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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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이른바 소액주주 운동을 펼쳐왔다. 시민단체들의 방법은 달랐지만 문제의식은 비슷했다. 적은 지분으로 기업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대기업의 지배구조가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의 소액주주 운동이라는 건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없었다. 소액주주들이 힘을 합쳐봐야 대주주를 이길 수 없었고, 그만큼 기득권의 저항도 거셌다. 또 어떤 단체들은 정치적 목적을 갖고 접근하다 보니 순수성을 의심받기도 했다.

이런 고착화된 자본시장을 정치적 구호가 아닌 오직 실력만으로 바꿔보겠다고 나선 젊은이가 있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다. 사모펀드 업계의 기린아로 통하는 그는 기자와 수차례 만나 “한국 주식시장의 왜곡된 구조가 개선된다면 코스피는 4000이 아닌 6000도 갈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주주가 가지고 있는 1주와 개인투자자가 가지고 있는 1주의 가치는 같지 않다” 등 자본시장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애정을 동시에 드러낸 바 있다.

중학생 때 투자에 눈떠

35세에 불과한 이 대표는 중학교 때 경제서적을 보고, 어머니가 하던 주식투자를 컴퓨터로 도와드리면서 주식시장과 자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등이 쓴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뭐든 투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웠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KBS ‘퀴즈 대한민국’에 나가 최연소 퀴즈 영웅이 되기도 했다. 당시 그가 획득한 상금은 해당 방송 프로그램사상 가장 많은 금액이었다. 2005년 수학능력시험에서 대구경북 지역 인문계 수석을 차지했던 그는 경영학과를 선택했다. 법조인이 될 수도, 행정고시를 볼 수도 있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품어왔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이 과를 선택했다.

그는 대학 입학 후 서울대 가치투자 동아리 ‘스누밸류(SNU VALUE)’에서 공부하며 펀드매니저를 꿈꿨다. 스누밸류는 국내 유명 펀드매니저들을 여럿 배출한 동아리다. 대학 재학 중 이라크 자이툰 부대 통역병, 싱가포르 경영대학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졸업 후 그는 골드만삭스에 입사해 약 2년간 투자은행부문 애널리스트로 일하다, 2012년 세계 3대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서울사무소 창립멤버로 합류했다. KKR에서 그는 오비맥주 매각을 시작으로 티몬 투자, LS오토모티브 인수·매각 등 수조원 규모의 빅딜을 다뤘다. 또 롯데쇼핑의 하이마트 인수와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매각 등에 자문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다. 그는 골드만삭스와 KKR에서 여러 건의 M&A와 자문을 하면서 배웠던 관점과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자본시장의 각종 문제점과 이를 바탕으로 한 투자전략 등을 고민하다 결국 KKR을 나와 자신이 직접 운용하는 자산운용사인 ‘얼라인파트너스’를 지난 9월 1일 출범시켰다. 그와 함께하는 멤버들은 투자은행이나 사모펀드에서 일했던 주로 30대 초반의 전문가들이다.

“M&A 통해 자본 효율성 키울 것”

앞서 얘기했듯 그는 한국 자본시장이 몇 가지 점에서 심하게 왜곡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영업이익률은 좋을지 몰라도 상속세랑 배당소득세 때문에 돈이 순환되지 않는 구조예요. 우리나라가 시장이 작잖아요. 기업이 어느 정도 성장을 했는데도 더 이상 자체적으로 투자할 데가 없는 겁니다. 좋은 투자처가 없으면 벌어놓은 돈을 주주들한테 돌려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건 배당소득세가 너무 높다 보니 대주주가 꺼리는 거예요. 그리고 상속세가 너무 높다 보니 많은 대주주들은 본인 기업의 주가가 낮게 유지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기업들이 돈은 잘 벌지만 계속 돈을 쌓아놓기만 하니까 자본이 과다해지고 경제 내부에서 순환이 안 되는 거죠. 더 나아가 자본이 과다해져서 점점 저수익 자산으로 보유하게 되니까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떨어지게 되고, 주가는 저평가됩니다. 반면 미국은 자본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서 우리나라에 비해 두 배 이상의 자기자본이익률을 내는데, 그게 국부의 증대로 이어지고, 모든 부문에 다 연결되거든요. 예를 들면 미국은 연기금이나 개인 퇴직연금의 매우 큰 부분이 미국 주식시장에 투자되어 있어요. 때문에 미국 기업들이 자본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주가가 올라가면 미국 사람들의 재산 증식에 도움이 되고 노후대비도 되다 보니, 경제 전체적으로 소비도 진작되고, 기업의 자본조달이 쉬워져서 투자가 활성화되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징벌적인 상속세나 배당소득세 등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어 놨어요.”

이 대표의 이야기처럼 우리나라의 배당소득세는 최대 50%에 달한다. 이는 선진국인 미국(29%), 일본(20%), 독일 (26%) 등에 비해 매우 높은 비율이다. 이 대표는 배당에 대한 대주주들의 금융종합과세율이 너무 높아서 배당을 꺼린다고 지적했는데, 결국 이것이 소액주주들에게도 불리하다는 주장이다. 한국에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기업 내부에 쌓여 있는 돈 문제를 해결해줘야만 국가 전체의 경제도 잘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제가 법이나 제도를 바꿀 순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M&A를 통해서 자본 효율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예를 들면 영업이익이 1000억원인 회사의 기업가치가 1조원이고 회사에 현금이 1조원이 있다고 해요. 이론적으로 이런 회사는 시가총액이 2조원이 돼야 맞아요. 근데 이 현금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시가총액이 1조2000억~1조3000억원밖에 안 돼요. 50%에 달하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때문에 배당은 어렵지만, M&A를 통하면 회사에 쌓인 1조원의 현금을 제 가치를 인정받고 적정한 세율(20~30%)에 회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창업자는 이 돈을 받아서 소비를 하든가 아니면 어디 좋은 곳에 투자하겠죠. 그러면 경제 순환이 일어나잖아요. 인수하는 사람은 M&A 시에 차입을 활용해서 자본이 과도하지 않도록 자본구조를 다시 설정할 수 있고요. 우리나라 경제는 자본순환이 어렵도록 하는 세금 및 제도 때문에 기업들이 매우 효율이 떨어지게 자본을 운영하고 있어요. 사실 법 제도를 좀 고치면 자연스럽게 잘 되겠죠. 하지만 이것이 불가능하니 M&A를 통해 순환을 시켜줌으로써 자본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죠. 결국 이것이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고요.”

그렇다고 이 대표가 기업 대주주만을 위한 경영 자문이나 M&A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가 얼라인파트너스를 창업할 때는 철저하게 “어떻게 하면 주주의 가치를 제고할 수 있느냐”란 원칙을 고민했다. 그가 국내 자본시장이 왜곡됐다고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도 소수주주가 가지고 있는 1주와 대주주가 가지고 있는 1주의 권리와 가치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 의사결정 구조가 왜곡될 수밖에 없고, 이것이 결국 한국 주식시장의 저평가와 자본 순환 장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사들이 어떤 결정을 할 때 늘 전체 주주의 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계속 증명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소송을 당하는 등 법적 책임을 집니다. 근데 우리나라는 반대예요. 주주 가치를 훼손할 수 있는 의사결정을 해도, 회사 자체에 직접적인 손해만 입히지 않으면 이사는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사실 이사회도 잘 열지 않아요. 시가총액 수조원짜리 회사들도 그래요. 이사회를 했다고 하지만 실은 제대로 안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냥 서면으로만 하고 도장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거수기로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는 거예요. 그렇다 보니까 기업 운영이 주주 입장에서 봤을 때 올바른 방향으로 안 되는 거죠.”

“이사회가 주주 가치 책임지지 않아”

그는 우리나라 기업의 이사회가 주주 가치를 키우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대주주는 주가가 낮게 평가돼도 어차피 팔 게 아니고, 비록 자기 지분은 10%, 20%지만 회사에서 급여를 받고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대부분 결정하고 있으니 상관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일감 몰아주기로 회사의 가치를 외부로 이전시키기도 하고, 아니면 핵심 사업부를 물적 분할해 중복 상장하기도 합니다. 결국 적은 지분으로 지배권을 더욱 공고히 하는 등의 일들이 발생합니다. 그 과정에서 주주 가치가 많이 훼손되어도 아무도 제지를 할 수 없는데, 투자의 신뢰성을 근본적으로 떨어트리기 때문에 장기적 저평가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대주주의 지분이 지나치게 과대표되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구조를 제도적으로 보완하면 세계 자본시장의 자금이 우리나라로 훨씬 수월하게 들어올 것이고, 주식시장의 저평가가 해소되면서 코스피가 크게 올라가고, 기업들이 투자를 위한 자본 조달을 훨씬 저렴하게, 더 쉽게 할 수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이러한 제도의 개선은 언제 이루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지금 환경에서 가능한 방법으로 기업가치를 올리는 데 기여하는 투자를 할 계획이다. 상장사의 경우 얼라인파트너스의 역할을 통해 기업가치가 상승하게 되면 다른 소액주주들도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실적으로 적대적으로 지분경쟁을 하거나 소수지분만을 가지고 대주주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건 지금의 우리나라에서 불가능하다고 인정하고 들어가기 때문에 저희는 접근법을 좀 달리해요. 대주주 이해관계와 기업 가치를 올리려는 저희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수 있는 상황을 찾거나 만들어서 투자 및 액션을 하는 거죠. 예를 들면 저평가된 상장 기업의 경영권을 외부에 매각할 때는 주식시장에서의 주가와 무관하게 풀 밸류를 받을 수가 있거든요. M&A를 통해서 사는 사람은 풀 밸류를 쳐주고 살 수 있어요. 근데 사실 대주주 입장에서도 경영권 매각에 대한 니즈가 많거든요. 상속세도 비싸고, 그렇다고 배당을 하거나 청산을 하기에도 세금이 너무 비싸거든요. 그러니까 제일 효율적인 게 기업을 매각하는 거예요. 이제 우리나라에도 사모펀드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회사를 사줄 사람도 많거든요.” 그는 얼라인파트너스의 강점으로 M&A 경험이 많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기업에 대해서 사모펀드들이 얼마를 내고 사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수주주로서 대주주가 지분을 좋은 조건에 파는 것을 도와주고, 같은 가격에 저희도 매각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또는 유휴 현금을 많이 보유했는데 투자처를 찾지 못해서 M&A를 통해 성장하고자 하는 기업들을 찾아 직접 소수지분을 투자한 후 회사가 보유한 현금을 활용해서 좋은 기업을 인수하거나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방법도 이 대표가 말하는 특화된 전략이다. “이와 같이 저평가된 좋은 기업을 찾아 장기적으로 투자하면서 이해관계가 일치될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에서 IB·PE 스타일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피투자기업의 저평가를 해소하고 추가적인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전략이에요.”

“지금이 저평가 우량기업 키울 적기”

역설적으로 그가 자산운용사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것은 코로나19의 영향 때문이다. “기회만 온다면 저의 IB·PE 경험을 살려 우리나라 기업의 자본 효율성을 끌어올려서 기업 가치가 올라가도록 도움을 주는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코로나19 이후 동학개미로 대변되듯 주식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커졌을 때, 투자에 대한 소양이 혁명적으로 올라간 지금이야말로 내가 꿈꾸던 저평가 우량기업을 개선해 수익을 낼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어떤 기업이든 성장을 위한 투자가 줄면 자본은 쌓이고, 자기자본이익률(ROE)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자본의 비효율적 활용과 그로 인한 저평가는 반대로 투자자 관점에서 특별한 투자 기회다. 그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우리의 몫”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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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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