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의 ‘월드 미러’.(위) photo 이민형<br></div>영화 ‘어벤져스2’의 한 장면.(아래)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의 ‘월드 미러’.(위) photo 이민형
영화 ‘어벤져스2’의 한 장면.(아래)

지난 4월 23일 개봉한 이래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 제작사는 개봉 일주일 만에 전 세계에서 제작비 2억5000만달러(약 2680억원)를 회수했다. 이 영화는 지난해 4월 국내에서 촬영할 때부터 1년 동안 영화팬의 관심사였다. 당시 제작진은 서울 상암동, 한강공원, 마포대교, 강남대로 등 서울 시내 곳곳을 돌며 영화 촬영을 하면서 화제를 뿌렸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가 한국을 영화의 주요 로케이션 장소로 삼은 것은 이례적이었다.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은 어벤져스팀이 평화를 위해서는 인류가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 울트론과 벌이는 전쟁을 그렸다. 지난 4월 26일 극장에 가보니 ‘어벤져스2’를 보는 연령층이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40~50대 이상은 마블 시리즈를 모르거나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를 접하지 않은 채 영화 속의 서울을 눈으로 확인하러 온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장년층 관객은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치 못한 장면에 동공이 확장되는 경험을 한다. 한국 여배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177㎝ 늘씬한 키에 신선한 마스크를 가진 한국 배우가 한국말을 던진다. 배우 수현이다. 간간이 드라마나 한국 영화에 등장한 적은 있지만 조연이나 주연을 맡지 못해 대중의 기억에 특별하게 각인되지 않았다. 수현의 극중 배역은 유전공학박사인 ‘닥터 헬렌 조’. 수현이 연기하는 ‘닥터 헬렌 조’는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와 긴밀한 관계로 설정된다. ‘닥터 헬렌 조’는 주요 등장인물들과 유창한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연구실에서 블랙 위도우가 지켜보는 가운데 닥터 헬렌 조가 첨단 기기를 작동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어벤져스2’의 조스 웨던 감독은 영화 촬영에 앞서 ‘닥터 헬렌 조’ 역을 공개 오디션을 통해 뽑았다. 수현이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닥터 헬렌 조’로 캐스팅되었다. 이화여대 국제학부를 나온 수현은 시원스럽고 지적인 외모로 미국 드라마에도 출연하고 있다.

‘어벤져스2’에는 뉴욕, 서울, 남아프리카공화국, 방글라데시 그리고 동유럽 가상국 소코비아가 나온다. 뉴욕은 맨해튼의 마천루가 등장한다. 크라이슬러빌딩 앞에 ‘A’라고 표기된 아이언맨의 기지 빌딩이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들어져 실제로 크라이슬러빌딩 앞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언맨 기지 꼭대기층으로 퀸젯이 착륙한다.

영화에서 서울이 어떤 모습으로 묘사되는지를 보자. ‘어벤져스2’에서 한국은 IT 강국과 유전공학 강국으로 그려진다. 영화 스크린에서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곳은 한강공원 반포지구의 세빛섬이다. 영화에서 세빛섬은 두 차례 등장한다. 첫 번째 장면은 세빛섬과 그 주변인 한강공원과 반포대교가 원경 그림에 한꺼번에 잡힌다. 화면에는 ‘대한민국 서울, 유전공학연구소’라는 자막이 나온다. 극중에서 유전공학연구소는 인류를 멸살시키려는 울트론이 ‘비전’을 만들어내는 장소다. 세빛섬이 나오는 두 번째 장면은 ‘캡틴 아메리카’가 등에 방패를 매단 채 유전공학연구소를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닥터 헬렌 조가 적의 공격을 받고 쓰러져 있던 장면도 바로 유전공학연구소 안이다.

영화에서 ‘캡틴 아메리카’가 유전공학연구소를 내려다보고 있다.(위)  photo 월트디즈니코리아 <br></div>한강공원 반포지구의 세빛섬.(아래) 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영화에서 ‘캡틴 아메리카’가 유전공학연구소를 내려다보고 있다.(위) photo 월트디즈니코리아
한강공원 반포지구의 세빛섬.(아래) 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두 번째 눈에 두드러진 곳은 어벤져스가 탑승한 전투기 퀸젯이 등장하는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다. 어벤져스팀은 진화를 위해 ‘닥터 헬렌 조’를 조종하는 ‘울트론’을 막기 위해 퀸젯을 타고 한국에 나타난다. 디지털미디어시티의 MBC 사옥 앞의 광장에는 특별한 조형물이 있다. 두 남자가 직사각형 틀을 가운데 두고 손가락 끝을 맞대려는 ‘월드 미러(World Mirror·일명 스퀘어 M 커뮤니케이션)’이다. ‘월드 미러’는 ‘그리팅맨’ 조각으로 유명한 유영호씨의 작품이다. 남미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에 유씨가 첫 ‘그리팅맨’을 설치한 게 2012년이다. 상암동으로 옮겨온 MBC 사옥은 ‘ㄷ’ 자를 세워놓은 형상이다. 퀸젯은 거대한 건물 가운데의 뻥 뚫린 공간으로 통과해 비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다른 장면의 상암동은 누리꿈스퀘어 옆 월드컵북로이다. ‘블랙 위도우’가 마포대교 위에서 맨몸 액션을 벌이는 ‘캡틴 아메리카’를 지원하기 위해 ‘호크 아이’가 모는 퀸젯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월드컵북로 한복판으로 뛰어내린다. 순간 ‘블랙 위도우’ 오른편으로 낯익은 한글 교통표지판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상암대로에서의 질주 장면은 몇 초 동안 계속된다. 이 장면에는 누리꿈스퀘어빌딩과 함께 LG CNS와 LG 유플러스 빌딩이 나오지만 스크린에서는 LG라는 CI가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이곳이 상암동 DMC인지 강남대로인지 헷갈릴 수 있다.

제작진은 여의도63빌딩, 마포대교, 청담대교, 논현동 뒷골목, 문래동 철강거리, 탄천 주차장 등을 등장시켰다. 마포대교 위에서 벌어지는 쫓고 쫓기는 장면은 한국인의 눈으로 봐도 특이점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사실 어느 대도시에서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논현동 뒷골목 장면은 의견이 갈린다. ‘블랙 위도우’는 ‘울트론’의 드론을 쫓으면서 강남 논현동 골목길 고샅고샅을 숨가쁘게 달린다. 익숙한 한글 간판이 툭툭 튀어나와 한국 관객 입장에서는 놀랍고 신기하기만 하다.

한편으로는 뒷골목의 풍경이 불편하게 만든다. 개봉한 날 이 영화를 보았다는 공대생은 “골목길 추격 장면에서 서울의 뒷골목이 너무 지저분하게 비쳐져 기분이 별로였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초등학생 아이 두 명과 함께 영화를 본 40대 여성은 “같은 뒷골목이라도 이탈리아 뒷골목은 아기자기하고 예쁜데 한국은 그게 아니어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영화에 비친 서울 뒷골목을 보는 한국인은 어딘가 불편하다. 한국 영화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던 뒷골목의 민낯이 드러났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유전공학박사로 등장하는 ‘헬렌 조’(수현 분). photo 월트디즈니코리아
유전공학박사로 등장하는 ‘헬렌 조’(수현 분). photo 월트디즈니코리아

한국 장면 중 서울 밖에서 찍은 것은 경기도 의왕시 계원예술대학 앞 교차로다. 계원예술대학 교차로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지난다. 그 옆에 안양농수산물도매시장, 롯데마트가 있어 매우 복잡한 거리다. 서울외곽순환고가도로를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시멘트 기둥들을 배경으로 전투가 벌어진다. 아스팔트 도로가 순식간에 꺼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장면들에서 한국의 어느 곳을 연상하기란 매우 힘들다. 문래동 철강거리 역시 특별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

서울의 전투 장면에서 한 가지 눈길을 사로잡는 게 대한항공 PPL광고다. 거리전투 장면에서 건물 옥상 광고탑에 ‘KOREAN AIR’가 선명하다. 또한 캡틴 아메리카가 등장하는 지하철 전투 장면에서 대한항공이 보유하고 있는 2층 여객기 A380 광고가 수초간 비쳐진다. 어떻게 대한항공 광고가 ‘어벤져스2’에 등장하게 되었을까. 대한항공 홍보실에 따르면 지난해 4월 한국 로케이션 당시 촬영장비 수송과 배우·스태프의 왕복 항공료를 대한항공 측이 부담했다고 한다.

‘어벤져스2’가 한국 로케이션에 쓴 돈은 130억원. 제작사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외국영상물 로케이션 인센티브 제도에 따라 제작비의 30%(약 39억원)를 회수해갔다. 일부 영화팬들은 서울시가 할리우드 영화에 ‘과잉 친철’을 베풀었는데 무슨 지원비까지 챙겨 가느냐고 비판한다.

그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일본이 오랜 기간 아시아 문화를 대표해왔다. 일본이 정치·경제·외교·문화에서 미국과 지속적인 교류를 해온 결과였다. 할리우드 영화는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면서도 일본 거리를 찍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어왔다. 한국은 ‘어벤져스2’에서 사실상 할리우드에 처음으로 데뷔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벤져스2’는 시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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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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