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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8호] 2016.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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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미드를 보면 정치가 보인다

유슬기  조선pub 기자 prima@chosun.com 

▲ 1999~2006년까지 방영된 ‘웨스트 윙’.
신년 초 후드티셔츠를 입고 콘칩을 먹으며 텔레비전으로 대통령의 연두교서를 지켜보던 한 평범한 남자가 있다. 아내와 함께 워싱턴의 안전주택에 머물던 그는 하루아침에 대통령이 된다. 창문을 열어 보니 백악관은 폭탄테러로 불타고 있고 연두교서에 참석한 고위 공직자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지정생존자(Designated Survivor)’, 미국 대통령이 그 위치를 유지할 수 없을 때 대통령의 권한이 계승되는 인물을 뜻한다. 보통 국무위원 중에 한 사람이 지명되는데, 대통령과 상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취임식, 연두교서 등의 행사가 있는 날 ‘지정생존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지정생존자는 이들과 멀리 떨어진 곳, 안전가옥에 머물러야 한다. 모든 내각관료가 수행불능 상태가 되면 지정생존자가 행정부의 수장이 된다.
   
   
   흥행불패, 미국의 정치드라마
   
   넷플릭스가 새롭게 선보인 이 드라마는 ‘하우스 오브 카드’ ‘웨스트 윙’에 비견되는 미국 정치드라마 신작이다. 버락 오바마, 시진핑, 힐러리 클린턴 등은 모두 이 드라마들의 덕후임을 숨기지 않았다. 미국에서 백악관을 배경으로 하는 정치드라마는 이미 성공한 콘텐츠의 교본이다. 백악관의 상징성 때문이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월터 리프먼은 “미국은 언제나 국가일 뿐만 아니라 꿈이었다”라고 말했다. 이 꿈의 국가가 집약된 곳이 백악관이다. 미국은 유럽이 2000년 동안 경험했던 것을 한두 세기 안에 압축적으로 겪었다. 이 초고속 압축성장은 미국을 초초강대국으로 만들었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는 저서 ‘미국은 드라마다’에서 “미국 역사는 그 자체로 드라마”라고 썼다.
   
   먼저 성공한 미국 드라마의 한 획을 그은 ‘하우스 오브 카드’와 ‘웨스트 윙’을 살펴보면 이 둘이 바라보는 시각은 상반된다. ‘웨스트 윙’이 백악관의 빛이라면, ‘하우스 오브 카드’는 그 그림자다. 이는 제목에서부터 드러난다. 카드로 지은 집을 뜻하는 ‘하우스 오브 카드’는 한국식 표현으로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을 뜻한다. 권모술수와 협잡에 능한 주인공 프랭크 언더우드가 백악관을 바라보는 시각이기도 하다. 그는 공공연하게 “민주주의는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가 권력을 탐하는 이유, 백악관을 차지하고자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돈은 10년 후면 무너질 고급저택이지만, 권력은 몇백 년 유지되는 석조건물”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대부분의 내용을 민주주의라는 허울 속에 가려진 금권주의와 배금주의, 권력의 음모를 비추는 데 할애한다.
   
   한편 ‘웨스트 윙’은 대통령과 참모진,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이들이 선한 의지로 정치를 이끌어간다고 믿는다. 의견은 달라도 이들은 민주주의 기본인 협상과 토론을 통해 난제를 해결한다. 실제로 ‘웨스트 윙’은 백악관 서관을 뜻하는 말이다. 백악관의 공적인 기관이자 주요 집무를 수행하는 부통령, 비서실장, 핵심 참모들의 회의실, 프레스룸, 기자회견장 등이 모여 있다. 미국 언론에서는 백악관의 뜻을 전할 때 “웨스트 윙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방영된 이 드라마는 “웨스트 윙은 백악관이 미국을 경영하는 곳이자 세계를 경영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전했다.
   
   미국 드라마 덕후들에게 ‘인생 드라마’라고 불리는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현실정치를 반영하는 ‘극사실주의 드라마’라는 것이다. 실제로 ‘웨스트 윙’과 ‘하우스 오브 카드’ ‘지정생존자’에서는 미국 대통령에게 생길 법한 일들이 일어난다. 대통령 당선부터 각종 입법, 참모진의 스캔들, 탄핵의 위기, 재선 성공, 돌발상황으로 인한 대통령의 부재 등이 그렇다.
   
   
▲ 오바마가 팬임을 자처한 ‘하우스 오브 카드’.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 넷플릭스의 신작 ‘지정생존자’.
예를 들어 ‘웨스트 윙’의 주인공인 대통령 조슈아 바틀렛은 다발성경화증을 앓고 있는 약점이 있다. 이 약점을 참모진과 함께 극복한다. 이들의 협업을 통해 삼권분립, 의회정치, 행정부의 조직에 대해 자연스레 배우게 된다. 정책의 입안부터 법안 끼워넣기, 여소야대 정국에서의 해법, 총기 규제와 의료보험 제도 등 현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이 재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웨스트 윙’에 출연했던 배우들은 작품을 통해 얻은 각성을 바탕으로 현실정치에 뛰어들기도 했다. 조슈아 대통령 역을 맡은 배우 마틴 쉰은 대선과 총선에서 민주당 선거활동의 모금에 참여했다. 크렉 역을 맡은 앨리슨 제니는 지난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유세를 지원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각본가의 역할이 크다. 먼저 ‘하우스 오브 카드’는 마이클 돕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마이클 돕스는 영국 마거릿 대처 정부의 실세이자 ‘아기 얼굴을 한 암살자’라고 불리던 인물이다. 장기 집권 중인 당의 궂은일을 도맡아 해오던 원내총무가 자신의 야망을 위해 정적을 제거하는 이야기는 그가 현실정치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의 반영이다. ‘웨스트 윙’의 작가 아론 소킨은 골든글로브 각본상을 수상한 할리우드 공식 이야기꾼이다. 그는 ‘웨스트 윙’ 외에도 ‘뉴스룸’ ‘소셜네트워크’ ‘스티브 잡스’ 등을 집필했다. 비범해 보이는 엘리트들의 내부 이야기를 통해 이들이 가진 한계와 인간적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 그의 작품의 공통점이다.
   
   ‘지정생존자’의 톰 커크먼은 역대 정치드라마의 주인공 중 가장 평범한 인물이다. 그의 평범함은 주변 정적들에게 조롱과 비방거리가 된다. 그는 영웅형 인물이 아닌 성장형 인물이다. 그가 정적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고, 혼란의 미국을 안정시켜가는 과정이 한 편의 드라마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욕망형 리더, ‘웨스트 윙’의 선한 의지의 리더를 지나 이제 ‘평범한 리더’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드라마가 가능할까. 안타깝게도 ‘한국형 정치드라마’를 꿈꾸었던 드라마 ‘어셈블리’나 ‘피리 부는 사나이’ ‘K2’ 등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보다 앞선 드라마 ‘제1공화국’ ‘제2공화국’ ‘제3공화국’ ‘제4공화국’ ‘제5공화국’ 등은 정부와 군 당국의 여러 압력으로 본 의미가 퇴색하거나 시청자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이는 백악관과 청와대가 가진 근본적인 차이에서도 비롯된다.
   
   백악관에 대한 미국인의 신망은 두텁다. 이는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를 초월한다. 드라마 ‘어셈블리’에서 주인공은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하고,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한다”고 일갈했다. 정치꾼이 아닌 정치가가 득세하는 세상이 온다면 한국에서도 그럴듯한 정치드라마가 탄생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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