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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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익숙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영화 연출 공부를 하다 얼떨결에 출연한 영화 ‘깡패 수업’이 데뷔작이라고 하니 벌써 20년 차 배우다. 작품이 적었나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다. 데뷔 이후 연평균 5편의 작품에 출연했고, 심지어 2012년엔 영화 8편, 드라마 4편에 출연했으니 이름 석 자 익숙할 만도 한데 얼굴만 눈에 익을 뿐이었다. 그런 그가 ‘임진왜란 1592’(KBS)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완벽하게 연기해내며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확실히 알렸다. 더 이상 “있잖아 그 사람”이 아니라 “배우 김응수”로 불리는 그의 요즘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각종 인터뷰뿐만 아니라 지상파 뉴스에도 출연하는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로 몰입하며 히데요시로 살았던 시간이 헛되지 않아 보였다.

‘임진왜란 1592’는 국내 방송 사상 최초의 팩추얼(Factual) 드라마다. 사실에 충실해야 하는 다큐멘터리는 경직되어 있고, 상상의 세계를 그려야 하는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을 쉽게 흔들었다. 이 두 영역을 융합한 팩추얼 드라마는 역사 기록에 근거한 사실주의 드라마다. 극중 인물과 이름, 역할 모두 역사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세밀한 컴퓨터그래픽과 짜임새 있는 촬영은 어느 작품보다 사실적이고 장엄한 해상 전투신을 만들어냈다. 배우들 또한 주어진 역에 완전히 동화되어 400여년 전 임진왜란 시대의 인물이 되었다. 중국 CCTV와의 공동 제작이었기에 한·중·일 삼국의 언어가 등장하는 제작 현장은 늘 복잡했다. 게다가 연출은 다큐멘터리 전문 PD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팩추얼 드라마 제1호는 의미 있는 시도였고, 배우 김응수에겐 행운이었다.

전쟁의 주범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인간의 광기가 만들어낸 참혹한 현실 앞에서 묵묵히 세상을 지켰던 사람들을 통해 임진왜란의 원인을 찾고자 했던 제작진. 그들에게 김응수는 도요토미 역에 최적인 배우였다. 그는 팩추얼 드라마다운 연기를 위해 역사책을 탐독했다. 기존 작품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이순신 장군의 대척점에 있는 원수로서의 도요토미가 아니라 도요토미 자체를 제대로 그려내야만 임진왜란이 전하는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었다. 결국 그는 ‘영악하고 잔인무도한 전략가이자 타인의 욕망을 이용해 자신의 야욕을 실현’시키려 했던 콤플렉스 덩어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었다.

도요토미를 맡은 그가 구사하는 일본어를 보고 많은 사람은 놀랐다. 함께 공연한 배우들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연극배우 출신이 많다 보니 일본에서 제작된 역사극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싱크로율 100%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현대극과 다른 대사 처리에서부터 원숭이라 불렸던 도요토미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그는 제작발표회 당시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이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이상의 ‘날개’를 달달 외운 청년

소설을 좋아한 충청도 서천 출신 청년은 이상의 ‘날개’를 몽땅 외울 정도로 탐독했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고전문학들은 항상 그와 함께했다. 군산제일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아버지의 자랑이었지만 미래를 향한 부자지간의 생각은 달랐다. 재수와 가출 끝에 서울예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그는 소망했던 대로 연극배우가 되었다. 무대는 항상 살아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그 무대가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즈음 영화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영화 연출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서른의 나이에 시작된 유학 생활은 고달팠다. 일본어도 능숙하지 않았고 돈도 없었다. 비가 새는 판잣집에서 새우잠을 자도 좋다는 신혼이었지만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새벽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아내 또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했다. 아끼고 또 아끼고, 그러면서 공부를 했고, 그는 연기와 연출 모두를 품게 되었다.

하지만 유학을 다녀왔다 해서 삶이 윤택해진 것은 아니었다. 예술가에게 생활은 언제나 풀어야 할 숙제였다. 불혹을 향해 가는 한 가정의 가장인 무명배우 김응수. 아무리 자신이 선택한 길이고, 그래서 유명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될 것 없다지만 쉬운 시절은 아니었다. 연기보다 연출에 대한 꿈이 컸던 그에게 현실은 배우의 길을 가라 했다.

세계적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의 일본 영화학교 출신이어서 그런지 그는 유난히 일본인 역을 많이 했다.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미우라 경관, ‘한반도’ 오야마 대사, ‘가비’ 미우라 공사, 드라마 ‘자유인 이회영’(KBS) 미쓰와 소좌, ‘각시탈’(KBS) 콘노 고지 총독부 경무국장, ‘조선 총잡이’(KBS) 일본 거상 야마모토 신지 등, 연출의 맥을 알고 있기에 그의 연기는 더욱 자연스러웠다.

배우 김응수의 악역은 권위적 카리스마가 있다. 뒷골목 어디쯤, 또는 빈민가 모퉁이에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넘보는 찌질한 악당이 아니다. 세상 권위와 부 모두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탐욕을 내려놓지 못하는 고위공무원, 판검사, 국회의원, 회장 등이 그의 몫이었다. 특히 사극에서의 그는 영의정·좌의정을 두루 섭렵하며 권력의 수장으로, 때로는 배후 세력으로 음험한 모습을 드러내는 데 탁월했다. ‘추노’(KBS)에서 백성과 임금을 기망한 탐관오리 좌의정 이경식을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연기해냈고, ‘해를 품은 달’(MBC)에선 왕의 장인이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영의정 윤대형으로 추악한 욕망의 이면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그의 악역이 차별화되는 것은 단순히 소리를 지르거나 인상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악인의 내면에 입체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왜 악인이 되었는지, 그를 악의 굴레에 머물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가 명확히 드러날 때 선과 악으로 구성된 극은 생명력을 갖는다. 그래서 그의 ‘입체적 악인’ 연기는 인상적이다.

그에게 가족은 영원한 응원군이고, 든든한 보금자리이다. 딸과 함께 출연한 ‘스타 주니어쇼 붕어빵’(SBS)에서 그는 딸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구닥다리 아빠의 전형이었다. 퀴즈를 풀 때 딸이 맞히지 못하면 버럭 화를 내기도 하고, 딸의 시선에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며 당황도 하지만, 일등을 못한 딸이 울음을 터트렸을 땐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아빠였다. 외식하자 조르고, 살 것이 있다며 돈 달라는 아내에게 아껴 쓰라고 짠돌이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오랜 시간 자신만을 믿고 함께해준 아내가 그는 더없이 고맙다고 한다. TV에 나온 아들의 모습을 보고 한없이 좋아하셨던 어머니를 보며 효도가 다른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기쁨을 드리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드라마로 연기 영역을 넓혔다는 그는 속정 깊은 아들이고 남편이고 아빠였다.

연극에서 시작하여 영화 연출 공부를 거쳐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이제 감독을 꿈꾸고 있다. “싸우지 말고, 돈, 돈 하지 말자는 따뜻한 메시지를 세상에 보내고 싶고, 관객들이 다 별거 아니구나, 욕심 때문에 그런 거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하고 싶다”는 감독지망생 김응수는 앞으로 10편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의 10%밖에 보여주지 못했다는 그의 겨드랑이에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비상할 날개가 돋아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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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희정 드라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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