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10년 외길로 ‘리얼 버라이어티’란 새 장르까지 만들어 낸 MBC 김태호 PD. ‘1박2일’을 거쳐 ‘꽃보다~ 시리즈’와 ‘삼시세끼’ ‘신서유기’까지 열거하기 숨찰 만큼 손대는 것마다 ‘국민예능’ 타이틀을 움켜쥐는 CJ E&M 나영석 PD.

두 사람은 2006년 이후 한국의 대중문화를 이끌고 있는 주인공이다. 한국 대중문화에서 김태호(40)와 나영석(39)이란 이름은 대박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스타 PD의 위치를 넘어선 지 오래다. 두 사람은 현재 한국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하고 있다. 1980년대 ‘조용필’과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표되었던 ‘연예인’이, 2000년대엔 ‘SM 이수만’과 ‘YG 양현석’ ‘JYP 박진영’으로 대표되는 ‘기획사와 기획자’가 한국 대중문화의 주인공이었다. 그랬던 한국 대중문화 권력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서서히 연예인과 기획자를 움직이게 하는 스타 PD에게로 이동하고 있다. 서수민(KBS·개그콘서트)·김광수(KBS·해피투게더3)·신원호(CJ E&M·응답하라~)…. 많은 스타 PD들 속에서도 그 권력의 핵심에는 단연 김태호·나영석이 자리하고 있다.

비슷한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한 김태호·나영석 PD. 두 사람은 유재석과 강호동의 라이벌 관계만큼이나 같은 그릇에 담기 힘든 ‘라이벌’로 불린다. 본인들은 손사래를 칠 수 있겠지만 대중은 ‘21세기 한국 대중문화 대통령’을 두고 둘을 저울질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언론이 이 둘을 부분적으로 비교해 왔다. 김태호와 나영석, 주간조선이 대중의 눈으로 그들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봤다.

2014년 ‘무한도전’ 400회 기념 당시. ⓒphoto 정상혁
2014년 ‘무한도전’ 400회 기념 당시. ⓒphoto 정상혁

10년을 지켜온 웃음의 신, 갓태호

먼저, 김태호다. 방송가에선 대한민국 예능은 무한도전 이전과 무한도전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온다. 그 정도로 한국인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는 웃음 폭탄이 바로 무한도전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을 말할 때 ‘무한도전’은 늘 가장 먼저 등장한다. 인기도를 가늠하는 TV시청률은 10~15%를 오르내리고, 동시간대 시청률은 언제나 1등이다. 특히 인터넷과 모바일을 이용한 스트리밍과 다운로드에 익숙한 10~20대의 지지는 절대적이다. 지상파와 케이블 등 TV와 모바일·인터넷·IPTV 등으로 무한도전을 보는 시청자가 매주 평균 1104만명(MBC 집계)에 이른다. 다시보기(VOD) 서비스는 매회 평균 165만건에 이른다. 젊은 세대에게 ‘무한도전’은 삶 그 자체로 받아들여질 정도다.

바로 이 무한도전을 김태호는 꼭 10년째 이끌고 있다. MBC 내 예능PD 그 누구도 김태호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다. 그래서 그는 ‘갓태호(god태호)’다. 연예인이 아닌 PD가 연예인보다 더 강렬한 캐릭터를 갖고 있는 게 바로 김태호다.

그는 1975년생으로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나와 2002년 MBC PD로 입사했다. 시추에이션 코믹드라마 ‘논스톱4’를 시작으로 ‘코미디하우스’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의 조연출로 출발했다. 그랬던 김태호의 ‘웃기는 재능’이 2005년 10월 ‘무한도전’을 맡으며 폭발했다. 지금의 ‘무한도전’은 원래 ‘무모한 도전’이란 타이틀로 시작됐다. 당시 권석 PD가 이끌었던 ‘무모한 도전’은 ‘못해도 기본은 한다’는 시청률 자판기 유재석을 내세우고도 시쳇말로 ‘폭망(폭삭 망하다)’했다. 그렇게 망한 프로그램 ‘무모한 도전’을 김태호가 이어받은 것이다. 그리곤 ‘이렇게 해도 돼!’가 튀어나올 만큼 배꼽 빠지게 웃기는 프로그램으로 완전히 변신시켰다.

찌질했던 박명수와 정형돈, 스스로 길바닥 출신(캐스팅)이라 했을 만큼 정체불명이던 노홍철, 인지도 최저 하하를 수퍼스타 유재석과 절묘하게 섞었다. 이들 각각의 모나고 못난 약점들을 밖으로 끌어내 철저히 대중의 기호에 맞춘, 사람들이 좋아하는 ‘웃기는 캐릭터’로 변신시켰다. 마치 만화 속에서 튀어나와 좌충우돌 천방지축 TV 속을 헤집고 다니는 무한도전 속 캐릭터(예능 연기자)에 대중은 열광했다. 무한도전 속 만화 같은 캐릭터들이 사랑받을수록 이 캐릭터를 찾아내 대중에게 던져준 PD 김태호의 주가는 천장을 뚫고 치솟았다.

‘1박2일’ ⓒphoto KBS
‘1박2일’ ⓒphoto KBS

별것 아닌 걸 별것으로, 개PD 나영석

나영석은 어떨까. 국민예능이란 말을 만들어낸 ‘1박2일’, 무뚝뚝한 할배들과 도도한 여배우도 웃길 수 있음을 보여준 ‘꽃보다 할배·꽃보다 누나’, 단지 하루 밥 세끼 해먹는 걸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은 ‘삼시세끼’, TV는 필요없다, 인터넷·모바일만 있어도 웃길 수 있음을 확인시켜 준 ‘신서유기’까지. 그가 손을 대면 별거 아닌 것이 별것이 된다. 이것이 바로 ‘나영석표 예능’이다.

나영석의 예능은 남녀와 세대를 초월한다. 유치원과 초등학생부터 20~30대 청춘들, 40~50대 중장년을 넘어 60대 노년세대의 웃음 코드와도 공감한다. 국가기간방송 KBS를 떠나, 케이블 방송인 CJ E&M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평균 시청률 10~14%를 거뜬히 만들어내는 게 이를 증명한다. 참고로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은 시청률 2%만 나와도 ‘대박’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로 인해 나영석은 대한민국 예능 PD 중 대중의 심리를 가장 잘 읽어내는 이로 통한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이 재능이 그를 ‘시청률 대박 자판기’로 올려놓았다. 때론 출연하는 연예인보다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에 더 많이 등장해, 출연한 연예인이 민망할 정도로 더 웃겨 버린다. 그래서일까. 프로그램 속으로 직접 뛰어드는 나영석식(式) 예능을 기자도 조금 도용해 보려 한다. 이 글을 쓰며 기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개PD(개그맨 같은 PD)’를 나영석의 이름 앞에 붙여본다. 개PD 나영석.

1976년생으로 연세대에서 행정학을 전공했지만 공무원 대신 2001년 KBS 예능 PD가 됐다. ‘출발드림팀’과 ‘장미의 전쟁’ 조연출로 바닥을 다졌다. 이후 2007년 KBS의 주말 간판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 속 코너였던 ‘1박2일’을 맡으며 그의 재능이 폭발했다. ‘강호동’을 국민 MC로 올려놓았고, 왕년의 아이돌 은지원을 웃기는 예능인으로. 또 예능과는 어울리지 않던 샌님 이승기와 카메라 울렁증 있는 희한한 코미디언 이수근을 대한민국 최고의 입담꾼으로 변신시켰다.

30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강호동을 비롯한 1박2일의 캐릭터들(오리지널 멤버)을 에어컨도 안 나오는 고물 자동차에 몰아넣고 전국을 누비는 배포와 야외취침으로 포장된 사실상의 ‘노숙’을 출연자에게 강요한 나영석. 실력과 능력은 필요 없고 모든 것을 오로지 운에 맡기는 복불복 게임으로 출연자들의 끼니를 빼앗아 버리기도 했고, 이에 저항하는 출연자들에게 짧고 단호한 어투로 “안 됩니다”라고 거절하던 나영석.

자신이 기획하고 만든 프로그램 속에서, 출연진과 뒤섞여 스스로 웃기는 악동 캐릭터로 변신하는 그의 모습이 TV로 전해질 때마다 대중은 개PD 나영석에게 빠져들었다.

나영석의 이런 캐릭터는 KBS를 떠나 CJ E&M에서 만든 예능 프로그램에도 고스란히 이식되어 대중을 휘어잡는 절묘한 웃음 코드 역할을 하고 있다. 강호동과 그랬듯, ‘꽃보다 할배’와 ‘삼시세끼’ 정선 편에선 이서진과 티격태격하며 웃음을 만들어 낸다. 배를 타고 5시간을 가야 하는 외딴섬 전남 만재도에선 차승원(삼시세끼 어촌편)과 아옹다옹 뒤섞여 나영석표 웃음을 전하고 있다.

‘삼시세끼 어촌편 시즌 2’ ⓒphoto CJ E&M
‘삼시세끼 어촌편 시즌 2’ ⓒphoto CJ E&M

출연자·시청자와 자막으로 소통

지난 10년 김태호와 나영석의 웃음 코드는 비슷한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한 묘한 모습을 보여 왔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늘 대중으로부터 비교 대상이 돼 왔다.

우선 PD로서의 기술적 부분을 보자. 김태호와 나영석을 관통하는 가장 큰 공통점은 편집 능력이다. 특히 예능적 자막 사용은 가히 이들을 따라올 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둘은 출연자들이 쏟아내는 무수한 멘트들 중 포인트가 될 단어와 표현들을 기막히게 찾아내 시청자들에게 자막으로 내용을 다시 전달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 그뿐이 아니다. 출연자들이 꺼낸 이야기를 반박하고 싶거나, 맞장구를 치고 싶을 때도 어김없이 자막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시청자들에게 전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음주운전으로 무한도전을 떠난 노홍철이 필요한 순간마다, 자막을 통해 “그 녀석(노홍철)이 보고 싶다”거나 “그 녀석은 뭐하고 있을까” 같은 식으로 출연자·시청자와 소통한다. 나영석도 마찬가지다. 2012년 2월 19일 나영석이 연출한 마지막 ‘1박2일’ 방송은 그의 자막과 편집 능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시 나영석은 전북 정읍의 낡은 극장에서 2007년부터 함께한 ‘1박2일’ 멤버들과의 5년간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방송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좋아한 그였지만 그날만큼은 “못 웃겨서 구박받던 이수근은 대한민국 최고의 MC가 되었습니다. 21살 청년 (이)승기는 20대의 절반을 ‘1박2일’에 바쳤습니다. (은)지원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초딩입니다.… 그리고 (강)호동이는 은퇴했습니다.” 자막을 통해 출연진과 시청자에게 자신의 심경을 전했다. 특히 마지막 인사까지도 “자 우리 멋진…”이란 끝맺지 못한 말을 자막으로 내보내며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끌어모았다.

두 사람은 소통만을 위해 자막을 사용하는 게 아니다. 자막 그 자체로 웃음을 만들어 낸다. 자막을 웃음의 소재로 쓴다. 때론 화면 전체를 자막으로 덮기도 하고, 자막 글자 하나하나에 형형색색 현란한 색을 입혀 시청자들의 기분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프로그램 속으로 PD가 직접 적극적으로 들어가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전한다는 점 역시 두 사람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이다. 물론 두 사람은 프로그램에 뛰어드는 방식에서 조금 다른 모습이 확인된다. 나영석이 출연진과 함께 어울려 카메라 앞에 서는 스타일이라면, 김태호는 주로 자막을 사용해 대화하는 스타일이다.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말이 이들을 통해 나온 것처럼, 김태호와 나영석은 자신의 프로에 출연하는 이들에게 많은 것을 맡기는 스타일이다. 출연자들이 해결해야 할 미션은 던져주지만, 그 미션을 해결하는 과정을 출연자들에게 맡겨 둔다는 말이다.

둘은 출연자들에게 캐릭터를 선물해 주는 데 있어 탁월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김태호를 보자. 그를 만나기 전까지 별 볼일 없던 개그맨 박명수에게 ‘버럭 명수’와 ‘쭈구리’란 별칭을 선물하며 그를 스타로 등극시켰다. 있는 듯 없는 듯 그저그런 개그맨이란 정준하의 약점을 오히려 ‘쩌리’(겉절이란 의미)란 캐릭터로 바꿔 주며 그를 대중 속에 던졌다.

나영석도 다르지 않다. 투덜대고 가리는 음식 많은 은지원에게 ‘초딩’을, 샌님 같던 이승기에게는 ‘허당’ 캐릭터를 던져 줬다. 무게 잡고 귀공자 같던 이서진에겐 ‘미대생 형’을, 훤칠한 조각미남 차승원에겐 뜬금없는 ‘차줌마(아줌마)’ 캐릭터를 선물했다. 두 사람은 이런 캐릭터 창조능력을 통해 ‘연예인 출연자 역시 TV 앞 시청자와 다르지 않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는 ‘공감’을 이끌어냈다.

‘신서유기’ ⓒphoto tvN
‘신서유기’ ⓒphoto tvN

비슷한 듯 전혀 다른 김태호와 나영석

물론 김태호와 나영석 사이에는 전혀 다른 모습도 존재한다. 종종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전위적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세련된 김태호의 외형과, 티셔츠와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이웃집 형이나 아저씨 같은 더벅머리 모습 그대로 TV에 등장하는 나영석이다. 오죽하면 ‘탈북 인민군’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을까.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웃음의 소재다. 김태호는 ‘환경오염·선거(정치)·역사·여행·빈부격차·스포츠·음악·남녀평등·음식’… 세상 모든 이야기를 프로그램 소재로 사용한다. 무한도전 여성의 날 특집을 만드는가 하면, 이제는 무한도전 상징으로 굳어진 ‘가요제’도 개최한다. 콩트 ‘무한상사’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빈부격차와 왕따문제까지 끄집어낸다. 때론 환경오염에 녹아내리는 남극 빙하 이야기를 그리기도 하고, ‘선택 2014’ 같은 선거 방송이나 ‘100분 토론’ 같은 시사 프로그램을 패러디해 한국 정치와 정치인들의 후진성(後進性)을 비판하기도 한다. 때로는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1세대를 직접 찾아가 웃음기 싹 빼고 1시간 넘게 눈물바다로 만들어 놓기도 한다. 우리가 돌아보지 못한 곳, 애써 외면했거나 뒤에서만 열을 올리던 금기들까지 예능의 소재로 활용한다. ‘의식인 예능’은 그의 웃음 코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에 반해 나영석은 철저히 즐겁고 행복한 예능을 추구한다. 보고 있으면 웃을 수밖에 없는 늘 왁자지껄한 상황 전개의 달인이다. 그가 만드는 프로그램들은 큰 틀에서 ‘여행·음식·정(情)’ 속에 있다. 1박2일, 꽃보다 시리즈, 삼시세끼, 신서유기 모두 이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이 속에 대결과 역사인식 등의 소재가 사용되기도 하지만 김태호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대신 “예능은 웃겨야 한다”는 명제에 있어 나영석은 오히려 김태호보다 더 감각적이고 직설적이다.

나영석표 예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동물이다. 1박2일의 상근이(개), 삼시세끼 시리즈의 밍키(개)와 잭슨(염소), 산체(개)와 벌이(고양이) 등 많은 동물들에게까지 그는 웃음 코드를 부여한다. 동물들을 통해 순수하고 따뜻한 웃음을 끌어내는 나영석식 예능이 김태호는 물론, 다른 수많은 PD들의 그것과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다.

팍팍한 일상에 치여 사는 한국인들에게 웃을 수 있는 즐거움을 던져주는 김태호와 나영석은 분명 지금 우리 시대 대중문화의 중심에 있다. 이름 앞에 ‘대중문화 대통령’이란 별칭을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둘은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런 김태호와 나영석 중 누가 더 나은지 판단하는 것은 시청자들의 몫이다. 대중은 두 사람이 앞으로도 더 오래오래 즐겁고 행복한 웃음을 전해주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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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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