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드라마 ‘송곳’의 배우 김희원 photo 와이트리컴퍼니. (우) 드라마 ‘미생’의 배우 김희원 photo CJ E&M.
(좌) 드라마 ‘송곳’의 배우 김희원 photo 와이트리컴퍼니. (우) 드라마 ‘미생’의 배우 김희원 photo CJ E&M.

“이 과장이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는데, 당신만 지켜야 할 사람 있는 거 아니야. 우리도 지켜야 할 사람이 있어.”

용역깡패를 동원하여 농성 중인 노조 천막을 부수고, 노조원들을 다치게 한 정민철 부장은 의기양양했다. 회사를 위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성취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러나 그는 ‘회사가 만든 개’였을 뿐, 회사는 그를 ‘케어’해 주지 않았다. 그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체포되고 나서야 자신이 판세를 읽을 줄 모르는 장기판의 멍청한 말이었음을 알았다. 노동현장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웹툰을 원작으로 했던 ‘송곳’(jtbc)에서 배우 김희원은 힘 앞에서 생존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본능적 민낯’을 솔직하게 그려냈다.

그의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눈은 뱀의 눈같이 사악했고, 항상 핏발이 서 있었다. 입술은 흙빛이고, 바싹 말라있었으며, 입술 선은 유난히 도드라져 무언가 일을 저지를 것 같았다. 오른쪽 입술 위로 1㎝가량의 상처가 있어 거친 욕이라도 할라치면 그 상처가 날카로운 칼날처럼 움직였다. 지워지지 않은 두 볼의 여드름 흔적은 거친 삶을 살아왔다며 겁주는 듯했다.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악역 전문 배우라고 말한다. 데뷔작이었던 영화 ‘1번가의 기적’(2007)에서 그는 재개발사업을 위해 산동네 사람들의 동의서를 받아내야 하는 사무소 김 부장이었다. 말이 부장이지 용역깡패다. 동의서 받는 것에만 혈안이 된 그는 노약자, 여자 상관없이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폭행을 일삼았다. 흰 와이셔츠에 검은 양복을 걸치고 질겅질겅 담배 끝을 씹으며 건들거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양아치였다. 얼굴을 보면 오래된 배우 같은데 기억에는 없었다. 그렇게 연극배우 김희원은 서른일곱이라는 늦은 나이에 관객이 아닌 카메라 앞에서 영화배우로 신인 신고를 했다.

‘김희원표 악의 기원’이라 불리는 작품은 영화 ‘아저씨’(2010)이다. 장기 밀매업자 만석이 된 그는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고, 알뜰하게 장기를 빼내 팔아먹었다. 아이들에겐 마약 판매를 시키고 그러다 죽으면 아이들의 눈을 빼 밀매하는 살아있는 악마였다. 장기를 적출하는 옆에서 초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그를 보고 소름 돋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뮤지컬 ‘빨래’의 예술감독

그러나 그는 다른 악인들과 달리 어딘가 모를 틈을 갖고 있었다. 이죽거리는 폼은 생각보다 섬뜩하지 않았다. 승부수를 날려야 하는 결정적 순간, 그는 움찔하며 흔들리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장기 적출을 위해 마구잡이로 칼을 들이대지만 하나뿐인 동생에 대한 사랑은 극진했다. 그래도 사람이긴 한가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쫓고 쫓기다 최후를 맞이하게 된 그는 차 안에서 외친다. “야 이 개새끼야, 이거 방탄유리야. 나 안 나간다. 이거 방탄유리라고.” 얼마나 찌질한가. 당당히 맞서지 못하는 찌질함의 틈은 ‘송곳’이나 ‘미생’에서 보여준 비난할 수 없는 우리들의 ‘본능적 민낯’으로 이어졌다.

‘송곳’의 정민철 부장은 배움도 많지 않고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었기에 대형 유통회사 정육 사원으로 취직한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일하다 다쳐도 회사에 책임을 묻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실수라며 윗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자기 아들의 졸업식엔 못 가도 인사 상무 아들 졸업식엔 가서 사진기사 노릇도 했다. 마트 현장직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부장의 자리에 오르며 입지전적 인물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의 맹목적 충성 때문이었다. 성실함 하나뿐인 그의 ‘을’적인 생존법이 결국 그를 ‘손에 피 묻히는 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은 ‘미생’(tvN)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종식 과장에게도 꿈은 있었다. 종합상사맨이 되어 세계시장을 좌지우지 해보고픈 욕망이 왜 없었겠는가. 열심히 노력했고, 그 결과 요르단 수출 1억2000만달러를 달성하는 기쁨도 맛보았다. 열심히 일한 그에게 사람들은 ‘중동통’이라는 명예로운 호칭도 붙여주었다. 한껏 행복했던 그였지만 돌아보니 자신이 이룬 성과에 대한 보상은 월급뿐이었고, 계약이 성사되던 날 축하한다며 건네준 상무의 회식용 법인카드 1회 사용권한이 전부였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자본을 갖지 못한 자에게 부의 축적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된 어느 날 거래처 사장이 손에 쥐여준 돈봉투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고, 결국 그는 거래처 그림자 이사가 되어 자신이 한 일의 대가를 별도로 챙기는 간 큰 일까지 저지르게 되었다.

배우 김희원은 마흔다섯, 불혹의 정점에 서 있다. 공부에 그리 흥미가 없었기에 대학입학시험을 보러 갔다가 중간에 그냥 나왔다고 한다. 이후 고졸의 학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궁리하던 차에 연극을 시작했다. 본능에 따라 열심히 연기하면 그것이 관중에게도 전달될 것이라 믿고 무조건 열심히 했다고 한다. 연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다지기 위해 스물일곱에 대학에도 진학했다. 하지만 소극장 무대 위 연극배우의 삶은 고달펐다. 항상 다른 일을 병행해야 했고 수입이 없는 날이 더 많았다. 견디다 못한 그는 호주로 떠났지만 3년을 못 채우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그에겐 예술감독이란 이름이 하나 더 있다. 카메라 앞에 오기 전부터, 그리고 그 이후에도 뮤지컬 ‘빨래’에 관여하고 있다. 고단한 삶을 사는 소시민들의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빨래’는 2005년 초연된 이후 지금까지 10년이 넘게 롱런하고 있는 작품이다. “제2의 ‘지하철

1호선’”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김희원은 ‘빨래’는 대한민국에 영원히 남아야만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초연부터 지금까지 ‘빨래’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무대에 대한 그의 의리이다.

시진핑의 아내 펑리위안의 마음까지 움직이게 했던 ‘별에서 온 그대’(SBS)에서 도민준의 존재를 쫓는 박 형사였던 그가 ‘미생’의 박 과장을 거쳐 종횡무진 달렸던 2015년은 배우 김희원을 대중들에게 ‘신 스틸러’로 확실하게 각인시킨 해였다.

‘앵그리맘’(MBC)에서는 잔인한 본성과 얽힌 복잡한 심리를 갖고 있는 조폭 출신 건설회사 바지사장 안동칠이었고, ‘식사를 합시다2’(tvN)에서는 전직 형사 출신 보험회사 직원으로 일년 내내 같은 옷만 입는 칠칠맞지 못한 기러기 아빠였다.

그리고 ‘송곳’의 정민철 부장. 영화에서의 활약도 눈부셨다. ‘뷰티 인사이드’에선 그동안 그가 보여주었던 악인의 모습은 온데같데없고 사랑에 빠진 수줍은 건축사가 되었고, ‘돌연변이’에서는 인권변호사가 되었다. 아직 개봉 전인 ‘계춘할망’ ‘미씽: 사라진 아이’ ‘가려진 시간’에서도 그는 자신의 몫을 정확히 해냈다고 평가받고 있다.

어느 해보다 그를 자주 만날 수 있었던 한 해, 이제 우리는 그의 이름을 명확히 기억하게 되었다. 그는 배우 김희원이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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