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디리던역 인근에 개발 중인 대규모 구글 캠퍼스 개념도(위쪽)와 한국의 3기 신도시 부지인 인천 계양 일대. ⓒphoto COSTAR.COM·뉴시스
구글이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디리던역 인근에 개발 중인 대규모 구글 캠퍼스 개념도(위쪽)와 한국의 3기 신도시 부지인 인천 계양 일대. ⓒphoto COSTAR.COM·뉴시스

올바른 부동산 정책은 무엇인가. 부동산 개발에서 공공의 권한은 어디까지 허용되야 하는가. 대장동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대장동 사건이 터지자 정치권, 시민단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이 즉흥적이다.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은 채 대책을 제시했다.

정의당의 20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선 이정미 전 대표가 대표적이다. 그는 대장동 사건을 의식한 듯 “민간 개발사업의 인허가권을 가진 지방자치단체에서 개발이익의 50%를 환수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의 공약은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대안인가. 그의 주장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 첫째, 그의 공약은 사유재산을 보장한 대한민국 헌법을 무시하고 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부정한다. 개발 사업에 존재하는 각종 위험을 부담하지 않은 채 한 푼도 투자하지 않는 지자체가 민간사업의 개발이익 50%를 가져가도록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놀랍다. 누가 이런 상황에서 주택 공급을 하겠는가. 중국과 같은 공산주의, 전체주의 국가도 주저하는 행위를 서슴없이 시행하겠다고 선언한 그의 사상이 의심스럽다.

둘째, 그의 주장이 실현된다면 주택 시장의 수급 불균형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민간 개발사업자가 자기 돈으로 토지를 취득해 주택 개발을 하는데 인허가 권한을 쥔 공공이 개발이익의 절반을 가져가겠다면 집 지을 사업자는 없다. 수도권에 주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놓을 수 있는 공약인지 의심스럽다. 분양주택과 임대주택 시장을 통틀어 민간이 대부분의 역할을 수행하고 공공의 역할은 미미하다는 사실은 열심히 의정활동을 했다면 알았을 텐데 어떻게 이런 공약을 내놓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정의당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이 모두 보수화되고 부패했다고 비판하면서 자신들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하지만 국민의 환심을 얻으려면 먼저 국가를 경영할 수권능력이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기본적인 경제관념도 없는 정당이 어떻게 다수당이 될 수 있겠는가.

정의당 이정미 후보의 무개념

즉흥적인 대책을 내놓은 것은 정치권뿐만이 아니다. 시민단체도 마찬가지다. 대장동 사건이 터지자 경실련,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너도나도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실련은 대장동 사업에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했다면 민간사업자인 ‘화천대유’가 벌어들인 수익 중에서 공공이 2000억원 이상을 환수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신들이 줄곧 외치고 있는 분양가상한제를 박근혜 정부 시절에 시행했으면 대장동 사업에서 민간이 폭리를 취할 수 없었을 거라는 주장인 것이다. 참여연대는 “공공택지에서 공영개발 원칙을 지키는 법안들이 조속히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한 뒤 “강제수용권을 행사하는 사업에는 공공임대 확대나 분양가상한제가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의 지적은 구구절절 옳다. 그러나 참여연대는 몇 가지 중요한 사항을 간과했다. 첫째, 대장동 사업처럼 주택개발 사업에서도 헐값에 토지를 강제 수용하는 정부의 행태에 참여연대가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철도·항만과 같은 공공 인프라 조성 사업이 아닌 순수 민간사업에서 공공이 토지를 강제 매수하는 행위를 무비판적으로 용인한 것은 문제가 크다. 더욱이 기자회견을 한 인사가 변호사였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참여연대는 공공임대 확대를 주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공의 토지 강제 매수와 관련해 고압적이고 폭력적인 업무 절차와 법령을 비판했어야 했다. 필자는 2021년 3월 29일 자 주간조선(‘LH 투기꾼’ 키운 것은 ‘비밀주의’ 공공개발!)에서 정부의 토지 수용 및 보상 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부는 순수 공익사업이 아닌 민간사업을 시행할 때도 국민의 재산권 보호는 소홀히 하면서 강압적으로 토지를 매수한다. 정부가 토지를 수용하는 과정을 보면 한국은 아프리카 저개발국과 별 차이가 없다. 칼럼에서 사례로 들었던 독일과 비교할 때 이 땅의 공권력은 법조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집행할 정도로 권한이 비대하다. 선진국과 비교할 때 관료와 정치인들이 비공개 정보를 이용해 축재하기 좋은 여건인 것이다. 참여연대는 대장동 사건은 민간 주택사업에서도 토지를 강제 수용하는 전근대적인 국가주의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밝혔어야 했다. 제대로 된 시민단체라면 향후 민간사업에서는 토지 강제수용을 중단하라고 요구했어야 했다.

두 번째, 참여연대는 공공택지에서 공영개발 원칙을 지키는 법안을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의 주장은 옳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빠뜨렸다. 바로 인구가 감소하는 현실과 전 세계 도시개발 트렌드가 ‘신도시 개발’에서 ‘도심으로의 회귀’가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출생인구 부족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노령화하는 우리나라에서 LH와 지자체 산하 도시개발공사가 공공택지를 조성할 일이 앞으로 얼마나 있을까. 앞으로는 기성 시가지의 재개발, 재건축이 주류가 될 것이므로 자연녹지를 훼손하며 신규 공공택지를 조성하는 일은 드물 것이다. 지방소멸 단계에 들어간 일본이 좋은 사례다. 박근혜 정부가 2014년 LH 등 공공 주도의 택지개발사업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인구 감소와 선진국의 인구 도심 회귀 현상을 목도한 뒤 내린 결정인 것이다.

도심 주택공급을 반대하고 신도시 개발을 지지하던 도시계획학자들은 작년 코로나19가 창궐하자 사뭇 우쭐해했다. 코로나19 감염을 피해 상당수의 미국인들이 도심에서 도시 외곽으로 이사한다는 뉴스를 보고 득의양양했다. 필자가 작년 여름 참가했던 한 세미나에서도 토론자로 참석했던 국토교통부 고위관료와 서울시립대 교수는 “코로나19 때문에 도심 거주 선호와 도심 복귀 현상은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굳건한 신념인 ‘도심 공급 반대, 신도시 개발 찬성’이 옳았다는 것을 미국인들의 대도시 도심 탈출이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선진국의 시장 동향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필자는 이들의 근거 없는 주장을 보다 못해 방청석에서 일어나 반론을 펼쳤다. “도심 탈출은 일시적 현상이며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도심에 복귀할 것”이라고. 필자는 이들의 주장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으면 방청객들은 미국인들의 일시적 ‘도심 회피’를 영구적 현상으로 오해하고 ‘문재인 정부의 신도시 개발 정책이 옳았다’고 판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는 도심 거주자들의 이탈을 재촉할 것이라는 그들의 판단은 지금 유효할까? 미국과 싱가포르의 최신 도시개발 동향을 통해 판단해 보자.

참여연대의 우물 안 개구리 인식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만들어진 미국 내 신규 일자리의 대부분은 5개 해안도시(보스턴·샌프란시스코·새너제이·시애틀·샌디에이고)에서 출현했다. 일자리를 만든 주체는 아마존, 구글과 같은 IT 대기업들이다. 이런 도시들은 디지털 경제가 발전하는 데 필수적인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브루킹스는 지적했다. 공통점이란 탁월한 인재들, 연구 기능이 우수한 대학, 연구 결과를 사업화하는 수많은 스타트업 업체 그리고 이들의 역동적인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장소이다. 지식경제는 인적자본이든 물적자본이든 높은 밀도(density)를 요구한다는 것을 미국의 5개 도시가 증명한 셈이다.

일자리는 5개 도시에서도 특정 지역에 집중되었다. 브루킹스는 2019년도 보고서에서 지식 기반 일자리는 대도시권의 중심부에 집약됐고 일부는 고밀도로 개발된 대도시권 외곽에 몰려 있다고 밝혔다. 일자리가 특정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자 이들 하이테크 종사자들을 고객으로 하는 소매 및 관련 서비스 일자리가 인근 지역으로 몰리는 현상이 나타났으며, 이 트렌드는 코로나19 시대에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이 브루킹스의 분석이다. 한국의 관료, 학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코로나19는 산·학·연의 집중화·고밀도화라는 시대의 흐름을 막지 못한 것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한 뒤 본격화된 원격근무는 부동산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브루킹스는 원격근무를 색다르게 정의한다. ‘원격근무는 직장인들이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굴뚝경제 시대 오피스의 형식과 여기저기 산재한 업무시설과의 결별을 의미한다’라고 규정한다. 즉 원격근무는 디지털 경제 시대의 업무 스타일을 반영하지 못하는 구경제 시대 업무 스타일의 종식을 의미한다는 뜻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코로나19가 출현하기 전에도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19년 말 기준 LA, 마이애미, 시카고 등에서 업무용 빌딩의 공실률은 두 자릿수 이상이었는데 코로나19가 오피스 시장의 재편을 촉진했다. 잠재된 변화가 빨라진 것이다.

코로나19는 오피스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코로나19로 상당수 기업들은 오피스 면적을 대폭 축소했지만 구글, 아마존 등 일부 대기업은 오히려 확장 중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들이 개발하는 오피스타운의 세부 구성과 형식이다. 이 기업들은 직원들이 모든 시설을 도보로 접근할 수 있도록 집약적으로 개발하고 주거시설을 포함시켜 동일 건물에서 일하고 고객을 만나며 거주할 수 있도록 했다. 한마디로 24시간 머물 수 있는 ‘원스톱’ 오피스타운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구글이 새너제이에서 개발하는 것이 좋은 사례다. 구글은 지금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도심 디리던(Diridon)역 인근에 대규모 구글 캠퍼스를 조성하는 중이다. 순수 오피스 면적이 730만㎡나 될 정도로 대규모 개발이다. 구글이 4년 전 시작한 이 사업은 업무용 빌딩 개발사업이 아니다. 캠퍼스 내부에 쇼핑몰, 스트리트몰과 일반인들이 사용 가능한 공원, 산책로와 대형 공개공지(open space)를 갖췄다. 2억달러를 추가 투입해 지역 원주민들을 위한 1000가구 규모의 주택, 홈리스 보호시설과 소상공인을 위한 지원시설 등을 지을 계획이다. 공공이 조성해야 하는 시설을 민간이 공급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미국 전체 고소득자의 62%는 원격근무를 하는 중이다. 반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코로나19 감염을 무릅쓰고 출퇴근을 계속하고 있다. 문제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자가용 소유자가 매우 적어 전철, 철도를 주로 이용하는데 코로나19로 미국의 대중교통수단이 붕괴되다시피 하는 바람에 도심 청소, 항만 하역 등 공공 서비스가 제 기능을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저소득 사회 필수직종 종사자들을 위한 주거시설은 일터가 있는 도심에, 가급적이면 전철역 등 대중교통시설 근처에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불거졌다. 구글이 자사 오피스타운을 지으면서 원주민들을 위한 주거 및 각종 지원시설을 건립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저임금 필수직종 인력이 거주할 주거시설을 도심에 공급하자는 여론은 미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싱가포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싱가포르의 최근 도시계획 동향을 소개한다.

구글의 새너제이 복합개발

“과거 성공했던 중심업무지역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싱가포르의 도시계획을 총괄하는 도시재개발국(Urban Redevelopment Authority) 대변인의 주장이다. 그는 “중심업무지구(Central Business District·CBD)에 대한 오늘날의 정의는 오직 업무 기능에만 충실했던 과거의 CBD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도시계획 공무원들의 도시개발에 대한 관점이 명확하고 단호함을 알 수 있다. 싱가포르 정부의 혁신과 열정은 어디서 유래할까?

싱가포르 정부는 1990년경 경제 정책을 급선회했다. 종전의 선진국 물류 및 제조업체 유치에서 정보통신과 지식기반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 거점이 되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한 것이다. 당시 국정 책임자였던 고 리콴유 총리는 선진국의 고부가가치 산업을 유치하려면 해외 젊은 인재를 유치하는 것이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해외 인재를 유치하려고 전액 장학금을 내걸며 싱가포르 유학을 권장했고 졸업 후 싱가포르에서 일정 기간 근무한 외국인들에게는 영구 거주권을 제공했다. 이 같은 귀화 정책은 싱가포르 경제 발전에 긴요한 첨단 분야에 종사하는 인재에 국한했다. 싱가포르 도시계획가들은 이 무렵부터 도심을 주거·업무·오락 기능을 모두 갖춘 매력적인 장소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일본의 도시계획가들이 국가경제 발전의 수단으로서 도시계획을 접근했던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싱가포르 도심 개발의 대표적 사례인 아시아스퀘어 빌딩. ⓒphoto a-architect.com
싱가포르 도심 개발의 대표적 사례인 아시아스퀘어 빌딩. ⓒphoto a-architect.com

싱가포르의 포스트 코로나 도시계획

싱가포르 정부는 2019년 건물주들이 낡은 오피스를 허물고 호텔, 주거 및 상업시설이 들어간 복합용도 건물을 짓도록 유도했다. 다만 건축계획을 수립할 때 복합개발하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공개공지를 만들어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금융가에 위치한 ‘아시아스퀘어(Cube@Asia Square)’ 빌딩이다.

코로나19가 발생했음에도 도심을 복합개발하려는 도시계획가들의 의지는 더욱 강해졌다. 코로나19로 도심 주택 수요가 오히려 증가했기 때문이다. 인드라니 라자(Indranee Rajah) 싱가포르 국토개발부 제2장관은 지난 6월 싱가포르 스트레이츠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도심 복합개발의 필요성을 언급했는데 그 내용이 인상적이다. 그는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에 대처하기 위해 싱가포르 도심을 봉쇄했을 때 중심업무지구를 에워싼 낯선 적막감에 도심 복합개발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정부의 봉쇄 조치로 오피스 빌딩숲이 유령도시처럼 변하자 상주인구가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비싼 땅값의 도심에 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 또한 설득력이 있다. 라자 장관은 “싱가포르 정부는 금융 중심가에 공공임대주택을 건립하기를 원한다”라고 말한 뒤 “모두가 선호하는 지역에 부자들만이 사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말했다. 다소 정치적인 발언으로 비칠 수도 있다. 아마도 그의 취지는 미국에서 그러하듯이 교통이 편리하고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도심에 도시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저소득층 사회 필수직종 인력들이 거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금까지 선진국이 도심을 주거, 업무, 상업, 위락시설을 아우른 복합개발을 하는 경위를 살펴보았다. 유럽 역시 ‘도심 회귀’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유럽은 기후변화 대응에 보다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독일 베를린에서는 자가용의 도심 진입을 연 12회 이하로 제한하자는 입법운동을 펼치고 있는데 벌써 5만명의 지지자를 확보했다. 주최 측은 12만명의 지지를 추가로 받아 정부에 입법 제안을 하려고 한다. 자동차 시대 이전에 누렸던 도심의 쾌적한 삶을 회복하려는 운동으로 녹음이 우거진 도심, 자전거와 걷기 위주의 생활을 다시 꿈꾸고 있는 것이다.

키워드

#부동산
김원중 부동산학 박사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