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지드래곤, 조영남, 리사, 최백호, 남궁옥분… 그리고 정미조. 가수인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본업을 하면서 미술에 뛰어들었다. 가수에서 화가가 된 이들을 시간 순으로 볼 때 1세대는 ‘개여울’을 부른 정미조씨. 정씨는 1980년대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회화를 제대로 공부했다. 2세대는 조영남씨. 1990년대부터 화투라는 대중 오락도구를 회화에 끌어들여 새로운 회화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세대는 빅뱅의 지드래곤. ‘삐딱하게’를 부른 지드래곤은 일찍부터 미술적 감각으로 주목받았다. 지드래곤은 지난 7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팝아트의 일종인 ‘피스마이너스원’ 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 ‘고귀한 선물’ 등의 히트곡을 낸 포크가수 장은아(59)씨가 화가 대열에 합류한다. 8월 19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루벤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관심을 집중시키는 부분은 그림의 주제다.

장은아씨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집을 작업실로 쓰고 있다. 지난 8월 11일 일산의 한 아파트에서 그를 만났다. 장씨는 1956년 전남 장성 출생이지만 백일 지나자마자 서울로 와서 살았으니 ‘사실상 서울 사람’이다. 8남매 중 그녀를 포함한 세 명이 모두 가수로 활동한 가수 집안이다. 언니 장미리(67)씨는 ‘말 전해다오’를 히트시켰다. “안개가 자욱한 밤에 말없이 찾아온 그님~”으로 시작하는 노래로 장미리는 TBC의 신인가수상을 받기도 했다. 오빠는 ‘빈의자’를 부른 장재남(66)씨. 3남매 가수는 그뒤로도 나오지 않았다.

장씨는 아파트 방 한 칸을 아틀리에로 쓰고 있었다. 작업실에는 첫 개인전에 출품할 그림들 일부가 포장된 채 놓여 있었다. 한쪽에는 지금은 세상에 없는 어머니의 초상화도 한 점 걸려 있었다.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기타와 입술이다. 가수 출신 화가들의 그림에서 기타와 입술이 이렇게 육감적이고 관능적으로 등장한 적이 없다. 왜 그녀는 기타를 그림의 소재로 썼을까.

“기타는 저의 분신입니다. 40년 이상 기타와 함께 살았으니까요. 기타 없는 내 삶은 상상할 수도 없지요.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아주 자연스럽게 기타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나의 모습을 입술로 표현한 것이지요.”

그녀는 언니와 오빠의 영향을 받아 여고 시절부터 기타를 쳤다. 학교를 졸업한 1976년 명동의 카페 ‘오라오라’에서 통기타 가수로 데뷔했다. 그러던 어느날 당대 최고의 노랫말을 쓰던 작사가 박건호가 그녀를 찾아왔다. 박건호는 박인희가 부른 ‘모닥불’의 작사가. 박건호는 박인희와 비슷한 음색을 가진 신인가수를 물색하고 있었던 중에 ‘오라오라’에서 노래하는 포크가수 장은아를 발견했다. 박건호에게 발탁되어 그녀는 1977년 ‘어떤 옛날에’로 가수로 데뷔했다. 1978년에 ‘고귀한 선물’을, 1979년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를 각각 발표해 잇따라 히트시키며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올라섰다. 1980년에는 ‘결혼의 꿈’을 불렀다.

1990년대 경기도 미사리가 포크가수들의 요람이던 시절 장은아는 이치현 등과 함께 미사리 카페촌의 인기 가수였다. 2007년에 제10집 앨범을 냈을 정도로 그녀는 한시도 노래를 쉬어 본 일이 없다. 하지만 일부 팬들은 그녀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춤을 추어요’의 댄스가수 장은숙과 헷갈리기도 한다. 이름과 음색이 비슷한 데가 있어서 빚어진 결과다. 그런 그녀가 언제부터 그림에 꽂혔을까.

“아시다시피 7080음악은 지는 음악이잖아요. 더군다나 저는 포크음악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더 그렇고. 방송 출연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공연 스케줄이 늘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남는 시간을 보낼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학창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그림 한번 해보면 좋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음악에 빠져 그쪽을 쳐다보지 못했지요. 2013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100% 독학입니다. 내 나이에 누구에게 배우겠습니까. 혼자 그림을 그렸지요. 저는 그림을 그리면서 나의 음악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야외공연을 할 때의 느낌 같은 것을 그림으로 나타냈습니다.”

그림 경력이 2년도 안 된, 아마추어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제도권에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아서일까. 그림에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독창성이 엿보인다. 장씨가 전시회 카탈로그를 건넸다. ‘하얀 기타’ ‘화음’ ‘야상곡’ ‘공연장 가는 길’ ‘높은 음자리’ 등의 작품이 실려있다. 첼로 등 현악기는 흔히 여체(女體)에 비유되곤 한다. 그런데 장씨가 그려낸 기타는 입술과 어울리며 첼로보다도 더 관능적인 분위기를 발산한다.

“저는 방송에 나갈 때나 공연을 할 때 기타 없이는 노래를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음악반주를 가지고 다니기도 하지만 저는 기타를 메지 않으면 불안해서 노래를 못해요. 그래서 제 그림의 주제가 기타입니다.”

그녀에게 왜 음악하는 사람들이 그림 쪽에도 재능을 드러내는지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음악하는 사람들은 상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훈련을 많이 받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자유로운 상상에서 오는 영감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거나 그림으로 나타내는 거나 본질적으로 같은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대중문화평론가 최규성씨의 평을 들어보자.

“오선지에 곡을 쓰는 노래 작업과 하얀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빈 공간에 무언가를 채우는 창작이라는 점에서 기본정신은 동일하다. 장은아의 그림 소재는 음악과 맞닿아 있다. 분신 같은 악기인 ‘기타’와 노래를 들려주는 ‘입술’을 화폭 어딘가에서 찾아내는 즐거움은 구체적이지만 전체적인 그림 분위기는 꿈속을 헤매는 듯 몽롱하다. 독특한 화풍을 연출하는 그녀의 그림은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자신만의 선명한 오리지널리티를 구현하고 있다.”

그녀는 지난 7월 남편과 함께 미국 뉴욕을 여행했다. 그중 이틀은 온전히 혼자서 미술관 투어를 즐겼다. MoMA, 소호의 갤러리들을 순례했다. “MoMA에서 고흐, 마티스, 오노 요코 등의 작품들을 감상하는데 마치 제가 구름 위로 둥둥 떠다니는 기분을 맛보았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배운 시간이었죠.”

마음의 충족으로 그림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는 장은아씨. 사진기자의 요구에 포즈를 취하다가 허리에 손을 대며 아픈 표정을 지었다. “한번 앉아 붓을 들면 7~8시간이 금방 지나갑니다. 너무 같은 자세로 꼼짝 않고 그림만 그리다가 디스크가 왔습니다.(웃음)”

키워드

#문화
조성관 편집위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