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란과 ‘P5+1’의 핵 협상이 타결된 후 미국의 케리 국무장관(가운데)과 이란의 자리프 외무장관(왼쪽)이 악수하고 있다. ⓒphoto AP
지난해 11월 2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란과 ‘P5+1’의 핵 협상이 타결된 후 미국의 케리 국무장관(가운데)과 이란의 자리프 외무장관(왼쪽)이 악수하고 있다. ⓒphoto AP

지난해 핵 비확산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사건은 2월 12일 감행된 북한의 제3차 핵실험과, 11월 24일 타결된 소위 ‘P5+1’과 이란 간의 제네바 합의다.(P5는 UN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고 +1은 독일이다.)

북한과 이란은 그동안 핵 비확산 커뮤니티에 있어서는 공공의 적이었다.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추진, 각기 동북아와 중동은 물론 세계 평화에 위협적 존재로 각인되었다. 두 국가는 UN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 국가라는 점에서 한때는 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인식되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은 물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분야에 있어서 양국 간의 협력 가능성에 대한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되었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 의해 악의 축으로까지 명명된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24일 제네바 합의의 타결로 북한과 이란은 국제사회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더구나 북한은 이란보다 상대적으로 더 다루기 힘들다는 인식 속에서 국제사회로부터의 냉대와 고립이 더욱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행동 여하에 따라 동북아 안보 정세가 요동을 칠 가능성도 높아졌다.

11·24 제네바 합의의 정식 명칭은 ‘공동행동계획(Joint Plan of Action)’이다. 합의 뒤 6주간의 협상을 통해 이행안이 합의돼 2014년 1월 12일에는 1월 20일부터 초기 단계의 이행이 구체적으로 시작될 계획이라고 발표된 바 있다.

11·24 합의는 통상 이란과 ‘P5+1’ 간의 합의라고 얘기되나 공동행동계획 합의문에는 ‘P5+1’이 아니라 ‘E3+3’으로 표현되어 있다. E3는 영국·프랑스·독일이고 +3은 미국·중국·러시아다. E3 국가가 협상을 주도해 왔기 때문이다. 공동행동계획은 △목적과 행동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전문(Preamble) △발효 후 향후 6개월간 당사자가 수행해야 할 조치를 담은 ‘초기 단계의 요소’ △포괄적 해결에서 담아야 할 소위 ‘최종 단계의 요소’ 등 3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문은 협상의 목적이 ‘이란 핵 프로그램이 평화적 성격임을 보장하기 위한 포괄적 해결책의 도출’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초기 단계와 최종 단계에 필요한 요소들을 설정하고 이 사이에도 추가적인 단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더구나 E3/EU+3과 이란이 공동위원회(Joint Commission)를 만들어 단기 조치의 이행을 모니터링하고, 비록 합의문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이란 핵 프로그램의 각종 동결 조치에 대한 검증 책임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맡을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두 번째 구성 부분인 ‘초기 단계의 요소’는 향후 6개월간 이란이 수행해야 할 조치와 E3/EU+3이 취할 조치를 담고 있다. 이러한 조치들이 이 합의문의 가장 중요한 실질적 내용으로 최종적인 포괄적 해결에 도달하기 전, 양 당사자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취해야 할 조치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결국 이를 통해 양 당사자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양보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다만 합의문은 양 당사자가 취해야 할 조치를 ‘자발적 조치(voluntary measures)’라고 명명하여 이 합의가 법적 구속력이 있는 합의가 아닌 정치적 합의에 불과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결국 현재 지속 중인 UN의 이란에 대한 제제는 물론 미국의 제재나 EU 제재의 전면적 중단으로 오인해서는 곤란하다.

이란은 우선 향후 6개월간 현재 보유하고 있는 20% 농축 우라늄 비축분의 절반을 5% 이하 농축 우라늄으로 전환하고 나머지 절반은 연료용 산화물로 변환해야 한다.(일반적으로 3.5% 이하 농축 우라늄이 원자력발전소의 연료로 사용되고 있고, 20% 농축 우라늄은 의료용으로, 90% 농축 우라늄은 핵무기에 사용된다.) 또한 비축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연구 개발을 제외하고 5% 이상의 농축은 전면 중단해야 하며, 추가 농축시설의 건설도 중단해야 하고, 교체를 위한 목적 외의 원심분리기 생산도 중단해야 한다. 또한 포르도와 나탄즈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의 상시적 접근은 물론 일일 접근(daily access)까지 명시하고 있고, 기존의 사찰 범위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원심분리기 조립작업장, 원심분리기 로터(rotor) 생산작업장 및 저장시설과 우라늄 광산도 사찰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러한 이란의 조치에 대한 대가적 성격으로 E3/EU+3은 다음과 같은 자발적 조치를 약속했다. 우선 이란산 원유 판매와 관련한 운송 및 보험에 관한 미국과 EU 제재의 정지를 비롯하여 석유화학제품의 수출 및 귀금속에 대한 미국과 EU의 제재, 자동차 분야에 대한 미국 제재의 중단을 약속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UN의 제재와 EU 제재가 없을 것임을 약속하고 있는데, 미국의 경우에는 표현에 있어서 UN 제재나 EU 제재와는 달리 신규 제재 부과를 자제(refrain)할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최근 ‘핵무기 없는 이란법’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 법안을 둘러싼 미 백악관과 상원 간의 대립에서 볼 수 있듯이 핵 비확산과 관련하여 미국은 의회와 행정부라는 이원적 의사결정 절차 때문에 대외협상을 주관하는 행정부만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없는 구조라는 점이 그 원인으로 존재한다. 결국 E3+3이 취할 조치는 제재의 정지와 신규 제재를 추가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다만 6개월을 시한으로, 특정 분야의 제재 정지를 내용으로 하며, 이란의 자발적 조치를 조건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조치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이며, 가역적인 제재 완화 조치인 셈이다.

이란 수도 테헤란의 메라바드공항에서 지난해 11월 24일 시민들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핵협상을 타결하고 귀국하는 대표단을 환영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사진을 들고 협상 타결을 축하했다. ⓒphoto AP
이란 수도 테헤란의 메라바드공항에서 지난해 11월 24일 시민들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핵협상을 타결하고 귀국하는 대표단을 환영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사진을 들고 협상 타결을 축하했다. ⓒphoto AP

이러한 양 당사자 간의 조치를 통해 양 당사자가 취할 수 있는 이득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이란의 경우 경제적 제재의 중단으로 6개월간 약 60억~70억달러 상당의 경제적 혜택을 얻게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러한 이익이 가능한 것은 이란의 경우 경제구조가 대외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반면 E3+3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최소한 6개월간 이란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중단 내지 지연시킬 수 있다는 것이며 그만큼 핵 프로그램의 진척 없이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한 시간을 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 타결이 과연 이란에 시간을 벌게 할 것인지 국제사회가 시간을 벌게 될 것인지는, 합의문에 명시된 바와 같이 공동행동계획 체결 후 1년 이내에 타결하기로 약속된 포괄적 해결책의 합의 여하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포괄적 해결책에 포함되어야 할 요소와 관련하여 공동행동계획에 명시된 것 중 주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상호 간 합의된 척도에 따른 상호 정의된 농축 프로그램’이 있다. 이란은 이 문구를 근거로 최종 단계에서 우라늄 농축 권리를 보장받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농축과 재처리의 금지를 핵 비확산 정책의 기조로 인식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과 부합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분명히 의미 있고 높이 평가받아야 할 타결이지만 포괄적 해결에 이르기 위해서는 E3+3 내부는 물론 외부적으로 넘어야 할 장애물이 너무나도 많아 보인다.

내부적으로는 이란 핵위기를 바라보는 E3+3 역시 동상이몽 관계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경우 케리 국무장관은 “공동행동계획은 신뢰(trust)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검증(verification)에 기초하고 있다”고 하여 이번 타결이 이란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드러낸 바 있다. 더구나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불허하겠다는 미국의 핵 비확산 정책의 기조와 추가 제재 법안 등에 있어서 행정부와 의회 간의 마찰도 예정되어 있다. 중국은 이란 원유의 최대 수입국으로 핵 비확산의 목표가 최대 관심사일 수 없다. E3/EU는 핵연료주기와 관련해 미국보다는 입장이 보다 유연하다는 점에서 향후 이란의 농축 프로그램과 관련해 미국과 다른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 더구나 러시아는 미사일 기술의 이전과 관련해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한 바 있는 등 표면적으로는 비확산을 외쳤지만 이란의 입장을 많이 대변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들의 동상이몽 관계가 어떻게 이란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 포기라는 궁극적 목적을 이루어내기 위해 핵 비확산의 원칙과 가치로 어떻게 수렴될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중동의 안보 정세에 대한 도전이다. 이미 이스라엘은 이번 타결을 “역사적 실수”라 비판하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도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란은 IAEA 안전조치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추가의정서에 비준을 하지는 않았지만 서명을 한 바 있으며 1970년 비준한 NPT(핵확산금지조약) 회원국이다. 이란은 이번 제네바 타결로 NPT 탈퇴를 선언하고 IAEA마저 탈퇴해, 지난해 2월 12일 제3차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게 되었다. 과연 이란처럼 북한과도 신뢰 없이 검증에 기초한 합의 타결이 가능할까. 검증을 위해서는 북한 역시 NPT 복귀는 물론 추가의정서 비준 혹은 이에 대한 명확한 약속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북한 2인자 장성택 처형 이후 이래저래 동북아에는 북한의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신창훈 아산핵정책기술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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