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에 대한 투자 거의 없어 전통문화 전용극장 전무
가야금 500만원 너무 비싸다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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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가요 한류는 경제적으로 보면 칭찬을 받아 마땅하지만 정신적으로 보면 안타까운 점도 있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아류라고까지 할 수 있죠.”

지난 11월 23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커피숍 ‘클럽 에스프레소’에서 만난 국악인 김덕수(58)씨는 최근 가요 한류 열풍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연희과 교수인 그는 11월 27일까지 열린 ‘서울젊은국악축제-청마오름’의 예술감독도 맡았다.

김 교수는 진정한 한류란 우리 혼이 들어있는 예술의 세계 진출이라고 강조했다. “그건 꼭 정통 국악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전통 예술 혼이 들어있어야 합니다. 저 역시 33년 전 사물놀이를 내놓았을 때 음악평론가들로부터 전통을 부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당했습니다. 근본을 지키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부지런히 옷을 갈아입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가요 한류에서는 그러한 정신조차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국악 접합한 음악장르 다양하게 나와야

그는 우리나라의 신명을 이용한 가요도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그래야 진정한 한국 문화가 세계에 나가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처럼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를 따라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춤사위를 가미하는 곡도 있어야 합니다. 장르가 다양해져야죠.”

김 교수는 ‘서태지와 아이들’ 1, 2집 작업에도 참여한 바 있다. “서태지와 함께 작업한 것은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국악에도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록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코리안록을 만들고, 블루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코리안 블루스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가락에도 블루스와 비슷한 육자배기가 있고요.”

그는 ‘난타’가 세상에 나오게 한 산파 역할도 했었다. “제가 ‘난타’ 예술감독을 맡았고, 우리 단원들이 1년 동안 힘을 모아 탄생시킨 작품입니다. 난타는 100% 사물놀이 리듬을 넌버벌(non-verbal) 공연으로 만든 것이죠.”

김 교수는 ‘난타’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품들의 전용 극장을 바탕으로 외국인을 한국에 불러들일 수 있는 단계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처럼 말입니다. 우리 공연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한국을 찾아와야 합니다. 난타가 길을 열었으니 우리 혼이 들어간 후속 작품이 많이 나와야죠. 그런 작품들이 해외로 나갈 때는 ‘태양의 서커스’처럼 작품뿐만 아니라 전용 극장까지 함께 나가는 형태가 되겠죠.”

그는 우리 전통문화를 기본으로 한 전용극장이 하나도 없어 아쉽다고 했다. “한국의 공연장은 모두 서양식입니다. 그런데 공연장은 공연만 보는 곳이 아닙니다. 극장에 오는 사람은 우리 건축 양식을 비롯해 다양한 전통 문화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중국에는 경극 극장, 일본에는 가부키 극장이 있지 않습니까.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 해설 서비스까지 하면서도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오페라, 뮤지컬 등을 위한 극장 설립에만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국악에 대한 투자가 거의 없는 현실도 개탄했다. “제 스스로가 답답해서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전통연희상설극장인 ‘광화문 아트홀’을 열어서 운영하고 있는데 그 유지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올 초에는 사물놀이를 4D 기술과 결합한 ‘디지로그’ 공연을 올려보기도 했습니다.”

그는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연주만큼은 라이브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 국악공연도 MR(Music Recorded·반주음악)로 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이는 눈속임 아니 귀속임입니다. 미술로 치면 모조품이죠. 당장은 편할지 모르지만 제 살 깎아먹기를 넘어 죽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보급형 국악기 양산해야

김 교수는 보급형 국악기의 양산도 주장했다. “1980년대부터 악기 회사들에 제안을 했지만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 가야금 한 대에 500만원 내외입니다. 돈 없는 사람은 국악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전통 가야금도 있어야 하지만 기타처럼 값싼 보급형 가야금도 나와야 더 많은 사람들이 연주를 하지 않겠습니까.”

사물놀이의 경우만 하더라도 전세계 곳곳에 진출해있는데 한국에서는 오히려 감상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30년 전부터 외국을 돌아다니며 사물놀이를 가르쳐준 학생들이 이제는 대학교수까지 되었습니다. 우리 음악은 어느 민족도 가지지 못한 에너지 덩어리입니다. 우리의 리듬은 바로 우리의 언어에서 나오고요. 이를 잘 포장해서 세계인들이 더욱 공감할 수 있게 만들 겁니다.”

김 교수는 국악의 근본 중에서 중요한 것 하나가 ‘농현’이라고 했다. “농현은 판소리를 비롯해서 관악기, 현악기, 춤사위 등을 모두 곡선으로 감아서 흔드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것을 10년 동안 작업해서 ‘원방각 이론’으로 만들었습니다. 대학에서 그 작업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 것을 공부하게 하려면 체계적으로 학문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들어 미국, 유럽, 호주 대학 학생들이 우리 음악으로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방한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교육을 강조하는 그는 1주일에 이틀은 초·중·고등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서울은 물론 여수까지 내려갑니다. 여수에 사물놀이 지정학교가 3개 있거든요. 아이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우리 전통가락으로 만들어 공연을 하기도 하는데 기특합니다.”

아들은 힙합 가수, 부인은 살풀이춤 이수자

현재의 국악교육 문제점 중 하나는 기악 중심 수업이라고 밝혔다. “국악은 소리, 춤, 악기가 함께 어우러져야 합니다. 그리고 록, 재즈,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와 접목이 시도되어야 합니다. 이번 ‘서울젊은국악축제’에서도 록그룹 ‘사랑과 평화’ 리더인 최이철씨, 발레리노 이원국씨, 노원구립소년소녀합창단 등과 협연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G20 정상회의에서 공식적인 국악 공연이 없어 아쉽다고 했다. “영부인들이 한복 패션쇼를 볼 때 공연하고, 코엑스 극장에서 각국 기자들을 위해 공연한 것이 전부입니다. G20 정상들 앞에서는 국악 공연이 없었습니다.”

김 교수의 아들 김용훈은 수파사이즈라는 예명으로 힙합 음악을 하고 있다. “가수 김세레나씨 아들과 새로운 팀을 구성해서 듀오로 활동할 예정입니다. 기획은 가수 태진아씨 큰아들이 맡았고, 프로듀서는 ‘듀스’의 김현도가 담당합니다. 제 아내(김리혜)는 재일동포 2세로 1965년 저의 공연을 처음 봤습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한국 전통예술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재일동포 예술가들을 모국 공연에 초청하기 위해 다시 만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1981년 결혼했죠. 아내는 무형문화재 27호인 승무, 97호인 살풀이춤 이수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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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호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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