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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5호] 20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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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스’의 감독 마틴 스콜세지] “이 영화는 신을 향한 나의 속죄의 울부짖음”

박흥진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 마틴 스콜세지
믿음에 대한 심오한 탐구를 다룬 영화 ‘사일런스’를 감독한 명장 마틴 스콜세지를 LA 비벌리힐스의 포시즌스호텔에서 만났다. 이 영화는 17세기 일본에서 믿음을 버리고 세속인이 되어 사는 예수회 선배 신부를 찾아간 두 젊은 포르투갈 신부의 이야기로 신(神)과 신앙에 대한 회의와 갈등을 심오하게 다루고 있다. 엔도 슈사코의 소설이 원작.
   
   일흔네 살의 스콜세지는 단구지만 백발에 검고 짙은 눈썹을 지닌 매력적인 외모였다. 스콜세지는 모든 질문에 격정적으로 길게 대답했는데 내용도 매우 진지했다. 이 영화는 한때 신부가 되려고 했던 감독 자신의 신과 신앙에 대한 내면 고백이다.
   
   - 1990년부터 영화로 만들려고 한 것으로 아는데, 왜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는가. “나는 소설을 읽고 너무 감동해 즉시 영화화 판권을 샀다. 그리고 1991년에 제이 칵스(영화의 공동 각본가)와 함께 각본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20쪽의 내용을 영상화할 수가 없었다. 신을 부인한다는 것이 무엇이며 예수의 음성을 어떻게 영상으로 해석할지를 놓고 고민했다. 그러면서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면서도 나는 몇 달에 한 번씩 그 소설을 읽곤 했다. 한편으론 그러면서도 과연 이것 하나에 이렇게 매달릴 가치가 있는 것이냐는 의문에도 빠졌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그에 대해 몰입하면서 어느날 영상이 뚜렷이 떠올랐다.”
   
   - 제작 준비 과정이 궁금하다. “2009년에 도쿄와 나가사키에 가서 실제로 숨어서 기독교를 믿던 사람들과 다른 종교인들을 만났다. 그런데 일본에서 촬영을 하기엔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 대만에서 했다. 앙 리(이안) 감독의 건의에 따른 것이다. 대만과 나가사키의 자연 경관이 매우 비슷하다.”
   
   - 이 영화는 오락영화가 아닌 예술영화여서 만들기가 더 힘들었을 텐데. “지난 30년 동안 상업적 영화를 만들어 성공했기 때문에 흥행에 의문이 가는 영화도 만들 수 있었다. 나를 밀어주는 배우들이 있었기에 그것이 가능했다. 로버트 드 니로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같은 배우들로, 물론 나도 그들의 작품을 밀어주었다.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물음은 ‘너는 정말로 이 영화를 만들고 싶으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얼마나 희생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정말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큰돈 안 들이고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
   
   - 이 얘기에 집착한 이유가 혹시 감독이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인가. “난 믿음과 처음 대면한 이래 지금까지 계속해 그것을 찾고 있다. 믿음이 실제 일상에 어떤 형태로 작용해야 하는가를 찾고 있다. 믿는다고 해도 아무에게도 영향을 주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또 연민이 없는 사람도 있다. 잘못을 저지른 뒤 난 이제 저주받았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고, 난 너무 나쁜 사람이어서 다신 믿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내가 10대 시절 성당에 다닐 때 내게 깊은 영향을 준 신부가 있어 한때 그처럼 되려고 예비신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신부란 남과 같이 되려고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 안에서 솟아나야 하는 것이다. 내 영화는 대부분 신앙에 대한 이런 물음을 갖고 있다. 이런 주제와 개념을 비로소 제대로 표현한 영화가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이다. ‘사일런스’는 내게 순례와도 같은 작품이다.”
   
   - 영화가 천직이라고 생각한 것은 언제인가. “내가 신학교를 중도하차한 뒤 1950년대 후반이라고 생각된다. 그때부터 미국의 독립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난 아직도 무엇이 천직인지 잘 모르고 있다. 그것을 찾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 천직이란 아마도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믿는 것을 말할 것이다. 어쨌든 나의 정열이 영화의 길을 찾아갔다.”
   
   - 영화를 만들 때 어떤 자세를 취하는가. “난 무엇보다 먼저 장면의 영상부터 구상한다. 그리고 세트나 촬영 장소에서 조용한 것을 원한다. 잡음이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영화를 만들 땐 일절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작품에만 몰입하고 매달린다.”
   
   - 이 영화는 감독의 신을 향한 속죄와 구원의 울부짖음과도 같은데. “그렇다. 그것은 내 삶에 항상 존재하고 있는 요소다.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는 ‘속죄와 구원’을 영화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난 늘 속죄와 구원에 대한 얘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또 그것은 앞으로도 늘 내 속에서 풀어지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내게 있어 이 영화는 미완성의 작품이다. 신의 용서를 받아들이기 전에 자신이 먼저 스스로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 영화 ‘사일런스’의 한 장면.

   - 서양 신부들은 남의 나라의 오랜 전통과 문화를 말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그 말도 맞다. 그래서 난 일본 가톨릭 신자인 작가 엔도 슈사쿠의 견해를 가급적 많이 보여주려고 했다. 이 영화를 본 한 동양계 예수회 신부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여러 세기 동안 일본 사람들이 지녀온 진리를 무시하고 신부들이 열광적으로 자신의 진리를 그것에 대체시키려고 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행위라고. 그는 이어 선의의 열의가 오만과 불경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기독교적 복음과 식민주의의 폭력과의 고리는 아시아의 기독교계가 아직도 다 치료하지 못한 상처라고 말했다. 이 영화는 이런 문제들을 거론해 예수회로부터 아주 좋은 반응을 받았다.”
   
   - 주인공 캐스팅은 어떻게 결정했는가. “두 젊은 신부 중 주인공인 로드리게스 신부 역의 앤드루 가필드는 그의 영화 ‘네버 렛 미 고’와 ‘스파이더맨’을 봤을 때부터 눈여겨본 배우다. 오디션을 2시간 반 정도 했는데 그의 영혼을 볼 수가 있었다. 정말로 훌륭했다. 또 다른 젊은 신부 역의 아담 드라이버는 그 역에 완전히 몸을 맡길 준비가 돼 있었다. 나와 함께 고된 여정을 할 각오가 돼 있었다. 난 그의 얼굴과 몸으로 하는 언어가 마음에 들었다. 매우 독특하고 진실된 사람이다. 영화에서 두 사람은 역(役)을 위해 잘 먹질 못해 현기증을 일으켰을 정도다.”
   
   - 감독은 음악에 관한 기록영화를 여러 편 만들었는데 음악이 감독의 창조적 삶에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가. “어렸을 때 나는 뉴욕 퀸스의 노동자 가정에서 자랐다. 책보다 음악과 영화가 낙이었다. 재즈나 클래식을 들으면 감정적으로 지적으로 고무되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것들은 추상적으로 무언가를 내게 얘기해주었다. 음악이란 그 어느 다른 것이 해주지 못하는 것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난 음악으로부터 영감을 받곤 한다. 이 영화에서 매미, 개구리, 새, 그리고 바다와 같은 자연의 소리를 음악처럼 쓰려고 했다.”
   
   - 단골배우인 로버트 드 니로를 언제 처음으로 봤으며 그때 그가 지금과 같은 배우가 되리라고 알았는가. “로버트 드 니로를 처음 만난 것은 그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영화에 나오던 1969년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내 이웃에서 자랐다. 처음 봤을 때 인상은 아주 나이스하다는 것이었는데 별로 말이 없었다. 그 후 내가 자란 험악한 동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민 스트리트’(스콜세지의 이름을 유명하게 만든 영화)를 감독할 때 그에게 주연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밖에는 그 역을 해낼 사람이 없었다. 그나 나나 다 험악한 동네에서 성장해 우리가 ‘민 스트리트’에서 함께 일할 때 그것은 감독과 배우의 관계라기보다 친구로서 일한 셈이다. 그러나 난 그때만 해도 그가 이렇게 빅스타가 될 줄은 몰랐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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