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검사외전’
영화 ‘검사외전’

1990년대 충무로의 흥행 보증수표였던 배우 박중훈은 이런 말을 했다. “내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면, 적금을 붓는 영화와 그 적금을 깨서 쓰는 영화가 있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 ‘투캅스’(1993), ‘게임의 법칙’(1994), ‘인정 사정 볼 것 없다’(1999) 등이 전자였다면 ‘깡패수업’(1996), ‘체인지’(1997), ‘할렐루야’(1997) 등은 그의 이미지를 소비한 영화였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황정민의 ‘검사외전’은 어느 그룹에 속하게 될까. ‘국제시장’의 아버지 덕수, ‘베테랑’의 서도철 형사, ‘히말라야’의 엄홍길 대장, ‘검사외전’의 변재욱 검사는 흥행을 기준으로 본다면 같은 밴다이어그램에 묶을 수 있다. 그러나 캐릭터의 완성도로 본다면 아니다. ‘검사외전’의 변재욱은 배우 황정민이 그간 쌓아온 이미지를 얼마간 소비했다. 연기의 밀도의 문제가 아니라 캐릭터의 치밀도 문제다.

그러나 강동원에 비하면 황정민은 약과다. 전과 9범의 꽃미남 사기꾼 한치원은 강동원을 만나 가까스로 완성된다. ‘검사외전’의 후기 대부분은 “죄수복도 강동원이 입으면 (패션쇼) 런웨이” “잘생긴 강동원이 잘생김을 연기한다” 등으로 요약된다. 이는 그의 전작 ‘검은 사제들’의 “사제복을 입은 강동원이 멋있었다” “아기 돼지를 들고 뛰는 강동원이 멋있었다” 등의 후기와 비슷한 양상이다. 하지만 ‘검은 사제들’이 탄탄한 시나리오와 의외의 캐스팅이 만나 이룬 흥부형 대박이라면, ‘검사외전’은 의도적인 캐스팅으로 실수를 가린 놀부형 대박이다.

영화 ‘검사외전’
영화 ‘검사외전’

적지 않은 허점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강동원의 외모에 흔들리지 않고 영화를 냉정하게 보면 ‘검사외전’에는 적지 않은 허점이 발견된다. 먼저 사기 전과 9범이라는 그의 사기가 허술하다. 한치원(강동원 분)은 미국에서 자라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를 나온 재미동포 행세를 한다. “우리 펜실베이니아에서는~”을 입에 달고 살지만 실제로는 펜실베이니아에 대해 주입식으로 배운 철새 도래지만큼도 모른다. 본인이 졸업했다는 경영학과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비슷한 허술함은 그가 검사로 둔갑해 적진인 서울대 법학과 동문회에 참석할 때도 드러난다. 스스로 “저 휘문고 95기입니다, 선배님” 하고 본인을 소개하는데 정작 당시 선생님이 누구였는지는 모른다. 시나리오의 게으름을 덮는 건 강동원의 개인기다. 악의 축인 우종길(이성민 분)의 선거캠프에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다.

명문대 과점퍼를 입었을 뿐인데, 사무실에 내근하는 여직원의 눈빛이 흔들린다. 다음 수순은 몸도 주고 마음도 준 그가 우종길의 비자금 목록까지 넘기게 되는 것. 극 중 한치원의 작전은 ‘강동원의 미모’가 없으면 성립이 되지 않는다.

‘검사외전’에 비중 있는 여성 캐릭터는 단 둘뿐이다. 신소율과 신혜선이라는 충무로 유망주다. 이 두 사람 모두 강동원의 마성에 이성을 잃는 캐릭터로 소모되고 만다. 그나마 의미 있는 대사는 “그래도 난 오빠 믿어” “오빠, 우리 이러면 안 돼요” 정도다. 극 중 황정민과 라이벌 관계로 나오는 양민우 검사(박성웅 분)도 강동원에게 허탈할 정도로 쉽게 넘어간다. 야심가인 그가 강동원이 학력과 경력을 위조한 전과 9범의 사기꾼이라는 걸 알고 나서도 작전에 협조한다. 강동원이 딱풀로 붙여 만든 검찰청 출입증이 센서를 세게 두드리니 열리는 건 애교로 넘어간다고 해도, 그가 가짜로 사인한 ‘우종길 증인출석요구서’도 어영부영 넘어가는 건 놀랍다. 이는 황정민 사건 재심의 결정적 문건이다.

악역의 구조도 평면적이다. 황정민을 함정에 빠뜨린 우종길(이성민 분) 검찰부장은 자신이 저지른 살인의 유일한 목격자를 ‘팽’하는 무모함을 보인다. 앙심을 품은 그가 훗날 황정민의 편에 서리라는 건 어렵지 않은 추리다. 이성민의 입체적인 연기가 아니었다면, 이 역할 역시 허점이 많다. 영화 후반부에 우종길의 비리가 드러나는 장면은 작품의 하이라이트,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이제 와 드러난 게 이상하다. 국회의원을 꿈꾸는 그는 조폭 출신 건설회사 대표 장현석(한재영 분)와 유착 관계를 맺고 있다. 양민우 검사에 따르면 우종길은 장현석이 연루된 몇 사건의 담당검사로 연달아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전력이 있다. 황정민은 이후 장현석 사건을 담당해 강경하게 밀어붙이다 누명을 쓴다. 서류에 면면히 드러나 있는 내용인데 황정민은 당시 조폭 장현석에게 “너 검찰에 뒤 봐주는 사람 있니?”라고 묻는다. 우종길이 살인죄를 덮어씌워 징역 15년을 받게 하는 뒤통수를 쳤을 때도 “부장님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라고 울부짖는다.

재판에 나오기 직전 칼침을 맞은 황정민이 어떻게 저렇게 위풍당당하게 변론을 이어갈 수 있는가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교도소에서 그를 ‘영감님’으로 모시던 영철(김원해 분)이 문득 그에게 칼침을 놓은 이유도, 교도소에 들어온 황정민을 멸시했다가 떠받들었다가 다시 훼방하는 교도소장(김홍파 분)의 오락가락하는 마음도 영화는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도 일어난다. 실제 법정에서는 교도소에 수감 중인 죄수가 스스로를 변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가 법밥을 먹던 검사 출신이라고 해도 말이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이 장면이 가능하려면 최소한 그의 옆에 ‘국선변호사’라도 앉아 있어야 했다고 말한다.

천만으로 덮을 수 없는 반칙

설 연휴 둘째 날인 2월 7일 일요일 오후 5시, 영화관에 도착했을 때 볼 수 있는 영화는 6관에서 상영 중인 5시30분 ‘검사외전’과 7관에서 상영 중인 5시40분 ‘검사외전’이었다. 쿵푸하는 팬더(‘쿵푸팬더3’)를 보려면 두 시간을, 소리나는 로봇(‘로봇, 소리’)을 보려면 세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검사외전’은 당시 1806개의 상영관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었다. ‘검사외전’으로 입봉한 이일형 감독은 이 작품을 ‘킬링타임용 범죄오락영화’라고 소개했다. 영화를 보는 2시간 동안 ‘관객이 즐겁기를 바란다’고. 황정민과 강동원의 브로맨스, 조연들의 촘촘한 연기를 보는 것은 즐겁다. 그러나 이들을 전면에 내세워 눈가림한 느슨한 전개는 즐겁지 않다. 2월 18일 현재 ‘검사외전’의 관객 수는 850만을 돌파했다. 충무로에서는 네 작품이 연이어 메가히트를 치는 걸 보며 ‘황정민이 작두 탔다’는 말이 돈다고 한다. 강동원은 본인의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가장 많은 관객이 든 영화를 만났다. 하지만 황정민은 작두에 살짝 발을 베었다. 강동원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인 “외모 때문에 연기력이 가려지지 않느냐”는 그가 아닌 감독과 제작자가 대답해야 할 질문이다. 관객은 관람료를 소비했고, 타임과 함께 선택권도 킬링당했다. 1000만을 달성하면 모든 과오가 사라질까. 아무래도 반칙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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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슬기 톱클래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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