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et ‘쇼미더머니 4’ ⓒphoto CJ E&M
Mnet ‘쇼미더머니 4’ ⓒphoto CJ E&M

근 몇 년 사이 힙합은 한국에서도 대세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음악적 완성도와 장르 본연의 특성이 제대로 담보되었는가에 대해선 회의적이지만,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어쨌든 그렇다. 특히 올해 힙합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화두였는데, 그 중심엔 여성 비하 논란이 있다. 어느덧 음악 전문 케이블 채널 ‘엠넷(Mnet)’의 간판이 된 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서 출연자 중 한 명인 송민호가 뱉은 가사가 불을 댕겼고(‘MINO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 역시 출연자였던 블랙넛을 위시한 몇몇 기성 래퍼들의 과거 가사들까지 소환되어 가열차게 비판의 칼을 맞았다. 이는 곧 랩·힙합의 장르적 특성에 대한 폄하까지 야기했다. 이번 사건은 대중의 관심이 얼마나 힙합이란 음악에 쏠려 있는지, 혹은 쏠릴 수 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예라 할 만하다. 그만큼 힙합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한국 대중음악의 중심부 깊숙이 진입해 있다.

이번 사태의 흐름과 논란이 불거지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오늘날 많은 래퍼와 힙합 팬들이 해당 장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더불어 한국 힙합이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었는지 엿볼 수 있다. 적잖은 이들이 이번 논란을 두고 미국 힙합신과 비교하며 자연스러운 순서라고 여기는 걸 봤다. 힙합이 주류가 되고 상업화가 되면서 평소 힙합을 잘 몰랐던 사람들과 그동안 힙합을 쭉 들어온 이들 사이에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러한 시선은 매우 무리가 있다. 이건 한국에서 힙합의 인기가 많아지는 것, 즉 대중에게 많이 노출되며 생기는 문제라기보다 애초에 힙합 본래의 속성을 왜곡되게 받아들인 탓으로 보는 편이 적확하다. 그 적나라한 예가 바로 이번 여성 비하 논란인 것이다.

왜 힙합 속에서 여성 혐오 및 비하 표현이 팽배했는지를 알려면 무엇보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미국 사회와 흑인 커뮤니티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게 먼저다. 인종적·계급적으로 사회진출이 철저하게 막힌 현실 속에서 주로 편모 가정에서 자라거나 혹은 아버지로부터 학대받거나 버림받은 채 자라오며 가장 역할을 해야 했던 흑인 남성들의 이야기 말이다. 이를 바탕으로 1970년대에 태동한 힙합과 관계를 살피는 게 다음에 할 일이다. 그렇다고 힙합의 혐오 및 비하 표현 부분이 비판받지 않는 게 아니거니와 그들의 배경을 제대로 파악한다면 지금 같은 비하 가사의 남용이 이루어지지 않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사회적 배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고심해 볼 생각이 없었던 한국 래퍼들이 겉에 드러난 ‘힙합=남성성’이라는 공식에만 사로잡힌 채, 미국 래퍼들의 콘텐츠를 맹목적으로 따라하며 뱉은 결과가 바로 이번 논란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특히 여성 비하가 담긴 단어지만 실제 맥락 속에선 대상의 성별 상관없이 단순 욕설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은 ‘비치(Bitch·암캐)’나 ‘호(Ho·창녀 whore의 미국 남부식 발음)’ 등의 표현과, 그 자체로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 비하 표현 사이의 경계를 구별하지 못해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던 모습은 현 한국 힙합 구성원 대부분의 의식 수준과 힙합에 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낮은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더구나 단순 욕설에 대해서도 미국 힙합신에서는 오래전부터 진중하고 치열한 논쟁이 오갔으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 비하 표현은 오늘날 변명이 허용되지 않을 만큼 비난받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씁쓸함은 배가된다. 과거는커녕 현재의 흐름조차 살피지 않는 이가 많다 보니 무려 2015년임에도 ‘힙합은 여성 비하나 하는 쓰레기 음악 vs 힙합의 원래 특성(표현의 자유도 곁들여)’ 같은 놀라운 수준의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1973년 뉴욕의 한 허름한 아파트 파티에서 탄생한 힙합은 흑인 사회의 고립과 황폐화가 점점 확대되는 가운데 그들의 흥과 예술적 재능, 그리고 애환과 울분을 대변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발전하고 지지를 얻은 음악이다. 그렇게 지난 40여년간 세계 대중문화 곳곳에 스며들어 트렌드를 이끌어온 힙합이 뒤늦게 본격적으로 1990년대 말 한국에 소개됐을 때, 사회적 배경의 차이상 여러 면에서 매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었음에도 열렬한 반응을 얻었던 건 일반 가요에서 쉬이 들을 수 없는 거침없고 다양한 주제와 표현 때문이었다. 여기엔 배설의 쾌감을 안기는 욕설의 사용도 포함된다. 그리고 이상은 그 주제의 범위와 래퍼들의 면면에서 차이는 있을지언정 오늘날까지도 랩·힙합이 인기를 얻는 주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좀처럼 나아가질 못한다. 처음엔 래퍼들의 태도와 주제의식은 충만하나 그것을 가사와 플로로 구현하는 기술적인 부분이 부족했다면, 이제 월등히 높아진 래퍼들의 실력이 받쳐주니 주제의식이 사라져버렸다. 현 시점쯤이라면 이 모든 게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룬 상태여야 하건만,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이다. 많은 뮤지션과 산업 관계자가 힙합 본연의 멋과 역사를 탐구하길 멈춘 탓이다.

한국 힙합의 시작점을 PC 통신과 초창기 힙합 레이블 클럽 ‘마스터 플랜(Master Plan)’을 중심으로 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는 이들이 뭉치기 시작한 1997년이라고 할 때, 18년 역사를 지니게 된 지금의 한국 힙합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혹자들은 힙합을 탐구 혹은 공부해야 한다는 말에 거부반응부터 보이기도 하는데, 이건 실제 힙합의 종주국인 미국 래퍼들 역시 꾸준히 설파해온 부분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워낙 특수한 사회적·계급적 환경에서 탄생한 음악인지라 제대로 된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전혀 다른 환경의 나라에서 바람직한 모습으로 토착화되기 어렵다. 또 장르의 기본적인 지식을 쌓는 것이 곧 힙합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첫걸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힙합은 거리의 음악이니 공부 같은 소리 집어치우고 거리로 나가야 한다’ 같은 유의 발언들은 그야말로 얄팍하고 뜬구름 잡는 얘기나 다름없다. 한국 힙합이 지금 퍼져 있는 여러 종류의 논란과 편견을 걷어내는 건 물론, 더 나아가 발전하기 위해선 뮤지션, 제작자, 힙합 팬 상관없이 랩·힙합에 관해 제대로 아는 게 먼저다. 구글링이든, 책이든, 영상물이든, 강좌든, 필요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By All Means Necessary)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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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권 음악평론가·‘리드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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