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의 한 건물 옥상에서 텃밭을 가꾸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photo 뉴시스
서울 도심의 한 건물 옥상에서 텃밭을 가꾸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photo 뉴시스

오세훈 신임 서울시장이 박원순 전 시장 흔적 지우기 1순위로 ‘도시재생’에 메스를 들이댄 가운데, ‘도시농업’의 운명이 관심이다. 지난 4·7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오세훈 서울시장은 취임 직후, 노후 불량주거지 벽화 그리기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서울시 도시재생실을 축소하고, 주택건축본부를 주택정책실로 확대 격상키로 했다.

도시농업 역시 지난해 자살한 박원순 전 시장이 도시재생, 태양광 등과 함께 각별히 공을 들여온 사업 중 하나다. 박원순 전 시장은 취임 이듬해인 2012년을 ‘도시농업 원년’으로 선포한 직후 한강 하중도인 노들섬에서 모내기를 했다. 또 광화문광장 한복판에 상자벼를 심고,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옥상에 양봉장을 설치하는 등 도시농업에 집착을 보여왔다. 하지만 도시농업이 동북아 금융 중심을 목표로 도쿄·베이징·상하이·홍콩 등 메가시티들과 경쟁해온 서울시의 정체성과 맞느냐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서울 한복판 땅 2만원에 분양

지난 5월 3일 찾아간 서울 용산가족공원 한편에서는 퀴퀴한 퇴비 냄새가 풍겨나왔다. 옛 용산미군기지 골프장을 개조한 공원 동남쪽 귀퉁이에 서울시가 조성한 도시텃밭이 들어선 탓이었다. 무료로 개방하는 공원과 달리 텃밭은 서울시가 소정의 사용료를 받고 토지를 개별분양하면서 사실상 사유화된 상태다.

얼기설기 쳐진 울타리 너머로 6.6㎡(2평) 남짓 텃밭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텃밭에는 1번부터 157번까지 번호가 적힌 나무말뚝도 촘촘히 박혀 있었다. 텃밭 가운데는 농업용수용으로 조성된 웅덩이가 있었지만, 일부 경작자들은 공원 수돗물을 물뿌리개에 받아 자신의 텃밭에 뿌리고 있었다. 경작자들이 서울시에 토지사용료로 내는 돈은 작물경작이 가능한 4월부터 11월까지 약 8개월간 2만원이 고작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용산가족공원 맞은편 이촌1동(동부이촌동) 표준지 공시지가는 ㎡당 최고 2500만원대에 형성돼 있다. 3.3㎡로 환산하면 8250만원이다. 용산구는 서울에서 강남3구(강남구·서초구·송파구) 다음으로 아파트값이 비싼 곳이다. 주변 토지시세를 감안하면 약 8개월간 1구획(6.6㎡)당 2만원에 사용하는 토지는 사실상 공짜인 셈이다. 공원 수돗물을 쓰는 농업용수 역시 공짜다.

서울시 도시농업과의 한 관계자는 “각 자치구에서 책정한 금액”이라며 “시유지이다 보니 다른 곳보다 저렴하다”고 했다. 용산공원을 자주 찾는다는 한 방문객은 “헐값에 텃밭을 분양받은 사람들이야 좋겠지만, 굳이 서울 한복판에서 농사를 지어야 하느냐”며 “용산가족공원은 주차장이 지나치게 협소해 평일에도 주차하기가 쉽지 않은데, 텃밭 대신 주차장을 조성하면 시에서 벌어들이는 부대수입도 올라가고 일반 시민들이 누리는 혜택도 훨씬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원순 전 시장 재임 9년 동안 용산가족공원처럼 서울 구석구석에 똬리를 튼 도시텃밭은 이제 상당한 면적이다. 서울시 도시농업과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서울시가 관내외에 확보한 도시농업 면적은 56만㎡(56㏊)에 달한다. 오는 2024년까지 목표한 도시농업 확보면적은 70만㎡다. 70만㎡면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1만가구 규모 공공주택 건립을 공언한 서울 노원구 태릉 군(軍)골프장(74만㎡)에 버금가는 면적이다.

서울시가 조성한 텃밭 중에는 관외인 경기도에 조성한 텃밭도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서울시는 남양주시 등 경기도 5개 시군에 ‘함께서울 친환경농장’이란 이름의 텃밭을 확보해 서울시민들에게 개별분양 중이다. 박원순 전 시장 때 시정 브랜드였던 ‘함께서울’이란 이름이 여전히 남아 있는 사업으로, 서울시는 남양주시 2곳을 비롯해 양평군(4곳), 광주시(5곳), 고양시(3곳), 시흥시(1곳) 등에 모두 15곳의 주말농장을 확보하고 있다.

경기도에 있는 서울시 텃밭은 구획수로 모두 6800구획에 달한다. 1구획당 면적이 배수로를 포함해 16.5㎡(5평)에 달하는 만큼, 약 11만2200㎡의 면적을 서울시민 전용텃밭으로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11만2200㎡의 면적은, 서울시가 공원 조성을 추진 중인 종로구 송현동의 옛 미대사관 직원숙소 부지(약 3만6000㎡)와 3500가구 공공주택 건립을 추진 중인 마포구 서부면허시험장(약 7만2000㎡)을 합친 것만큼의 크기다. 서울시 도시농업과의 한 관계자는 “한강수계기금을 재원으로 2000년대부터 해오고 있는 오래된 사업”이라며 “사용료는 각 농장과의 계약내용, 주변 주말농장과의 수준을 맞춰서 임차료 격으로 설정한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서울시 일선 초·중·고 내에 조성한 텃밭을 비롯, 공공건물 옥상과 아파트 베란다 상자 등에 조성한 온갖 형태의 잡다한 텃밭을 총망라한 ‘서울형 도시텃밭’ 면적은 지난해 기준 212만㎡에 달한다. 박원순 전 시장 취임 첫해인 2011년 29만㎡에서 무려 7배나 급증한 수치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서울형 도시텃밭’의 조성목표는 217만㎡(누적)에 달한다. 단위면적당 농업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둘째치고, 면적만 놓고 보면 농업혁명에 비견될 정도로 경이적인 농경지 증가를 이뤄낸 셈이다.

지난해 도시농업 예산 530억원

여기에 서울시는 ‘서울형 도시텃밭’을 일구는 소위 ‘도시농부’들을 위해 씨앗, 모종, 비료 심지어 영농교재까지 무료로 지원 중이다. ‘상자텃밭’도 예외가 아니다. ‘상자텃밭’은 말 그대로 아파트 베란다 등에 작물재배용 상자를 두고 작물을 키우는 방식이다. 각 개인도 의사만 있으면 큰 경제적 부담 없이 상자와 모종, 배양토를 구입해 얼마든지 작물을 키울 수 있다. 한데 서울시 일선 구청은 ‘도시농업’ 장려라는 미명 아래 4만원 상당의 상자텃밭 세트를 20% 수준인 약 8000원의 가격에 공급 중이다. 취미생활을 위한 과도한 예산지원이란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방식으로 ‘도시농업’에 매년 투입되는 서울시 예산은 상당한 수준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도시농업과에 책정된 예산은 모두 530억원. 이 중 ‘상자텃밭’ 등 ‘함께하는 생활 속 도시농업 환경조성’ 명목으로 책정된 예산만 371억원에 달한다. 가락동 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 현대화 등 ‘믿을 수 있는 농수산물 유통환경 조성’에 책정된 예산 158억원의 거의 2배 가까운 금액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서울시 2021년 예산안에 따르면, 올해도 약 260억원의 예산이 ‘함께하는 생활 속 도시농업 환경조성’ 정책추진용으로 쓰일 예정이다.

하지만 박원순 전 시장 재임 9년 동안 뿌리박힌 도시농업을 한꺼번에 정리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방만한 사업에 메스를 들이대려면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라는 서울시 조례부터 손봐야 한다. 조례는 ‘서울시장은 도시농업을 위한 토지·공간의 확보 및 기반조성을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서울시의회 역시 민주당이 110석 가운데 101석을 장악하고 있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처럼 도시농업 역시 오세훈 시장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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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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