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화만사성’에서 배숙녀로 나오는 원미경. ⓒphoto mbc
‘가화만사성’에서 배숙녀로 나오는 원미경. ⓒphoto mbc

먼 타국 땅에서 가족과 함께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은 바람결에 들려왔지만 돌아온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한때는 우리 가슴을 설레게 했고, 한때는 답답한 마음 시원하게 풀어주었던 그녀가 그리웠다. 강산이 한 번 변하고 또 반쯤 변하고 있던 어느 날 그녀에 대한 그리움도 조금씩 희미해져갈 때 그녀가 돌아왔다. 세월만큼 넉넉해진 모습으로 돌아온 배우 원미경, 반가웠다. 고운 주름 살포시 내려앉은 얼굴에 번지는 미소는 평화로웠다. 볼이나 턱에도 세월의 살이 살짝 올라있지만, 뺀뺀한 얼굴로 세월을 부여잡고 있지 않아 좋았다. 옅은 탁성(濁聲)에 살짝살짝 짧은 발음도 그대로였다.

그녀의 복귀작은 ‘가화만사성’(MBC). 자수성가한 중국집 안주인 배숙녀 역이다. 말이 좋아 안주인이지 고집불통, 자린고비, 놀부의 삼위일체인 남편 봉삼봉을 떠받들고 사는 전천후 비서다. 남편의 한마디 호통에 심장이 쪼그라들고 등에선 땀이 흐른다. 찍소리도 못하고 절대 복종. 그런 그녀가 꿈꾸는 것은 ‘봉삼봉의 전(前) 부인’이 되는 것. 오죽했으면 그럴까 싶다. 아내로, 중국집 주방 직원으로 남편을 도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며 살아온 것이 40년, 이제야 며느리에게 주방 자리를 물려주었지만 변한 것은 별로 없다. 치킨집 할아버지 흉내 내듯 중국집 앞에 세워둔 남편 닮은 커다란 인형은 매일매일 닦아줘야 한다. 인형이 남편인 듯 가끔은 발길질도 하고 주먹질도 하며 화풀이한다. 그런 배숙녀에게서 15년 전 삶의 주체적 존재로서 아줌마를 새롭게 부각시켜준 ‘아줌마’(2001)의 오삼숙이 보였다.

오삼숙은 오빠 친구인 장진구의 아내이다. 잘난 아들 출세시켜 고단한 과부 팔자 위안받으려 했던 어머니 아래서 오빠의 몸종처럼 자란 삼숙에게 남편은 또 다른 오빠였고, 떠받들어야 할 존재였다. 장진구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에게 퇴짜 맞은 후 얼떨결에 삼숙과 사고 치고, 임신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결혼했다. 사사건건 고졸 출신이라 무시하는 남편이지만 그래도 존경했는데, 시아버지 퇴직금으로 대학 전임강사 자리를 사고, 음주운전을 돈으로 해결하고, 심지어 유부남인데도 다른 여자를 버젓이 사랑한다는 남편을 보니 구역질이 났다. 배운 사람은 다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무조건 복종하고 살아온 자신의 삶이 불쌍해 보였다. 세상이 낯설긴 했지만 독립하자 마음먹으니 용기가 생겼다. 서툴면 서툰 대로, 정정당당하고 힘차게 살자고 마음먹으니 두렵지 않았다.

가정에만 충실했던 존재가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모델이 오삼숙이라면, 장진구는 지식인들의 허구와 가부장적 제도하의 남성들이 갖고 있는 자기모순의 총체였다. 장진구의 몰락은 아줌마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했고, 아줌마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실천할 수 있는 동력이 되어주었다.

원미경은 1978년 미스 롯데 1위에 입상하면서 TBC 20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세련된 외모가 단연 돋보였다. 그녀의 데뷔작은 TBC 8·15 특집극 ‘파도여 말하라’(1978)이다. 독립운동 중심의 특집극과 달리 나전칠기의 전통을 지키려는 장인(匠人)들의 이야기를 다룬 특집극이었다. 외모만큼 연기도 단아했고, 깔끔했다.

이어 ‘청춘의 덫’(1979)으로 영화에도 데뷔했다. 이 영화는 원래 김수현 원작의 MBC 주말드라마였다. 돈이 모든 것의 가치를 앞설 수 있다는 비뚤어진 욕망을 정면으로 파헤치다 보니 표현도, 메시지도 강했다. 그래서였을까. 반인륜적이고 당시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20회 만에 조기 종영되었다.

이미숙·이보희와 함께 1980년대 트로이카

작가는 ‘청춘의 덫’을 소설로 펴냈고 영화로도 만들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이 신인 배우 원미경이었다. 대기업 회장의 딸 영주로 출연한 그녀는 작가와 감독의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했고, 영화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녀는 데뷔작이자 생애 첫 영화로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거머쥐었다.

하루아침에 스타 반열에 오른 그녀는 CF는 물론이고 텔레비전과 영화를 누비며 1960년대 트로이카인 문희·윤정희·남정임, 1970년대 트로이카인 장미희·유지인·정윤희의 뒤를 이어 이미숙, 이보희와 함께 1980년대 트로이카로 자리매김했다. 영화배우로서의 그녀는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1984), ‘자녀목’(1985), ‘변강쇠’(1986), ‘사노’(1987) 등 토속 에로물을 통해 글래머러스하고 성적인 이미지가 강했지만, 사실 그녀의 작품을 보면 여성의 존재를 변화시키는 의미 있는 변곡점이 많았다.

출생의 비밀, 뒤바뀐 신분으로 얽힌 두 자매의 이야기를 그린 ‘사랑과 진실’(1984)은 강요된 복종에 순종하는 전통적인 여인이 아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여인을 보여주었다. 시청률 78%라는 경이적 기록을 남긴 ‘사랑과 진실’에서 원미경은 모범생 언니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는 동생 미선이었다. 남보다 잘살고 싶은 욕망은 가득하나 언제나 마음이 먼저 뜨거워졌다. 식지 않는 욕망을 품고 사는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그녀는 혼신을 다해 그려냈다. 화려한 화장과 공주풍의 의상,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더욱 당당해야 했던 오만함까지.

어찌보면 그것은 원미경 자신이기도 했다. 풍족했던 어린 시절, 4남매의 막내로 귀여움 받으며 자랐지만 갑자기 기울어진 가세로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원래 꿈은 화가였다고 한다. 어쩌다 배우가 되고, 데뷔하자마자 주목받은 그녀는 화려한 비상의 꿈을 품고 더 높이 날아오르려 했다. 그런 원미경이 미선의 삶 속에 들어있었다.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1990)에서 그녀는 성폭행당한 가정주부였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로 성폭행범의 혀를 깨물어 잘라버렸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녀는 상해죄로 고발당했다. 법은 여자에게 평등하지 않았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그녀에게 쏟아지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가족의 불신은 그녀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좌절된 일상에 굴복하지 않고 법과의 사투를 벌인 끝에 그녀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전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토속적 육감미나 화려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녀는 자기 삶을 사랑하는 평범한 주부가 되었다. 20세기 말 여성 인권과 사회적 불평등의 현주소를 진솔하게 보여준 그녀는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원미경은 세월의 아름다움을 아는 배우다. 젊은 시절엔 빛나는 젊음을 뽐내며 누구보다 화려하게, 누구보다 세련되게, 때로는 농염하게, 때로는 감미롭게, 그 시절이 지나면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을 한껏 보여주었다. 이젠 옅은 화장에도 수줍어하고, 몸매가 드러나거나 화려한 의상에는 왠지 불편해 하는 오십 중반이 된 그녀. 한때는 아슬아슬한 비키니 수영복을 거침없이 입어내고, 공작새처럼 화려하게 자신을 꾸미고 도도하게 대중 앞에서 섰던 그 원미경인가 싶을 만큼 평범해진 그녀가 돌아와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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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희정 드라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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