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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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음악을 하는 목적은 ‘나눔’입니다. 주변에서 참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어요. 이 은혜를 갚기 위해 ‘쉼콘서트’를 시작했습니다.”

김희석(52) 백석대 음대 교수는 문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무료 콘서트인 ‘쉼콘서트’의 연출·진행자이자 대표 가수다. 구청 강당이나 복지관, 교도소 등으로 ‘찾아가는 콘서트’인 쉼콘서트의 주 관객은 고아와 독거노인, 다문화가정 등 문화 소외계층이다. 소외된 이들에게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한 공로로 김 교수는 지난해 12월 ‘2015 대한민국 사회봉사대상’에서 국회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상을 받았다. 지난 1월 5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쉼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실력이 정말 뛰어난데도 무대에 설 기회가 없어 힘들게 사는 후배들이 많았습니다. 이 후배들을 어떻게 도울까 하다가 ‘콘서트를 만들자’는 생각을 했어요. 후배들은 무대에 설 기회를 갖고, 관객에게는 좋은 공연을 무료로 제공하는 거죠”

첫 쉼콘서트는 2012년 홍익대 북스리브로 서점의 150명 규모 홀에서 열렸다. 당시 공연 기획과 사회를 맡은 김 교수는 “공연료를 받지 않는 대신 후배들과 함께 출연할 테니 ‘쉼’콘서트라는 이름을 걸어달라”고 주최 측에 요청했다. 김 교수의 공연료로 책정됐던 300만원은 함께 출연한 후배들에게 지급됐다.

쉼콘서트는 소외계층만을 위한 콘서트는 아니다.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흔적’이라는 주제로 열린 최근의 쉼콘서트에는 500여명이 몰렸다. 40~50대 중년 여성들이 주 관객층이다. 가수들의 공연 사이사이에 배경 영상과 메시지를 넣어 주제를 풀어냈다. 김 교수가 지난해 기획·진행한 쉼콘서트는 40회를 넘는다.

크로스오버(장르를 넘나드는 음악) 콘서트인 쉼콘서트에서 장르 제한은 없다. 국악에서 클래식까지 여러 장르의 연주자들이 등장한다. 주로 연출과 진행을 맡는 김 교수도 늘 한두 곡씩 직접 노래를 부른다. 한 곡 안에서 여러 장르가 뒤섞이기도 한다. 국악에 쓰이는 피리로 가수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나훈아의 ‘영영’을 이탈리아의 칸초네 스타일로 부르는 식이다. 독특한 매력에 콘서트를 찾은 관객들 중 많은 이들이 팬이 된다. 공연을 마치고 나면 쉼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는 “감동적인 공연이었다”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팬레터가 쇄도한다.

쉼콘서트의 ‘쉼’은 ‘휴식’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휴식이 무작정 늘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쉼콘서트가 추구하는 ‘쉼’은 ‘음악이 있는 쉼’이다. 다시 말해 ‘음악을 통해 감성을 어루만지는 시간’이 쉼콘서트의 모토다. 김 교수는 ‘힐링’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는 “정신적인 치유는 신(神)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감성을 어루만지는 것”이라고 했다. 열심히 일하지만 매일 깨지고 구르면서 힘들어하는 신입사원의 어깨를 60대 사장이 “힘들지”라며 두드리는 것이 그가 말하는 감성터치의 사례다. 김 교수는 “지친 현대인의 감성을 어루만져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것이 쉼콘서트의 목적”이라고 했다.

“크로스오버는 현대에 꼭 필요한 음악”

쉼콘서트는 관람료가 무료다. 이 때문에 항상 재원 조달이 문제다. 콘서트를 한 번 준비하는 데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이 든다.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등 일부 기업들이 후원을 하기는 하지만 늘 부족하다. 부족분은 김 교수의 월급과 개인 콘서트를 통해 모은 돈으로 메운다. 김 교수는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낸 빚도 최근 5억5000만원으로 한도가 꽉 찼다”며 “쉼콘서트를 꾸준히 후원할 수 있는 기업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마이크를 잡는 순간 주위에서 공격이 들어왔어요. ‘쟤는 딴따라(연예인을 낮춰 부르는 말)야’라는 식으로요.”

연세대 성악과를 졸업한 김 교수는 성악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가 처음 가수로 나서던 1993년에는 클래식과 대중가요의 경계가 뚜렷했다. 마이크를 쓰는 것이 성악가에게는 수치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성악가들이 육성으로 수백, 수천 명의 관객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지금도 성악가들은 세워놓는 마이크를 사용할 뿐 손에 잡고 노래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는 설 자리가 없었다. 정통 클래식을 전공한 이들로부터 ‘이단아’ 취급을 받은 그는 대중 음악회에도 나서기 어려웠다. 그의 학력을 본 주최 측이 그를 ‘성악 부문’에 넣고 성악을 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성악가가 왜 이런 곳에 나오냐”는 시선도 많았다. 그는 “성악과 전공자는 정통 성악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보니 주위에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내가 루치아노 파바로티나 조수미처럼 될 수 있는 방법이 뭘까’를 고민했죠. 그때 내린 결론이 크로스오버였어요.”

김 교수는 “크로스오버는 현대에 꼭 필요한 음악”이라고 했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고, 대중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관객의 수요도 다양해졌다. 이처럼 다양한 현대인의 수요를 충족해 주는 것이 크로스오버 음악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 전국에 실용음악 붐이 일면서 미리 관련 학위를 따둔 김 교수는 쉽게 대학에 둥지를 틀 수 있었다. 김 교수는 “현대인이 듣기에 편한 노래를 들려주자는 게 쉼콘서트의 취지”라며 “정통 재즈나 정통 클래식을 원하는 관객은 예술의전당에 가서 듣고, 우리 콘서트를 찾는 불특정 다수의 관객에게는 ‘재즈란 건 이런 것입니다’ 하고 맛만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를 말하면서 외모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동안(童顔)이다. 1964년생, 올해 52세가 된 그는 언뜻 보기에 40대 초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마주 앉으면 세월의 흔적이 좀더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동년배에 비해 10살 가까이 어려 보이는 외모다. 그는 동안 유지 비결로 ‘꾸준한 운동’과 ‘우엉차’를 꼽았다. 매주 2회씩 전담 트레이너에게 PT를 받고, 우엉을 달여 만든 차를 달고 살면서 건강관리에 신경을 쓴다. 술·담배는 전혀 하지 않는다. 노래방, PC방 등 밀폐된 곳에도 출입하지 않는다. ‘몸이 곧 악기’인 만큼, 철저한 몸 관리가 일 년에 수십 차례 공연을 다니는 원동력이다.

“일주일에 열 시간씩 학교 강의를 하면서 공연도 하니 바쁘죠. 사실 학교 측의 배려가 없으면 어려운 일입니다. ‘음악으로 나눔을 실천하자’는 쉼콘서트의 취지에 학교 관계자분들도 공감하시기 때문이겠죠. 새해에는 더 많은 분들에게 기쁨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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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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