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검은 사제들’의 한 장면.
영화 ‘검은 사제들’의 한 장면.

한국판 엑소시즘으로 주목받고 있는 영화 ‘검은 사제들’(감독 장재현). 영화는 악령의 존재와 악령 퇴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교통사고를 당한 여고생이 의문의 증상에 시달리자, 그의 몸에 악령이 숨어 있다고 믿고 그를 구하려는 두 가톨릭 사제의 ‘구마(驅魔·엑소시즘) 예식’이 소재. 구마는 악마에게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마가 떠나갈 것을 기도하는 가톨릭교회의 예식이다.

로마 교황청은 지난해 30개국 250여명의 신부가 활동하는 국제퇴마사협회를 교회법상 인준단체로 인정한 바 있다. 과연 각국에서 많은 사람이 보았다는 악령이나 귀신이 정말 존재하는 걸까. 또 이것을 보는 사람들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일까.

정신적 환각이 귀신

악령이나 귀신의 존재는 인류의 모든 문화와 역사의 기록에 나타난다. ‘성경’에는 귀신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또한 각종 통계에 따르면 귀신의 존재를 믿거나 직접 체험했다는 사람의 비율이 결코 낮지 않다. 귀신을 다룬 영화나 방송 드라마는 항상 인기를 끌게 마련이다.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도 인간의 가장 약한 지점이나 지우고 싶은 기억들을 통해 악령이 스며든다. 즉 자기 자신의 영혼이 아닌 다른 제3의 영혼이 몸 안에 들어와 영향을 받는 빙의(憑依·귀신 들리는 것) 상태이다. 제3의 영적 지배 내지 간섭을 받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려 스스로 심신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현대과학은 아직 악령이나 귀신이 ‘있다’고 단정하지 못한다. 아니 ‘모른다’가 정답일 것이다. 지금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아직 과학자들은 제대로 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몇 광년 두께의 납을 뚫는 중성미자도 검출하는 시대인데도 말이다. 과학은 물질세계를 다루기 때문에 비물질적인 존재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귀신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확인하려는 일이 무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과학자들은 귀신을 느끼는 상황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귀신의 존재감을 느낄 때 주변 환경이 어떤지,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연구의 초점이다. 귀신의 존재를 믿건 믿지 않건, 그들 대다수가 인정하는 이론은 귀신을 정신적 환각(hallucination)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환각은 대응하는 자극이 외부에 없음에도 사막의 신기루처럼 그것을 실재하는 것으로 지각하는 심리적 상태이다.

이를테면 빙의는 병적 흥분 증상이나 정신분열, 우울증, 강박증 같은 정신장애, 즉 일종의 ‘해리(解離)’ 현상으로 설명한다. 해리는 쉽게 말하면 술 먹고 필름이 끊기는 것, 나아가 마약 복용 상태, 극단적으로는 다중인격장애까지 자기의식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약물치료에 의존하는 환자들이 의외로 빙의 환자로 판명되는 경우가 많고, 종교인 중 신비 체험을 경험한 사람은 일반 사람보다 해리 경향성이 높다. 해리 상태에서 평상시와 다른 의식 체계를 경험한다.

실제로 환각에 빠지거나 영적 체험을 한 사람은 뇌의 측두엽에서 발생하는 뇌파에 변화가 생긴다. 측두엽은 청각과 후각을 관장하는 부위로, 이곳이 활성화되면 이상한 소리를 잘 듣거나 느낌을 잘 받는다. 이러한 현상은 캐나다 로렌티안대학의 신경과학자 마이클 퍼신저 교수의 실험에 잘 드러나 있다.

퍼신저 교수는 실험 참가자 5명에게 머리에 헬멧을 씌우고 측두엽을 전기로 자극해 ‘측두엽과 귀신을 보는 현상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는데, 참가자 5명 중 4명은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느낌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측두엽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분명히 물고기 얼굴이라고 알고 있어도 그 얼굴을 사람 얼굴로 볼 수 있다.

또 귀신을 본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뇌를 검사한 결과, 간혹 측두엽에 간질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측두엽에 문제가 있는 간질 환자는 실제로 나지 않는 냄새를 맡거나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맛이 난다고 느낄 때가 있다.

빙의 치료 가능한가

한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앤드루 뉴버그 교수는 종교적 무아의 경지와 신과의 관계를 밝혀내기 위해 묵상 중인 불교 명상가들과 수녀의 뇌를 촬영했다. 그 영상에는 종교적 몰입이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 뇌에서 자아인식을 관장하는 부위의 활동이 줄어드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즉 고도의 집중 상태에서는 전두엽이 활성을 띠는 반면 뇌의 뒷부분인 두정엽의 활동이 약해졌다.

두정엽은 물리적인 외부 자극을 지각하는 부위로, 이의 활동이 약해지면 외부의 자극과 자신의 생각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뉴버그 교수는 말한다. 이는 깊은 명상 상태에서는 머릿속에서 상상한 장면을 실제로 보는 것처럼, 뇌의 활동으로 인해 환상을 보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의 연구를 종합해 보면, 귀신 체험은 심리적인 현상이다. 귀신을 봤다고 하는 것은 ‘이곳은 위험하다’고 알려주는 인간의 자기 보호 본능의 발현이라는 것. 그렇다고 귀신을 보는 사람들의 능력이 특별한 것도 아니다. 단지 특별하게 반응하는 뇌를 가진 사람의 마음에서만은 확실히 존재하는 그 무엇을 느낀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를테면 점을 치는 이들은, 손님이 들어오면 그 사람의 고민이나 과거가 영상으로 보이고 음성으로 들리기 때문에 그게 귀신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진짜 귀신인지 특별한 능력의 결과인지 또는 거짓말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는 악령이 깃든 소녀를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제들이 구마 예식을 거행한다. 지금까지 빙의 치료 행위는 주로 종교적 차원에서 이뤄져 왔다.

기독교의 안수기도, 천주교의 구마예식, 불교의 구병시식 또는 천도제와 같은 형식이 바로 그것이다.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예수가 귀신 들린 정신병자를 향해 “귀신아 물러가라”고 하는 명령은 곧 빙의 치료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민간에서는 주로 굿의 형태로 치료하고자 했다.

최근에는 종교적 차원이 아니더라도 ‘빙의 치료’라는 말을 흔히 쓴다. 이런 치료가 가능하려면 자의식이 있는 비물질적 존재가 있다는 게 사실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빙의는 의학적 치료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를 치료하기 위한 뚜렷한 대책도 없다. 때문에 어찌 보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종교나 무속에 의존하는 게 아닐까. 또 악령이나 귀신은 과학으로 설명될 수 없지만, 그것을 본 사람의 마음속에서만은 분명 존재하는 그 무엇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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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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