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00부대 요원들이 훈련 중인 모습. ⓒphoto Istrael Hayom
8200부대 요원들이 훈련 중인 모습. ⓒphoto Istrael Hayom

8200부대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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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Hamas)와 50일간 교전을 벌였던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가자지구 사망자가 2200명에 육박한다거나 이스라엘 아군 전사자가 60명을 넘어섰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스라엘 최고의 정보 수집부대로 통하는 ‘8200부대(Unit8200)’ 예비군 43명이 “더 이상 팔레스타인을 학대하는 군복무는 할 수 없다”며 공개항명(抗命)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국민이 놀란 점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이스라엘방위군(IDF) 중에서도 최고 엘리트만 모였다는 8200부대원들이 전시(戰時) 상황에서 국가에 반대 의견을 표출했다는 배신감이었다. 아랍 적대국으로 둘러싸인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고 신뢰받는 직업 1위는 늘 군인이다. 전 세계적으로 이스라엘의 강압적인 팔레스타인 군사정책에 대해 비난이 고조되고 있던 때였지만 정작 그 대열에 존경받던 8200부대원들이 동참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모셰 얄론 국방부 장관은 “8200부대는 신의 작전(God’s work)을 펼친다. 이스라엘의 국가 존재를 보호하는 것은 8200부대”라며 “8200부대의 업무를 그런 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결국 이스라엘과 IDF에 적대적인 세력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야당도 뜻을 같이했다. 오는 3월 이스라엘 총선에서 유력한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8200부대 출신의 이삭 헤르조그 노동당 대표는 “8200부대의 역할은 비단 전시뿐만 아니라 평시에도 필수적”이라고 가세했다. 결국 이스라엘 국방부는 지난 1월 27일 “이들의 행동은 이스라엘군의 기준과 윤리에 어긋난다”며 43명의 8200부대 예비군 자격을 박탈했다.

이스라엘 국민들이 놀란 점은 또 있었다. 바로 항명 사태에서 드러난 8200부대의 광범위한 정보 수집 범위였다. 43명의 예비군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팔레스타인인의 성적(性的) 취향, 불륜, 돈 문제, 가족의 건강 상태까지 닥치는 대로 정보를 수집했다”고 폭로했다. 팔레스타인 포로나 정보원을 협박하고 회유하기 위한 용도였다.

비슷한 시기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출신의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국가안보국(NSA)은 미국에 살고 있는 아랍계 미국인과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의 통화 내용을 도청해 이를 정기적으로 8200부대에 전달했다”고 밝히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스노든에 따르면 2009년부터 NSA와 8200부대는 서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민감한 개인 사생활 자료들을 공유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8200부대를 둘러싼 논란은 최근에 드러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8200부대의 한 해 예산, 정확한 조직 규모, 작전 사항, 심지어 지휘관의 신상 정보까지 철저히 기밀에 부쳐진다. 현역 18만여명 규모의 IDF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부대에 속한다는 점,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사막의 한복판 인적이 닿지 않는 곳에 본부가 있다는 것 정도가 알려져 있을 뿐이다. 8200부대는 미국의 정보 수집을 총괄하는 NSA에 버금가는 정보력을 토대로 이메일, 전화 도·감청, 사이버 감시를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물론 주변 아랍국과 아프리카의 군사 동향까지 상시 체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8200부대는 1952년 창설됐다. 1948년 아랍국과 독립 전쟁을 벌인 끝에 간신히 이스라엘을 건국한 유대인들은 국가 안보에 있어서 정보 수집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8200부대 명칭의 의미는 부대 창설 당시 동구권 출신 유대인 8명과 이라크 출신 유대인 200명으로 구성돼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만 18세가 되면 남녀 모두 3년·2년씩 군복무를 하는 징병제 국가 이스라엘에서 해마다 고3 학생들의 졸업 시즌이 되면 8200부대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정도로 인기가 높다. 수학, 과학, 공학,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능한 이공계 수만 명의 우수한 두뇌 중 실제 8200부대에 입대하는 인원은 극소수로 알려져 있다. 일부에서는 이스라엘 정부가 불법행위로 적발된 뛰어난 해커들에게 감옥과 8200부대 입대 중 선택권을 주고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8200부대의 유명한 일화 중 하나가 바로 ‘웜바이러스(worm virus·컴퓨터 시스템을 파괴하는 악성 프로그램)’를 통해 이란의 핵 개발을 저지시킨 사건이다. 본격적인 세계 사이버 전쟁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이 사건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란의 핵발전소 설비가 잦은 고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란 정부는 발전소 설비의 사소한 고장인 것으로만 생각하고 1년 넘게 오류를 찾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스턱스넷(Stuxnet)’이라고 불린 산업시설 파괴 전문 악성 소프트웨어가 이란의 우라늄 농축 시설에 은밀히 침투돼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란 당국이 이러한 점을 간파했을 때는 이미 핵시설은 무력화된 상태였다. 이 사건으로 이란 핵 개발이 수년간 지연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당시 전 세계 사이버 보안 전문가들은 충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란의 핵 원심분리기에 미세한 오작동을 일으키도록 설계된 웜바이러스는 자폭 시스템까지 갖춰 외부에 발각될 상황을 대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심분리기 내부의 압력과 속도를 계산해 정밀한 타격으로 핵 발전 공정을 무력화시켰던 웜바이러스는 개인 차원의 해커 수준에서 만들어질 수가 없는 것이었다.

8200부대 요원들이 인터넷을 통해 동영상을 분석하고 있다. ⓒphoto Moti Milrod
8200부대 요원들이 인터넷을 통해 동영상을 분석하고 있다. ⓒphoto Moti Milrod

글로벌 보안업체 시만텍은 당시 “현재 스턱스넷에 감염된 전 세계 컴퓨터 중 60%가 이란에 소재한 컴퓨터”라고 발표하면서 이 같은 주장에 더욱 힘을 실었다. 사이버 보안 전문가들은 “이 정도로 정교한 사이버 공격은 국가적 규모의 지원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결론 내렸고, 그 배후로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 8200부대가 지목됐다. 국제적 비난 부담이 큰 군사적 타격보다 은밀한 사이버 공격을 통해 원하던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군은 이에 대해 현재까지 ‘시인도 부정도 하지 않는 입장(NCND·neither confirm nor denv)’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1년 이스라엘 정부는 총리실 직속기구로 ‘국가 사이버국(National Cyber Bureau)’을 창설하고 사이버 강국 원년을 선포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우리는 새로운 세계에 있다. 새로운 적(敵)들을 대비해야 한다”며 “이스라엘의 사이버 국방력을 높여 실제 보안 시설들을 보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민의 사이버 공간까지 지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2007년에는 시리아의 핵 의혹 시설을 이스라엘 공군이 공습하는 과정에서도 8200부대가 관여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해당 건물이 핵 시설이라고 판단할 만한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스라엘군의 공습 요청에 시큰둥한 상황이었다. 이에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Mossad)에서 스파이를 잠입시켜 내부 사진을 찍어왔고, 해당 시설이 북한 방식으로 설계돼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시리아 정부와 북한 당국의 연결고리까지 확인한 셈이었다. 이스라엘 공군은 주저 없이 시설을 공습했다. 애초 해당 시설을 처음 주요 감시 대상에 넣고 모사드와 협력한 것은 주변 정보 수집 작업을 통한 8200부대의 성과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8200부대원들은 전역을 한 뒤에도 환영받는다. 이스라엘 IT 업계의 구인 공고에서는 ‘8200부대 출신 우대’라는 조항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start up)’ 신화의 배경에는 군에서 실전 기술을 익힌 이들이 상업 시장에 나와 이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데 능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고교생들이 8200부대에 입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예를 들면 군대에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 테러리스트의 행동 패턴을 추적하고 이들을 적발해 왔던 8200부대원들이 전역 후 비슷한 방식으로 온라인 쇼핑몰의 ‘블랙 컨슈머(고의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를 효과적으로 추적하는 진기한 벤처 기업을 만들어 내놓자 세계가 이에 열광하는 식이었다. 이스라엘의 세계적인 보안업체 ‘체크포인트(Check Point)’ CEO로 이스라엘의 최고 부자이기도 했던 길 슈웨드는 8200부대 출신이다. 그는 군복무 시절 직접 개발한 네트워크 접근 방지 기술을 사용해 미국 유수의 기업들에 효과적인 방화벽을 제공하며 기업을 키워 왔다. 미국의 신용결제 시스템 업체 ‘페이팔(PayPal)’이 인터넷 신용사기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기술을 발명한 이스라엘의 벤처 기업 ‘프로드 사이언스(Fraud Science)’를 1억6900만달러에 인수해 화제가 됐는데, 프로드 사이언스의 설립자 샤케드 역시 8200부대 출신이다. 샤케드는 실제 8200부대에서 테러리스트의 온라인 활동을 추적하는 업무를 맡아 왔고 이를 전역 후에 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약 200여개의 사이버 안보 관련 벤처 기업들이 있는데 이 중 상당수가 8200부대원들이 전역 후 창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총리실의 국가 사이버국은 2년 전부터 8200부대를 비롯한 군의 정보 수집 기능과 민간 분야의 사이버 안보 분야 협력을 강화하는 ‘사이버 스파크(Cyber Spark)’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이스라엘 남부 브엘셰바 지역에 총 20만㎡(약 6만평)의 부지를 선정하고 이곳에 IDF와 대학, 전 세계 안보 기업의 연구개발(R&D)센터를 한곳에 모으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미 이스라엘군과의 협력으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외국계 소프트웨어·안보 업체들이 모여들고 있다. 국가 사이버국 관계자는 “사이버 스파크 한곳에서 이스라엘 청년들은 ‘대학-군대-취업’이라는 인생의 진로를 한 번에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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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희 조선일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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