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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4호] 201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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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독을 꿈꾸는 배우들

유슬기  조선pub 기자 prima@chosun.com 

▲ 영화 ‘핵소 고지’ 개봉을 앞둔 감독 멜 깁슨. photo 영화 스틸
연기를 시작한 지 60년, 일생 동안 연극과 드라마, 영화를 종횡무진 누빈 배우 이순재는 이렇게 말했다. “연극은 배우의 예술,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지난해 데뷔 50주년을 맞은 배우 윤여정 역시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감독의 디렉션”이라고 말한다. 배우의 뜻도 중요하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건 감독의 결정이라고. 그는 아무리 신인감독과 작업하더라도 연출에 관여하지 않는다. 현장의 선장은 감독이다. 영화계의 불문율이다. 배우는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수식으로 표현될 때가 많다. 페르소나, 감독의 분신이 되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렇게 가면을 쓰고 타인의 인격과 삶을 담아내다 보면 문득 가면을 벗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숱한 배우들이 자신의 필모그래피의 끝에, ‘감독’을 쓰고 싶어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나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가면을 벗는 대신 그만 한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2002년 예수의 수난기를 그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만든 멜 깁슨은 투자자도 배급사도 구하지 못했다. 자신의 사재를 털어 제작비 2500만달러를 마련했다. 이미 1995년 ‘브레이브 하트’로 아카데미 최우수감독상을 받은 바 있으나 영화계는 냉정했다. 당시 무릎이 꺾인 멜 깁슨에게 조언을 건넸던 이는 선배 배우이자 선배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다. “당신의 노력을 존중하라. 당신 자신을 존중하라. 자존감은 자제력을 낳는다. 이 둘을 겸비하면 진정한 힘을 갖게 된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남긴 명언이다. 덕분에 멜 깁슨은 포기 않고 작품을 만들었고, 곧 그가 연출한 영화 ‘핵소 고지’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하나의 전설이다. ‘밀리언달러 베이버’ ‘그랜 토리노’의 감독으로 알려져 있고 지난해에는 톰 행크스가 주연한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라는 실화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올해 그의 나이 일흔여덟, 여전히 그의 직업란에는 ‘영화배우’가 가장 먼저 등장한다. 배우로 시작한 그의 경력은 감독과 프로듀서, 작곡가와 정치가로 이어졌다. ‘황야의 무법자’로 서부영화에 한 획을 그으며 등장한 그는 1992년에는 아카데미 감독상과 제작상을 받았고, 2009년에는 칸영화제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작품이 남긴 사회적 메시지 못지않게 그의 발언에도 힘이 실려 공화당원인 그가 미국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그렇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 길에 많은 이들이 따라왔고 할리우드에서 배우가 감독으로 전향하는 일은 그렇게 유난한 일이 아닌 것이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유연하게 이 경계를 오가는 이는 하정우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용서받지 못한 자’ ‘범죄와의 전쟁’을 함께한 윤종빈 감독, ‘아가씨’의 박찬욱 감독, ‘암살’의 최동훈 감독과 ‘터널’의 김성훈 감독 모두에게 영향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미 ‘롤러코스터’ ‘허삼관’ 등의 영화를 연출한 하정우는 “감독 하정우는 배우 하정우에게 빚지고 있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배우로서 현장의 경험이 감독으로서 현장을 지휘할 때 유효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감독 하정우는 “주연배우의 아이디어가 소중하다는 걸 알았고, 그 때문에 (내가 배우로 출연하는 영화에서도)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곧잘 “우리는 선택받아야 일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한다. 외바라기 사랑 같지만, 감독에게도 주연배우를 찾는 것은 영화의 전부에 가까운 일이다. 이창동 감독은 지나가는 단역도 꼼꼼하게 캐스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류승완 감독은 “각본에 맞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게 영화 만드는 일의 거의 전부”라고 말한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짝패’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 이어 류승완이 찍고 류승완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다. ‘맨몸 액션’을 현실화할 배우를 찾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 데뷔작 ‘롤러코스터’를 찍은 배우 하정우(왼쪽).

▲ 영화 ‘복숭아나무’ 촬영현장에서 구혜선 감독.

   멜 깁슨, 조디 포스터, 하정우…
   
   여배우 쪽에서는 조디 포스터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피고인’ ‘양들의 침묵’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그는 1991년 ‘꼬마 천재 테이트’로 감독에 데뷔한 뒤 ‘홈 포 더 홀리데이’ ‘비버’ ‘머니 몬스터’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등을 연출하며 작품성과 흥행력 있는 감독으로도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다. 영화 ‘미녀삼총사’의 배우 드루 베리모어 역시 배우뿐 아니라 감독 및 제작자로 활동 중이다. 그의 말이다. “영화배우로 활동했지만 어느 순간 그 일에 만족할 수 없었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영화 제작에 도전했다. 이 후에도 관심 가는 미용이나 와인 사업에 도전하게 됐다. 도전은 도전을 부른다.” 그가 연출한 영화 ‘위핏’은 미인대회를 준비하던 소녀가 롤러 더비 선수가 되어 깨지고 부딪히는 내용이다. 할리우드의 왕언니가 된 드루 베리모어는 ‘위핏’이라는 더비의 기술을 빌려 뒤따라오는 소녀들을 힘껏 밀어준다. ‘미인대회를 나갈지, 롤러 더비의 선수가 될지 너 스스로 선택하라’는 메시지다. ‘블랙 스완’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내털리 포트만의 다음 행보도 감독 데뷔였다.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라는 첫 영화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 카메라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그는 동명의 소설을 읽고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한다. 감독뿐 아니라 각본, 주연까지 소화한 그는 ‘아름다웠으나 빛을 잃은 한 여인의 삶’을 담고 싶었다고 했다.
   
   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2011년 ‘피와 꿀의 땅에서’로 첫 장편영화 신고식을 했다. 2014년에는 코엔 형제가 각본을 맞은 ‘언브로큰’을, 2016년에는 이제 전 남편이 된 브래드 피트와 ‘바이더시’를 만들었다. 할리우드 대표 섹시 여전사 안젤리나 졸리는 자신이 연출한 작품에서는 평소 그가 관심을 갖고 있는 소외된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그는 평소 문신 하기를 좋아하는데 그가 새긴 문구 가운데는 ‘나를 부유하게 하는 것이 나를 망하게 한다’가 있다고 한다. 할리우드 배우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리는 이 중 한 명이지만 그중 3분의 1은 ‘의미 있는 일’에 쓰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한국에서 일찍이 감독의 길에 들어선 배우 구혜선은 이렇게 고백했다. “연예인을 하면서 기대했던 판타지가 사라지고 있다. 흥행이나 소득, 나의 필모그래피보다 소중한 건 그 과정 자체다. 죽기 전까지는 이렇게 일을 벌이면서 살고 싶다.” 단편영화 촬영과 음악작업, 전시회 등은 그의 삶의 일부다. 배우라는 직업보다 ‘아티스트’라는 말이 그의 수식이 되는 이유다. 한편 방송인 이경규는 평생 영화 ‘복수혈전’의 꼬리표가 그를 따라다닌다. 길을 가다가 대저택을 볼 때마다 “내가 영화만 안 했어도 이런 집에 살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예순을 바라보는 그가 현재도 왕성한 현역으로 활동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여전히 영화에 대한 꿈이 있어서다. 그 영화(映畫)가 가져다준 영화(榮華)가 결국 신기루처럼 사라진다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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