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황금기였던 1950년대 섹시스타로 명성을 날렸던 조안 콜린스. 그는 85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였다. 활기에 넘치고 명랑했다. 케이블TV FX네트워크의 인기 공포물 시리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아포칼립스’로 불사조처럼 연기인의 삶을 되찾은 콜린스를 최근 비벌리힐스의 포시즌스호텔에서 만났다.

콜린스는 고양이처럼 깜찍하게 생긴 크고 파란 눈을 가졌다. 영국 태생의 그는 영국식 악센트를 구사하면서 미성으로, 유머와 위트를 섞어 질문에 대답했는데 애교 만점이었다. 기억력이 놀랄 정도로 좋았다. 인터뷰 후 사진을 찍을 때 필자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콜린스는 “한국에 못 가봤다”고 했다. “꼭 한번 가보라”고 권했더니 “그러마”라며 미소를 지었다.

- 1980년대 드라마 ‘다이내스티’에 나온 지 벌써 40년 가까이 지났는데 소감은. “정말 오래전이다. 시간은 참으로 빨리 지나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특히 캘리포니아에서는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찰리 채플린이 이런 말을 했지. ‘내가 캘리포니아에 온 것이 21세 때인데 몸을 한 바퀴 돌렸더니 50세가 되었더라’고.”

- 그동안 활동이 뜸했는데 어떻게 이 시리즈에 나오기로 했는가. “난 그동안 미국보다 영국에서 활동했다. 거기서 연극과 ‘원 우먼 쇼’에 나왔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에 관해 얘기를 듣고 몇 편의 에피소드를 봤는데 매력적이었다. 독창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2월 한 파티에 참석했을 때 이 시리즈의 제작자인 라이언 머피를 만났다. 그가 내게 ‘당신을 위해 멋있는 역을 만들어줄 테니 시리즈에 나와 달라’고 부탁했다. 난 대뜸 그러겠다고 승낙했다. 그리고 2주 후 라이언으로부터 역이 마련됐다는 전화가 왔다.”

- 당신은 실제로도 그렇고 영화와 TV에서도 매우 강한 여자로 많이 나왔는데 그런 강한 힘은 어디서 오는가. “나의 아버지 덕분이다. 아버지는 연극 관계 에이전트로 일했다. 아버지는 ‘배우가 된다는 것은 수많은 퇴짜를 견뎌내야 하는 힘든 일’이라며 내가 배우가 되는 것을 결사 반대했다. 그렇게 위험을 경고받아서인지 난 그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17세 때 연예계에 들어섰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강인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운도 따라줬다. 연기학교를 거쳐 잠시 영국에서 활동하다가 20세기 폭스와 계약을 맺었다. 공교롭게도 이 시리즈도 폭스의 것이다. 27세가 되면서 배우 생활이 끝나는 줄 알았지만 꾸준히 일을 했다. 스타가 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일하는 배우가 되려고 했다.”

- 강한 성격의 배역을 요구하는가. “반드시 그렇진 않다. 단지 그런 역이 많이 주어질 뿐이다. 그러나 강한 역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 그레고리 펙과 나온 웨스턴영화 ‘브라바도스’에 관한 추억은. “난 그레고리 펙을 존경했다. 그는 상당히 초연한 태도의 사람이어서 다소 겁이 났다. 그전에도 말을 타보긴 했지만 매우 서툴러서 이 영화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승마를 배웠다. 성질이 사나운 말을 타라고 해 공포에 떨었다. 그런데 그레고리가 나보고 ‘이봐, 할 수 있으니 겁내지 말고 타라’고 격려하면서 같이 말을 타고 달렸다. 그러나 너무 무서워 그 뒤론 말을 절대 안 탔다.”

- 과거에도 공포물에 많이 나온 것으로 아는데. “난 1970년대 ‘공포영화의 여왕’이라고 불렸다. 6편 정도의 공포영화에 나왔는데 피범벅 영화들이었다. 공연한 배우 중에는 드라큘라 역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리도 있었다. 이번 시리즈도 피범벅이라는 점에서 옛날 것들과 마찬가지다.”

- 당신이 처음 할리우드에 왔을 때만 해도 ‘#미투운동’ 같은 것은 없었는데 옛날 경우는 어땠는가. “우리 젊은 여배우들은 그때 ‘성적 학대’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우린 늘 남자들의 먹잇감으로 여겨졌다. 나도 몇 차례 나쁜 경험을 겪었다. 그러나 난 강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인해 그럴 때면 남자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실제로 성적 학대를 당하진 않았다. 언젠가 마릴린 먼로를 만났는데 먼로가 내게 ‘이봐요, 할리우드에선 늑대들을 조심해야 해’라고 조언을 했다. 그래서 ‘난 늑대들을 다룰 수 있다’고 대답했다. 늑대들은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에도 있었다. 영국에서 영화를 찍을 때 제작자가 날 성적으로 노려 영화 관계자들이 날 옷장 안에 숨겨야 했을 정도다. 그러나 난 결코 당하진 않았다.”

- 긴 과거를 돌아볼 때 ‘다르게 했어야 하는데’라고 후회하는 것이라도 있는지. “다섯 명의 남편 중 둘과는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외엔 그런 후회가 드는 일이 없다. 난 내 삶에 만족한다. 배우 생활을 중단하고 결혼해 아이들을 낳고 아내와 어머니 노릇을 충실히 했다. 그러다 아이들을 부양하려고 영국으로 되돌아가 배우 노릇을 다시 시작했다.”

- 어떻게 해서 그렇게 기억력이 좋은가. “모르겠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른 것을 전혀 못 느낀다. 나보다 젊은 남편을 둔 것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난 삶의 기쁨과 함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또 나는 모든 것을 즐긴다. 기억력을 지키기 위해 매일 4종류의 신문을 읽고 잡지도 6~7권 정도 보며 세계 뉴스도 놓치지 않고 따라간다. 늘 현재 상황에 뒤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 운동을 하는가. “약간 한다. 운동은 필수적이나 심한 것은 안 한다. 몇 주 전에 좀 심하게 몸 풀기를 하다가 근육을 다쳐 한동안 고생했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의 조안 콜린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의 조안 콜린스.

- 당신은 18세 때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선정됐고 그 후 섹스 심벌로 알려졌는데 이런 것들이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한 잡지에 의해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뽑혔을 때도 그것을 진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난 허영에 들뜬 사람이 아니다. 난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 이 직업에선 미녀라는 것이 낙인처럼 붙어다니게 마련이다. 내가 비비안 리처럼 예쁘다는 말은 아니지만 비비안 리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먹고 보다 심각한 역을 맡고서야 훌륭한 배우로 인정받았다. 통상 예쁘면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들을 했다. 내가 젊었을 때 나온 영화평들은 다 ‘콜린스는 아름답긴 하나 과연 연기를 할 줄 아는가’라는 식이었다. 다소 고통스러웠지만 그것을 극복해냈다.”

- 만약 ‘젊은 당신’에게 충고를 해줄 수 있다면 어떤 것인가.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훌륭하다라는 것이다.”

- 패션감각은 어떤지. “패션이라는 것은 야단스러운 잡지용이어서 난 싫다. 패션에 따르기보다는 우아하고 스타일 멋진 것을 따른다.”

- 정말로 바랐으나 맡지 못한 역이 있나. “클레오파트라다.”

- 아직도 당신이 원하는 역을 추구하는가. “아니다. 그렇게 하려면 여러 사람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데 난 그런 사람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게으른지도 모른다. 난 모든 것을 내 에이전트에게 맡긴다. 이 시리즈에 나오게 된 것은 정말로 운이 좋아서인데 라이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 미의 정의는 무엇인가. “미란 모든 것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난 많은 사람들 안에서 미를 발견한다. 난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심미주의자다. 난 추한 것을 싫어한다.”

- 사랑의 정의는 무엇인가. “사랑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다. 그것은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단지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그것은 꾸밀 수 없는 것으로, 오직 사랑하거나 아니면 사랑하지 않거나 할 뿐이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말은 할리우드에서 지나치게 사용되고 있다.”

- 어디서 사는가. “LA와 런던에 아파트가 있고 프랑스 남부에 별장이 있다. 돈을 저축해 산 것들이다.”

- 명성이란 무엇인가. “난 나를 유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 이 동네에서 정장을 하고 다녀도 아무도 몰라본다. 식당에 가서 자리를 예약할 때도 내 이름을 말하면 ‘조안 누구?’ 하고 묻곤 한다. 그래도 상관없다. 난 유명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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