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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2호] 202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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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혁명의 서막]두 천재 유대인의 만남과 최초 암호화폐 e캐시의 탄생

홍익희  세종대 대우교수·‘월가이야기’ 저자  2021-09-27 오후 5:42:13

▲ ‘e캐시’를 만든 데이비드 차움. photo cryptovantage.com
데이비드 차움은 1985년에 ‘신분 노출 없는 보안: 빅브라더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거래 시스템’이라는 논문으로 사이퍼펑크 운동을 촉발시켰다. 이어 1988년 ‘추적 불가능한 전자화폐’라는 논문을 통해 인터넷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추적 불가능한 디지털화폐를 제안했다. 세계 최초로 암호학이 적용된 익명성 디지털화폐를 제안한 것이다.
   
   차움은 이를 개발하기 위해 1990년 네덜란드에 ‘디지캐시(DigiCash)’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미국 정부의 견제를 피해 해외로 나간 것이다. 그는 1982년 발표한 백서를 토대로 ‘e캐시’ 개발에 착수했는데, 사용자를 비밀에 부치면서 신원을 증명할 수 있는 화폐를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마침내 1993년 세계 최초로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거래할 수 있는 익명성이 보장된 디지털화폐 ‘e캐시(ecash)’를 출시하는 데 성공했다.
   
   차움은 e캐시에 ‘은닉서명, 암호화된 계좌, 이중지불방지 시스템’을 적용했다. 그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신원은 암호화하지만, 누구에게 보내는지는 식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비트코인과 유사한 아이디어다. 이로써 e캐시는 은행이 모든 거래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신용카드와 달리 거래내역을 관리주체가 알 수 없도록 익명성을 보장했다. 차움을 암호화폐의 시조로 부르는 이유다.
   
   e캐시와 나중에 나온 비트코인의 차이는 e캐시는 은행에 라이선스를 판매하려고 은행과의 연계를 위한 ‘중앙집중시스템’을 사용한 반면,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탈중앙화시스템’을 토대로 했다는 점이다. 차움이 설립한 디지캐시는 제법 잘나갔다. 차움은 네덜란드 정부, 도이체방크, 크레디트스위스 등과 계약을 맺고 마이크로소프트, 비자카드로부터 지원을 받아 1000만달러 이상 투자를 이끌어냈다.
   
   디지캐시는 디지털 토큰을 기반으로 한 전자결제시스템을 개발했는데, 이 시스템을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토큰을 교환할 수 있고 현금으로 교환도 가능했다. 특히 이 토큰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돈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도록 설계되어 익명성을 보장했다. 미국 미주리주 지방은행인 마크트웨인은행이 1995년 처음으로 이 시스템을 도입해 소액결제에 활용했다. 1997년에는 대형 신용카드 발행사인 머칸틸은행 등이 이 시스템을 사용했다.
   
   
▲ 닉 재보 photo 유튜브

   닉 재보의 합류
   
   이때 e캐시 개발팀에 입사한 인턴사원이 닉 재보(Nick Szabo)였다. 1964년 헝가리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닉 재보는 1956년 헝가리 봉기에서 소련에 대항해 싸운 부친의 영향으로 소련과 같은 중앙집중식 정권이 얼마나 쉽게 권력을 남용할 수 있는지를 깊이 이해하며 자라났다. 미국 워싱턴주에서 자란 닉 재보는 1989년 워싱턴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다.
   
   그 뒤 재보는 데이비드 차움이 만든 디지캐시 스타트업에서 최초의 암호화폐 e캐시 개발에 참여했다는 것이 몇 해 전에 밝혀졌다. 데이비드 차움과 닉 재보, 이 두 천재의 만남은 암호화폐 개발사에 큰 획을 긋게 된다.
   
   e캐시는 익명성을 못마땅해 하는 미국 정부 눈치도 있는 데다 당시의 기술적 한계와 사회적 여건의 미성숙으로 계약했던 은행들이 탈퇴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결국 디지캐시는 버티지 못하고 파산하고 만다. 이로써 이 획기적 기술을 널리 보급하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차움이 고안한 암호기술은 중앙기관이 제공하는 신뢰 없이도 합의된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누구나 참여 가능한 ‘신뢰 프로토콜’의 핵심 원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비트코인의 주요 요소인 ‘분산공유 원장, 암호화된 계좌, 이중지불 방지시스템’은 모두 차움이 30여년 전에 개발한 것들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래서 그는 비트코인을 만든 ‘사토시’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데이비드 차움과 닉 재보는 e캐시의 보급에는 실패했지만 최초의 e캐시를 거울삼아 문제점을 분석해나갔다. 우선 e캐시는 보안에 취약했다. 해킹으로 거래 잔액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 너무 쉬웠다. 그리고 e캐시를 은행과 연계하다 보니 제3자의 가치에 신뢰를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는 감시와 검열에 노출될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지속 가능한 생명력에 문제가 있었다.
   
   그들은 제3자, 곧 은행의 신뢰에 의뢰하지 않는 독자적인 암호화폐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탈중앙화 암호화폐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그들은 e캐시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고 새로 개발될 탈중앙화 암호화폐는 다음 조건을 만족시키기로 했다.
   
   첫째, 우발적인 분실 및 도난으로부터 안전해야 한다.
   
   둘째, 그 가치는 위조할 수 없을 정도로 비용이 많이 들고 따라서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셋째, 그 값은 간단한 관찰이나 측정으로 정확하게 근사되어야 한다.
   
   비록 e캐시에서 실패했지만 귀중한 교훈을 얻은 그들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새로운 탈중앙화 암호화폐를 개발하기로 했다.
   
   한편 1990년대 중반 닉 재보의 관심은 인터넷 전자상거래 프로토콜 개발이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는 ‘스마트계약’이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1994년 그가 제시한 스마트계약은 블록체인 기반으로 제3의 중개기관 없이 개인 간 P2P 방식으로 원하는 계약 체결이 가능하도록 하는 기능이다. 당사자끼리 합의한 조건에 따라 계약 내용을 자동적으로 실행할 수 있게 프로그래밍하여 당사자 간 분쟁 없는 투명한 거래를 수행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 1994년 ‘디지캐시’ 개발팀.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닉 재보로 추정된다. photo www.chaum.com

   닉 재보 ‘스마트계약’ 시스템 개발
   
   스마트계약은 계약법 관행과 인터넷 유저들 사이의 전자상거래 프로토콜 설계에 대한 이행을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스마트계약은 글로벌 시대에 국경을 넘는 계약일 경우 전통적 계약 방식보다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암호화폐의 발전에는 영국의 유대인 암호학자이자 사이퍼펑크인 아담 백(Adam Back)도 기여했다. 탈중앙화 화폐는 중간에 이중지불을 체크해줄 은행이 없기 때문에 탈중앙 화폐 스스로 이중지불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아담 백은 1997년 익명성을 보장하면서도 이중지불을 방지할 수 있는 해시캐시(Hashcash)라는 가상화폐를 만들었다.
   
   아담 백은 1993년 하버드대학의 유대인 컴퓨터과학자 신시아 더크(Cynthia Dwork)와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의 암호학자 모니 나노어(Moni Naor)가 고안한 작업증명의 기본개념을 실제로 암호화폐 개발에 적용했다. 아담 백의 해시캐시는 원래는 대량 스팸메일을 막기 위해 개발한 암호화폐였다. 이메일을 보낼 때 우표 대신 해시캐시를 지불하게 함으로써 시간과 비용 부담 때문에 대량 스팸메일 발송을 못 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곧 이메일을 발송하기 위해서는 해시캐시 스탬프를 미리 받아야 하는데, 이 스탬프를 받으려면 컴퓨터 연산을 통해 일정한 해시(hash)를 찾도록 하는 작업증명(POW·Proof Of Work) 과정을 거치도록 했다. 작업증명을 통해 특정 해시 값을 찾기 위해 수많은 반복 연산을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게 해서 결국 대량 스팸메일을 보낼 수 없도록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담 백이 개발한 해시캐시
   
   가상화폐는 실물이 존재하지 않기에 컴퓨터 기반에서 대량 복제되거나 생성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이런 기술적 시스템이 바로 블록체인 기술이다. 블록체인은 모든 거래에 대한 내용이 모든 네트워크에 기록된다. 이는 관리 주체가 없는 공개적인 네트워크 공증을 뜻한다. 이 공증을 마무리하는 작업이 바로 작업증명이다. 해시캐시가 도입한 작업증명 방식은 이후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가 개발한 비트코인 채굴 알고리즘에 적용되었다.
   
   작업증명 방식이 이중지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합의 알고리즘은 어떤 거래가 발생했을 경우 해당 거래가 유효한지에 대한 합의 방법 및 새로운 블록이 진짜인지, 가짜인지에 대한 검증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아담 백이 해시캐시를 선보인 이듬해인 1998년 웨이 다이(Wei Dai)가 익명성과 분산방식 암호화폐인 비머니(B-Money)를 고안하면서 암호화폐는 다시 한 걸음 더 진전했다.
   
   비트코인에 아주 근접한 암호화폐는 닉 재보가 만든 비트골드였다. 닉 재보는 디지털화폐를 금과 같은 희소성이 있되 제3자의 신뢰에 의존하지 않는 무엇인가로 만들고 싶었다. 즉 ‘디지털 금’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1998년 스마트계약 기반의 ‘비트골드’를 설계해 발표했다. 비트골드의 메커니즘은 금본위 화폐 발행 원리를 디지털로 구현한 것이었다.
   
   비트골드는 탈중앙화 디지털화폐로, 참여자들이 컴퓨팅 파워를 통해 암호화 퍼즐을 푸는 방식으로 같은 네트워크에 있는 다수가 그 해답이 유효하다고 인정해야 다음 퍼즐로 옮겨갈 수 있는 구조이다. 퍼즐이 풀리고 네트워크 인증을 통과하면 그 퍼즐은 다음 퍼즐의 일부가 된다. 복사·붙여넣기를 통한 부정행위를 차단함으로써 디지털화폐의 이중지불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비트골드는 나중에 나온 비트코인의 구조나 원리와 매우 비슷하다. 비트골드는 실제로 시장에 나오지는 못했지만 비트코인 아키텍처의 선구적인 모델이었다. 곧 비트코인을 만들 때 비트골드의 원리를 많이 참고했다는 의미이다. 특히 참가자들이 컴퓨팅 파워로 해시 문제를 풀어 비트골드를 얻게 되는 구조가 같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채굴 난이도가 증가하는 부분 등 기술적 메커니즘도 비슷했다. 이외에도 비트코인과 비트골드 모두 작업증명 합의 알고리즘에 의해 구동되고 컴퓨팅 알고리즘은 암호 퍼즐을 해결하는 데 사용된다.
   
   
   ‘디지털 금’ 비트골드의 의미
   
   비트골드는 화폐의 경제적 특성을 재현하는 동시에 보안성을 강화하려는 시도였다. 닉 재보는 비트골드에서 두 가지 기능을 구현했다. 하나는 금융기관으로부터의 독립이다. 사용자는 비트골드 네트워크를 통해 금융기관을 거칠 필요가 없이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게 됐다. 또 다른 하나는 국경을 넘나드는 원활한 운영이다. 비트골드 같은 분산형 네트워크는 은행의 복잡한 경로를 제거하고 몇 분 내에 국경을 넘는 송금을 처리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모두 훗날 비트코인에서 구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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