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킬 오닐(46)은 정말로 컸다. 그와의 인터뷰가 진행된 LA 비벌리힐스 포시즌스호텔에 거대한 암산이 걸어 들어오는 줄 알았다. 미 프로농구 스타 플레이어였던 샤킬 오닐은 최근 ‘엉클 드루(Uncle Drew)’라는 농구 영화에 출연했다. 은퇴한 미 프로농구 올스타 선수들과 젊은 선수들이 뉴욕 할렘의 거리 농구 챔피언십에서 맞붙는다는 코미디 영화다. 이 영화에는 오닐 외에도 카이리 어빙과 레지 밀러 등 전직 베테랑 농구선수들이 나온다.

미 프로농구팀 LA 레이커스에서 뛰면서 팀에 챔피언십을 세 번이나 안겨준 오닐(샤크가 애칭이다)은 이 영화 전에도 ‘카잠’ ‘블루칩스’ ‘스틸’ ‘워시’ 등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한 바 있다. 인터뷰 장소에서 오닐은 의자에 의젓이 앉아 굵은 저음으로 겸손하게 질문에 대답했는데 시치미를 뚝 뗀 채 농담을 잘해 여러 번 폭소를 터뜨리게 만들었다. 매우 서민적이어서 친근감이 가는 인상이었다. 딱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 자녀가 여섯이나 되는데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가. “난 3남3녀를 뒀는데 그들에게 우리 집에서 더 이상 농구선수가 나올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변호사나 기술자 또는 회사 중역이 되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 집에선 절대로 공짜가 없으니 뭔가 먹고픈 것이 있으면 좋은 학교 성적으로 그 값을 치르라고 가르친다. 내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각자가 자신의 꿈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남을 존경하고, 삶을 즐기며, 언제나 바른 일을 하라고 이른다. 아이들이 날 단순히 ‘샤크’라고만 알지 않게 하려고 뒤늦게 대학에 가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땄다. 아이들이 다 잘 자라줘 난 운 좋은 아버지다.”

- 배우 생활을 계속할 것인가. “난 ‘록’(프로 레슬러 출신의 액션배우 드웨인 존슨의 별명)에게 심한 질투를 느낀다. 내가 할 역을 그가 다 가져갔다. 내가 덴젤 워싱턴과 같은 연기파는 아닌 만큼 ‘록’이 나온 것 같은 영화들을 만들고 싶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많은 영화에 나오고 싶다.”

- 의사 출신의 한국계 코미디언 켄 정과 함께 만들 TV 시리즈는 어떤 것인가. 켄과 ‘샤크’ 중 누가 더 우스운가. “압도적으로 켄이 더 우습다. 우린 다 우습고 똑똑하다. 또 박사들이다. 우리 콤비는 ‘러시아워’에 나온 재키 챈과 크리스 터커의 콤비에 버금가도록 일품이다. 켄과 함께 있을 때면 너무나 웃어 눈물이 날 지경이다. 우리가 만들 리얼리티 쇼는 유명인사들의 랩 경연대회를 다룬 ‘드롭 더 믹’이라는 것인데 켄이 너무나 잽싸고 재치가 있는 데다가 우스워 난 묵사발이 된 느낌이다. 쇼가 크게 성공해 사람들이 퇴근 후 빨리 집으로 돌아가 TV 앞에 앉아 쇼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게 되기를 바란다.”

- 아들 중 한 명의 농구 소질이 뛰어나다고 아는데 프로로 진출하나. “더 이상 농구선수가 나올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지만 그럴 것 같다. 샤리프(18)는 내가 질투가 날 정도로 소질이 있다. 15살 때부터 내가 코치를 했는데 한 번 가르치면 모든 것을 숙지한다. 나의 후원 없이 자기 실력으로 UCLA에 장학생으로 합격해 농구선수로 뛰고 있다. 자랑스럽다. 난 사실 아이들에게 늘 운동보다 공부를 하도록 독촉했다. 샤리프는 프로선수가 될 자격이 충분히 있다.”

- 생애 가장 기억할 만한 일이 무엇인가. “프로선수로 뽑혔을 때다. 우리 집은 그때까지 가난했었다. 선수로 선발되고 나서 큰 집을 은행 융자 없이 수표 한 장으로 샀는데 어머니는 집이 너무 크다고 오히려 걱정을 했다. 두 번째는 부모의 독촉에 따라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았을 때다. 세 번째는 2000년부터 2012년까지 3년 연속 레이커스를 챔피언으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석사와 박사학위 받은 것과 아이들을 낳은 것도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들이다.”

- 영화에서 분장한 노인 모습은 누구를 본떴는가. “딱 한 번 본 내 할아버지 모습 그대로다. 농부였던 할아버지도 나처럼 키가 컸는데 신장이 6피트11인치(212㎝)였다. 분장사가 날 노인으로 만든다고 해 어머니에게 할아버지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 사진대로 회색 수염과 머리를 한 노인이 됐다. 분장하는 데 매일 4시간이나 걸렸다.”

- 선수로 뛰면서 탈의실에서 겪었던 기억할 만한 일이 있나. “탈의실 장면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선수들의 흥분한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팀의 리더가 선수들을 훈계하는 엄숙한 모습이다. 나도 리더로서 선수들을 훈계도 하고 격려도 했는데 1분 정도 야단치면 5분 정도는 사기를 북돋아주곤 했다. 경기에서 이기면 ‘야 뭐들 해, 저녁 먹으러 가자’고 말했고 약체 팀에 지고 나면 선수들을 호되게 나무라곤 했다.”

- 농구가 없었다면 무슨 일을 했겠는가. “군인이나 경찰이 됐을 것이다. 아버지는 군 훈련교관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릴 적 내가 기술도 없이 큰 키만 믿고 농구를 할 때 ‘너도 아버지처럼 군인이 돼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삼촌은 경찰이었다. 어머니는 늘 내가 뭔지 대단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되뇌곤 했다.”

‘엉클 드루’에서 노인으로 분장한 샤킬 오닐.
‘엉클 드루’에서 노인으로 분장한 샤킬 오닐.

-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농구에서 찾게 되었는가. “난 TV를 통해 내 정체성을 찾게 됐다. TV에서 본 첫 영화가 농구영화인 ‘피츠버그를 구한 물고기(The Fish that Saved Pittsburgh)’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농구선수인 닥터 J(줄리어스 어빙)가 나왔는데 영화에서 그가 화면을 압도하면서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에게 ‘나도 저렇게 되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영화배우가 되겠니?’ 하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아니 닥터 J처럼 되겠다’고 답을 했다. 이에 아버지는 ‘그래 좋아, 그러나 먼저 학교부터 졸업해야지’ 하며 날 격려했다. 난 그때 이미 스포츠에 관심이 컸고 TV를 통해 닥터 J와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 등에 관해 열심히 연구를 했다.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선수로 뛸 때는 경기에서 이기고 돌아오면 동네 사람들이 박수로 환영해주던 것이 아주 자랑스러웠다. 가게에서도 ‘잘했다’고 물건을 공짜로 줬다. TV에서는 농구가 아니면 영화를 봤는데 한 번은 한국인이 브루스 리와 싸우는 영화를 봤다. 그때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난 처음부터 영화배우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언젠가 한 호텔에 묵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날 보고 ‘내가 ‘블루칩스’라는 영화를 찍고 있는데 거기에 나올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고 그것이 계기가 돼 스크린에 데뷔했다.”

- 코비(레이커스 선수로 오닐과 함께 뛴 코비 브라이언트)가 올해 단편 만화영화로 오스카상을 탄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은퇴 후에도 경쟁심을 느끼나. “코비에 대해선 몹시 질투가 나고 때론 분통이 터진다.(웃음) 그가 상을 타자마자 ‘축하’ 트윗을 보냈다. 그가 자랑스럽다. 난 은퇴해서도 경기할 때처럼 경쟁심이 강하다. 그래서 회사도 여럿 가지고 있다. 농구에서 터득한 기술을 회사 경영에 사용한다. 아이젠하워가 이런 말을 했다. ‘위대한 지도자는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을 고용할 줄 안다.’ 그래서 나도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다. 그리고 일일이 간섭을 안 하고 그들에게 업무를 맡긴다. 난 현재 실리콘밸리의 기술 분야에 관심이 많은데 늘 제일 먼저가, 또 최고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빨리 돈을 벌려고 한 탓인지 투자할 때마다 크게 잃곤 했었다. 나는 이 실패를 내 투자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 자신만의 드림팀을 만든다면 어떤 선수들로 구성하겠는가.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칼 말론, 스테픈 커리, 그리고 닥터 J다.”

- 농구선수가 되려는 젊은이들에게 어떤 충고를 해주겠는가. “첫째 위대한 선수들이 범한 실수를 살펴보고 그것을 반복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실수란 금전적일 수도 있고 사회적인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은 아버지가 내게 해준 충고이기도 하다. 둘째는 꿈을 좇으라는 것이고, 셋째는 돈을 저축하라는 것이다. 돈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선수들의 65%가 선수 생활이 끝나면 무일푼이 된다. 그들이 훗날을 위해 돈을 저축하지 않고 낭비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 역시 다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한번은 아버지에게 ‘나는 매직 존슨처럼 되고 싶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내 멱살을 잡으면서 ‘또 다른 매직 존슨은 없으니 샤킬 오닐이 돼라’고 했다. 따라서 난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나처럼 되는 것도 좋지만 나보다 나은 사람을 목표로 삼아라. 그러면 세상은 보다 나은 곳이 될 것이다.’”

- 흑인 선수들이 인종차별을 이유로 경기장서 국가 연주 때 무릎을 꿇거나 백악관 초청도 거절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난 정치 얘긴 안 한다. 내 상표는 ‘재미’다. 그러나 사람들은 각기 자기 의견이 있기 마련이다. 단, 내가 뭔가 주장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전략적으로 바르게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난 그들을 이해한다. 나의 아버지는 군인이어서 국기를 무시하면 노발대발했다. 사람들은 좌파일 수도 있고 우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뭔가 자기가 주장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아무도 불평하지 않을 주장을 하라고 권고하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가 누군가를 성질나게 만들면 둘은 더욱 더 갈라서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떠나 나의 일은 따로 있다. 사람들이 하루 종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를 보면 미소를 짓도록 하는 것이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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