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향’에서 귀향굿을 하는 무녀 ‘은경’(최리 분). ⓒphoto 와우픽쳐스
영화 ‘귀향’에서 귀향굿을 하는 무녀 ‘은경’(최리 분). ⓒphoto 와우픽쳐스

2016년 3월 1일은 97주년 삼일절이었다. 이 하루 동안 42만명의 관객이 영화 ‘귀향’을 관람했다. 2월 24일 개봉한 이래 줄곧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이 영화는 이제 기적을 넘어 하나의 기록이 됐다. 2002년 영화가 구상된 시점부터 2016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귀향’이 걸어온 길을 숫자로 담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던 해,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속한 국악동아리 ‘바닥소리’는 세상과 동떨어져 잔잔한 일상을 보내던 ‘나눔의 집’ 할머니들을 찾았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국악을 좋아했다. 이들에게는 타지에서 홀로 아리랑을 부르며 견뎌온 시간이 있었다. 조정래 감독은 감독이기 이전에 바닥소리의 고수였다. 꾸준한 봉사활동으로 할머니들과 친분을 쌓던 그는 한 그림을 보았다. 강일출 할머니가 그린 ‘태워지는 소녀들’, 그는 말할 수 없는 충격에 빠졌다. 산속 구덩이에 몰아넣어진 한복 입은 소녀들과 이들을 둘러싼 새빨간 화염, 이를 지켜보는 군인들, 그리고 이 광경을 숨죽인 채 바라보는 소녀. ‘태워지는 처녀들’은 위안부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일본군이 자행하던 학살의 모습이었다.

11억6122만원 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화에 투자하는 기업은 없었다. 가까스로 중국 쪽과 연결됐지만, 주인공을 중국인으로 바꿔 달라는 요구에 투자를 거절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조정래 감독은 ‘귀향’의 제작 의도와 티저 영상을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 올렸다. ARS, 문자, 펀딩 등을 통해 영화 ‘귀향’의 제작비를 후원한 시민의 숫자는 7만5270명이다. 현재 ‘귀향’은 세계 영화사에서 가장 많은 후원자를 모은 영화가 됐다. 이 중에는 열두 살 아이가 세뱃돈을 모아 낸 돈도 있고 100원, 87원 등 티끌 같은 후원금도 있다. 이 티끌이 태산이 되어 11억6122만원이 모였다. 영화의 시나리오가 나온 지 13년 만인 2015년 4월 ‘귀향’은 비로소 크랭크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이 소액투자자들은 엔딩크레디트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흐르는 10분여의 시간 동안 관객 대부분은 자리를 뜨지 않는다.

20만명 2013년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 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추정하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는 약 8만~20만명으로 오차범위가 넓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위안부 피해자는 238명, 1000분의 1 정도만이 다시 고향땅을 밟았다. 영화의 시점은 주인공 정민과 영희가 끌려간 1943년과 1991년이 교차되어 흐른다. 1991년은 한국 정부가 최초로 ‘정신대 실무 대책반’을 꾸리고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해다. 각 지자체에서는 정신대 피해자를 대상으로 신고 접수를 시작한다. 극 중에서 동사무소 직원은 “제정신이면 자신이 끌려갔었다는 사실을 제 발로 신고하겠느냐”고 묻는다. 이는 피해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장면이다. 이 영화에 재능기부로 참여한 영희 역의 배우 손숙은, 동사무소에서 “내가 바로 그 정신 나간 사람이다”라고 울부짖는 장면이 가장 촬영하기 힘들었던, 가슴이 미어지는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영화 ‘귀향’의 한 장면.
영화 ‘귀향’의 한 장면.

44명 현재 생존한 위안부 피해자는 44명이다. 국내에 40명, 국외에 4명이 머물고 있다. 생존자의 평균 연령은 89세, 최연소 피해자조차 84세의 고령이다. 조정래 감독은 ‘귀향’이 연로한 할머니를 대신해 국내외를 누비는 ‘문화적 증거’가 되기를 소망한다. 영화가 완성된 후 12월부터 1월까지는 후원자를 대상으로 1차 시사회를 열었다. 나눔의 집 피해 할머니도 참석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할머니들은 “나는 살아있으니까 이런 순간도 보는데, 죽은 사람들은 ‘귀향’도 못 보네”라며 미안해 했다고 한다. 조정래 감독은 생존 피해자들은 죽을 때까지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을 안고 산다고 했다. 이미 제작진의 일부가 된 후원자들은 자발적 홍보대원이 되어 ‘귀향’의 후기를 SNS에 올렸다.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배우 손숙은 “광복이 10~20년만 늦었더라도 내 일이 될 수 있었던 이야기”라고 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배우로든, 스태프로든, 후원자로든, 관객으로든 참여해야 한다”는 이들의 호소는 기적을 일으켰다.

1위 영화의 개봉이 확정되었을 때 이 영화를 틀 수 있는 곳은 전국 21곳이었다. 포털사이트의 토론방에는 ‘귀향의 상영관을 늘려 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예매율을 올려야 상영관이 늘어난다는 말에 ‘귀향 예매율’은 연일 1위를 기록했다. 불편한 소재의 영화에 문을 닫았던 대형 멀티플렉스들도 점차 움직이기 시작했다. 메가박스가 처음으로 빗장을 열었고, 이어 롯데시네마가 상영관을 열었다. 개봉 직전, CGV도 ‘귀향’을 걸었다. 3~4일을 버티지 못하고 ‘병풍 영화’ ‘풍전등화 영화’가 되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2월 24일 ‘귀향’은 개봉 첫날부터 관객수 1위를 기록했다. 2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첫날부터 1위를 놓치지 않은 ‘귀향’은 1일까지 누적 관객 170만5327명을 모았다.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60만명, 삼일절 하루에만 42만여명이 ‘귀향’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박스오피스 점유율은 37.0%로, 첫날 23.2%를 기록한 후 이레째 매일 최고 기록을 세우고 있다. ‘귀향’을 상영하는 스크린 수도 늘고 있다. 개봉 첫날 512개이던 상영관은 지난 주말 769개로 늘어났고, 1일 876개까지 확대됐다.

3898회 삼일절까지 귀향이 상영된 횟수다. 조정래 감독은 20만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찍었다고 했다. 그의 바람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숫자만큼 영화가 상영되는 것이다. 일본, 중국, 필리핀 등 타지에서 이름도 없이 죽어간 이들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조정래 감독이 목표로 한 상영 횟수까지는 19만6102회가 남았다. 기적이 기록이 되기까지 남은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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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슬기 톱클래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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