSG 랜더스 활용법

배지헌  엠스플뉴스 기자  2021-04-13 오전 10:45:10

▲ SSG 랜더스 구단주가 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지난 3월 30일 오후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SSG 랜더스 창단식에서 구단기를 흔들고 있다. photo 뉴시스
프로야구단 SSG 랜더스의 창단 첫 경기가 열린 지난 4월 4일, 인천 SSG 랜더스필드는 기분 좋은 설렘과 흥분으로 가득했다. 전날 종일 내린 비의 흔적은 깨끗이 사라지고 따스한 봄 햇살이 연두색 그라운드를 비췄다. 나온 지 며칠 되지도 않은 랜더스 새 유니폼과 모자를 착용한 팬들이 경기장 밖에 줄을 섰다. 막 문을 연 랜더스 용품숍과 ‘국내 야구장 1호’ 스타벅스 앞에도 팬들이 줄을 지었다.
   
   이날 경기 최대 관심사는 한국 무대로 돌아온 ‘추추트레인’ 추신수의 데뷔전. 그러나 추신수만큼 큰 관심을 받은 또 한 사람이 있었으니 SSG 랜더스 구단주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다. 정 부회장은 이날 그룹 임원들과 함께 야구장을 찾아 시설 곳곳을 둘러보고 경기를 관전했다. 앞서 구단 창단식을 앞두고 정 부회장은 음성형 소셜미디어 ‘클럽하우스’에서 유통 라이벌 롯데를 겨냥한 저격성 발언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이날 롯데와 SSG의 개막전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주역이다.
   
   경기 전 장내 아나운서가 정 부회장을 소개하자 관중석에선 큰 함성과 박수가 울려 퍼졌다. 추신수를 소개할 때만큼이나 엄청난 환호가 구단주를 향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데 익숙한 정 부회장도 이렇게 뜨거운 반응은 예상 못 했는지 어색한 미소와 목례로 관중들에게 화답했다. 경기가 끝난 뒤엔 2홈런 5타점을 합작한 최정과 최주환에게 ‘용진이형 상’을 전달해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프로야구단 구단주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마음껏 즐긴 정 부회장이다.
   
   
   재벌 회장님의 값비싼 놀이?
   
   사실 ‘구단주 놀이’는 신세계그룹이 SK 와이번스 야구단을 인수한 이유에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정 부회장의 진짜 목적은 논란이 된 클럽하우스(음성 기반 소셜미디어 서비스) 발언 속에 담겨 있다. “걔네(롯데)는 어쩔 수 없이 울며 따라올 것”이란 도발적 발언에 가려 덜 주목받았지만, 이날 정 부회장이 한 말 중에는 중요한 대목이 많다. 그는 “야구단을 가진 롯데를 보면서 많이 부러웠다”면서 “(롯데가) 본업 등 가치 있는 것들을 야구단과 연결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 야구에 열정적이라면 본업과 연결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 부회장은 “팬들이 야구를 볼 때 우리 기업이 한 번 더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콘텐츠를 만들고, 우리 이름이 입에 오르내리게 하고 싶다”고 했다. 정 부회장은 비싼 취미생활을 하려고 야구단을 인수한 게 아니다. 기존 구단처럼 그룹 홍보나 사회공헌만을 목적으로 창단하지도 않았다. 충분히 계산기를 두들겨 본 뒤 장사가 된다는 판단을 했기에 자발적으로 야구단 인수에 나섰다.
   
   SSG 랜더스 이전까지 KBO리그에서 야구단을 운영하는 가장 큰 목적은 ‘홍보효과’와 ‘사회공헌’ 두 가지였다. 애초에 프로야구는 자생적으로 탄생한 리그가 아니다. 정권 차원에서 주도해 기업들을 어르고 달래고 윽박질러가며 출범했다. SSG 랜더스의 전신 SK 와이번스만 해도 정부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구단 창단을 결정했다.
   
   홍보와 사회공헌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을 위한 기업의 투자엔 한계가 뚜렷하다. 기대도 크지 않다. 적당한 예산 안에서 큰 사고 없이 적당하게 운영하는 게 조직의 목표가 된다. 아무도 일을 크게 벌이라고 요구하지도,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시키지도 않는다. 그룹 계열사들이 갹출해 운영비를 조달하는 걸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겼다. 이윤추구가 목적인 주식회사 형태를 띠고서도 모기업 홍보 역할만을 강요받았다. 해외 프로스포츠처럼 독자적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서 막대한 수익을 내는 건 꿈 같은 일로 여겼다. 입장권 판매, 굿즈 판매 등 비즈니스 영역은 죄다 대행사에 맡기고 야구단은 성적과 선수단 운영에만 신경 썼다.
   
   재벌 회장님의 값비싼 취미생활도 프로야구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야구를 사랑하는 회장님, 대표님이 사재를 털어 야구단을 운영했다. 회사는 자금난으로 오늘내일 하는데 회장님이 야구단 매각 제안은 끝까지 거부할 때, 야구단은 비즈니스를 넘어선 그 무언가가 된다. 그러다 회장님이 감옥에 가면 야구단 전체 시스템이 작동을 멈춘다. 회장님의 야구에 대한 사랑이 예전 같지 않으면 야구단 존립이 뿌리째 흔들린다. 구단이 추구하는 방향이나 팀 컬러와 맞지 않는 엉뚱한 양반이 감독으로 오기도 하고, 잘하고 있는 감독이 하루아침에 잘리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진작에 날아갔어야 할 무능한 감독이 자리를 지키는 일도 벌어진다. 프로야구라는 큰 바다를 항해하는 야구단이란 배에서 감독이 선장, 단장이 도선사라면 야구단 회장님은 전지전능하고 자연재해를 가져오는 변덕스러운 ‘신’이다. 신의 은총에 의지해야 하는 사업은 사업이라기보다는 고대 농업이나 어업에 더 가깝다.
   
   
▲ 2013년 NC 다이노스를 창단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과감한 투자는 2020 시즌 우승이라는 결실로 돌아왔다. photo 뉴시스

   SSG가 프로야구판 게임체인저?
   
   한국 프로야구는 1982년 처음 생길 때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엉망인 차림새로 40년을 살아온 탓에 이제는 단추를 잘못 끼운 걸 알아도 바로잡기 힘든 지경이 됐다. 최근 들어 눈 밝은 일부 구단이 마케팅에 신경 쓰고 수익창출을 위한 고민을 하고는 있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야구단의 가장 기초적 수익원인 입장권 가격을 정상화하기조차 쉽지 않다. 그마저도 지난해 터진 코로나19 사태로 배부른 투정이 됐다. 경제난 속에 기업들의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야구단 유지는 사회공헌을 넘어 ‘희생’이 됐다.
   
   전망도 좋지 않다. 급격한 시장 환경 변화와 Z세대 등장으로 야구 인기가 갈수록 바닥을 향하고 있다. 시장 분위기를 누구보다 빠르게 감지하는 건 광고주들이다. 3일 개막 경기를 치른 고척스카이돔 외야 광고판은 절반이 빈자리였다. 국내 최대 시장인 서울을 연고지로 쓰는데도 상황이 좋지 않다. 지난해 우승팀 NC 다이노스도 개막 전까지 광고를 다 팔지 못했다. 이대로 가다간 망한다는 걸 모두가 알지만, 그 누구도 엉킨 실타래를 풀려고 나서지 않는 갑갑한 상황. 분위기를 반전시킬 강력한 ‘게임체인저’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신세계그룹이 등장해 야구계에 SK 와이번스 인수라는 ‘핵폭탄’을 투하했다. 야구계에선 야구단 운영 의지와 목적, 비전이 뚜렷한 기업인 신세계의 구단 창단이 KBO리그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롯데 자이언츠 마케팅팀장을 지낸 김경민 4D REPLAY 책임은 “야구단 운영의 뚜렷한 목적을 지닌 구단과 그렇지 못한 구단은 시간이 갈수록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며 신세계그룹이 분명한 목표와 비전을 갖고 야구단을 인수했다고 평가했다. 한 구단 관계자는 “신세계는 이미 이마트, SSG닷컴, 스타필드, 스타벅스, 신세계푸드, 이마트24 등 야구단 운영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여러 단위 사업군을 운영 중이다. 리테일 분야에서 오랫동안 쌓은 노하우가 있고 최신 IT 기술을 활용하는 데도 능하다”며 “기존 구단들이 취약했던 비즈니스에서 새로운 길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다.
   
   입장권 판매, 상품 판매, 식음료 매장 운영을 대행사에 맡기는 기존 구단과 달리 신세계는 자체적인 시스템을 활용한 비즈니스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단적인 예가 인천 SSG랜더스필드에 입점한 ‘스타벅스’다. SSG는 관중이 좌석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자리로 배달하는 시스템을 준비 중이다. 이는 스타벅스 외에 다른 매점에도 적용 가능한 기술이다. 좀 더 범위를 넓히면 자사 결제시스템인 SSG페이를 통해 구장 내 매점에서 결제하는 방식, 쇼핑 애플리케이션인 SSG닷컴을 통해 입장권을 예매하는 시스템도 가능하다. 이를 통해 수집한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팬들의 취향과 수요를 반영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선순환도 기대할 만하다.
   
   스타벅스 랜더스필드점에선 야구장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스페셜 MD 상품도 판매하고 있다. 또 랜더스필드점만의 스페셜 음료도 향후 출시 예정이다. 구장 내 매점에서도 추신수의 별명을 딴 식음료 제품을 판매할 예정이다. 랜더스 한 관계자는 “메이저리그 야구장에 가보면 그곳에서만 접할 수 있는 특색 있는 메뉴가 있다. 가령 LA 다저스 홈구장의 ‘다저 도그’처럼 랜더스필드 하면 떠오르는 대표 메뉴를 만들어 팬들이 야구장에 와야 할 이유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야구단 인수 주체가 ‘신세계그룹’이 아닌 계열사 ‘신세계 이마트’라는 점도 기존 구단과 차별화된 부분이다. 한 유통 대기업 관계자는 “막연하게 그룹 전체를 대표하는 기존 구단의 경우 마케팅을 할 때 각 계열사 간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았다. 만약 롯데가 아닌 롯데쇼핑이 자이언츠 구단을 보유했다면 야구단과 연계해서 많은 걸 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신세계는 이마트라는 명확한 인수 주체가 있고, 계열사 대부분이 리테일 중심 기업이라 그룹 생태계의 일부로 야구단을 활용하기 용이하다. 구단이 움직일 수 있는 운신의 폭도 넓다.
   
   
   “야구 끝난 뒤에도 고객 시간 뺏겠다”
   
   SSG 랜더스가 야구장이라는 거대한 플랫폼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주목할 부분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용진 회장이 과거 ‘대형마트의 경쟁자는 레저, 야외활동이 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는데, 야구단 인수는 그런 인식이 반영된 움직임”이라며 “야구장은 연중 72일 이상 수많은 비즈니스가 이뤄지고 매출이 발생하는 공간으로, 충성도 높은 수십만 명의 고객이 매일 방문하는 곳이다. 이 플랫폼을 잘 활용하면 다양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용진 부회장은 클럽하우스에서 “스타필드 위에 야구장을 짓고 싶다” “야구가 끝난 뒤에도 많은 고객이 쇼핑과 레저를 즐기도록 해서, 고객의 시간을 8~9시간 정도 빼앗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신세계그룹은 SSG 랜더스를 통해 이전의 프로야구단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큰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창단식에서 선보인 ‘세상에 없던 프로야구의 시작’이란 캐치프레이즈가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는다. 마지못해 적자를 감수하며 야구단을 운영하는 기존 체제에서 벗어나, 야구단의 산업 가치를 높이고 모그룹과 시너지 효과를 내서 적극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야구계에서도 랜더스 창단과 신세계그룹의 적극적인 행보가 위기의 프로야구와 기존 구단에 자극과 영감이 될 것이란 기대가 많다.
   
   새로운 시도로 성공을 거둔 선두주자의 존재는 다른 구단들에도 영향을 준다. 1990년대 LG 트윈스가 선보인 ‘전업 마무리’ ‘스타 시스템’은 프로야구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2013년 창단한 NC 다이노스는 창의적인 마케팅 기법으로 팬층을 확대하고, 데이터 분석으로 경기력 향상을 꾀했다. 이후 다른 구단들도 NC를 따라 경쟁적으로 소셜미디어 활용과 마케팅에 나서고, 데이터 분석팀을 확충하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최근엔 한화 이글스가 색다른 마케팅으로 리그를 선도하는 분위기다. 한화는 구단의 한 시즌을 담은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를 만드는가 하면, 첨단 기술인 ‘메타버스’를 선수단 출정식에 활용하는 등 차별화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SSG 랜더스가 만들어갈 야구단의 새로운 모델이 한국 야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KBO리그 전체가 한 단계 도약하는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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