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 기조를 앞세우며 국내 콘텐츠 시장의 지형을 흔들고 있다. 최근 방송가에선 넷플릭스가 국내 굴지의 엔터테인먼트 기업 및 지상파·종편 소속의 스타PD를 적극 영입하려 한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러브콜을 보낸 대상의 이름과 숫자까지도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수준인데, 넷플릭스가 PD 한 명에게 제안한 연봉 규모가 수억원대에 달한다는 말도 나온다.

넷플릭스의 콘텐츠 전략은 검증된 제작진과 연기자를 동원한 물량공세다. 기존 제작업체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앞세운다. 이를 위해 방송가를 ‘훑으며’ 종편과 케이블 채널 등에서 실력이 검증된 우수 제작 인력을 ‘모셔’가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기존의 콘텐츠 시장에서 유능한 인재를 ‘빼내기’ 하는 방식이 마치 2011년 종합편성채널(종편) 개국을 앞두고 지상파 방송사에서 일어났던 상황을 보는 것 같다는 말도 나온다. 넷플릭스발 인재 유출을 맞닥뜨린 한 방송가 관계자는 “해당 제작자에게 우리(방송사)는 줄 수 없는 금액을 제시했다더라”며 “(돈의) 규모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시장서 본격 승부

2016년 1월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했을 때, 이 업체의 성공을 점친 이는 많지 않았다. 당시 한국 사업의 주력 분야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였다. 넷플릭스는 이 무렵 이미 두꺼운 시청자층을 형성하고 있던 ‘미드(미국드라마)’를 필두로 내세우며 초반 흥행몰이에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정액제 중심의 스트리밍 서비스에 익숙하지 않았던 시청자들은 대부분 1개월 무료이용권 사용에 그치며 넷플릭스는 초라한 연말 성적표를 받아들어야 했다.

하지만 넷플릭스발 콘텐츠 시장의 지각변동은 피해갈 수 없었다. 넷플릭스는 2016년 본격적인 한국 시장 진출을 발표한 뒤로 꾸준히 기존의 콘텐츠 시장을 넘봐왔다. 2015년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 ‘옥자’에 5000만달러(약 580억원)를 투자, 독점 상영권을 가져갔고, 김은숙 작가의 tvN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의 판권을 약 300억원에 구매해 TV 방영과 동시에 상영했다. ‘국민MC’ 유재석의 새로운 도전으로 화제를 모은 추리예능 ‘범인은 바로 너’, 유병재의 ‘블랙코미디’ 등 예능 프로그램 제작에도 나섰다. 드라마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를 앞세운 신작드라마 ‘킹덤’엔 20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했다. 지난 5월 서울에 콘텐츠 발굴 등을 담당하는 상주팀을 꾸린 것은 한국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승부를 내겠다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넷플릭스는 미국에서 이미 한 차례 지각변동을 일으킨 바 있다. DVD 렌털업체에서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로 한 차례 변신한 넷플릭스는 미드 ‘하우스오브카드’를 비롯해 뛰어난 오리지널 콘텐츠로 콘텐츠 제작업체로 입지를 다져왔다. 넷플릭스는 매출의 70~80%를 콘텐츠 제작비로 지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자체 콘텐츠 제작에 80억달러(약 9조원)를 쏟아붓고 있다. 거대 유료 케이블 네트워크 HBO(25억달러) 투자액의 3배가 넘으며, 한국 콘텐츠업계의 총 제작비 4조5000억원의 2배에 달하는 규모다. 그 결실은 2018년 에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미국 TV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에미상에서 HBO와 함께 올해 최다 수상의 영예를 안으며 HBO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뉴욕타임스는 “넷플릭스가 17년 HBO의 아성을 무너뜨리면서 에미상의 새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현재 넷플릭스는 시가총액 약 1560억달러(약 176조9000억원) 규모의 세계 최대 OTT(over-the-top·인터넷으로 방송, 영화 등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업체로 평가된다. 전 세계 190개국에 회원 1억3700만명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 초 미국 내 가입자 수에서 케이블TV를 넘어섰으며, 미 대륙에 코드커팅(케이블TV 가입 해지)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지난 10월 공개된 3분기 매출은 40억달러로 집계됐는데 실적 공개 직후 넷플릭스 주가는 시간외 거래에서 15% 상승한 398달러에 이르렀다.

기존의 콘텐츠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는 넷플릭스지만, 자본력에 있어선 여전히 HBO, 디즈니 등 종전의 거대 미디어그룹을 따라가진 못하는 수준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넷플릭스의 최근 12개월 매출과 순익은 각각 149억달러와 13억달러다. 반면 디즈니는 같은 기간 580억달러 매출에 101억달러 수익을 올렸다. 디즈니 순익이 넷플릭스의 8배 수준이다. 기존의 거대 미디어 콘텐츠 업체들이 넷플릭스의 전략을 따라하며 시장을 방어하기 시작하면서, 넷플릭스는 또 다른 시장을 찾아나서야 하는 지점에 도달했다. 넷플릭스의 아시아 시장에 대한 공격적 투자엔 이러한 배경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리드 헤이스팅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1월 8일 싱가포르에서 ‘아시아 시장 투자 계획’을 공개하는 자리를 갖고 대대적으로 아시아 시장 공략 계획을 발표했다.

빅데이터 분석과 콘텐츠 현지화 전략

콘텐츠 제공의 측면에서 넷플릭스가 가진 강점은 크게 두 가지다. 빅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콘텐츠 추천과 현지화 전략이다. 넷플릭스는 시청 이력을 토대로 가입자별로 맞춤형 콘텐츠를 추천해준다. 이는 이용자들의 추가 시청을 유도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넷플릭스가 사업 초반, 상대적으로 적은 콘텐츠를 갖고도 높은 가입자 만족도를 이끌어낸 것은 이 정교한 ‘빅데이터 분석 능력’ 덕분이다. 넷플릭스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콘텐츠 추천 방식의 일례를 들면, 같은 작품이라도 가입자의 취향에 따라 다른 포스터를 보여주는 방식이 있다. 예컨대 영화 ‘펄프 픽션’의 경우, 우마 서먼 영화를 즐겨 본 사람들에겐 우마 서먼이 나온 포스터가 뜬다. 반면 존 트라볼타 영화의 팬이라면 그를 앞세운 포스터를 보여준다.

데이터 분석은 나아가 콘텐츠 제작 방향을 결정하는 데도 영향을 준다. 콘텐츠의 현지화 전략은 이를 기반으로 확립된 것이다. 헤이스팅스 CEO는 지난 11월 8일 싱가포르에서 한국 콘텐츠 4편, 미국 드라마 4편, 인도 콘텐츠 6편, 태국, 일본 등 넷플릭스 기대작 17편의 개봉 계획을 밝혔다. 현지의 우수한 제작진으로 ‘실패할 확률이 낮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아낌없이 돈을 쏟아붓는 전략이다. 한국 콘텐츠로는 내년 1월 25일 방영 예정된 김은희 작가의 6부작 ‘킹덤’, 유재석의 추리 예능 ‘범인은 바로 너’ 시즌2, 로맨스 8부작 ‘첫사랑은 처음이라서’, 로맨스 8부작 ‘좋아하면 울리는’ 등이 내년에 공개될 예정이다. 테드 사란도스 최고콘텐츠책임자(CCO)는 “오리지널 콘텐츠가 다른 업체들의 쇼를 라이선스한 것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면서 “앞으로도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를 지속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키워드

#방송
김경민 코인와이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