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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3호] 2021.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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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혁명의 서막]사토시 나카모토는 진짜 닉 재보일까?

홍익희  세종대 대우교수·‘월가이야기’ 저자  2021-09-27 오후 5:41:45

photo 셔터스톡
닉 재보(Nicholas Szabo)는 1998년 웨이 다이(Wei Dai)가 고안한 비머니(B-Money)의 암호화기술을 참고해 같은 해에 ‘비트골드’를 제안했다. 비트골드의 메커니즘은 금본위제 통화 발행 원리를 구현해 인플레이션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자는 것이었다. 비트골드가 실제 발행되어 사용된 적이 없음에도 많은 사람들은 비트골드가 비트코인의 모태라고 이야기한다. 이유는 둘의 구조가 아주 비슷하기 때문이다. 비트골드는 참가자들이 암호화된 퍼즐을 풀어 얻게 되는 구조인데, 퍼즐이 조금씩 어려워지기 때문에 비트골드를 얻는 것도 점차 어려워진다.
   
   
   비트코인 백서에 닉 재보의 흔적이
   
   비트골드와 비트코인의 유사성을 살펴보면, 누가 봐도 비트코인의 창시자로 알려진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골드의 콘셉트와 원리를 바탕으로 비트코인을 만들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2008년에 등장한 비트코인 백서에서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골드에 대한 코멘트를 ‘한 줄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비트골드의 개념을 만든 닉 재보가 비트코인 또한 만들지 않았을까 의심한다. 비트코인 백서에는 비트골드를 제외한 다른 참고사항들은 나온다. 즉 웨이 다이의 비머니를 참고했음이 밝혀져 있고, 심지어 2005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가한 자유달러를 만든 개발자에게 사토시가 온라인으로 접촉해 자유달러가 자신이 만들고 있는 비트코인에 영감을 주었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비트골드에 대한 언급은 한 줄도 없다.
   
   닉 재보가 비트코인 창시자인 사토시의 후보로 꼽히는 또 다른 이유는 그의 글들이 비트코인 백서와 언어학적 유사성이 가장 밀접하다는 점도 있다. 게다가 닉 재보는 1990년대에 가명을 사용해 활동했고, 비트코인 백서가 발표된 2008년에는 공동 작업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2015년 5월 뉴욕타임스의 나다니엘 포퍼 기자는 ‘닉 재보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증거가 있다’고 쓰기도 했다.
   
   비트코인이 선보이는 과정에서 역할을 한 할 피니(Hal Finney)라는 인물도 흥미롭다. 그는 2009년 사토시로부터 비트코인을 전송받은 최초의 인물이자, 사토시 이외의 최초 비트코인 채굴자이다. 그는 원래 유명한 콘솔게임 개발자이자 암호학자였다. 피니는 2004년 해시캐시를 이용해 ‘재사용 가능한 작업증명’을 만들었다. 이는 정보를 숨기는 암호와 달리, 정보의 위·변조를 확인하는 인증에 중점을 두었다. 그는 이를 이용해 같은 해 e머니(e-money)를 개발해 공개했다. 이로써 암호화폐의 근간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이 만들어졌다. 참고로 피니(Finney)라는 성(姓)은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의 유대인 성이다. 안타깝게도 할 피니는 2014년 8월 루게릭병으로 사망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누군지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다. 한 사람인지 둘 이상의 팀인지도 불분명하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익명을 쓸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유대 금융자본에 도전한 그가 유대인이기 때문이라고 추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트코인이란 단어 자체가 히브리어 ‘비타혼(Bitachon)’과 비슷한데 이 단어는 신뢰와 보안이라는 뜻을 함께 갖고 있다고 한다.
   
   사실 암호화폐 탄생에 기여한 암호학자들 중에도 유대인 학자들이 많았다. 특히 핵심 4인방인 데이비드 차움과 그의 동료 닉 재보, 그리고 아담 백과 할 피니까지 모두 유대인이다. 일부에서는 사카시 나카모토가 한 사람이 아니라 비트코인을 공동 개발한 유대인 암호학자들의 비공개 모임일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물론 핵심 개발자는 존재하겠지만 이런 프로젝트를 혼자서 완성한다는 것은 무리이므로 개발자들 그룹이 있을 것이라는 설이다. 곧 ‘뜻 있는 유대인들이 기득권 유대 금융자본 세력의 횡포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사토시는 세 명이 조종하는 아바타?
   
   사토시 나카모토(中本哲史)라는 이름 자체도 흥미롭다. 그 이름이 ‘철학과 역사가 있는 오리지널 센터’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 자체가 작위적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실제로 어느 쪽이 성씨이고 이름인지조차 불분명하다. 사토시는 흔한 이름이나 나카모토라는 성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람들 또한 많다. 애초에 국적을 파악하기 어렵게 하기 위해 제조된 가명이라고 보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데이비드 차움, 닉 재보 그리고 로버트 헤팅가’를 사토시로 지목하는 사람도 있다. 로버트 헤팅가(Robert Hettinga)는 미국 미주리대에서 철학을, 시카고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암호학자이자 작가이다. 창업가로 오랫동안 닉 재보와 알고 지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익명 디지털통화와 디지캐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했다. 그 뒤 그는 직접 인터넷으로 익명의 가치 이전을 추구하는 벤처기업 ‘인터넷 베어러 언더라이팅 코퍼레이션(Internet Bearer Underwriting Corporation·IBUC)’을 설립하고, ‘보스턴 디지털 상거래협회’를 만들어 주도했다. 이 협회에서 현재 비트코인 프로그램 관리책임을 맡고 있는 개빈 앤드리슨과 함께 일했다. 1997년에는 언론의 눈을 피해 세계 최초로 ‘금융암호화 회의’(FC97)를 동료 암호학자가 사는 카리브해 서인도제도의 영국령 ‘앙길라’섬에서 개최해 금융암호화 연구를 주도했다. 따라서 사토시 나카모토는 한 사람이 아니라 ‘데이비드 차움, 닉 재보, 로버트 헤팅가’가 뒤에서 조종하는 아바타가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어쨌든 암호학자들의 끈질긴 도전이 결실을 맺게 된 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이 시기에 출현한 비트코인은 정부 통제를 벗어나려는 유대인 반항아인 암호학자들이 30여년에 걸쳐 연구한 결과물로서 탄생되었다.
   
   비트코인의 존재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은행 간 대출이 마비되며 흉흉한 소문이 확산하던 2008년 8월 18일이었다. 그날 ‘bitcoin.org’라는 도메인이 일본 어나니머스스피치를 통해 등록되면서부터이다. 어나니머스스피치(www.anonymousspeech.com)는 익명 이메일, 익명 도메인 등록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그리고 두 달 반 뒤인 10월 마지막 밤에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 일대일 전자화폐 시스템(Bitcoin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백서를 한 크립토그래피 메일링 리스트에 등록했다. 사토시가 백서에서 제시한 비트코인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았다.
   
   - P2P 네트워크를 통한 이중지불 방지
   - 조폐제도 또는 여타의 중앙기관 배제
   - 참여자 익명성
   - 해시캐시 기반의 작업증명을 통한 화폐 발행
   
   비트코인은 제3의 신뢰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신뢰를 창조했다. 결국 사토시는 해시캐시와 비트골드를 발전시켜 비트코인을 개발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이제껏 인터넷은 정보교환의 통로였지 부(富)의 교환 통로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비로소 암호화폐가 은행을 거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개인 간에 직거래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이는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는 20억 인구에게 새로운 희망이 떠오른 것을 의미했다.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프리카 오지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성인 기준 미국인의 10%, 중국인의 33%, 파키스탄인의 91% 등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은행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신뢰가 아닌 암호화된 증거를 믿는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과 ‘채굴 보상 알고리즘’이 처음으로 실용화된 사례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2009년 1월 3일 3만1000항으로 이루어진 비트코인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자료 저장 사이트 ‘소스포지(SourceForge.net)’를 통해서였다. 오픈소스는 이후 수많은 암호화폐의 원천기술이 되었다. 동시에 비트코인 개발 커뮤니티 사이의 합의에 의한 프로그램 개선이 가능해 진화의 여지를 두었다.
   
   사토시는 이를 기반으로 2009년 1월 3일 스스로 최초의 블록을 만들었다. 블록 안에는 생성 시간, 해시, 크기, 비트코인 거래 기록이 담겨 있고 아울러 사토시가 심은 아래 메시지가 담겨 출력되었다.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은행들의 두 번째 구제금융을 앞두고 있는 재무장관).”
   
   당시 무분별한 통화금융 정책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각국에서 구제금융으로 돈을 풀어 부실을 덮으려 했는데 이를 기사화한 신문의 헤드라인을 제네시스 블록에 영원히 남김으로써 사토시는 우리가 쓰는 통화가 중앙집권적 통화금융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하는 당위성, 곧 비트코인의 탄생 목적을 선언했다.
   
   사토시가 첫 블록을 채굴해 발행한 암호화폐량은 50비트코인이었다. 이 가운데 10비트코인을 개발동료인 할 피니에게 보냈다. 암호화폐 거래의 시작이었다. 그 뒤 둘은 며칠간 이메일을 주고받았는데 내용의 대부분은 할 피니가 발견한 버그를 사토시가 수정한 것이었다. 며칠 뒤 비트코인은 꽤 안정적으로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네시스(최초 기원·창세기) 블록을 만든 6일 뒤에 사토시는 프로그램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첫 번째 비트코인이 만들어졌음을 발표합니다. 비트코인은 새로운 전자화폐 시스템이며 P2P 네트워크를 사용함으로써 이중 비용 지불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중앙서버도, 중앙집권화된 권력도 없는 완벽히 탈중앙집권화된 시스템입니다.” 그때 비트코인을 가장 먼저 채굴한 사람이 할 피니였다.
   
   상업용 웹브라우저와 넷스케이프 창안자 마크 안드레센은 비트코인을 처음 보고 “오, 신이여. 이것이 우리가 기다려온 바로 그것이군요”라고 감탄했다. 서버의 도움 없이 컴퓨터에서 컴퓨터로 이동하는 전자화폐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증명 이후 오랜 기간을 기다려 얻은 결실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가 주목한 것은 안전성과 저렴한 송금비용이었다.
   
   비트코인 프로그램 배포 다음 달인 2009년 2월 사토시는 ‘비트코인 P2P 재단’ 포럼에다 500여 단어로 이루어진 포스트를 올렸는데 그의 생각이 잘 묻어나 있다. “기존 화폐의 근본적 문제는 그 화폐 시스템이 돌아가는 데 필요한 전적인 신뢰의 부족입니다. 중앙은행이 화폐가치를 떨어뜨리지 않을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만 화폐통화의 역사는 신뢰의 위반으로 가득합니다. 은행들이 우리의 돈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전자 방식으로 이체할 수 있을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는 은행이 우리들의 돈을 잘 보관해줄 것이라고 믿지만 은행은 지극히 낮은 준비금만 남기고 신용버블을 일으킬 정도로 대출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개인정보를 그들에게 맡기고, 해커들이 우리의 자산과 개인정보를 유출하지 못할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은행들은 엄청난 간접비로 인해 소액결제가 불가능합니다.… 비트코인은 신뢰가 아닌 암호화된 증거에만 기초를 둡니다.”
   
   
   불신이 낳은 비트코인
   
   이 글에서 은행에 대한 사토시의 불신을 볼 수 있다. 그는 은행이 대출을 통한 신용창출로 통화팽창 버블을 일으키는 것에 대한 불신이 깊었다. 사실 화폐의 본원적 기능인 ‘교환의 수단, 가치척도의 수단, 가치저장의 수단’은 통화교란의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화폐의 부가적 기능인 가치이전 수단, 곧 대출이나 투자 등이 통화교란의 주범이다.
   
   사토시는 현행 통화금융제도 전반에 대해 ‘신뢰’ 부족이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그는 금융자본 세력의 탐욕에 휘둘리지 않는 화폐, 곧 탈중앙화되어 근본적으로 신용창출로 인한 버블이 일어날 수 없는 화폐를 원했다. 이렇듯 비트코인 탄생 배경에는 달러가 지배하는 세계경제의 통화, 금융 시스템에 대한 반감이 있다. 그것은 금융자본 세력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기도 하다. 이 갈망이 암호화폐를 낳았다. 사토시는 이 문제를 혁신적 암호체계와 네트워크 기술을 결합해 해결했다. 개인 간 직거래 내역을 P2P 분산 네트워크상에서 다수 컴퓨터가 동시에 기록하고 검증하는 방법을 이용해 해결한 것이다.
   
   비트코인의 가장 큰 탁월성은 낯선 이들끼리 거래하면서도 중개인이 필요 없다는 점이다. 모든 걸 익명의 컴퓨터 네트워크가 대신한다. 곧 어떤 기관의 통제에도 놓여 있지 않은 분권화된 신용 시스템을 창출한다. 비트코인의 핵심은 바로 개인과 개인의 초연결성과 더불어 해킹으로부터 안전한 장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게다가 비트코인의 또 다른 특징은 설계 당시부터 발행 총량이 2100만개로 한정되어 있어 발행량이 늘어나서 화폐가치가 하락하는 인플레이션을 방지하려는 목적이 내재돼 있다는 점이다.
   
   이렇듯 암호화폐의 철학적 배경에는 기존 통화와 금융에 대한 해묵은 반감이 있다.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크고 작은 금융위기와 인플레이션은 통화교란의 주범이다. 이 모든 흐름은 세계의 부를 독점하고 있는 소수집단과 그들을 비호하는 정치집단의 지배 메커니즘이라는 것이 금융 자유주의자들의 시각이다. 그들은 신뢰 프로토콜로 만들어진 비트코인의 저장가치에 주목하며, 비트코인을 통화교란과 인플레이션을 잠재울 수 있는 대안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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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호랑이의 해 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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