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경기도 구리시의 한 학원에서 일하는 A씨는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학원이 자주 문을 닫아 200만원씩 받던 월급이 50만원으로 줄자 대출을 알아봐야 했지만 금융권에서는 모두 거절됐다. 연이율 20%가 넘는 고금리 대부업과 현금서비스 등으로 생긴 3000만원의 채무, 4대 보험 미가입, 급여의 편차가 크다는 점 때문에 돈을 빌릴 곳이 없었다. A씨는 구리시에 있는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찾고 나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상담을 통해 연 7.34%의 근로자 햇살론 상품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그녀는 “20%가 넘는 고금리 대출을 상환해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됐다”며 센터에 감사 전화를 걸어왔다.

A씨 같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적지 않다. 2020년 기준 신용 7등급 이하(신용점수 하위 10%, KCB 기준)인 국민은 379만1000여명이다. 이 중 221만2000여명(58.4%)은 연체 중이거나 최근 연체 기록이 있다. 이들은 금융권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부류다.

만약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면? 대부업이나 불법 사금융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과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가 껴안아야 할 이들이기도 하다. 서금원은 고금리대출을 피할 수 있도록 낮은 금리의 대출을 지원하고 신복위는 추심에 시달리지 않도록 연체이자나 원금 등을 조정해 빚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난 8월 24일 만난 이계문 서민금융진흥원장 겸 신용회복위원장은 두 기관의 수장을 겸직해 맡고 있다. 임기 3년인 이 자리에 2018년 10월에 임명됐으니 이제 곧 물러날 때가 다가오지만 그는 금융소비자들을 상대로 “재무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를 방문해달라”는 점을 알리느라 여전히 바쁜 시간을 보낸다. 자리에 앉은 이 원장은 최근 한 방송국의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원래 방송은 잘 안 나가는데 막상 출연해보니 홍보 효과가 매우 크더라. 방송 나가고 난 뒤 우리 기관에 걸려오는 전화가 평소보다 두 배 정도 증가했다.”

서금원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1397’을 누르면 된다. 상담원들과 직접 소통하며 적합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 원장이 부임했을 때만 해도 상담전화는 ARS 방식이었다. 그는 “직접 전화를 걸어보니 상품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용하기 불편해 보였다.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돼 ARS 대신 직접 상담으로 콜센터를 개편했다”고 말했다. 프로세스 전반을 고객 접근성에 방점을 찍고 시도한 변화였는데 지금은 부임 때 21명이었던 전화상담사가 77명까지 늘었다. 응답 비율도 98.7%에 달한다. 올해 7월 기준 그간 이뤄진 상담은 약 58만건인데 전년동기 대비 11.4%가 늘었다.

“1조원 투입하면 8조원 지원 효과 생긴다”

서금원이 제공하는 대표적인 상품들은 주로 취약계층과 저신용자들을 위한 것이다. 청년·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햇살론유스’, 최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햇살론15’ 같은 상품이 대표적이다. 서금원이 100% 보증하고 시중은행에서 취급하는 햇살론15(연 15.9%)는 기존의 햇살론17(17.9%) 금리를 2%포인트 낮춘 상품이다. ‘안전망 대출Ⅱ’는 연 20% 초과 대출 이용자가 대환할 수 있는 상품이다. 최대 2000만원까지 연 17~19%대 금리로 대환해 준다. 생계자금인 ‘햇살론뱅크’는 부채 및 신용도가 개선된 고객을 대상으로 서금원이 보증해 저금리로 은행 대출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신복위 역시 채무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에게 채무감면이나 분할상환, 이자율 인하 등 개인의 상황에 적합한 채무조정제도를 지원하고 있다. ‘연체 전 채무조정’을 통해 회복할 때까지 긴급상환을 유예받거나, 유예 후 분할상환(최장 10년)을 지원받을 수도 있고, ‘이자율 채무조정’을 통해 원금감면은 없지만 이자율을 낮춰 분할상환할 수도 있다. 개인워크아웃으로 잘 알려진 ‘채무조정’ 역시 신복위를 통해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다.

서금원이나 신복위의 역할은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에 휘말리기도 한다. 서금원에 투입되는 돈은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3차 추경을 통해 공급규모가 1조1000억원이 확대됐고 코로나19로 어려움이 커진 56만명의 서민들에게 총 4조9000억원이 지원됐다. 올해 공급규모는 5조9000억원으로 1조원 더 늘었다. 하지만 이 원장은 서민금융제도에 정부 예산이 더 투입돼야 한다고 본다. “빚이 불어나거나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도 우리가 챙겨야 할 국민이다. 대표적인 서민금융기관인 신협의 담보대출 비율이 94.7%인데다 제2금융권도 담보를 요구한다. 급히 돈은 필요한데 담보조차 없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겠나. 가족이 도와줄 수 없다면 결국 파산하든가 기초수급자가 된다. 기초수급자의 탈(脫)수급 비율이 5% 정도다. 그중 3%는 사망해서 빠져나간다. 탈수급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얘기이다.”

기초수급자의 증가는 사회적 비용의 증가를 뜻한다. 그는 여기에서 신용복지위원회나 서민금융진흥원의 역할을 찾는다. 복지에 1조원을 투입하는 것보다 정책서민금융에 1조원을 투입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서금원은 8배의 보증운용배수를 적용한다. 복지자금으로 1조원을 투입하면 8조원을 지원하는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재무적 위기에 몰린 사람들이 수급 대상자로 빠지지 않도록만 해도 국가 재정 입장에서는 효과적이다.”

막상 햇살론 부실률은 11~12% 정도인데 시뮬레이션보다 양호한 수치라고 한다. “이걸 기준으로 서민금융진흥원에서 자체 분석을 해보니 1조원으로 12조원 정도의 지원 효과가 생긴다”는 게 이 원장의 설명이다. 복지자금으로 구제해야 할 사람들을 막는 효과는 이처럼 보증을 활용한 지렛대로 발생한다.

UN이 인정한 서금원·신복위 모델

이 원장이 지원만큼이나 서금원과 신복위에 강조하는 기능은 ‘컨설팅’이다. 고객들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저신용이나 부채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는 “산술계산으로 1인당 880만원 정도의 서민금융 지원이 이뤄지는데 이것만으로는 큰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금원의 경우는 이용자가 신용을 높여 제1금융권 대출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일대일 맞춤형 신용·부채관리 컨설팅을 하고 있다. 신복위는 채무조정 이용자에게 신용·복지 컨설팅을 제공해 안정적인 직업이나 수입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복지서비스를, 자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정책서민금융을 이용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컨설팅은 효과적인 결과를 내놓고 있다. 올해 4월 정규사업으로 시작한 서금원의 신용·부채관리 컨설팅을 2회 차 받은 3240명 중 41.9%는 신용점수가 평균 30.8점 상승했다. 올해 1분기 신복위의 신용·복지 컨설팅을 받은 이용자 4274명 중 35.8% 역시 평균 37.1점이 상승하는 결과를 보였다.

지난 2월 제59차 유엔 사회개발위원회(UN Commission for Social Development)는 서금원과 신복위의 지원모델을 의견서로 채택했다. 매년 전 세계에서 1000여건이 제출되는데 올해 채택된 40건에 포함됐다. 공공기관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서금원과 신복위 등 국내 정책서민금융이 코로나19라는 상황 속에서 서민지원 등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측면에서 우수한 금융모델이라는 평가를 받아 이룬 쾌거였다.

유엔이 서금원과 신복위 모델에 높은 점수를 준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우선 양극화 문제에 대한 정책적 해법이란 점에 주목했다. 이 원장은 “세계화, ICT 혁명은 결국 빈부격차 문제를 강화하고 확산시킨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느 나라나 복지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복지로는 한계가 있다는 게 북유럽에서도 이미 증명됐다. 동일한 재원을 갖고 어떻게 효율적으로 분배하느냐가 중요한데, 이건 결국 시장원리다. 시장원리의 활용법이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해외에도 우리 신용복지위원회와 비슷한 기구들은 있다. 금융시스템이 우리보다 먼저 발전했으니 신용을 둘러싼 문제를 처리하는 기구는 자연스레 필요했다. 반면 서민금융진흥원과 같은 곳은 없다. 그는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는 우리네 신용협동조합 같은 서민 금융기관들이 제대로 역할을 한다. 거기는 시장에서 서민들을 안을 수 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한다. 금융권을 이용하려면 담보가 필요하고 저축은행 같은 곳은 금리도 높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시장의 실패가 만들어준 모델이 서금원으로 완성됐고 국제무대에서도 좋은 대안으로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그는 이 모델이 좋은 ‘수출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우리 정도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에 서금원 모델을 들고 컨설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 하나 유엔이 주목한 점은 디지털화의 안착이다. 플랫폼을 활용해 프로세스 혁신을 한 서금원과 신복위의 접근성은 놀랍도록 향상됐다. 앱이 없던 두 기관은 이 원장이 취임한 뒤 앱을 개발했고 10여개로 흩어져 있던 홈페이지 역시 통합한 뒤 사용하기 쉽도록 리뉴얼했다. 특히 비대면 시대에 앱과 웹을 통해 상담과 신청을 끝낼 수 있다는 게 빛을 발했다. 서금원(4.7점)과 신복위(4.6점) 앱의 평점은 편리성을 증명해준다.

“ESG 모델… S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이 원장은 “플랫폼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이지만 산업공학을 전공한 공대 출신이고 행정고시 합격 전에는 삼성전자에 다녔던 현장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디지털화하다 보니 접근성이 엄청나게 좋아졌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서민과 취약계층에 서비스가 잘 전달됐다. 그런 점을 강조했고 이게 유엔에 어필된 거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인터뷰 말미 그는 서금원과 신복위가 “ESG의 대표적인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요즘 가진 숙제도 ESG와 맞물려 있다. “민간에서 E(환경)에 신경을 쓴다면 우리는 빈부격차나 빈곤을 다루고 있으니 하는 일 자체가 S(사회)다. 직원들에게도 ESG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기고 S를 어떻게 더 밖으로 확산할 건지에 대해 고민하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신복위는 이미 ‘신용상담 ESG지수(ICC-ESG)’를 개발했고 서금원은 금융회사·신용정보회사·민간상담기구 등의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ESG 지표를 현재 만들고 있다. “S 역할을 제대로 알리고 시장에 확산하는 게 서민금융기관이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는 그의 시도는 임기가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키워드

#인터뷰
김회권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