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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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김준현은 매주 토요일 밤 서울 상암동에서 땀을 흘린다. 국내 유일의 생방송 코미디 프로그램 ‘SNL 코리아’(tvN)에 출연 중인 그는 셔츠가 흠뻑 젖을 정도로 아침부터 시작된 방송 준비에 몰입하지만, 생방송이 주는 긴장감에선 자유롭지 못한 듯했다. 잠시의 틈도 없었던 토요일을 보낸 다음 날인 9월 25일 오후 그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밤 12시가 다 되어 끝났으니 피곤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유쾌 상쾌했다.

요리연구가이자 방송인인 백종원은 그를 일컬어 ‘국수 먹방의 1인자’라고 부른다. 밤 12시가 넘어 TV 채널을 돌리다 국수 먹는 그를 만난다면 그건 참 괴로운 조우(遭遇)가 된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국수를 풍성하게 한 젓가락 집어 호호 불면 뜨거운 김은 살짝살짝 날아간다. 후루룩 소리만으로도 경쾌한 국수는 허공 속에서 찰랑찰랑 춤추며 입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중간에 한 번쯤 끊어 먹을 듯도 하건만 그는 긴 호흡으로 국수를 끊지 않고 단번에 먹는다. 잠든 식욕이 사정없이 깨어나는 순간이다.

대식가이면서 미식가인 그는 무조건 많이 먹지 않고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지 생각한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그 즐거운 일로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도 직업이 되면 벅차고 힘들 때가 있을 것인데 아무리 먹는 것이 좋다 해도 ‘먹어야 하는 것’이 벅찰 때는 없을까 궁금했다. 그는 아직까지는 그런 적이 없다고 쑥스럽게 말했다. 먹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단다. “하루 세끼를 즐기면 인생 전체가 즐겁다”는 그의 말처럼 먹는 즐거움에 오롯이 빠져 있는 듯했다.

‘맛있는 녀석들’(코미디TV)에서 그는 먹성 좋은 개그맨 유민상, 문세윤, 김민경과 함께 방송시간 내내 먹는다. 한 회에 두 가지 음식을 먹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추석 다음 주 방송에서 그들은 새우구이를 세 판이나 먹었다. 한 판에 50~60마리가 올라가니 한 사람당 30마리 이상을 먹은 셈이다. 새우머리까지 달달 볶아 밥에 얹어 먹고, 토르티야도 먹고, 짜장새우라면까지 먹었다. 그것이 첫 번째 음식이었다. 이동하여 두 번째는 돼지김치찜. 넷이서 9인분을 먹었다. 무한정 먹으며 녹화하는 동안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무엇과 함께 먹어야 더 맛있는지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이에 반해 ‘백종원의 3대 천왕’(SBS)에선 무작정 먹지 않는다. 숨은 맛을 찾아내고 그 비법을 따라간다. 그는 스튜디오의 맛검색사다. 스튜디오에서 재연되는 맛집 음식들을 먹어보고 그 집만의 맛을 느낀 그대로 전해준다. 맛 표현이 어찌나 오색찬란한지 그의 이야기만으로도 침샘은 충분히 자극된다. 신대륙 탐험에 나선 모험가 같은 비장함과 수천 년 전 유물을 발굴해내는 고고학자의 집요함과 수만 가지 이야기를 써내려간 문장가의 유려함을 동시에 갖고 있는 듯했다.

돼지갈비와 짜장면을 좋아한다는 그는 요리도 잘한다. 돼지고기 두루치기와 비빔국수는 어느 맛집보다 맛있게 만들 수 있어 밖에서 사먹지 않고 꼭 집에서 만들어 먹는단다. 그는 어떤 음식점에 가든 메인 음식이 나오기 전에 상에 펼쳐진 기본 반찬과 따끈한 밥을 먼저 먹는다. 설렁탕집에서는 깍두기를, 백반집에서는 나물을, 국밥집에서는 김치를 먹는다고 한다. 막 지은 밥에 잘 익은 김치와 맛깔나게 만든 반찬 몇 가지면 최고의 밥상이라 생각한다는 그는 기본을 중요시하는 사람인 듯했다.

“비강(鼻腔)을 터져 나오는 풍미가 절정”

음식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그에게 음식은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김준현은 “음식은 예술”이라고 답했다. 따끈한 흰밥 한 수저 위에 올려진 김치와 반찬들은 그 색감으로 시각을, 수저가 들어갈 때와 음식을 씹을 때 입의 움직임은 감각을, 제각각의 리듬으로 씹히는 음식의 소리는 청각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절정은 음식을 다 먹고 난 뒤 비강(鼻腔)을 통해 터져 나오는 풍미라고 했다. 미식가다운 견해였다.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삶의 해답을 찾고 싶었던 그는 철학이 이끌어줄 것이라 생각했고 주저없이 철학과를 지원했다. 철학의 길은 생각보다 멀었고 그 안에 숨어 있던 개그맨의 끼는 빠른 속도로 본색을 드러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당연한 듯 대학로 개그 극단으로 갔다. 5분 내외의 짧은 시간에 사람들을 웃겨야 하고, 그러기 위해 다양한 역을 소화해내야 하는 것이 개그맨이기에 정확한 발음과 순발력은 필수다. 그래서 그는 만화책을 큰소리로 끝없이 읽고 또 읽었다. 마이크가 없는 소극장이기에 벽에 거꾸로 기대서 책을 읽으며 성량도 키웠다. 극단에서의 시간은 기초를 단단하게 해주는 보약이었다.

탄탄한 훈련으로 단련된 타고난 목소리는 ‘개그콘서트’(KBS) ‘DJ 변의 음악이 필요한 밤에’ 코너를 통해 꽃피었다. 할리우드 영화 예고편 하면 떠오르는 중저음의 성우 돈 라폰테인(Don LaFontaine)을 떠올리게 했던 이 코너에서 그는 검은 옷을 입고 등장하여 실감 나는 목소리 연기와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개그콘서트’에 올인했던 몇 년 동안 그의 기억에 가장 남는 코너는 김상궁 역의 ‘조선왕조 부록’과 뚱뚱한 남자 역의 ‘네 가지’라고 한다. ‘조선왕조 부록’은 개그맨이 된 후 첫 코너였는데, 첫 등장부터 여자 역을 한다는 것이 내심 부담이었다고 한다. 개그맨 사이에선 하다하다 안 될 때 하는 것이 여자 역이라는 징크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화가 나면 괴력의 김상궁으로 돌변하는 반전의 묘미를 잘 살리면서 신인의 관문을 통과했다.

‘네 가지’ 코너는 가장 재미있고 신나게 모든 것을 흠뻑 뽑아냈던 코너였다고 한다. 개그맨들은 자신들이 연기할 작품의 소재를 직접 만들어낸다. 그래야만 실감나게 연기하고 배꼽 빠질 만큼 웃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작가와 개그맨은 혼연일체가 되어 소재 발굴에서부터 대본 작성, 연습, 관객과의 호흡까지 전심전력으로 임하는데 그 모든 것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그는 카메오이긴 했지만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KBS), ‘직장의 신’(KBS)에 이어 ‘부탁해요 엄마’(KBS)에서는 주인공 유진을 좋아하는 진상 건물주 김사장으로 출연하며 반짝 카메오를 넘어 탤런트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왠지 영화 ‘마부’의 김승호와 같은 배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의 버킷리스트 중 첫 번째는 전 세계 디즈니랜드를 가보는 것이다. 그건 디즈니랜드에 울려퍼지는 ‘When you wish upon a star’를 들을 때 어린 시절 꿈꿔왔던 모든 것을 이룬 듯 뿌듯해지고 뭉클한 감동이 밀려오기 때문이란다. 그 다음은 작은 저수지 하나를 사서 마음껏 낚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낚시터에 자주 가지 못하는 낚시광 김준현의 한없는 낚시 사랑이 느껴졌다.

개그맨으로 진행자로 예능 프로그램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는 그가 그리는 30년 뒤의 김준현은 짐 캐리나 로빈 윌리엄스와 같이 코미디의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배우이고, ‘송해 선생님’처럼 한 프로그램을 오래도록 진행하는 멋진 진행자이다. 먹방스타 김준현의 오늘은 다양한 음식을 맘껏 먹을 수 있는 고급 뷔페 같다면, 그가 꿈꾸는 내일은 진하게 우러난 국물 맛이 끝내주는 든든한 곰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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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희정 드라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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