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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3호] 2017.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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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잉 인 스타일’의 마이클 케인

“내가 한국戰 참전 안 했더라면…”

박흥진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 영화 ‘고잉 인 스타일’의 한 장면. 오른쪽이 마이클 케인, 가운데가 모건 프리먼이다.
자기들의 연금을 말아먹은 은행을 터는 3인조 친구 노인 강도들의 코미디영화 ‘고잉 인 스타일(Going in Style)’. 이 영화에서 주모자 역을 맡은 영국 배우 마이클 케인(84)과의 인터뷰가 최근 뉴욕의 위트비호텔에서 있었다. ‘한나와 그 자매들’과 ‘사이더 하우스’로 오스카 조연상을 두 번이나 탄 케인은 나이가 무색하게 정정했다. 그는 시종일관 농담을 섞어가며 활기차게 질문에 대답했다. 케인은 6·25전쟁에 보병으로 참전했는데 그의 스크린 데뷔작은 6·25를 다룬 ‘헬 인 코리아’(1956)다. 케인은 인터뷰 후 주간조선을 들고 사진을 찍을 때 표지의 제목을 보고 “이거 마이클 케인은 나쁜 배우라고 쓴 것 아니냐”며 농담을 했다.
   
   - 영화는 고객보다는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하는 은행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영화는 코미디이지만 현실적인 진지한 문제도 다루고 있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반영하는 영화다. 그런데 트럼프는 미국 밖으로 나간 기업체들이 다시 돌아온다고 하더라.”
   
   - 어린 시절 뭘 훔치려고 해본 적이 있는가. “2차대전 때 런던에서 시골로 피란을 가 살면서 늘 사과를 훔치곤 했다. 도시에 살 때 나무에 열린 사과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어머니는 늘 벌금을 내야 했다. 그것이 내가 저지른 가장 큰 범죄다.”
   
   - 당신은 다양하고 멋진 삶을 살아왔는데 아직도 뭔가 하고픈 일이 있나. “난 하고픈 일을 다 했고 가고픈 곳엘 다 가 봐 이젠 더 이상 하고픈 일이나 가고픈 데가 없다. 아직도 내가 매년 여름 찾아가는 곳은 내 아내의 가족이 살고 있는 바로 이 뉴욕의 퀸스다. 온 가족이 해변으로 피서를 간다. 그리고 영국과는 달리 1월에도 해가 빛나는 마이애미의 사우스비치에 있는 내 집엘 들르는 것이 낙이다.”
   
   - 몇 년 전 당신은 내게 당신이 6·25전쟁에 참전해 우리를 김일성으로부터 구해줬다는 말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 김일성의 손자가 핵무기로 미국을 공격하겠다고 위협을 하고 있다. “그때 내가 한국전쟁에 참전 안 했더라면 당신은 지금 북한 사람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싸우려고 다시 거길 가진 않을 것이다. 그런 협박을 하는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한국에 있지 않다는 것이 큰 다행이다. 김정은에 대해선 나도 알고 있다. 그는 그냥 공갈을 치는 것이다. 그렇게 작은 나라가 원자탄으로 남의 나라를 공격하고도 살아남을 수는 없다. 김정은도 그런 공격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모를 바보는 아니다.”
   
   - 부인 샤키라와 46년간 해로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그 비결은 욕실을 따로 쓰는 것이다. 여기에 있는 신사 여러분들도 내 충고를 듣길 바란다.”
   
   - 어떻게 멋있게 늙을 수 있는가. “계속해 일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삶을 살아야 하는데 요즘 나의 삶이란 세 명의 손자들을 보는 것이다. 그들로 인해 삶에 대해 새 안목을 갖게 됐다. 그래서 술도 줄이고 좀 더 오래 살기로 결심했다. 손자들이란 자기가 있는 줄 몰랐던 가슴의 공백을 메워준다. 그들이 내 청춘의 샘이다.”
   
   -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돈을 벌려고 애를 썼는가. “난 공장 노동자 출신으로 배우가 하고 싶어서 된 것이지 부자나 스타가 되려고 배우가 된 것은 아니다. 그 점이 내가 요즘 젊은 배우들과 다른 점이다. 64년 전에 내가 연극배우가 됐을 때 난 악센트나 출신 배경에서 배우가 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난 결코 부자가 되거나 유명해지거나 또 스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배우가 됐다. 가능한 한 가장 훌륭한 배우가 되기 위해 배우가 된 것이다. 그것이 지금도 내 신조다. 난 운이 좋았다.”
   
   - 어떻게 배우가 됐는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뒤 귀국해 20세 때 버터공장에서 일했는데, 함께 일하던 나이 든 사람이 나보고 젊은이가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었다. 내가 배우라고 했더니 그 사람이 극장이 있는 동네에 가서 ‘스테이지’라는 신문을 보면 배우 모집 광고가 있으니 지원해 보라고 알려줬다.”
   
▲ 마이클 케인 photo 박흥진

   - 지금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내 아버지가 살아서 나의 성공을 지켜볼 수 있다면 하고 바란다. 아버지는 내가 무일푼이던 배우 시절에 사망했다. 아버지는 수산시장의 짐꾼이었는데 돈도 없으면서 경마 도박을 즐겼다. 후에 내가 성공한 뒤 아버지가 도박을 즐기던 경마장과 붙은 집을 샀다.”
   
   - 좋아하는 경기는 무엇인가. “축구다. 난 첼시에 살고 있어 첼시팀의 열렬한 팬이다. 그러나 경기장에 가진 않는다. 군중 속에서 응원의 소리를 지른다는 것이 쑥스럽기 때문이다. 난 집에서 TV로 경기를 보면서 서서 소리를 지른다.”
   
   -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은 무엇인가. “어려움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부정적인 것이 있을 때마다 긍정적인 것이 있게 마련이어서 그것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다 어려움을 이용할 수 있는 쿠션을 갖고 있다.”
   
   - 당신의 손자들은 당신이 어렸을 때완 달리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살 텐데 혹시 아이들을 사치와 낭비에 젖게 하진 않는가. “절대로 아니다. 크리스마스나 생일 때 아이들이 비싼 선물을 요구하면 난 그럴 돈이 없다며 거절한다. 아이들이 50파운드짜리를 요구하면 30파운드로 깎는다. 아이들에게 돈의 가치를 철저히 가르치고 있다. 내 딸은 나보다 더 심해 아예 아무것도 안 사준다.”
   
   - 아이들에게 사준 가장 비싼 선물은 무엇인가. “얼마 전에 사준 자전거다. 100파운드짜리다.”
   
   - 연기할 때 늘 눈썹에 마스카라를 칠한다고 했는데 아직도 그런가. “난 눈썹이 노란색이라서 지금도 염색을 해야 한다. 노란 눈썹을 염색하지 않고 촬영하면 꼭 연쇄살인범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스스로 자신의 조사(弔辭)를 쓴다면 어떤 것이겠는가. “나중에 보자, 서두르지 마라.”
   
   - 아내 샤키라도 배우였는가. “아니다. 그녀는 모델로 단 두 편의 영화에만 나왔을 뿐이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내가 숀 코네리와 공연한 ‘왕이 될 뻔했던 남자’로 거기서 샤키라는 내가 아닌 코네리와 결혼했다. 그때 샤키라는 실제로 이미 내 아내였다.”
   
   - 책을 여러 권 썼는데 글 쓸 때와 영화 출연했을 때의 기쁨은 서로 다른가. “물론이다. 책을 쓰는 기쁨 중의 하나는 영화와 달리 대사를 외우지 않아도 되고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며 또 외모를 잘 가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밖으로 안 나가고 집에서 글을 쓸 수가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다. 혼자 자기 일을 하는 것이 좋은데 영화 찍을 때는 많은 사람들과 일해야 한다.”
   
   - 디스코를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아는데. “왕년에 내 별명은 ‘디스코 마이클’였다. 지금도 내 손자들과 함께 디스코를 틀어놓고 춤춘다. 아이들도 다 춤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젠 예전처럼 그렇게 자주 추진 못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디스코 노래는 ‘유브 로스트 댓 러빙 필링’이다. 춤추기엔 최고다.”
   
   - 다음 작품은 뭔가. “2년 전에 영국에서 65세 이상의 남자 5명이 6000만달러어치의 금괴를 강도질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를 영화로 만든다. 나는 주모자로 나온다. 그들은 지금 다 형을 살고 있지만 금괴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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