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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8호] 201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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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 감독 안젤리나 졸리

“전쟁영화가 아니라 사랑에 대한 이야기 여섯 아이 있어 행복”

박흥진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넷플릭스가 제작한 크메르루주의 캄보디아 양민학살을 다룬 실화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First They Killed My Father)’. 이 영화를 감독한 안젤리나 졸리(42)와의 인터뷰가 최근 비벌리힐스의 포시즌스호텔에서 있었다. 이 영화는 5세 소녀 때 크메르루주에 의해 온 가족이 수용소에 끌려간 뒤 부모를 잃고 살아남은 오빠와 언니들과 함께 4년간 지옥과도 같은 생활을 한 루앙 웅(47)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큰 키에 긴 머리를 하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 졸리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침착하고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했는데 자신의 유방암과 폐경 등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인터뷰 후 그와 사진을 찍을 때 필자가 “나는 한국인”이라고 말하자 졸리는 “아들 매독스(캄보디아 출생의 입양아)가 요즘 한국인으로부터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며 반가워했다.
   
   - 세계에서 자행되는 만행과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데. “나는 그동안 유엔의 인권대사로 활동하면서 보스니아전쟁을 비롯한 세상의 만행과 그 피해자들을 목격했다. 그래서 난 그것에 대해 보다 깊이 그리고 많이 알고 싶었다. 특히 캄보디아전쟁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제대로 얘기하질 않았다. 내 아들 매독스가 그 나라 태생인 만큼 소녀인 루앙의 눈으로 본 참상을 통해 아들에게 모국의 역사를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또 모든 만행의 피해자들이 어떻게 의지와 힘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를 얘기하고 싶었다.”
   
   - 매독스가 제작자로 참여했는데 함께 영화를 만든 경험은 어땠는지. “내가 캄보디아를 알게 된 것은 매독스를 생후 3개월 때 입양하면서이다. 그리고 언젠가 아들에게 ‘네 나라에 대해 깊이 알고 싶다고 느끼게 되면 내게 말해라’고 말했다. 나는 아들에게 캄보디아에 관해 얘기하려면 아들의 도움이 필요하고 함께 가야 한다고 다짐했다. 어느 날 매독스가 ‘이제 준비가 되었다’고 말해 함께 제작에 들어갔다. 아들은 조국의 역사에 관해 충분히 연구했고 편집을 비롯해 매일같이 작업에 동참했다. 그리고 이 얘기는 아이의 눈으로 본 것이어서 젊은 사람의 조언이 필요하기도 했다.”
   
   - 이 영화가 지금도 만행과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세상과 인류에게 어떤 치유능력을 줄 수 있다고 보는가. “이 영화가 사람들을 각성시켜 만행과 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우리는 전쟁과 절망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아이들을 비롯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참혹한 삶을 보내고 있다. 이 영화가 사람들을 각성시키는 촉매가 되기를 바란다.”
   
   - 감독을 하면서 연기할 때 얻지 못한 것을 얻기라도 하는가. “연기란 자신이 맡은 역을 위해 감정을 발산하는 일이다. 연기란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극중 인물의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출이란 내용 서술과 편집과 음악 및 모든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 한 작품을 연출한다는 일은 1년 반이라는 세월에 자신을 모두 바쳐야 하는 고된 일이다.”
   
   - 인도주의 활동과 영화 연출 등으로 분주한 날들을 보내는데 어디서 그런 힘을 얻는가. “작년은 많이 힘들었다. 가족 문제로(남편 브래드 피트와 2016년 9월 이혼) 하고자 하는 일을 제대로 성취하지 못했다. 요즘에는 아이들 돌보는 일이 내 일상사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인도주의적 일과 가족 문제 그리고 영화 만드는 일에 고루 균형을 갖춘 삶을 갖게 되리라 본다.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하면 그것을 밀고 나가면서 즐기게 마련이다.”
   
   - 유방 절제 수술 후의 후유증은 없는가.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더 나빴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행히 이제 암은 사라졌다. 감정적으로 힘들었는데 그 병 외에도 다른 건강상의 문제가 있어 건강에 신경을 쓰고 있다. 나는 치유책으로 웃고 모든 것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설사 화학물질 치료를 다시 받게 되더라도 살고 사랑하고 웃을 수 있는 능력을 찾아 매일을 충실히 살면 된다.”
   
▲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의 한 장면.

   - 혼자가 된 것을 즐길 수 있나. “즐기지 않는다. 내가 원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좋을 것이 하나도 없으며 힘들 뿐이다. 그러나 괜찮다.”
   
   - 여섯 자녀들은 서로 어떻게 지내는가. “그들은 서로를 돕고 또 함께 뭉친다. 큰 아이들은 작은 아이들을 돕고 또 모든 아이들이 나를 도와준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을 만큼 컸다. 내가 죽은 뒤에도 그들이 평생 함께 있고 서로 돌보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에 평화가 온다.”
   
   - 어둡고 처참하며 위험한 곳을 찾아다니고 또 그 경험에 대해 얘기하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닌데. “침묵하며 살아도 그에 대한 대가는 지불해야 한다. 하루의 일이 끝나고 잠자리에 들 때 모든 일을 최선을 다해 바른 이유로 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용감하게 밀고 나아가면서 살아야 한다. 잘못 발걸음을 내딛거나 무언가를 숨긴다는 것은 결코 건강치 못한 일이다. 용감한 사람을 보면 마음이 흡족해지지 않는가. 용감하고 앞을 향해 우뚝 선다는 것은 인간 조건의 한 부분이다.”
   
   - 요리 공부를 한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잘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요리를 배우고 있다. 그런데 난 다소 참을성이 없어 부엌에 서 있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열심히 하고 있다.”
   
   - 이 영화는 같은 소재를 다룬 ‘킬링필드’(1984)에 비하면 훨씬 덜 잔혹한데 처음부터 그런 의도였는가. “난 그 영화를 사랑하지만 그것은 캄보디아에서 찍지도 않았고 또 대사도 캄보디아어가 아니다. 그리고 얘기의 주인공도 내 영화와 다르다. 난 캄보디아의 참상을 그 안에서 겪은 사람들의 눈으로 얘기하려고 했다. 의도적으로 덜 잔인하게 만든 것은 아니고 소녀의 눈으로 본 것이어서 아이가 지나치게 끔찍하고 잔인한 것을 안 보려고 피해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겪은 고생만 하더라도 참혹한 것이 아닌가. 난 이와 함께 사랑과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감독을 하면서 리더처럼 바뀌었나. “약간 그렇다. 그러나 아이들을 여섯이나 기르다 보면 우두머리 노릇 할 여유가 전혀 없다.”
   
   - 10년 후의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 “모르겠다. 그저 건강하고 여전히 창조적이길 바란다. 그땐 아이들도 다 집을 떠났을 것인데 내가 무얼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도 아이들 뒤를 졸졸 쫓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벌써 할머니가 되고 싶진 않다.”
   
   - 책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직접 책을 쓸 의도는 없는지. “오래전 유엔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써놓은 일기를 출판한 적이 있다. 20대 때 쓴 것이어서 지금 보면 좀 부끄럽다. 그래서 그 후의 얘기와 함께 책을 증보판으로 만들지를 생각 중이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 방지에 관한 책을 쓸 생각을 하고 있다.”
   
   - 용서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난 정의를 믿는다. 정의 없이 완전한 용서를 요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세상에는 옳고 그름이 있고 정의와 범죄적 행위와 잔인이 있다.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에 이르려면 범죄를 밝혀내 그것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결코 증오를 품고 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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