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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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회는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여당은 지난 8월 ‘월 2회 의무휴업일’ 등 대형마트 규제를 복합쇼핑몰에까지 확대 적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다 야당과 유통업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이동주 의원 등이 발의한 이 법안(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복합쇼핑몰, 백화점, 면세점까지 의무휴업일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2010년 도입 당시 3년간의 일몰 기한을 뒀던 출점 제한 규정도 3~5년씩 연장을 거듭해 아직까지 운영되고 있다. 전통상업보존구역에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출점을 제한하는 해당 규제는 2025년 11월까지 계속된다. 하지만 이런 규제는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 유통시장의 흐름과는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다.

유통 패권 온라인으로

뉴욕타임스는 지난 8월 17일(현지시각) “아마존이 월마트를 제치고 중국을 제외한 지역에서 세계 최대 소매업체가 됐다”고 보도했다. 팬데믹 기간 급증한 온라인 수요에 힘입어 지난해 6월부터 1년간 아마존은 6100억달러(약 710조원) 매출을 올렸고, 같은 기간 월마트는 5660억달러(약 662조원)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수십 년 동안 가장 성공적이고 두려운 기업 중 하나를 (아마존이) 폐위시켰다”며 “온라인 분야에서 아마존보다 나은 회사는 없다”고 보도했다. 업계에서는 아마존이 2022년쯤 월마트를 추월할 수 있다고 내다봤지만, 유통업계 패권이 온라인으로 옮겨 가는 전환 속도는 그런 예상보다 빨랐다. 중국을 포함한 세계 최대 소매업체 역시 온라인 기반 중국 기업인 알리바바다. 전문가들은 팬데믹으로 인한 온라인 배송 트렌드가 유통업계의 변화를 가속했다고 분석한다.

월마트는 1962년 미국 아칸소주에 생긴 작은 상점에서 시작해 오프라인 소매업체의 황제로 자리 잡았다. ‘다양한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라는 모토를 내세우고 방대한 물류 네트워크를 만들어 이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월마트는 미국에서만 5339개 매장을 운영하면서 공급 네트워크를 형성했고, ‘90%의 미국인이 월마트 상점에서 10마일(약 16㎞) 이내 살게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국인의 일상을 파고들었다. 반면 1990년대 인터넷 서점에서 시작한 아마존은 미국 전 대륙에서 1~2일 배송을 가능케 하는 물류 시스템을 구축해 명실상부한 온라인 소매업체 1등 기업이 됐다. 아마존의 미국 전자상거래 시장 점유율은 약 40%로 2등인 월마트(약 7%)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오프라인 유통업계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강조한다. 온라인 소비의 폭발적 증가로 인해 과거 오프라인 중심이었던 소비의 축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유통학회장을 맡은 정연승 단국대 교수는 “아마존도 신선식품 매장이나 편의점 등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고 월마트도 온·오프 연계형 ‘옴니채널’을 갖고 있어 순수 매출액만 가지고 온·오프 시장을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면서도 “다만 유통업체가 이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통합된 형태로 움직이고 있고, 일반적인 소비 구조 역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많이 이전했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대형마트 vs 전통시장’ 프레임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문 앞까지 배송받는 소비 추세는 한국에서도 대세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2015년 전체 소매판매에서 온라인쇼핑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였지만, 올해 상반기 매출 구성비에서 온라인 시장은 48.0%까지 늘어났다. 국내 온라인 유통업체를 대표하는 쿠팡은 지난 8월 역대 최대 분기 매출(올해 2분기 5조원)을 공시했고, 오프라인 최강자인 이마트도 온라인 사업 투자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여기에다 지난 8월 31일에는 아마존이 11번가와 손잡고 한국에 상륙해 무료배송 혜택 등을 선보이며 이커머스 시장의 격전이 한층 더 거세질 전망이다.

문제는 온라인·오프라인 구도의 유통업계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과거 ‘대형마트vs전통시장’ 프레임에 기반한 규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대형마트가 급속 성장하던 2010년대 도입된 출점 제한, 운영시간과 일수 제한이 대표적이다. 2010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은 전통시장 1㎞ 이내 대형마트를 신규 개점하지 못하게 하고 있고, 2012년 개정된 같은 법은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제한하고 매월 2회 공휴일을 포함해 의무적으로 휴업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롯데마트·이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와 이마트 에브리데이·롯데슈퍼·GS더프레시·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같은 기업형 슈퍼마켓이 규제 대상이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은 규제가 도입된 이후 계속 매출액과 매출 비중이 줄었다. 산업통상자원부 ‘주요 유통업체 매출 증감률’ 통계를 보면 대형마트 매출액은 2011~2020년 계속 감소세였고, 기업형 슈퍼마켓도 업태별 매출 비중을 조사하기 시작한 2014년 5.2%에서 꾸준히 비중이 줄어 현재 3%대로 내려갔다.

편의점의 급성장도 대형마트 위기에 영향을 미쳤다. 편의점은 1인가구 증가, 코로나19 사태 등을 거치며 빠른 속도로 성장해 지난 4월 대형마트의 전체 매출을 뛰어넘었다. 지난 4월 산업통상자원부가 실시한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서 편의점 3사(CU·GS25·세븐일레븐)가 전체 오프라인 유통 매출의 31.4%를 차지하며 대형마트(29.5%) 점유율을 넘어섰다. 정연승 교수는 “오프라인에서도 소비자들의 행태가 많이 바뀌었다”며 “구조적인 패러다임의 큰 변화를 인지한 상태에서 규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회의 규제는 여전히 오프라인과 대기업을 향하고 있다. 올해로 도입된 지 10년째지만 아직도 효용성 논란이 분분한 의무휴업일 제도가 이런 규제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휴무일에 소비자들이 대형마트 대신 동네 슈퍼나 시장, 전문소매점 등에서 구매하는지에 대한 명료한 근거가 아직도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소비 일자가 다른 날로 옮겨 가거나, 아예 소비가 증발한다는 연구 보고 결과도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신승만 연구위원이 2014년 실시한 ‘대형마트 소비자의 구매 이전 효과’ 조사에 따르면, ‘휴업일 전후에 마트에서 소비한다’는 답변이 52.5%로 제일 많았다. 대형마트 외 다른 곳에서 물건을 구매한다는 소비자는 약 47%였지만, 이 중 19.6%만이 전통시장에서 물건을 산다고 응답했다. 시장 상인들이 체감하는 구매 이전 효과 역시 미미하다. 서울 동작구 영등포시장에서 6년째 과일 소매가게를 운영하는 서모씨는 “만날 오는 손님이 비슷하기 때문에 인근 마트 하루 쉬어봤자 매출에 큰 차이는 없다”며 “매주 일요일 쉬는 가게가 (시장에) 더 많다”고 전했다.

지난 8월 23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photo 뉴시스
지난 8월 23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photo 뉴시스

획일적 규제보다 업태별 경쟁력 강화를

대형마트나 복합쇼핑몰이 형성하는 상권의 전반적인 활력도가 떨어진다는 부작용도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2016년 ‘대형마트, SSM 규제 정책의 효과 분석’ 논문에서 “대형마트 및 SSM과 전통시장이 보완 관계를 지닌다”고 분석했다. 서 교수는 소비자들의 신용카드 매출 이력을 분석해 “대형마트와 SSM 출점 후 전통시장 이용 고객 수가 증가한다”며 “SSM과 전통시장을 동시에 이용하는 고객 비율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복합쇼핑몰 등 대거 상업시설이 들어서고 상권이 형성되면, 인근 음식점 이용객이나 소매점을 동시에 이용하는 고객이 늘어나는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규제의 구매 이전 효과가 작다는 지적에 대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한 여당 측은 “대형상점, 복합쇼핑몰 규제는 골목 상권에 대한 최소한의 생존 장치”라고 반박한다. 더불어민주당 이동주 의원실은 “대형마트의 고객이 모두 시장으로 가도록 하는 목적의 법안이 아니다”라며 “상인들의 최소 생존을 돕는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10~20%의 소비 이전도 작은 비율은 아니다”라고 했다. 자체 휴일이 없는 직원, 또는 마트에 입점한 자영업자들의 휴식권 차원에서 휴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 영등포구 이마트에 입점한 소매업체 직원 이모씨는 “입주업체는 일단 마트 룰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임의로 주말에 쉴 수 없다”며 “지금 강제로 휴무하는 날이 직원들에게는 휴식할 기회인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통업계의 구조적 변화를 고려할 때 대형마트 등 특정 업태를 규제하는 방안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오프라인 시장을 두고 경쟁했던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모두 온라인 흐름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대형마트 역시 오프라인 중심 판매에서 벗어나 자구책을 마련 중이다. 이마트, 홈플러스 등은 기존의 매장을 온라인 배송의 물류 기지로 활용하거나, 오프라인 공간만의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매장을 리뉴얼하는 방안 등을 강구하고 있다. 시장 상인들을 위협하는 요인도 이제는 온라인이다. 서울 동작구 흑석시장에서 40년간 반찬 가게를 해온 김모씨는 “저쪽 이마트가 일요일에 문을 닫든 말든 (매출에는) 별 차이 없다”며 “다만 시장 음식점들도 다들 배달을 한다고 하니까 추석 지나면 ‘배달의민족’ 앱에 등록이나 해볼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결국 급변한 환경에 각 유통업체가 적응할 수 있도록 업태별 경쟁력을 강화하는 측면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소비자 편익 측면에서 봤을 때도 마트나 복합쇼핑몰을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온라인·오프라인 구도 속에서) 매장은 오프라인만의 매력, 즉 재미와 체험이라는 공간적 매력을 살리는 쪽으로 생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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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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