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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3호] 2017.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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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千의 얼굴 틸다 스윈턴

김민희  차장대우 minikim@chosun.com 

▲ (왼쪽부터) ‘옥자’(CEO 루시 미란다 역) /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뱀파이어 이브 역) / ‘닥터 스트레인지’ (티베트 승려 에인션트 원 역) / ‘콘스탄틴’(괴짜 천사 가브리엘 역) /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귀족 노파 마담D. 역) /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편집장 다이아나 역) / ‘설국열차’(메이슨 총리 역)
독보적 존재감이다. 언제부터인가 틸다 스윈턴이 출연하는 영화에서는 그녀만 보인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상관없다. ‘올란도’의 늙지 않는 16세 소년 올란도, ‘케빈에 대하여’의 엄마 에바, ‘나니아 연대기’의 하얀마녀같이 주연으로서의 쟁쟁한 존재감을 드러낼 때에는 더 말할 것 없다.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 ‘콘스탄틴’에서 ‘똘끼’ 넘치는 천사 가브리엘, ‘설국열차’에서 뻐드렁니 메이슨 총리,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신묘한 능력을 지닌 티베트 승려 에인션트 원같이 조연을 맡을 때에도 그랬다. 짧은 분량에도 주연을 압도하는 존재감으로 종종 주연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린다.
   
   개봉을 앞둔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서도 틸다 스윈턴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미란다 기업 CEO ‘루시 미란다’로 분한 틸다는 망가진 자본주의의 화신을 제대로 연기한다. 금발의 클레오파트라 단발에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새하얀 원피스 차림으로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그가 등장하는 장면은 늘 기시감이 없다. 어느 범주에도 편입될 수 없는 새로운 캐릭터를 내보인다. 루시 미란다의 과장된 말투와 표정, 몸짓은 그 누구도 닮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연기한 이전의 어떤 캐릭터와도 교집합을 찾아볼 수 없다.
   
   팔색조, 변신의 귀재…. 틸다 스윈턴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그의 변신의 폭은 여느 배우의 진폭을 훌쩍 뛰어넘는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올란도’에서 그는 팔색조 자체다.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말라’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명령에 따라 400년 동안 죽지 않으면서 남성과 여성을 오가며 살아가는 올란도는 그녀가 아니면 상상하기 어려운 캐릭터다. 그러고 보니 그는 시대와 성(性)을 뛰어넘는 캐릭터를 꽤 많이 맡았다. ‘콘스탄틴’의 천사 가브리엘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무성(無性)의 존재이고, ‘나니아 연대기’의 하얀마녀는 인간의 시간을 초월한 존재다. ‘콘스탄틴’의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은 무성, 혹은 양성의 천사 역으로 일찌감치 스윈턴을 점찍어뒀다고 한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에서는 또 어떤가. 스윈턴은 아예 영생불사하는 뱀파이어 이브를 연기했다.
   
   그런가 하면 엄청난 분장으로 그의 팬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역할도 꽤 된다. ‘설국열차’의 메이슨 총리가 대표적이다. 우스꽝스러운 뻐드렁니에 뱅뱅 도는 투박한 안경, 촌스러운 곱슬머리에 괴상한 말투, 게다가 어정쩡한 걸음걸이까지. 변신의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변신도 만만치 않다. 돈 많은 귀족 노파 마담 D.를 위해 장장 다섯 시간에 걸쳐 분장을 했다 하니 할 말 다했다. 지난해 개봉한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에서는 헤어스타일과 화장법의 변화만으로 아예 딴사람이 됐다. 잡지사 편집장 다이아나를 맡아 개중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를 연기한 이 영화는 틸다 스윈턴의 팬들에게 역설적이게도 가장 낯선 작품으로 꼽힌다.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학교 설립
   
   확실히 틸다 스윈턴은 그 누구와 비교되지도, 될 수도 없는 독보적 위상을 지녔다. 그가 연기한 배역들은 하나같이 ‘영원한 셜록’ 베네딕트 컴버배치만큼이나 다른 배우를 상상하기 어렵다. ‘킬 빌’의 우마 서먼이나 ‘악녀’의 김옥빈 같은 험한 액션 신 하나 없어도 견줄 데 없는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그 카리스마는 ‘걸 크러시’나 ‘센 언니’ 차원을 뛰어넘는다. 쇼트커트에 수트가 기막히게 잘 어울리는 스윈턴은 성(性)을 뛰어넘는 중성적 매력을 지녔다. 남성미와 여성미를 둘 다 지녔다기보다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표현이 옳을 듯하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매력보다는 마력에 가까워 보인다. 여성과 남성, 신과 인간, 현실과 초현실, 육체와 정신의 경계를 아우르는 마력.
   
   그의 독보적 카리스마는 신비로운 외모에 상당 부분 빚졌다. 179㎝의 큰 키에 핏기 하나 없어 보이는 새하얀 피부, 기다란 목에 조막만 한 얼굴, 투명하고 커다란 파란 눈동자에 길쭉길쭉한 팔다리를 보고 있으면 “우리와 같은 지구인 맞나요?” 묻고 싶어진다. 기자는 지난 6월 13일 대한극장에서 열린 시사회 때 코앞에서 지나가는 틸다 스윈턴을 보았다. 아주 우연이었다. 다른 배우들 틈에 섞여 웃고 떠드는 모습에서조차 이질감이 느껴졌다. 불시착한 우주선에서 잠시 내린 외계인 같다고 할까.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기 전, 무성의 존재인 신이 최초로 자신의 형상을 만들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스쳤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외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의 우아한 아우라는 나이 들수록 점점 강해지는 듯하다. 이 우아함은 그의 삶 자체에서 유래한다. 그는 1960년 군인 출신 아버지와 호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영국의 명문으로 꼽히는 웨스트히스 기숙학교를 나와 케임브리지대학교의 뉴홀 칼리지에서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했다. 웨스트히스에서는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동창이었다고 한다. 원래 꿈은 작가였지만 친구의 영향으로 우연히 배우가 됐다. 그가 살아온 궤적을 보면 배우라는 틀에 가두기엔 활동 반경이 너무 넓다. 예술에 조예가 깊어 전시 아티스트와 큐레이터로도 활약하는가 하면 종종 영화 제작에도 참여했다.
   
   ‘존 버거의 사계’는 틸다 스윈턴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는 영화다. 올해 초 타계한 미술평론가이자 작가인 존 버거와 스윈턴은 20년 지기 친구였다. ‘정신적 쌍둥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둘 사이의 교감은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4인이 공동제작한 이 영화에서 스윈턴은 ‘듣는 방법(Way of listening)’ 편을 제작하고 직접 출연해 존 버거와 교감을 나누었다. 존 버거의 대표 저서 ‘보는 방법(Way of seeing)’의 연장선상에서 존 버거의 사상을 들여다보는 스윈턴의 모습은 삶과 예술에 대한 그녀의 내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스윈턴의 삶은 평범치 않다. 누군가가 정해 놓은 틀이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과감히 틀을 깨고 나와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이란성쌍둥이 두 아이를 위해 만든 학교를 봐도 그렇다. 아이들이 14세이던 2013년, 틸다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에 ‘드럼두안(Drumduan)’이라는 작은 학교를 설립했다. 시험도, 테스트도 없고, 책상에 딱 붙어 공부할 필요가 없는 실험적인 학교다. ‘가디언지’에 따르면 이 학교에서는 음악 교육을 중시하고, 실용적인 수업 위주로 진행된다. 학년 구분이 없는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모여 직접 보트를 제작하는 과정을 통해 수학과 기하학, 물리학과 화학, 예술을 배우는 식이다.
   
   배우의 연기는 삶을 닮기 마련이다. 현실에 발을 딱 붙이고 살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꿈꾸고, 꿈꾸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만들어내는 틸다 스윈턴의 삶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지극히 이상적이다. 그 현실과 이상의 간극은 넓디넓다. 그 간극 어딘가에 스윈턴의 연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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