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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6호] 2016.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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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부조리한 게임의 규칙을 깨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끝은…

공희정  드라마평론가 tigerheehee@hanmail.net 

▲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는 괴짜 천재 의사 김사부를 연기한 한석규(왼쪽)와 유연석(가운데), 서현진이 호연을 펼치며 시청률 20%를 넘겼다. photo SBS
뉴스가 최강 콘텐츠인 시절, 중국의 한류 콘텐츠 제재 조치까지 겹쳐 요즘 드라마는 안팎으로 춥다. 미니시리즈, 주말드라마, 일일드라마 등 지상파 및 케이블 방송에선 23편의 드라마가 본방송 중이지만 반 이상이 한 자릿수 시청률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 시청률 22.8%를 기록하며 순항하는 드라마가 있다. ‘낭만닥터 김사부’(SBS). 체제를 지배하는 게임의 규칙을 따른 자와 이를 어긴 자의 이야기이다.
   
   외딴 시골 ‘돌담병원’의 괴짜 의사 김사부(한석규 분)와 국내 최대 규모의 ‘거대병원’ 병원장 도윤완(최진호 분)이 선과 악의 축이다. 김사부는 천재 의사다. 일반외과·흉부외과·신경외과 수술을 집도할 수 있는 국내 딱 하나뿐인 트리플 보드. 신속한 판단력과 대담함, 타고난 수술 솜씨까지 갖추고 있는 그를 넘어설 수 있는 의사는 없어 보였다. 환자를 모두 살릴 수는 없지만, 살릴 수 있는 환자라면 꼭 살려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그런 그를 결코 인정할 수 없는 도윤완은 의술이 아니라 정치술로 그를 뛰어넘으려 했다. 약자의 죽음을 은폐하고, 강자의 독식을 합리화하며 원하는 것을 손에 쥐는 것, 그것이 그의 삶이었다. 탐욕을 선이라 말하는 그가 카지노업계 대부가 재단 이사장인 이 병원 원장이 되기까지 하루도 긴장하지 않은 날은 없었다. 불편한 경쟁자는 언제나 제거 대상이었다. 그중 최강은 부용주. 이 세상 어디에도 발붙일 수 없게 하겠다며 누명을 씌워 쫓아냈는데, 세상에 그가 김사부란 이름의 의사로 살고 있다니. 그것도 천재성과 인간성을 모두 갖추고 말이다. 그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옳은 것은 모두에게 이로운 것이다. 하지만 도 원장이 살고 있는 세상은 달랐다. 나에게 이로운 것이 옳은 것이었다. 생명마저 돈과 힘 앞에 굴복했다. 비겁한 결속력이 기득권이란 이름으로 세상을 지배했고, 삶은 길을 잃은 채 그저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버둥거렸다. 그런 규칙을 김사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은 김사부만이 아니라 그의 후배들에게도 불행의 근원이었다.
   
   분명히 먼저 도착했고, 상태도 위급했다. 그러나 VIP 손님인 의원님 진료가 아버지의 응급함보다 우선이었던 순간, 아버지는 들이마신 숨을 내뱉지 못했다. 응급실 진료 순서가 환자의 상태와 무관하다는 것을 목격한 어린 동주(유연석 분)는 죽어라 공부해 의사가 되었다. 전국 수석으로 외과 전문의 관문을 통과했고 ‘거대병원’ 의사 명함을 손에 쥐었다. 아버지를 앗아간 것이 돈과 힘의 부재라 생각했던 그는 의사로의 성공이 모든 것을 이뤄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금수저들의 울타리 안에 넣어주지 않았다. 불평등의 시대, 차별의 벽은 높았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체제를 지배하는 게임의 규칙을 흔들고 있다. 아무도 동의한 적 없지만 누구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이 게임의 규칙과 정면 대결하는 김사부의 행보는 언제나 당당했고 시청자들은 그를 응원했다.
   
   국내 최초의 의학드라마는 1980년 방송된 ‘소망’(KBS)이다. 소도시 개업의사인 신구를 중심으로 환자들의 사연과 의료진의 애환을 그렸다. 당시 신문 기사에 의하면 “의사들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작가 다섯 명이 릴레이식으로 집필”했다고 한다. “환자와 의료진 간의 불신이 심각해지는 요즘 새로운 의사상을 정립하고 참다운 휴머니즘을 보여주겠다”는 것이 기획의도였다. 산소호흡기, X선 촬영기, 심전도 측정기 등이 병원 협찬으로 드라마에 등장하면서 “진짜 병원을 보는 것 같다”는 시청 소감이 있기도 했지만 지금 보면 어설프기 짝이 없는 지난 시절의 한 장면이다.
   
   이후 ‘종합병원’(MBC), ‘하얀거탑’(MBC), ‘외과의사 봉달희’(SBS), ‘골든타임’(MBC), ‘굿닥터’(KBS) 등으로 이어지며 의학드라마는 표현이나 내용 면에서 괄목할 만한 진화를 거듭했다. 어설펐던 진료 장면은 실제라 해도 속을 만큼 사실에 근접해갔다. 전문의들이 기획 단계부터 자문 역을 하고, 녹화 현장에서 세세한 표현들을 꼼꼼히 잡아주었다. 배우들은 심폐소생술과 같은 응급의료 행위를 수없이 연습했고, 입에 쉽게 붙지 않는 방대한 양의 전문 의학용어를 통째로 암기했다. 단순히 붉은색의 액체로는 시청자들의 예리한 시선을 속일 수 없는 혈액도 이제는 피 비린내마저 머금고 있는 듯하다. 수술의 사실감을 살리기 위해선 더미라고 하는 고무인형을 사용하기도 하고, 식용 곱창이 동원되기도 한다.
   
   
   시청자들 의학상식이 늘다
   
   내용 면에서도 병원에서 의사들끼리 연애하는 한국형 의학드라마의 늪에 빠지지 않고 대립과 갈등, 이합과 집산, 파괴와 몰락, 부패와 물신 숭배의 혼란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생명의 소중함과 의사로서의 소명을 더욱 또렷이 부각하고 있다.
   
   의학드라마는 시청자들의 의학 상식 수준도 향상시켜주었다. 혼수 상태를 의미하는 ‘코마(Coma)’란 단어가 익숙해진 것은 ‘종합병원’에서였다. 심정지 상태는 ‘어레스트(Arrest)’, 맹장염은 ‘압페(Appendicitis)’, ‘헤파린(Heparin)’은 혈액응고 방지제, ‘졸피뎀(Zolpidem)’은 마약 성분의 불면증 치료제라는 것, ‘코드 블루(Code Blue)’가 심정지 또는 호흡정지 환자가 발생한 응급 상황이라는 것도 의학드라마를 통해 일반화되었다.
   
   그런 의학드라마의 계보에 한 획을 긋고 있는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김사부로 등장한 한석규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성우 출신인 그의 명확한 발성과 안정된 호흡은 여전했다. 편안하면서도 신뢰감 충만한 목소리는 딱 김사부였다. 다소 마른 몸매에 허름한 무채색 옷을 걸쳤지만 환자를 보는 눈빛은 예리했고, 처방은 신속·정확했다. 수술실에서의 그는 두려움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의사로서의 신념을 자신의 정수리 위까지 끌어올리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영화 데뷔작이었던 ‘닥터봉’에서 치과의사 역을 한 적은 있지만 의학드라마는 처음이라고 한다. 특히 한동안 사극에 몰입했던 그에게 김사부는 단순한 연기 변신 이상의 의미가 있는 듯했다. 그는 ‘낭만닥터 김사부’ 제작 발표회 때 “연기자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봤는데 답이 탁 튀어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했습니다. 현대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그 답을 찾기 위해 질문하고 고민할 때 출연 제의가 왔습니다”라고 했다. 자신이 “가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동안 지울 수 없어 힘들었던 그는 “가짜를 통해 진짜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배우의 몫이라는 답을 얻었다고 했다.
   
   김사부는 끊임없이 후배 의사들에게 묻는다. 왜 의사가 되었냐고. 그것은 어떻게 살 것이냐는 것과 같은 선상에 있는 질문이었다. “인종, 종교, 국적, 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맹세한 의사의 직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김사부는 든든한 스승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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