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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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조사 전문기업 한국갤럽은 매월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을 발표한다. 꽃, 음식, 애창곡, 취미문화, 운동경기, TV드라마 등 다양한 항목에서 한국인의 취향과 변화추이를 알아보는 조사다. 지난 2월 한국갤럽 조사에서 애창곡 1위는 오승근이 부른 ‘내 나이가 어때서’였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의 나이가 있나요/ 마음은 하나요/ 느낌도 하나요/ 그대만이 정말 내 사랑인데/ 눈물이 나네요/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어느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쳐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지금 대한민국은 ‘내 나이가 어때서’ 열풍이다. 어느 보험회사는 TV 광고에 이 노래를 가져다 썼다. 80대 노인부터 10대 소년까지 모두 “내 나이가 어때서”를 흥얼거린다. 보통 한국인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려면 송해가 진행하는 ‘전국노래자랑’에 출연자들이 부르는 가요를 보면 된다. ‘전국노래자랑’의 예심에서 출연자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가 바로 ‘내 나이가 어때서’다.

지난 4월 14일 서울 여의도의 ‘카페 더이은’에서 오승근씨를 만나 이 노래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의 장년층은 오승근씨를 1970년대를 풍미한 남성 듀오 ‘금과은’의 멤버이면서 고인이 된 배우 김자옥의 남편으로 기억한다. 10~20대는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부른 아저씨 가수로 알고 있다.

오씨는 1951년생이니 65세다. 곧 지하철을 공짜로 탈 나이지만 화면으로 보나 눈앞에서 보나 전혀 60대 중반으로 보이지 않는다. 염색은 했지만 머리숱도 풍성했고 피부도 윤기가 흘렀다. 매력적인 50대 얼굴이다. 먼저 ‘내 나이가 어때서’의 인기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지 가수의 생각이 궁금했다.

“국민의 80% 정도는 이 노래를 알고 흥얼거린다고 봅니다. 어린 아이들이 무슨 뜻을 알아서 이 노래를 부르겠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이 집안에서 이 노래를 부르니까 따라하는 것이겠지요. 무엇보다 가사가 외우기 쉽잖아요. 또 이 노래를 부르면 마음이 즐거워지잖아요.”

‘내 나이가 어때서’는 오승근씨의 매니저인 작사가 박무부(예명 박웅·73)씨가 노랫말을 썼다. 박씨는 37년째 음반 제작을 해왔으며 오씨의 음반도 제작했다. 어느날 등산을 하다가 앞서 가던 부녀자들이 “내 나이가 어때서~” 하는 말을 듣고 노랫말을 착상했다. 여기에 정기수씨가 곡을 썼다.

‘내 나이가 어때서’는 2013년 여름에 발표됐다. 2014년 3월 이 노래는 이미 방송국 가요차트에서 상위에 올랐다. 크게 히트할 조짐이 보였다. 그런데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가 일어나면서 방송국에서 일제히 이 노래가 사라졌다. 오씨의 말이다.

“운이 나빴죠. 방송 출연할 기회가 없어졌어요. 그때 나는 이 노래가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여름 지나고 가을이 되니까 이 노래가 다시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불운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가을쯤부터 암투병 중이던 아내의 상태가 나빠지면서 너무 힘들어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무슨 방송을 하겠습니까. 그러면서 또 시간이 흘러간 거죠.”

정작 노래를 부른 가수는 방송에 나오지 않았지만 대중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내 나이가 어때서’를 소비했다. 왜 그랬을까. 한국 사회는 유독 나이를 따지는 문화가 뿌리 깊다. 이 노래는 바로 걸핏 하면 나이를 따지고 나이로 차별하는 문화에 대해 멋지게 조소(嘲笑)를 날린다.

“이게 20~30대를 가리키는 건지 50~60대를 가리키는 건지 알 수가 없잖아요. 전부 자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며 부르는 거죠.(웃음)”

젊은층도 이 노래를 부르지만 아무래도 주소비층은 중장년층과 노년층이다. 40대 이후의 인구비가 30대 이하의 그것보다 커진 현실에서 장년층 이상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나이’ 문제를 건드린 게 주효했다. 오씨의 설명이다.

“지금 60대가 60대로 보입니까? 예전보다 최소 10년은 젊어 보이잖아요. 아파트 경비원은 70세가 되면 무조건 정년퇴직한다고 해요. 한번은 우리 아파트 경비원이 제가 무거운 걸 드는 걸 도와준 적이 있는데 그분이 저보다 힘이 더 세더라고요. 이제 60~70은 고령이 아니에요. 60~70은 장년으로 대접해야 하는 겁니다. 80~90이 되어야만 고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체력과 건강이 따라주는데 나이 때문에 일을 못하게 되는 사람들은 ‘내 나이가 어때서 일을 못하게 하느냐’고 말합니다.”

남성 듀오 ‘금과은’은 1970년대 8년을 지속하면서 ‘처녀 뱃사공’ ‘빗속을 둘이서’를 비롯한 여러 히트곡을 냈다.

1980년대는 조용필의 시대였다. 조용필 독점시대가 10년간 이어지면서 남자 가수들 대부분은 사실상 설 자리를 잃었다. 오승근 역시 1984년 가요계를 떠나 부친이 하던 건축인테리어 사업에 뛰어들었다.

오씨가 노래를 다시 부른 것은 2001년. 17년 만에 발표한 신곡 ‘있을 때 잘해’도 반응이 좋았다. 그리고 2013년에 발표한 ‘내 나이가 어때서’가 지금 공전의 히트를 기록 중이다. 그는 데뷔 47년 만에 5월 8일 어버이날에 단독콘서트를 개최한다. 사회는 MC 허참이 맡는다.

“아무래도 50대 이상 장년층이 주로 콘서트에 올 테니까 내 히트곡뿐만 아니라 올드팝도 부를 생각입니다. ‘언체인 마이 하트(Unchain my heart)’ ‘모어 덴 아이 캔 세이(More than I can say)’ 등이 올드팝 레퍼토리지요.”

20대 시절 전성기를 누리고 오랜 공백 기간을 거친 후 60대 들어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오승근. 그는 “이런 축복이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집사람이 그렇게 가면서 마지막 선물로 준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집사람이 꼭 히트할 거라고 말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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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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