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대한민국 예능이 MBC ‘무한도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단언했다. 옳은 말이다. 대본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원조이자 몸 개그의 부활이라 할 이 프로그램 이후 비로소 다양한 리얼 버라이어티들이 줄을 이어 등장했으니까. 솔직히 대한민국 평균 이하 남자들의 도전기 하나가 시대의 아이콘으로 문화를 넘어 경제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될 줄 그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그러나 예상과 달리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출연자들이 하나가 되는 과정에서 생각지 못했던 힘이 생겼고 그 힘이 ‘무한도전’을 이끄는 무기가 되었다.

얼마 전 1990년대 인기가수들의 축제 한마당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로 실력을 또 한 번 입증한 ‘무한도전’. 주말 황금 시간대라 해도 두 자릿수를 넘기기 어려운 요즈음 무려 30%를 넘나드는 시청률과 100억원대 음원 수입을 기록했다고 하니 두말하면 무엇하리오. 특히 주목할 대목은 ‘무한도전’에서 비롯된 열풍이 타 방송사들이며 언론사들로 번져가며 문화의 흐름을 바꿔놓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해당 가수들은 물론이고 동시대에 활동했던 여러 가수, 그룹이며 음반들도 전 세대를 아우르는 관심을 받게 되었으니까. 그렇다면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로 신년벽두를 강타한 ‘무한도전’의 10년 장수 비결은 과연 뭘까?

첫 번째로 참신한 기획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가수다’와 ‘아빠! 어디가?’와 같은 MBC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 속속 수출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데에 이어 최근 들어 ‘진짜 사나이’ 또한 중국판으로 제작되어 방송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무한도전’만큼은 어느 누구도 그리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나. 이유인즉 ‘무한도전’은 포맷이 따로 없는, 매회 새로운 기획을 선보이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신선함에 비주류를 향한 따뜻한 시선을 더했으니 사회문제에 민감한 젊은층의 공감을 사는 건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 포맷에 얽매이지 않고 뉴스, 드라마, 추격전에 상황극까지, 비록 사소한 소재일 때도 늘 열정과 진심을 다해온 ‘무한도전’. 그래서 농담 삼아 던진 말 한 마디에 멀리 알래스카(40회)로 떠나기도 했고 철거민의 아픔이 느껴지는 ‘여드름 브레이크’(158회), 방송계의 시청률 경쟁을 통렬히 비꼰 ‘TV 전쟁’(275회), 독도 문제를 수면 위로 끄집어 올린 ‘스피드 특집’(267회) 등 사회적 이슈로 우리를 반성하게 만들었으며 ‘대체에너지 특집’(79, 114회)과 ‘나비효과 특집’(228회)으로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시키는 데에도 최선을 다해왔다. 그런가 하면 비인기 종목인 댄스스포츠, 봅슬레이, 레슬링, 조정경기에 도전함으로써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내기도 했는데 그들의 땀과 눈물이 결실을 맺었던 그 드라마 같은 장면들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웃음 뒤에 숨겨진 메시지를 통해 또 다른 감동을 전하는 것, 바로 그것이 ‘무한도전’의 정신이 아닐는지.

두 번째, ‘무한도전’이 2005년 ‘무모한 도전’이라는 코너로 출발한 이래 10년째 놓치지 않은 것이 있다. 출연자와 포맷은 사정에 의해 시시때때 달라졌으나 제작진과 멤버들이 힘을 모아 지켜온 ‘진정성’은 변하지 않았다. 지난해 음주운전(길, 노홍철)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사건으로 일곱 명의 멤버가 다섯으로 줄어드는 등 위기론이 일기도 했지만 사실 지난 10년 사이 ‘무한도전’에 위기가 닥친 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무한도전’만의 방식으로 슬기롭게 잘 대처해왔고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가 있었다. 특히 작년 5월 한 달 동안 진행된 ‘무한도전 선택 2014’에는 무려 45만여명의 시청자가 참여하기도 했으니까. 나 또한 공약을 꼼꼼히 살펴본 후 투표에 참여했는데 현장에서 느껴지는 예능을 뛰어넘는 관심과 열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중의 ‘무한도전’을 향한 이와 같은 신뢰와 성원은 다름 아닌 위기의 순간에 변명보다는 반성이 우선인 진정성 때문일 게다.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자세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무한도전’은 그들이 받은 사랑을 다시 나누는 데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 ‘무한도전’을 기부의 아이콘으로 만든 일등공신은 바로 달력과 가요제다. 2008년부터 매년 제작되고 있는 달력, 그리고 2007년부터 2년에 한 번씩 치러지는 가요제 음원 수입은 모두 불우한 이웃을 위해 쓰이고 있으니까.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무한도전’의 나눔정신은 방송이 이뤄낼 수 있는 긍정의 힘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세 번째 비결은 ‘무한도전’의 열혈팬들이다. ‘무도 매니아’라고 일컫는 ‘무한도전’ 팬들의 충성도는 매우 높은데 팬들의 호응은 그저 시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방법으로 확대 재생산하기로 유명하다. 각종 패러디와 창작물 등 프로그램을 향한 애정의 산물들이 매회 장안의 화제가 된 지도 이미 오래, 무엇보다 ‘무한도전’이 이처럼 젊은층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소통’에 주목했기 때문이 아니겠나. 한마디로 ‘무한도전’은 제작진과 출연진, 그리고 팬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방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얘기다. 요즘 시청자들은 보여주는 걸 보는 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피드백으로 반영되었을 때 방송을 더 즐기는 능동적인 시청자들이라는 걸 일찌감치 간파한, 그리하여 회의실을 벗어나 여기저기 발품을 팔며 다양한 화두를 담기 위해 애써온 제작진에 박수를 보낸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 상태에서 출발했던 ‘무한도전’은 이제 명실공히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그동안 멤버들이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또 아이를 낳고, 순간순간을 시청자와 함께 공유했기에 이젠 시청자와 멤버들 사이에도 끈끈한 정이 생겼다. 연예인이지만 남 같지 않다고 할까?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논란거리도 많았지만 꾸준한 자정 노력으로 시청자들, 특히 젊은층의 무한 신뢰를 얻은 ‘무한도전’.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그간 멤버들이 느꼈을 중압감에 마음이 좀 무겁다. 응원은 하되 그들에게 너무 큰 기대와 짐은 지우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격변하는 이 시대의 산물이라고 할 ‘무한도전’이 그만의 색깔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따뜻한 칭찬과 격려의 시선을 보내주시기를, 또한 소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무한도전’, 배려가 무엇인지를 아는 ‘무한도전’이 오래오래 우리와 함께 해주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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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희 방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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